바람이 몹시 부는 날 저녁 밖에서 제법 큰 짐승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비명소리는 짤막했지만 귓속을 헤집고 들려오는 처절한 음량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2층 유리문을 열고 배란다로 나가니 앞집의 올드미스 “홍”도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담장 밖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아직 7시가 못 되었으니까 다른 때 같으면 아름답게 채색된 석양노을이 마을 길목에 머물러 있을 것이었다. 

"What happen (뭔 일)?“

 그녀는 자기도 잘 모른다는 뜻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오른손을 들어 어둠에 가려지기 시작한 쓰레기 하치장을 가리켰다.

 쓰레기 하치장은 마을 담장 너머에 있다. 우리집과 그녀의 집 그리고 골프장 게스트 하우스는 하치장과 잔디밭 공터를 사이에 두고 마름모꼴로 대치되어 위치하고 있으니 이 네 집은  마을에서 하치장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래서 가끔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들쥐들과 들쥐들을 노리는 뱀들 그리고 들고양이 들개들의 싸움 소리를 듣게 된다. 통상 밤중에 일어나지만  이날은 비바람이 불다보니 오후 늦게부터 생존의 각축이 시작된 모양이다. 가끔 인도인 어린애들이 밤에 그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살모사를 잡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구아나나 살모사는 관절염이나 허리통증에 특효약이라고 한다.

주민 자치 위원회를 수신처로 한 탄원서를 작성하였다. 두 집 건너편 집의 "찬"이 찾아와서 쓰레기 하치장 때문에 피해를 입을만한 주민들 의견은 수렴하지 않고 반대편에 위치한 주민들의 불평만 받아들여 자치위원회 마음대로 하치장을 설치했으니 우리도 이것에 대하여 콤프레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집마다의 쓰레기는 시청에서 나누어 준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이를 일주일에 두 번씩 수거하러 오는 시청 청소차가 냄새로 가득 찬 오물덩어리였다. 주민들은 이 오물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코를 막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이에 주민들이 마을자치회에 진정을 하였고 자치회는 마을 정문에서 멀지 않은  밖의 한적한 곳에  변전소 창고로 쓰고 있는 조그마한 건물을 비워 그 곳에 쓰레기를 임시 모아두도록 한 것이다.

 고용된 인부는 손수레를 마련하여 매일 한 번씩 집 앞의 쓰레기통을 비운 뒤 그 쓰레기들을 하치장에 모아두는 일을 하였고 다시 그 쓰레기들은 시청의 청소차가 마을로 들어오지 않고 마을 밖에서 수거해가곤 하였다.
   
 

 문제는 밀폐된 창고에서 저장되고 발효된 음식물 쓰레기들은 주위에 심한 악취를 풍겼고 바람이 마을로 향하는 때에는 우리 집, 게스트 하우스 및 탄의 집 등 가장 근접한 집들은 물론 건너편 집들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창고 안의 여유가 없어 밖의 벽 밑에라도 쌓아 둘라치면 들쥐나 두더지들이 몰려들었고 팜나무 밑의 뱀들은 그들을 노렸다. 어느덧 하치장은 밀림 어느 곳 만큼이나 치열한 동물들의 싸움터가 되어버림으로써 인근 집들은 그러한 동물들의 침입에도 가뜩이나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탄원서(petition)는 1. 악취 때문에 여러 사람이 두통을 앓고 있다. 2. 파리 모기 등을 비롯한 벌레들의 서식처가 되어 있다. 3. 들쥐 뱀들이 자주 출몰하여 마을 안으로 침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음식이 발효하지 않도록 하치장 건물 안에 하늘로 향하는 통풍 장치를 하고 시청 청소차가 오물을 수거해 간 즉시 하치장 내외를 철저히 청소를 하는 등등의 위생조치를 강구해 달라, 는 내용으로 여섯 집이 연대 서명을 하였다.

 우리 집에서  한집 건너의 인도인도 포함되었다. 조치를 취해주지 않을 경우 관리비 납부를 보류하는 것은 물론 시청에 진정을 함과 동시에 변호사를 사서 대처하겠다는 등의 강경한 문구도 넣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우선 이번 답장이나 받아보고 차후를 생각해보자고 하였다.       

 보름이 지나도록 답변은 없었다. 집안에 있으면 거의 냄새를 못 맡거나 밖으로 나와도 날씨가 흐린 날을 제외하고는 못 견딜 정도는 아니어서 그럭저럭 시간만 넘기고 있던 어느 날 관리비를 내려고 사무실에 들려 지나가는 투로 말레이 여인 경리에게 “왜 답변을 안 해주는 거지요?”라고 물어보았더니  “자치회장이 싱가포르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너무 바빠서 아직 검토를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자치회장이 아무리 바빠도 2주가 지났는데 그동안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을 합하면 5일의 쉬는 시간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회장이 안 해주는 걸 나더러 어쩌란 것입니까? 그리고 회장이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봉사를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재촉을 하면 되는 거예요?”

 말레이 여인은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는 듯이 뚜둥(머리에 쓰는 천) 밑에서 치켜뜬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나무라는 투의 목소리에 잠시 동안 어안이 벙벙해져버렸다. 감히 관리소 여직원 따위가.........말투로 보아 나는 괘씸죄에 걸려들었고 답변은 몇 개월도 더 걸릴 것 같았다.

 “아, 그래요? 그럼 나도 관리비를 내지 않겠소. 우리는 반드시 회장에게 대답을 해달라는 것은 아니었소. 회장 대리 관리사무소가 그 곳에 쓰레기를 쌓아두고 있으니  관리사무소가 답변을 해 주던가 우리의 요구대로 처리를 해주던가 해야 할 것 아니오? 나도 회장이 이 자리에서 관리비를 받거나 답변을 해주거나 할 때까지 관리비는 보류할 것입니다.” 

 그녀도 심히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욕지거리라도 한 모양이었다.-  감히 주민이 그것도 외국인이  관리사무소에 와서 이 따위 태도를 취하다니....
나는 내놓았던 160링깃을 도로 호주머니에 넣고 나와 버렸다. 그리고 "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지금 회장의 문제는 쓰레기가 아니라 경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레이 경리가 가짜 영수증을 발행하여 그 돈을 착복하고 미수금으로 남겨놓고 있어 미수금이 어찌된 것인지를 조사하고 있답니다. 여기에 사는 주민들이 대부분 싱가포르에 일을 나가고 있어 확인하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는 모양인데....“

 "찬"은 정원을 가꾸느라 호미질을 하다가 웃옷을 걸치고 나온 터라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그는 중국사람 습관대로 웃옷을 벗은 체 사각정자가 있는 광장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인도인 이웃의 진정서에 의하여 자치회로부터 경고를 받은 뒤부터는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와도  항시 웃옷을 걸쳤다.

 나는 문득 한국에서 들은 적이 있는 은행 사고가 떠올랐다. 예금주가 신고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거지요?”

“경비들 봉급을 주려니 걷힌 돈이 없어 문제가 생긴 거지요. 어제 밤 한 사람한테  받은 영수증이 가짜 영수증인 것을 발견했나 보더라, 구요.  거기에 회장은 개인 사정이 생겨 조사할 틈이 없는 것 같고 회장 부인이 계속 조사를 할 모양입니다,”

 "말레이 경리는 아주 태연하던데요?“

 "그녀는 일련번호가 찍힌 영수증 용지를 회장이 주지 않아서 그 영수증을 발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은 아직 시간이 없어 입금을 안 했을 뿐 횡령한 것은 아니라고 한답니다. 실제로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말레이 경리의 불손한 태도에 기분이 나빠 돈을 안 내고 나와 버렸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언제 검토될지 모르니 그것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관리비를 내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며칠 후 전화가 와서 사무실에 들려보니 중국여인이 말레이 경리와 같이 앉아 있었다.

 “관리비를 내지 않겠다, 구요?” 

 중국 여인은 자기가 누구라는 말도 없이 불쑥 질문부터 하였다. 심문관처럼.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관리소에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중단하거나 대책을 세워주기 전까지는 보류하겠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피해보상 청구도 고려하고 있구요.”

나는 단어 하나하나를 생각해가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마치녹음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레이 경리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전에 미납분은 없었나요?”

“전혀.”

“그럼 지난 몇 개월분의 영수증을 갖다 주시겠습니까?”

“왜요?”

“조사할 일이 있어서요.”

나는 찬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말레이 여인보다 더 고압적인 자세에 반항감이 일어나 버렸다. 

“무엇을 조사한단 말입니까?

“그 영수증 ”      

“갖다 줄 수 없습니다.”

“왜요? ” 당황한 듯 중국여인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내 재산이니까....”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보여만 주시면 됩니다.”

“여기 올 시간이 없습니다. 나도 바쁘니까요..... 당신이 필요하면 당신이 찾아와서 조사해 볼 일이지 어찌하여 그런 일로 사람을 호출한단 말이오?”

 말레이 경리의 입가에 어렴풋한 조소가 흘렀다. 나는 이 말레이 여인의 횡령 액수를 밝히자면 1년이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방비를 해놓을 것이다.

 한 달이 지나도록 쓰레기 하치장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관리소 문이 폐쇄되어 있었다. 나를 비롯한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은 모두 관리비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독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시청에서 몇 번인가 사무소를 왔다 갔다 했다는 소문은 있었다.

“말레이 경리가 자술서를 시청에 제출했는데 며칠간 수금한 돈을 은행에 예치하려다 강도를   당했다고 합니다. 은행 앞에서 내리려니까 칼을 든 괴한들이 그녀를 도로 밀어 넣고  으쓱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 개인 돈까지 몽땅 털렸다는 거지요.. 어디 믿을 만한 이야기입니까?”

 "왜 경찰에 피해 신고를 않고 시청에 자술서를 제출했다는 거지요?“

“잘은 모르겠는데, 경찰서에 신고를 하면 경찰서는 피해자 즉 말레이 여인의 진술을 토대로 대충대충 할 것이고 결론은 강도범들을 추적하겠다, 라는 것으로 끝이 날 겁니다. 그리고  조사 내용은 시청에 보내질 것이고 시청은 경찰에서의 이관 사항이라 이 마을 자치회를 불신임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미리 시청에 의뢰하여 조정을 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강도당한 돈이 얼마나 된데요?”

“약 14만 링깃 정도랍니다”

“꽤나 많군요? 그걸 어떻게 며칠 만에 수금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리고 그 돈은 누가 책임을 지나요?”  
 

“회장이 임시 주민 총회를 열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했으니 그 때 들어보면 알겠죠. 어찌 되었건 회장이 모든 책임을 져야지요.”

무엇인가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가짜 영수증을 발행하여 돈을 빼돌렸다고 하면서 지난 몇 개월간의 영수증을 제출해 달라고 했다가 지금은 강도를 당했다고 하고 그것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시청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누가 들어도 의심을 하게 되어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따지지 않는 걸까?
         
마을 청년 서너 명이 집을 찾아왔다. 임시 위원회라고 소개하면서 쓰레기 하치장을 폐쇄하고 시청 쓰레기수거차를 마을 안으로 들여보내 직접 수거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마침 수거차가 새 차로 바뀌었다고 하니 예전처럼 악취를 풍기지는 않겠지만 대형 트럭이라 집과 집사이의 도로변에 마음대로 주차를 해놓은 차주들의 반대가 조금 문제가 되긴 한다고 했다.

“냄새만 풍기지 않는다면 1석2조의 효과가 있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그런 차들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문제는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두 대 이상 소유하고 있는 세대들이 많다보니 도로에 주차하는 것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차후 우리가 주민들에게 쓰레기수거차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할 때 보충하여 그동안 겪었던 고충을 말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수거차를 다시 마을로 불러들이자는 의견을 낸 적이 없는데요.”       

“그 설명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단지 고충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서명한 사람들과 상의해보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서명한 사람들은 중국인 네 명을 포함하여 여섯 명인데 하필이면 나보고 설명을 해달라는 것일까?
 
시청 쓰레기수거차가 경적을 울리며 마을로 들어왔다. 그런데 예전의 냄새나는 똥차가 아니었다. 레미콘 차처럼 생겼는데 믹서기 대신에 트럭의 짐칸에서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는 분쇄기 통은 아직도 하얀 페인트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차였다. 인부들이 쓰레기 봉지들을 실어 올리면 비닐봉지는  빠지고 내용물은 통 속으로 들어가 분쇄가 되는 그런 시스템이어서 차 밑에서 봉지만 새지 않으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집 앞의 커브길을 돌아 나가면서 각 집의 쓰레기통을 비우던 차가 모퉁이 길을 돌면서부터는 나아가지를 않고 경적만 울려대고 있었다. 그러기를 10분쯤 되었을까, 쓰레기수거차는 사라져버렸다.

 3일 후에 쓰레기수거차는 다시 마을로 들어왔다. 3일 전과 똑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집 앞을 지나 다음 커브 길을 접어들 때까지는 열심히 쓰레기통을 비우더니 코너 다음 도로에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경적만 울리며 지나가버렸다. 바로 몇 대의 차량이 도로 양쪽에 주차되어 있어 각 집의 문 앞에 배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을 비우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거의 일주일 정도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으니 그 도로 주변은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는데  다음 3일을 기다려야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쓰레기를 담을 용기가 없었다.
   
인터넷 바둑을 두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밖을 내다보니 서너 명의  중국여인들이 대문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유리한 바둑이지만 중단 요청을 하였다. 상대가 받아주지를 않는다. 그냥 불계패를 선언하고 웃옷을 걸치면서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따주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로 볼멘소리를 하였다. 발밑에는 한 아름 될 만한 쓰레기 봉지가 놓여있었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영어로 통역을 하였다.

“당신은 한국인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중국인 마을에 쓰레기수거차를 불러들였소?”

그동안에 또 다른 여인이 땅에 놓인 쓰레기봉지를 들어 대문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이런 지랄같은........

 "나는 쓰레기수거차를 요청한 적이 없고 그럴 권한도 없습니다. 그리고 왜 그 쓰레기를 이 통에 버리는 겁니까?”

"당신이 관리사무소에 탄원서 낸 것을 마을사람 모두가 다 알고 있어요.” 

중국말과 영어가 거의 동시에 쏟아졌다.  사람들 기세로 보아 나 혼자서 뭐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전화 좀 하게요.이웃 집 ”찬“을 부르고,.... 그리고 참 이건 폭행인데  경찰도 부르겠습니다....”

나는 집안으로 몸을 돌렸고 그들은 내가 집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뭐라고 하면서 잰 걸음으로사라졌다. “go back Korea"

그날 밤 주민 임시총회가 열렸다. 공터에 대형 천막이 세워졌고 그 안에 나무 철제 의자들이 줄을 지어 놓여졌다. 약 50명 정도 모였는데 절반은 여자들이었다.  나는 말도 잘 못 알아듣는데 무엇 때문에 나가느냐고 했지만 며칠 전에 찾아온 젊은이들이 나가서 앉아 있기만 해달라고 해서 “찬”과 “양”이 앉아 있는 옆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찾아온 젊은이들은 앞의 단상에 앉아 있었고 그 중 한명이 일어서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회장과 자치위원들은 참석을 안했다고 한다.

"여기 압둘라 씨와 함께 시청에 가서 사정사정하여 내일 쓰레기수거차가 다시 오기로 했습니다. 내일은 절대 자동차를, 단 한 대라도 도로변에 세워두지 말기를 바랍니다.”

앞자리의 어느 여인이 일어나서 중국어로 간혹 말레이어나 영어를 섞어가며 항의를 했다.
-왜 쓰레기 하치장을 폐쇄하는 거냐? 이것은 총회에서 결정된 것인데 몇 사람이 불평을 한다 해서 뒤바꾸는 법이 어디 있느냐? 누가 다시 수거차를 불러들인 것이냐-

양이 통역을 해주었다.     

또 한사람이 일어났다.

-하치장은 (비록 마을 경계선) 밖에 있다하더라도 우리 마을 재산으로 잡혀 있는 것이다.그 땅의 세금도 내고 있지 않느냐?-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처음 일어났던 여인이 또 다시 일어나 -한국인이 경찰을 부른다고 하더라. 어떻게 마을에 경찰을 부른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사과를 해야 한다.- 라고 떠들었다. 그녀는 필시 낮에 집에 왔던 여인일 것이다,

“양”의 통역을 듣자마자 나는 화가 치밀어 벌떡 일어났다.

“I will apologize if you do so first for your violence.  How could you dare to throw your garbages into my rubbish can?" (당신의 폭력 행사에 대해 먼저 사과한다면 나도 사과하겠다, 어떻게 당신집 쓰레기를 우리집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었느냐?) 

나는 엉거주춤 서있는 자세로 나를 돌아보는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며 쏘아 붙였다.

”It's a criminal case“ (그것은 형사범이다)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It's also same that the committee heaps up  the all garbages at the tip without proper handling/proper system. I will claim to MPKU(쿠라이시청) against the damages to my house and to my body by the stink from there if the committee would continue." (또한 적절한 장치가 없는 쓰레기 하치장에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쓰레기를 쌓아두는 것도 역시 형사 문제이다. 만일 자치회가 계속 그곳에 쓰레기를 모아둔다면 나는 시청에 냄새로 인한 내 집과 내 신체의 피해에 대해 크레임을 청구할 것이다)
  
좌중은 적도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조용해졌다. 언제 떳었는지 반달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I have paid the maintenance fee, sink fund, quit rent fee to your committee, and property tax, road tax to MPKU in due time. I never delayed.,  Also I have deposit one hundred fifty thousand Ringgit for my staying in this coun try. I had paid another Ten thousand for long time visa which endless. I bought my house under the recommendation from MPKU  Can you say me -go back Korea-?  Meantime I never received any financial report from your committee during last 5 years. Where's the money of "sink fund"? Is it sinking now?  I will also complain it soon, (나는 여기 자치회에 관리비 예비비 공동토지세를 내왔고 쿠라이 시청에 재산세 통행세를 빠짐없이 내왔다. 한 번도 지체된 적이 없이. 또한 나는 이곳에 살기 위해 150,000링깃을 보관해놓았고 10,000링깃을 영구체류비자료로 지불했으며 쿠라이시청의 조언으로 이 집을 샀었다. 누가 나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 있느냐? 또한 나는 지난 5년동안 자치회로부터 재정보고서를 받은 적이 없다. 도대체 예비비는 어디에 있는가? 침몰중이란 말인가? 이것 또한 집고 넘어갈 것이다}

 나는 아울러 자치회의 부정을 걸고 넘어지기까지 하였다. 누군가가 박수를 쳤고 사회자가 통역을 한 것 같았지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양”이 따라나와 우리는 반달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시청 하청업자인 말레이 쓰레기수거차 인부에게 받은 화풀이를 괜히 한국인에게 하는 격인데 무식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원체 피해의식에 젖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아무런 피해를 주지도 않는 사람에게 피해의식을 갖는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 중국인들은 어느 누구도 심지어 싱가포르 중국인들도 믿지 않습니다.  1957년 이 나라가 독립할 때 이 나라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들은 말레이시아 국민으로 인정받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저 반달처럼 절반만 국민이 된 것입니다. 부미푸트라(원주민의 국토)라는 정책이 있어 모든 국책 사업은 말레이들이 독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 또한 말레이 독점이어서 여러 면에서 말레이와는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달라고 요청할 때나 초기 총선을 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정부는 중국인들을 차츰 배제하기 시작했어요.  싱가포르 이관유 수상이 부미 푸트라 정책에 반대하자  말레이시아는 1965년에 도마뱀 꼬리 잘라주듯이 싱가포르를 독립시켜주어 버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인 인구가 적어 의회 의석수를 맞추지 못한 때 싱가포르가 독립을 해버리니 더욱 입지가 약해졌지요. 물론 말레이시아에도 수많은 정당들이 있긴 있지만 대부분의 말레이 정당들은 선거에 승리하면 자기들끼리 연립하여 3분의 2 이상의 의석수를 가진 여당을 만들어버립니다. 그들은 말레이만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부미 푸트라를 더욱 우대합니다. 이슬람 교권을 확대시키고 정치세력으로 나서니 무슬림이 아니면 온전한 국민이 될 수 없습니다.”

 도교를 믿는 그는 전에도 “국교”가 있는 나라에 다른 종교의 진정한 자유가 있겠느냐? 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969년 선거에서 이상 기온이 일어났습니다.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야당의 득표율이 거의 과반수까지 도달한 것이지요. 쿠알라룸푸에서 자축 행사가 벌어졌지요. 5월 13일  이제 민주주의가 되나 보다고 기대하면서 시가지를 행진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말레이들이 평화행진을 하던 중국인들을 공격합니다.  아마 2000명도 넘는 중국인 사상자가 발생했어요. 중국인들은 죽고 다치고 약탈당하고 ........마치 전쟁터 같았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공산주의자나 불순분자들의 선동으로 일어난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오히려 중국인들이 무수히 잡혀갔습니다. 중국인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뿔뿔히 흩어져 생명을 보존하기에 급급했지요.  이 마을에도 그때 피해를 당한 가족들이 나를 포함해 몇 더 있습니다.”환갑이 넘은 그의 얼굴이 사십 몇년 전의 참상을 회상하는지 침울해져 버렸다.  

“..................그럼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더욱 이해하여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점이 저도 이해를 잘 못합니다. 혹 말레이들이 외지인을 이용하여 중국인들을 자꾸 밀어내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산업 분야에서 외국인 회사가 들어오면 말레인들을 고용토록 하여 기술을 배우도록 하는 게  중국인 회사에서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보다 훨씬 용이하니까 자꾸 외국 회사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금융 건설 교육 제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은 중국인들 기술을 능가하고 있거든요.경제로나마 주도권을 잡자는 중국인들의 입지가 엄청 약화되어버렸습니다. 인도인들은 마하디르 정권 22년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인력자원을 배출했지만 그들이 말레이에게보다 중국인들에게 우호적이진 않거든요. 결국 중국인들은 중국인끼리 중국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말레이 경리의 관리비 절취사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가 한 달에 얼마씩 갚겠다고 해서  경찰에 고발을 않고 합의를 봐 주었답니다.”

“그럼 그녀가 절취를 인정한 거네요?”

“아니지요. 도의적 책임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답니다. 시청이 중재를 한 것인데 문제는 딱 한 달 1000링깃을 내고는 그 후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지요.
  
회의장에서도 안건이 말레이 경리 문제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여인들이 이쪽저쪽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경찰에 고발을 해야 한다는 쪽과 회장을 성토하는 쪽 그러면 뭐하느냐는 쪽들이 중구난방으로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었다.
 
갑자기 밀림에서 새들이 요란한 울부짖음을 뱉으며 일시에 하늘로 올랐다. 아마 구렁이나 두더지가 새알을 훔치려고 나무를 오르나보다. 부룽 띠융( 띠융 새 :한국의 뱁새 비슷한데 몸집은 좀 커서 참새만큼 하고 부리와 다리가 노란색이어서 아주 예쁘고 깜찍하게 생긴 새)은 가족력이 대단하여 한데 모여 사는데 외적이 나타나면 일제히 날라 올라 주위를 포위하듯 에워싸면서 울부짖으며 시위를 한다. 용감한 놈은 조그만 부리로 공격을 하기도 하지만 구렁이나 이구아나같은 놈들이 오면 적당히 먹고 물러가라는 뜻의 시위를 벌릴 뿐이다.      

반달이 새때들의 날개 짓에 가려 더욱 일그러져 버렸다.

“여기에서 중국인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인도인은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그리고 말레이는 말레이계 말레이시아인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