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작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업신여기지 마라.

약수터에서 가볍지 않은 몸을 가벼이 움직여 줄넘기를 했다. 그러나 쿵쿵 울리는 지축의 울림을 숨길 수 없음으로 기상관측센터로 혹시 지진이 아니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후문이 있고 보면 무거운 몸뚱이는 더불어 감싸 안아야 할 천형이 아니겠느냐 하는...이런 식의 소설을 하나 익살스럽게 꾸며보면 어쩔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하 그건 내겐 너무 가벼운 당신 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던 까닭에 접기로 하고,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 앞에 걷어차면 저만치 날아갈 것 같은, 정말 폐차장으로 안가고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할 정도의 시동을 걸면 부왕 하면서 시커먼 연기가 함부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하지만 빌빌거리다가 다시 꺼질 것 같은, 에구, 보잘 것 없는 문장실력으로 차 한 대 묘사하다 날 새겠다. 문 앞에 아직 덮어쓰기엔 이른 빵떡모자를 눌러쓴 젊은 놈 하나가 담배를 꾸역꾸역 피워대다가 나를 보더니 황급히 담뱃불을 끄고 인사를 꾸벅 하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설 태희 처사님 맞으시지요?”

“혹시? 연동이?”

“맞습니다.”

녀석이 모자를 벗으면서 웃었다. 녀석은 가평의 대원사라는 절에서 있던 녀석이었다. 어렸을 적에 길가에 버려져서 우는 걸 큰 스님이 데려다가 키웠다는 자신의 신세내력에 대해선 아는 게 전무한 그런 녀석이었다. 절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대원사라는 절이 가평군 북면에서 십 분정도 올라가면 백둔리 입구가 나오는 데 그 입구 조금아래의 산에 중턱쯤에 있는 절이라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 한겨울이면 얼고 여름이면 덥고 그야말로 사는 게 수도 그 자체였던 녀석이었다. 네 살 때부터 큰 스님한테 정도술이라는 무술을 수련한 까닭에 싸움도 도사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학교의 짱 을 놓아본 적이 없는 대단한 놈이었다. 워낙 돌머리라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지만 운동에는 천재였다. 마침 고시공부를 하러 내려가 있던 내가 놈이 보기엔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을 만도 하다. 나도 짬짬이 공부도중에 무술연습을 했고 놈이 지켜보다가 내 동작을 바로 잡아주곤 하면서 친해졌다.

“그렇게 딱딱 끊어주면 관절에 무리가 와요, 이렇게 가벼이 나비처럼 움직이고 허허실실 몰라요?”

내가 무술연습을 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이학년이던 녀석이 옆에서 하는 잔소리였다. 나는 화가 치밀어서 말했다.

“아직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놈이 어른 무술 연습하는데 왠 참견이냐, 저기 가서 놀아라.”

놈은 실실 웃더니 내가 연습하던 공중회전 돌려차기를 멋지게 구사하는 것이었다.

“어라? 제법이네?”

“반달차기라고 하죠? 쿵푸의 선풍각이란 발차기와 비슷하고 학 다리 서기 하고도 비슷한데 아까 처사님이 연습하셨죠? 처사님이 뜰 때요, 너무 탄력을 이용하려고 해서 예비동작이 커지는 거거든요, 의식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요, 이렇게...“

놈이 휙 돌면서 파파팍 하고 바람소리가 났다. 멋진 발차기였다.

“내가 사과한다. 넌 나보다 백배는 고수다.”

“하이고, 갑자기 그러면 제가 민망하죠. 그런데 참 성격이 시원해서 좋으시네요. 그대로 망설임 없이 바로 인정해버리는 사람 드문데.”

“서울 오면 한번 놀러 와라.”

그 뒤로 놈과 나는 같이 운동을 했고 놈에게 돈만 주면 왕복 한 시간 거리를 바람처럼 달려서 소주 두병과 쥐포 한 마리를 사오곤 했다. 절에서 조금 벗어난 산속에서 몰래 마시고는 몰래 들어와 자곤 했는데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다.

“서울은 웬일이냐?”

“취직 좀 하려고요. 우선 차 한 대 샀어요, 백 오십 줬는데요.”

“하이고 바가지 썼구나.”

“아는 처사님이 싸게 준다고 해서 ...”

놈이 머리를 긁적였다.

“당한 겁니까?”

“뭐 술 값 좀 보태줬다 생각하면 돼. 그나저나 잘 굴러다닐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주소 한 장 들고 용케도 찾아왔다. 게다가 차까지 끌고.”

내 칭찬에 놈이 머쓱해 하면서 뒷머리를 긁었다.

“나중에 절 옆쪽으로 길 만든 거 아시죠, 트럭 한 대 사서 제가 운전하고 한 삼년정도 절에서 완전히 노가다만 무보수로 했습니다. 나중엔 봉고차로 신도들 다 실어다 주고 뭐 이러다간 도 닦는 스님인 이판은 안 되고 일하는 사판스님이 되겠다 싶어서, 말 그대로 이판사판 아사리 판이라 그냥 형님 주소하나 믿고 하산했습니다. 나올 때 큰 스님이 오백만원 줘서 백오십 으로 차한대 사고 옷 사 입고 하니까 한 이백 남네요. 형님이 참 처사님 보다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맡아주세요.”

이판사판이라는 말의 유래다. 도를 닦으면서 공부에 열중하는 스님은 이판스님이고 절의 잡무를 맡아 일하는 스님은 사판스님이다. 조그만 절을 혼자 운영하려면 이것저것 다 해야 하므로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소리를 스님들은 많이 쓴다.

놈이 내미는 돈을 받으면서 말했다.

“나야 믿어도 되는 사람이지만 사람 절대 믿지 마라, 절하고 세상하고는 틀리다.”

“불법을 수행하는 선처하고야 사바세계가 완전히 틀리겠지만요, 형님은 믿습니다.”

“취직해서 돈 좀 모일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라, 내 골방하나 비워 줄 테니 비좁더라도 거기서 머물고 알았지, 취직자리는 있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요, 전에 절에 오셨던 처사님이 운영하는 경호업체가 있는데 출근 하라고 전화연락이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요, 머리카락 기를 때까지 한 달만 쉬었다 오라네요, 보기가 좀 그렇다고...하하하.”

“그럼 아무 걱정 말고 푹 쉬면서 서울구경이나 해라. 참 너 몇 살이냐?”

“스물 셋인데요?”

“군대는 안가냐?”

“고아라서 삼주 훈련 받고 실역미필로 면제 받았어요.”

“내가 선배다. 82년도 실미다. 하하하.”

방을 치우고 도배지와 장판을 사다가 새로 꾸며주었다. 놈은 싱글벙글 하면서 좋아했다. 녀석은 티브이를 밤새도록 보는 것 그리고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 보내는 것, 늦잠 자는 것과 무협지를 보는 것, 특히 와룡강과 서효원의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출근을 하고 나면 녀석의 세상이었다. 책방에서 책을 잔뜩 빌려다 놓고 보다가 눈이 아프면 티브이를 보다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컴퓨터 바둑을 두다가, 그야말로 극락 같은 한 달을 보내었다. 한 달 동안 출근할 코스도 몇 번 답사하면서 익혔고 마침내 출근을 했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썩은 티코를 타고 운동을 하러갔다. 가까운 거리라서 걸어 다닐 만하건만 굳이 끌고 가자고 해서 나도 옆에 앉았다. 약수터에 차를 대고 운동을 하고 내려와서 다시 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뒤에서 빵빵 거렸다. 돌아보니 젊은 애들이 그야말로 좋은 차를 타고 난리가 아니었다. 길은 외줄기였고 티코는 큰 속력을 내지 못했다. 에쿠우스 한 대와 외제차 두 대였다. 이런 산동네에선 보기 힘든 차였다. 큰 길에 내려왔을 때 에쿠우스가 티코를 앞질러 길을 막았다. 차를 세우고 내리자 뒤의 외제차에서 세 명이 내리고 앞차에서 두 명이 내렸다. 그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다 썩은 똥차가 감히 길을 막아?” 씨팔 놈들아.“

화가 난 내가 내리려고 하자 놈이 말렸다.

“형, 돈 좀 벌자, 응?”

“무슨 소리야?”

“형, 절대 나서지마, 응.”

“형, 소원이야, 이건 찬스야, 기회야, 천재일우의 기회란 말이야.”

“제발 나오지 말고 기다렸다가 내가 다치거든 그때 나와서 경찰을 불러, 응.”

녀석이 문을 열고 내리자 한 놈이 다가오면서 뺨을 날렸다. 찰싹.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놈이 어설픈 폼으로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빗나가고 놈들만 자극한 꼴이 되었다. 다섯 놈이 달려들어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놈이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면서 전봇대에 얼굴을 박았다.

“이놈들아, 이빨 나갔어. 형, 빨리 경찰에 신고해, 이 새끼 들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신고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난투극이 벌어지자 누군가 신고를 했고 우리는 모두 경찰서로 갔다. 놈들의 부모가 왔고 녀석은 끝까지 합의를 보아주지 않고 집어넣겠다고 우기다가 이천 오백만원에 합의를 봤다. 이도 흔들거렸고 멍도 시퍼렇게 들었으며 가슴도 결린다고 했다. 조서를 꾸미는 동안 놈은 무언가를 몰래 적었고 그건 놈들의 주소였다. 합의를 보고 그리고 그들은 풀려나고 놈도 나왔다. 놈은 일방적으로 맞은 까닭에 죄가 없는 상태였다. 상황은 그걸로 종료 된 것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압구정동의 클럽에서 밤늦도록 여자 친구와 춤추고 놀다가 귀가하던 한 남자가 골목에서 누군가와 부딪혔다. 빵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는데 빵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느닷없이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불과 10분 만에 만신창이로 얻어터졌다. 여자 친구는 속수무책으로 소리만 지르다가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의식이 가물거릴 정도의 남자친구만 있었고 빵모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세 명의 사내가 강남역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걷는데 누군가 그들을 불렀다.

“아저씨들, 여기 좀 봐요.”

놈들이 돌아보니 빵모자를 눌러쓴 조그만 사내가 그들에게 팔뚝질을 하는 것이었다. 술김에 그들이 쫓아갔다. 잡힐 듯 도망치던 빵모자는 으슥한 골목에서 갑자기 돌아서더니 놀라운 솜씨로 세 명을 무차별 난타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아니라 도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빠르고 사납고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타격에 세 명은 이십 분 만에 완전히 실신상태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한 녀석은 귀가 길에 역시 빵모자를 눌러쓴 사내를 만났다.

“이봐.”

사내를 돌아보자 사내의 발이 하늘로 번쩍 치솟았다.

“이게 발따귀라는 기술이야.”

하늘로 치솟았던 오른발이 파파파팍 하고 번갈아 놈의 따귀를 때렸다. 네 대의 발따귀에 이어 다섯 번째는 정확하게 명치를 가격했다. 숨이 막히는 충격이 고꾸라지자 무차별의 린치가 온몸에 가해졌다. 손과 발이 마치 망치 같았다. 으윽. 필사적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엎드렸는데 이미 코뼈가 나갔지 싶었다. 야수처럼 사납게 공격하고 창으로 찍듯이 정확하게 급소를 가격했다. 그러다가 문득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약수터에서 한 남자를 무차별 구타했던 그들은 그렇게 응징을 당했으나 누군지 알 수 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녀석의 차를 얻어 타고 화곡역으로 향했다. 놈의 친구가 가평에서 올라온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여섯시라 화곡역이 엄청 밀리고 있었다. 발길로 걷어차면 날아갈 것 같은 차가 빌빌 거리자 뒤에서 빵빵거렸다. 보니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아직 임시번호판을 달고 있는 에스엠 세븐이라는 차였다. 젊은 놈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어이, 똥차, 왜 이렇게 빌빌대, 차 갔다 버리고 새 걸로 사라 이 미친놈아.”

“어때 대고 욕질이십니까? 뒈지고 싶으신 겁니까?”

연동이가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에스엠 세븐에서도 젊은 애들 셋이 내리고 있었다.

“형, 나오지 마, 부탁이야, 조금 있다가 경찰이나 불러줘,”

놈이 속삭이듯 말하고 내리더니 그들에게 말했다.

“왜 똥차가 당신들더러 뭐라고 합니까?”

경찰을 부를 틈도 없을 것이다. 여기 화곡역이 얼마나 붐비는 데 여기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에스엠세븐에서 내린 놈의 주먹이 놈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싱긋이 웃고 있었다. 퍽. 느린 화면으로 재생하듯이 보이는 풍경이었다. 주먹이 천천히 날아와 놈의 얼굴을 가격했고 놈의 머리가 휙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놈은 나를 향해서 싱긋이 웃으면서 말하는 듯 했다. 형, 작전 성공이야. 연동이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때리고 나서 돈은 돈대로 물어주고 나중에 처절하도록 응징당할 생각을 하면 지금 주먹을 휘둘러 연동이를 때리는 젊은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제발,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낡고 작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업신여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