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 그분이 어째서 샬롯이 나를 싫어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그분이 비록 샬롯과 나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한다 할지라도, 그녀와 내가 맞이하였던 최악의 순간들만큼은 피해갈 수 있게끔 도울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와 같은 불평은 내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았지만 분명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현실에서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 가다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몇 가지 생각들이 한 사람의 영혼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축자영감.’

  ‘엔트로피.’

  ‘나를 싫어하는 샬롯.’

  생각의 연속 작용은 내가 신 앞에 서 있다는 환희보다는 현실 불만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마치 신 앞에서 역심을 품의 루시퍼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정체를 신께서 발견하고 낙담하고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지금까지 내게서 벌어진 모든 일이 이 순간을 위해서 진행되어 온 것만 같았다. 신은 나를 위해 많은 일들을 준비하고 내게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나는 믿음을 보이지 못하고 고작 내게 채워지지 못한 것들과 불만을 떠올렸던 것이다.

  가다는 나를 안쓰럽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내가 8학년이던 해 내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가 침대 위에서 나를 바라보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9학년에 올라가는 걸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표정이 싫어서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그렇지만 지금은 가다의 눈을 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을 들킬까봐 시선을 피하는 행동은 더 이상 원치 않았다. 그리고 내 속에서 솟구치는 우울과 맞서야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것은 불과 몇 분 사이에 벌어진 놀라운 경험이었다.

  가다는 나의 얼굴에서 다시 생기를 발견하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더 나를 응시하던 그녀는 신의 메시지가 있는 곳을 돌아보고 있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눈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듯한 그녀의 모습은 신탁을 기다리는 신녀를 연상케 했다.

  가다는 이미 나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지난밤 실연의 상처에 몸부림치다가 투신자살을 하려고 했던 철부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신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들떠서 내게 믿음을 강요하던 말이 통하지 않던 외국인 여성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비록 화장을 제대로 지우지 못한데다 잠을 잘 못자서 노숙인 같은 몰골이었지만,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신의 메시지를 통역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일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초월하지 못할 것은 없는 듯 보였다.

  가다는 아직 아무런 메시지도 읽지 못한 듯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전광 안내판에 보이는 토라의 출애굽기는 후반부에 다다른 게 보였다. 여전히 나의 눈에는 히브리어 문자들이 아랍어로 바뀌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우울한 마음으로 생각의 공백을 채우기보다는 차라리 일반적인 단상이라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히브리 문자의 모양이 위로부터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내었다. 그것은 유대교 전통을 강조하는 아버지에게서 히브리어를 배우던 시절 내내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비록 내 눈에는 아랍 문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에 보았던 아랍 문자의 모양이 아래로부터 위로 솟구치는 듯한 형태였음을 기억해 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가다가 보았을 히브리 문자가 부서져 내리면서 아랍 문자로 변화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신의 센스였다. 그분은 페니키아어에서 아람어가 발생하고, 다시 아람어에서 히브리어와 아랍어가 발생하도록 유도하던 때부터 문자의 형태에 상응 고리를 결정지어 놓았던 것이었다.

  나는 가다가 볼 수 있었던 히브리 문자에서 아랍 문자로 변하는 모습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변화도 볼 수 없었고, 가다의 통역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역시 데이비드 자네는 생각의 전환이 빨라. 그리고 의심도 많지. 그것은 내가 가다를 시카고로 보내지 않고 그대를 뉴욕으로 오게 한 결정과도 부합하긴 해. 하지만 이 혼돈의 도시에서 출발하게 될 두 사람의 새로운 삶을 내가 지지한다는 점에 대해선 믿어도 좋아. 데이비드, 원한다면 날 시험해 보게.”

  그분은 내 내면을 차지하고 있는 성분 중에 0.1%가 의심과 불안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잘 된 셈이었다. 99.9%보다는 100%가 더 나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신은 어떤 종교에서도 증언하지 않았던 섬세함과 호탕함을 지니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던가. 나는 그와 같은 판단이 들자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워서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침을 삼킨 뒤 입을 열고 그분께 말했다.

  “방금....... 제가 떠올렸던 생각과, 제가 질문하고 싶은 두 가지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가다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뭐라 말하려다 말고 황당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녀는 신을 시험하려 드는 나를 내버려둔 채 다시 그분께 향했다.

  “내가 대답해야 할 게 세 가지나 되는군. 하지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뒤로 미루도록 하겠네. 왜냐하면 내가 데이비드 그대를 찾아와 나누고자 한 모든 대화의 결론이 자네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기 때문이야.”

  나는 거기까지 들었을 때 내가 샬롯과의 결혼생활을 실패하게 된 과거에 연연하고 있는 마음을 그분이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분은 가다 앞에서 나의 개인적인 상처를 뼛속까지 파헤치는 일을 연출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데이비드. 그럼 그대가 궁금해 하는 두 가지를 말하기로 하지. 먼저 데미우르게에 관한 부분은 차츰 자세히 설명하게 되겠지만, 간략하게 대답하자면 맞네. 데미우르게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네.”

  나는 잘 익은 석류처럼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건 대단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분께 질문하고 싶다고 떠올린 생각 중에 하나였다.

  그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중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분이 가다에게 여호와나 알라보다 높은 존재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섬광 같이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그건 ‘데미우르게’라는 단어였다.

  가다는 나와 박물관 쪽을 번갈아 보더니 천사와 같던 미소를 지운 뒤 엄마에게 의존하는 짓궂은 동생처럼 내게 물어왔다.

  “나한테 데미우르게라는 말의 뜻을 알려주라고 하시네요.”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가다가 신의 메신저 역할에만 국한된 존재는 아니었다는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무지에 대한 무력감과도 닿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분이 말한 다음 내용이 궁금했다. 그래서 가다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건 플라톤이 맨 처음 말한 ‘데미우르고스’, 즉 조물주 개념을 영지주의자들이 데미우르게라는 형태로 발전시킨 말이죠. 다시 말해 데미우르게는 ‘신의 대행자’ 정도로 이해하면 돼요.”

  “와아. 그럴듯하네요. 그럼 알라도 데미우르게인가요?”

  나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그녀가 패션이나 음식 메뉴를 논하듯 던지는 물음은 생각 이상으로 민감한 문제였다. 나는 침도 삼키지 못하고 박물관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가다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말없이 박물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내판에는 토라의 첫 권인 뻬레쉬트의 내용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역시 그들은 서두르다보니 토라 전체와 역사서에 이어 예언서까지 타이핑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가다는 1장부터 재생되고 있는 뻬레쉬트 안에서 메시지를 확인한 듯 다시 개성이 삭제된 목소리로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너무 두려워할 건 없네. 어차피 자네는 샬롯을 택하기 위해 가족들이 속한 유대교를 버렸고, 샬롯과 다투고 헤어지려 하던 때에는 그녀와 함께 교회에 가는 일을 거부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 뒤에는 무신론자가 되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휴일에 빌리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려는 일로 샬롯과 다시 다퉈야 했지.

  아무튼 너무 위축될 건 없네. 그대가 내 말만 믿고 데미우르게를 인정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유대교도들과 그리스도교도들이 자네와 나를 이원론을 주장하는 이단으로 분류해버리는 일 밖에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건 실소를 자아낼 만한 농담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신은 유머를 알고 있는 셈이었다. 아무튼 사람들이 신을 이단으로 낙인찍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세상은 이미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주인은 신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데이비드. 데미우르게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 그 단어는 우리 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거든. 나의 대행자가 존재하였던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세상에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나의 대행자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네. 난 항상 세상 속에 있었어. 오히려 어쩌면 그대들이 알고 있는 그 대행자야 말로 세상 밖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야.

  이후로도 계속 강조하게 되겠지만, 현상이 실상과 다른 경우는 헤아릴 수조차 없어. 그리고 내가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사람들에게 실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군. 그럼 이제 서둘러 그대가 내게 묻고 싶어 하는 나머지를 맞춰보도록 하자고. 아마 이번엔 가다도 궁금해 했던 문제일 것 같은데.”

  나는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사람처럼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모든 문제를 맞추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자네 성격이라면 마스터 조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평생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할 것 같은데. 아닌가?”

  나는 소년에 대한 마음을 들켜버린 소녀처럼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분을 시험하려 했던 게 잘못이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가다와 내가 이렇게 당신을 만나게 되기 위해서라면 마스터 조는 반드시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명을 해 주신다면 다음부터는 당신이 섭리하시는 일들 앞에서 더 믿음을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가다는 냉정한 태도에 흔들림을 보이면서 흥미진진함을 느끼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은 못 돼. 하지만 마스터 조가 찾아옴으로 해서 가다가 빛을 보게 된 일 외의 두 가지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말해주도록 하지. 우선 마스터 조는 자네와 가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름을 떨친 마스터라네. 아마 인터넷에서 바둑과 관련한 적당한 검색어를 입력하면 곧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도 마스터 조는 ‘바둑의 신’이라고 불리는 인물을 키워낸 큰 스승으로 알려져 있어. 비록 그 자신이 역사에 기록될 만한 명인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한 때는 그도 바둑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 제자가 획득한 타이틀을 빼앗기도 하였을 만큼 훌륭한 실력을 보였지.

  이 시점에서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내가 보드게임이라는 것에 관심을 보였던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군.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기아와 난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어. 그리고 그대들 두 사람처럼 혼란스런 세상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막다른 길에 접어드는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 하지만 내가 그들을 외면한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 나는 언제나 그들을 위해 해가 다시 떠오르게 하였고, 그들 머리 위에서 새가 지저귀도록 하였으며, 그들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보살피는 마음을 갖게끔 선지자들과 같은 의인들을 보냈지.

  변명이라는 것은 나의 본질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에 그만 두기로 하겠어. 그럼 마스터 조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넘어가보자고. 사실 내가 데이비드와 가다 두 사람을 이 자리에 초대하기 위해 유대인 박물관의 관장 제임스 F 슈나이저에게 안내판을 새로 설치할 마음을 부추긴 일 정도는 이야깃거리도 못 돼.

  나는 마스터 조가 뉴욕으로 오도록 하기 위해 호주에 폭설을 내리게 했고, 그가 참여하기로 예정되었던 한국 바둑리그의 개막 일정을 지연시키기도 했지. 그리고 평소 인터넷에서 바둑을 두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그를 컴퓨터 앞으로 유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 했는지 일일이 열거하자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아무튼 나는 데이비드와 가다 앞에 내 존재를 드러내기로 한 결정을 한 뒤에 ‘광야의 외침’의 퍼포먼스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했어. 데이비드. 혹시 내가 말한 ‘광야의 외침’이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다면 가다에게 설명해 주겠나?”

  가다는 그렇게 그분의 말을 전하고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분이 말한 광야의 외침이 무얼 뜻하는지 처음 듣는 순간부터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분이 나한테 가다에게 알려주라고 하는 말을 듣자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음을 확신했다.

  “가다. 코란에는 바이블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들이 더 많을 테니 그냥 설명할 게요.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찾아오기 전에 그의 출현을 예고하는 인물이 있었어요.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죠. 그리고 이 인물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700년 이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예언이 되어 있었죠. ‘광야의 외침’이라는 표현은 그 예언서에 나오는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가다는 비로소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둘은 다시 유대인 박물관 쪽을 바라보았다.

  “데이비드. 사실 마스터 조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지독한 무신론자였으므로, 그가 나의 출현을 알리는 뿔 나팔 소리의 의미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알 거야. 하지만 그가 나를 위한 예시로써 광야의 외침 퍼포먼스로 쓰였다는 증명은 바로 바둑이 수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어.

  다시 말해서 바둑이라는 게임은 신과 인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는 사실이 중요해. 그리고 이 우주와 하나이며, 유한함으로부터 발생한 무한한 존재인 나의 본질이 수학과 상대성과 인식과 신호와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마스터 조와 같이 재기발랄한 인물이 나의 출현을 위한 퍼포먼스로 적당했던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