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고함 소리

머리 벗겨지게 날 뜨거운 걸 보니 복(伏)날이 성큼 거리며 곧 돌아 올 것이다

복(伏)날 한번 돌아오는데 뜯어 먹지도 못하게 된 왕왕 울리는 지겨운 닭소리가

동네에 잔뜩 배어있는 세월 하루하루를 짜증으로 찌들어 보내서 그런지

수3년도 더 된 듯 무지 긴 날을 보낸 것처럼 어제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땐가 아니다 초봄 그래 아마 작년 초봄 무렵 조금 지나 설 꺼다

밭 간다고 겨우내 묵혀 두었던 경운기를 꺼내 놓고는

군대 생활 수송병 할 적에 구호였다나 뭐래나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해야

기계는 오래 가는 법이라며 주절거리며 썰을 한참이나 풀더니 기름걸레 한다고

큰 딸이 상고 졸업하고 첫 월급 타서 사다준 반 겨울도 안 입은

지네 마누라 빨간 내복 그 귀한 것을 장속에서 낼름 꺼내다 신나게 쭉쭉 찢어 쓰고는

기름먹은 내복 쪼가리를 들고 종일 따라 다니며 징징 거리는 양씨宅한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다닐 쯤 이였으니까 3월이 맞을께다

투계(鬪鷄)에 미쳐 사업 똘똘 말아먹었다는 경기도 양주에 사는 친구가

살 작자가 없어 제값 받고 팔기는 애 저녁에 글렀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고 하니

너나 가져가 키워서 복(伏)때 되면 삼(蔘)이나 둬뿌리 넣고 복달음이나 하랬다고

느닷없이 고추모종 한다던 밭을 갈아엎고 텃밭 한 귀퉁이에 양氏가 닭장을 들이면서

푸근했던 마을 그림에 담겼던 고즈녁한 한가로움을 닭들의 울음소리가 톡톡 쪼아

뜯어먹기 시작하더니 그나마 잘 봉인됐던 마을의 평화도 야금야금 찢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형님!

뒷다리는 꼭 형님들 드릴께요~“

불독처럼 생겨 두둑하게 늘어진 양 볼하며 왕방울만한 부리부리한 눈으론

제 어깨로 내 어깨를 툭툭 쳐가며 암만 샐샐 눈웃음을 쳐대도 그리 곱거나

귀엽지는 않아 보이는 양氏 동생은 한번 고집이 나면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과 불뚝 밸이 있긴 해도 인심은 그리 박하지 않으니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네는 내가 못 먹 드래도 꽁댕이랑 날개를 꼭 줄께!

그렇다고 바람 같은 거 피우다 들키면 않되 내가 계수씨들한테 시달리니까!“

정말 그럴까?

그건 꼭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늘 양기 부족을 한탄하며 정력에 좋다면 뒷구멍으로 눈을 밝히고

바퀴벌레도 씹어 먹을 위인이니까 말이다

복날이 되면 보신하는 자리에 꼭 모시겠다는 양씨 사탕발림에 몇 집에 사내들이

킬킬 거리며 닭장 짓는 일을 거들며 마음이 들떠서는 미리 마른침을 삼킬 때는

종종 거리며 뛰어다니는 닭들이 김이 모락거리는 백숙으로도 보이고

노릇노릇 잘 튀겨진 닭튀김으로 보인 상상으로 침을 고이게 했던 터라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었는데 그놈들이 말썽꾼이 되어 주위를 시끄럽게 할 줄은

공氏댁을 처음 우리 모두가 잘못 봤든 것처럼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병아리를 넘긴 암놈 일곱을 두고 세 마리의 수놈을 함께 들였는데

처음에는 조용히 살던 닭 동네가 요란스럽게 변해가며

골칫거리가 되기 시작한건 수탉들의 서열 다툼이 본격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던

작년 여름 초복에서 말복 사이에서 부터였다

새벽바람에 귀곡성처럼 들리는 공씨宅 울음소리의 비 할 바는 아니지만

“꼬끼오~! 꼬끼~오오~~!! ”하는

닭들의 시간 알리는 소리는 고사하고 모이를 늦게 주기라도 할라치면

왜 밥 빨리 안주냐고 10마리가 합동으로 닦달 하며 울부짖는 고함소리는

귀청을 뚫게 아팠는데 신문에 자주 나는 소음공해 기사를 찬찬히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

뒤 에 사 사단이 나고서야 알았지만 나만 그랬던 게 아니 였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거시기를 달았다고 그래도 지들도 수놈이라고

삶거나 튀기지 않으면 우린 전혀 관심 사항도 없는 암놈을 놓고 다투다가는

이겼다고 염병지랄을 해대며 시 때 없이 동네가 떠나가라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땅바닥을 후벼대며 귀에 거슬리게 우렁차게 울어대는 장 닭의 호령소리가

부쩍 잦아지자 너나없이 모두 짜증과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지만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서 품기만 했지 공론화해서 드러내놓고 그 소리를
밖으로 표출해 막을 수 있는 재간을 우리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제 발등 찍을 일들을 너무 많이 저질러 놓았기 때문이다

몸보신으로 푹 끓여 삶아먹자던 복날은 한 해를 넘기고 까마득한 옛날처럼 지났지만

그날 모셔온 닭들은 한 마리도 돌아가시지 않고 건재를 과시하며 아직 모두 살아 계시다

언제 부턴지 닭의 미친 서방 때문에 넌더리를 치는 마누라의 잔소리 따위는

발가락에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인근 부락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을

틈만 나면 불러 재껴서 한판 싸움이 끝난 닭장 앞에 질펀하게 술판을 벌려놓고

투계 판을 자랑하는 것을 인생최대의 과업인양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사는

닭 쌈판 재미에 푹 빠진 양氏 는 닭 잡아먹는 일은 당나라 시절 얘기처럼

시치미 뚝 떼고 이제는 오리발도 내밀지 않고 일언반구 말이 없고

같이 좋다고 시시덕거리다 손바닥 뒤집듯 시끄러우니 닭 잡자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앓이로 지내야만 하는 우리도 입은 여러 개 있어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