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둥지를 떠난 제비

새벽 인력시장은 크게 세 부류의 집단이 상존 한다

현장마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근간으로 하는 건설업의 인력운용 특성상

한 분야의 전문 인력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패거리로 일하기를 거부하는 독립(獨立) 형태의 기술자 무리가 한 축을 이루고

본래의 직업 외에 짬짬이 빈 시간을 유용하는 아르바이트 개념의 인력과

자신이 생활하던 주류(主流)의 흐름 속으로 재진입을 시도하며 기회를 엿보는

노동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뜨내기 일꾼들이 합쳐 두 축을 형성한다

두 집단은 주로 가정을 이루고 있어 계획된 생활을 꾸려가지만

자신들만의 색깔과 개성을 고집하며 변방을 떠도는 통념의 궤를 거부하는 군상들과

사회에서 도태되어 밀려난 잉여인력들로 이루어진 나머지 한 축은

내일의 기약을 두지 않고 짚시처럼 막장인 새벽 인력시장을 배회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경비만 조달되면 일손을 놓고

술과 노름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를 무의미 하게 살아간다

“소장이 전화할 때 바로 옆에서 다 들었습니다

봉변을 당하게 한 것으로 오히려 빚을 진 기분입니다

정말 미안 했습니다 전번 일로 많이 힘드셨죠?“

받아가지 못한 일당을 건네자 수령을 극구 사양하며 명섭氏는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변방인의 모습으로만 보았던 나의 선입견을 깨부수고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내게 새뜩하게 다가왔다

변방인들은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비를 위해 자신의 하루를 팔아

어렵게 벌어들인 수입은 신성불가침의 영역 속으로 들여 보낸다

어떤 이유가 됐던 그것은 조그만 흠집도 결코 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인간자격의 상실과 맞바꾸는 일이 된다해도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증거인 절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금액을 채우기 위해 차라리 하루 일을 더하면 된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은 불필요한 사치며 시간낭비에 불과한 일이다

현장 출발 전 대기 시간에 먹고 오면 주겠다는 아침 식대5000원을 잊고 가버린 업주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악담을 쏟아 붓던 자칭 옛날 주먹으로 제천을 휩쓸었다는

“하리마오 김”에게 제일처럼 흥분하며 동조하던

변방인 식구들의 모습을 본것이 며칠 지나지 않아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고시원 작은 방에서 월 20만원에 숙식을 해결하는 변방인 들에게 일당 8만원은

쉽게 포기 할수있는 작은 돈이 결코 아니였다

“신체 조건이 남달라 같은 대우를 바라는 그런 욕심은 없습니다

노임은 보통 사람들 반 정도만 주셔도 맡겨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와 주십시요!“

참으로 난감한 부탁 이였다

결국 공치는 날이 많아도 다른말 않기로 철석같은 약속을 다짐한

명섭씨는 참 사람들 사무실에 터줏대감으로 등록을 했고 한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변방인 들의 삶은 공허하다

저마다 화려한 과거를 주워단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고 사는 그들은

모두 하나의 기업을 운영하던 사장 이였으며 한 도시를 휩쓸던 유명한 주먹 이였고

단란한 가정의 가장들이였다는 두터운 가면을 쓰고

찬란한 지난 세월을 술에 취해 진솔한 표정과 억양으로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아무도 믿거나 인정해 주지 않는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비루한 자신들의 처지를 만든 모든 이유가

친구나 함께 살던 여인의 배신이 주원인으로 한결같듯

모든 것이 거짓 이라는 걸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작은 일들을 주로 하다 사무실내 식구들이 보살펴

머릿수를 채우는 현장만을 드나들던 명섭氏는

빠른 눈썰미와 가장 효율적으로 현장을 읽고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하는 명석한 두뇌로

부족한 손가락을 대신 하고도 남는 큰 일꾼이 되었고

고향 동네의 큰형 같은 모습으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고집불통 변방인 들의 마음을

어느새 쥐락펴라 하며 그네들의 눈물콧물을 닦아주는 어른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한해가 다 되도록 명섭氏는 처음 약속대로 일당의 반만을 받아갔다

나머지 반 사람분의 임금은 사무실에 나와 식구들이 마시는 일회용 커피며

둥글레,녹차등의 각종 차(茶)를 수시로 마실수 있는 준비는 물론

일을 나가지 못한 변방의 인부들에게 짜장면이나 짬뽕에 못 미치면

라면 한 개라도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는 후덕한 인심을 베푸는데 아낌없이 썼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인력소장의 고달픔을 나는 명섭氏에게

거의 대부분을 빼앗기며 사는 행운을 누리며 그렇게 첫해를 보내고 있었다

봄 일을 겨냥하고 사무실을 열었던 홀로 난 지난겨울과

제법 많아진 인원을 거느리고 맞아야하는 겨울에 추위는 사뭇 달랐다
새벽 헛걸음에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들 어깨위로 불어오는
찬바람은고스란히 모여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턱을 받치고 일을 기다리며 심적 부담을 주던 새벽 의자위에 대기인원도

날이 추워지며 눈이 내리고 사무실 샷슈문이 얼어 손잡이에 닿는 손이

쩍쩍 붙기 시작하며 줄어들던 일감과 함께 완전히 발길을 끊고 말았다

잠시 따듯한 날이 연이어 지며 녹았던 눈이 영하 15도로

수은주를 뚝 떨어트리며 체감온도를 영하 20도가 넘게 끌어내린

35년만의 기록적인 한파라며 모두 웅크리고 있는 새벽에 나와 문을 열었다

벌써 보름이 넘도록 명섭氏가 보이지 않는다

일 년이 다 되도록 새벽 골목길을 비운 날이 거의 없었고

연락이 끊긴 적은 한번도 없던 터라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며

전화나 사람 발길이 있을리 없는 텅빈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 후회를 곱씹고 있다

아무리 다음다음으로 미뤘어도 사는 곳을 한번은 갔어야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그에 대해 아는것 이라곤 여자 없이 혼자 산다는것 말고는

고향은 어딘지 무얼 하던 사람인지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며

애써 기억해 낸것은 과거의 아픔이 앙금처럼 깔려있던 우울한 눈동자가 고작 이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지내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없는 그처럼

나도 그에게 나를 나눈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알고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서로 가깝고 의지하고 싶은 만큼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회피하며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어쩌면 그와 나는 또 하나의 변방을 떠도는 동류의 사람 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기에 통화도 되지 않는 그의 전화번호를 습관처럼 눌러대며

스러져 가는 발신음으로 그를 찾는 긴 겨울을 나는 보내고 있었다

그가 떠나야 하는 어떤 이유도 찾지 못한채
얼음이 조금씩 녹으며 겨울이 잦아들고 있었지만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