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관상을 보게 되면 두상에 그늘이 진 사람이 있고 반대로 환하게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따르고 무리를 짓는데 그 무리중에 리더

  는 항상 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얼마후 그런 얼굴의 동료가 나타났다.

  그는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대했고 나 또한 그런 그에게 형이라고

  부르면서 마음 한구석을 열어놓기 시작했다.

  "동생, 바둑 좀 둘 줄 아는가?"

  그와 친해지기 위해 어릴 때 부친에게서 배웠던 바둑을 기억해 내는 데는

  1초면 충분했다.

  "그래, 그럼 5점을 깔아보시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터질듯한 감정을

  어찌할 바 몰라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오늘은 이만 하지"

  그날 이후로 난 공부란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시험해 보기로 작심하고

  서점에 들러 바둑관련 서적을 모조리 사 들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동보서적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서점에 가서 바둑책 하나를 샀다.

  이창호의 기본사활집이었다.

  그 때 이창호가 한국에서 최고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전까지야 이창호가 누군지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창호의 저서를 접하고 얼마후 바둑TV에 중국선수-마효춘-과 결승전을

  방영하는 것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고 반집으로 그가 이기는 장면을 목격

  하면서 저런 바둑도 있구나 싶었다.

  이창호는 바둑이 아니라 인내였다.

  그의 바둑은 인내, 인내, 인내 그리고 기다림 그 자체였다.

  '아, 니미럴, 속타죽겠구만, 저 어린 친구가 강태공보다 낫다니,

   도저히 믿기 힘들어.'

  타고난 성질이 또는 천성이 급한 나는 이창호의 바둑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바둑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싸움바둑이었다.

  손자가 말하기를 <전략에서 최상의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라고 했지만 이창호와 손자가 만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삼국지의

  주유꼴이 났을게 뻔한 장면이다.

  신은 마효춘을 내고 어찌하여 또 이창호를 냈단 말인가.

  이런 저런 한탄이 곳곳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바둑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뭐? 제갈공명? 주유?

  그대가 유비를 아는가.

  유비의 바둑을 아는가.

  유비를 모르고 제갈공명을 논하지 말지어다.

  아이고, 오늘은 여기서 접어야 할 듯 합니다. 시간관계상...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