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부는 최씨집안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유지집안 출신이다.

  조금만 더 일찍 그 분을 만났다면 나는 일찌감치 학문에 뜻을 접고 세파에 뛰어들었을

  텐데 그게 운명인것을.

  사부(앞으로는 싸부로 부름)는 내 바둑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말 그대로 싸부다운

  싸부다.

  바둑도 싸부지만 인생에 있어서도 나에겐 감히 넘을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초인의 삶을

  가르쳐준 이정표의 역할을 해 주신 분이다.

  어려서 사랑을 했었다.

 그 때는 김현식의 음악을 사랑했고 김광석의 음율을 사랑했었던 풍경화같은 시대였다.

 노래 한 곡으로 하루가 행복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는 노래가 되어서 끊임없이 그들을

 그리고 싶었다.

 그녀는 어느날 한 송이 꽃처럼 내 가슴 깊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가 보고 싶어서 미치는, 미치도록 보고싶어서 그리워지는 그런 나날이 나에게는

 더없이 좋았다.

 허나,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는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요즘은 우체통도 편지도 가볍고 또 가볍게 느껴지지만 그 때는 그 한통의 편지가, 그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를 또는 한달을 고민하면서 단어 하나에 온 마음을 다

 바쳤던 그 자리가 행복이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런 그녀에게서 마지막으로 나에게로 온 편지.

 거기에는 <사랑하므로 이별합니다>라는 당치도 않은 어불성설 하나가 짙은 갈색

 도장밥처럼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이별은 그렇게 느닷없이 다가와 감당할 수 없는 파도처럼 내 가슴을 휘저어 놓기 시작했다.

 ' 왜? 왜? 왜?'

 의문은 불신을, 불신은 고독을 낳고, 고독은 가슴 한구석에 피어나더니 어느새 절망과

 친구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사랑하므로 이별합니다>

 아이는 어린 마음에 그 문장의 정확한 뜻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마침내 방황이라는

 어둡고 긴 수레바퀴 속으로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불행의 수레바퀴뒤에는 항상 행복이라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추한 방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뫼비우스의 띠는 수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근본 법칙이며 그것이 좀더 간명

 하게 증명되는 것이 수학일 뿐이다.

 동양에서는 이미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진리가 한반도 저

 끝자락에서 시작된지 오래지 않은가.

 안다는 자들은 마치 자신이 최고인양 떠들고 자랑하고 다니지만 정작 깨달은 자들은

 은둔을 택하고 자신이 알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기 바쁘다.

 그 단순한 진리를 그 때 그 아이는 몰랐다.

 떠남이 곧 다시 만남이며 만남이  곧 다시 이별임을 그 아이는 너무 어려서 미처 그 순환의

 고리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리라.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