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부천소사엔 복숭아밭 천지였다.

지금의 송내역인근 중동아파트단지와 고재봉골짜기로 유명한 17사단근처엔 포도밭이 여기저기 많았다.

초가집들 이어진 소사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는길, 흰두루마기 펄럭이며 한사내가 골목길로 들어선다.

집을 코앞에 두고 어느초가집 담벼락앞에서 걸음을 갑자기 멈춘다.

초가집의 자그마한 창틀에선 아이들의 도란도란거리는 말소리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훑는다.

어린시절, 엄마가 끓인 된장국과 김치보시기가 올려진 밥상앞의 기억이 불현 듯 스친다.

사내는 자그맣게 혼잣말을 한다.

엄마아.....

사람사는 행복이 저 것 다름아닌데 세상은 별일들로 소란하고 시끄럽다.

사내는 시인이었다.

한때는 휘문고보에서 영어교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곳 소사로 내려와 칩거하고 있다.

여기저기 학교들과 신문사에서 초빙을 하였으나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

좌우대립은 드뎌 폭력적 수단까지 동원이 되고 테러와 린치 그리고 암살까지 난무한다.

사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손가방을 옆에끼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구부정한 모습으로 걸어간다.

공소에서 성당으로 발전시키기위해 노심초사하지만 뚜렷한 진전이 아직은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도 버젓한 성당을 가지게 되겠지....

소사성당...

현재는 신부님도 없지만 버젓이 성당을 건축하면 신부님도 모셔오고....

생각이 날개를 달고 자꾸만 상상이 번져나간다.

문득 아까 그 골목초입 초가집창문을 통에 들려오던 아이들 도란거리던 말소리와 된장찌개냄새가 생각난다.

모두가 보고싶다.

지나간 그리운 사람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신나고 즐거웠던 어린날들......그 들판...

그날밤 사내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않아 다시 일어나 성냥불을 그어 호롱에 불을 밝힌다.

앉은뱅이책상을 끌어당긴다.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도 없는 그리움...그리움들....

모아두었던 사념의 조각들이 퍼즐 맞추듯 잉크묻힌 펜대는 원고지를 메워나간다.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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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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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이오사변이 터지고 미쳐 피난가지 못한 그는 북한군에 잡혀 납북되었다.

80년대 해금이 될 때까지 지용의 시는 출판조차 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납북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철없는 셋째아들이 전쟁와중에 아버지를 찾기위해 북으로 갔으나 그마저 체포되어 남쪽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2001년2월 남북이산가족상봉에서 지용의 아들들이 상봉하였으나 남녘의 아들들은 셋째동생으로부터 아버지소식들 들을 수 없었다.

셋째아들조차 지용을 찾을 길이 없었으니 민족의 비극을 오롯이 품은 가족의 슬픔이다.

아마 육이오전쟁과정에서 행방불명된 것이다.

어쩌면 전쟁통에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북녘땅 어느곳을 지나다 초가집창문에서 들려오는 도란거리는 아이들소리와 된장찌게냄새에 눈물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천소사의 정지용이 살았던 곳엔 '정지용시인이 살았던 곳'이란 표지판이 붙어있다.

현재는 상가가 있는 도로변이다.

지용이 봉사하였던 소사동성당은 현재 버젓하게 대리석과 붉은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건물이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