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이었습니다. 

출장길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삼십여 년 전, 내 나이 사십 줄에 막 들어서던 해의 일입니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부산에서 회의를 하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당일치기의 출장이라서 일찍 출발했습니다.

섬진강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평소와 같은 빠르기로 섬진강 다리를 건넜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청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간단한 업무지시를 받고 핸드폰을 내려놓는데 차가 미끄러지는 느낌이 왔습니다.

12월의 이른 아침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평소와 같은 속도로 달린 나의 실수였습니다.

더구나 미끄러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로 발이 갔던 모양입니다.

차가 휘청하며 돌아간다고 느끼는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도로에는 얇게 살얼음이 끼어있었고

그 살얼음 판 위에서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그대로 넘어지며 미끄러진 것입니다.

출장이 잦았던 터라 기름 값이라도 아껴보겠다고 경유차를 뽑았었습니다. 

갤로퍼 이노베이션.

차가 나오던 날,

광주 분이셨던 청장님은 차가 쫑쫑 하게 생겼다 말하셨습니다.

차체의 무게 중심이 높아 안정성이 없어 보인다는 염려의 말씀이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청장님의 염려는 적중하였습니다.

차체가 낮은 승용차였더라면 차가 전복되는 일까지는 없었을 텐데

쫑쫑 하게 생긴 이너베이션은 가볍게 휘청였는 데도 그대로 넘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른 아침이라 차량의 통행이 많지 않았고

더 다행인 것은 뒤에 오시던 분이

넘어진 내 차의 뒤를 비상등을 켠 당신의 차로 막아 세워두시고

뒤에 오는 차들에게 비켜가라고 수신호를 해 주셨습니다.

정말 득달같이 견인차가 달려왔습니다.

견인차가 오는 것을 보고

나를 지켜주신 그 분은 가시던 길을 가셨고

나는 어렴풋이 그 분의 착해 보이는 얼굴만 기억할 뿐

고맙다는 말씀도 성함도 연락처도 여쭙지를 못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전복사고를 당하고도 내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다음 날, 혹은 며칠이 지나서도 후유증이 나타난다고도 하는데

정말 멀쩡했습니다.

차의 수리비는 천만 원이 넘게 나왔지만 출장 중의 사고라

청에서 많은 도움을 주어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습니다.

삼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너베이션은 문이 두 개입니다.

운전석과 조수석

그런데 당시 나의 차는 운전석 쪽으로 넘어져 있었고 조수석의 문은 잠겨있었습니다.

내가 사고당한 차에서 나올 수 있는 문이 없었던 것입니다.

차가 넘어지며 정신을 잃었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도로에 서 있었는데

차에는 내가 나올 수 있는 문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사고를 생각하면

나를 차에서 꺼내 주신 분도

다른 차로부터 나를 지켜주셨던 분도 어쩌면 그 분이 아니셨을까…….

생각을 해 보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