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넘긴 노파가 대문앞을 쓸고 있다.

아침에 빗자루로 말끔히 청소한 곳을 또 쓸고 있다.

읍내를 다녀오던 마을의 중늙은이들이 고개를 구벅하곤 수군거리며 지나간다.

집안으로 들어온 노파는 다시 걸레로 마루바닥을 닦는다.

아침에 말끔히 닦은 마루를 다시 닦고 있다.

다시 방을 쓸고 닦고 하더니 마당으로나가 떨어진 낙엽들을 쓰레받기에 쓸어담는다.

허리를 주무르곤 대문앞 나무의자에 앉아 철길건너 시내쪽을 누굴 기다리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학교를 파한 학생들이 지나간다.

“출발!”

갑작스런 노파의 고함소리에 학생들이 잠시놀라더니 킥킥거리며 지나간다.

노파의 딸은 이지역에서 소문난 영재였다.

탈렌트 김태희가 졸업한 그 여고를, 훨씬전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S대학에 진학하였다.

남편이 일찍죽고난뒤 어려운 생활에도 딸의 뒷바라지만은 소홀히 하지않았다.

딸이 중학교에 올라간 뒤론 돈이 더 필요해 남의 논밭품삯일을 치우고 생선행상에 나섰다.

호계역에서 이른 신새벽에 어창으로나가 생선을 받아 다시 동해남부선을 따라 날짜를 바꾸어가며 각역의 읍면으로 팔러다녔다.

노파의 목이 앞으로 구부러진 것도 그때 너무 무거운 생선다라이(다라이: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면 일본말이 아닌 우리말이다.)를 이고다니느라 뼈가 굳어버린 것이다.

중학교2학년 올라가고 얼마뒤, 담임선생님과 다른 학부형두사람이 함께 저녁무렵에 방문하였다.

아랫목에서 뻐근한 엉치와 허리를 지지다 봉순이는 놀란얼굴로 급히 일어나 선생님을 맞이하였다.

자초지종은 딸아이가 반장선거에 출마하여 반장으로 뽑혔는바 반장의 어머니가 자동으로 자모회장이 된다고 하였다.

아이더러 어머니에게 말씀드려 학교방문을 하도록 하였으나 딸아이가 ‘우리엄마는 일이 힘들고 시간이 없어 학교에 올수없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뵙고 말씀드리려고 왔다고 하였다.

봉순이는 형편을 설명하고 다른분이 대신 자모회장을 맡아주시길 바란다고 대답하였다.

3학년이 되곤 엄마에게 부담을 줄까봐 딸아이는 반장선거는 물론이고 학생회장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전교 수석임에도...

다행히 대학기숙사추첨이 되어 자취방구하는 걱정은 덜게 되었다.

봉순이는 딸에게 너무 돈걱정하지말고 필요한 것은 다해보라고 하였다.

젊은시절도 지나가면 금방이고 후회할 땐 이미늦다라고...

“엄마, 이제 절대로 무리하지마....내가 가정교사자리 알아볼터이니 돈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마, 알았지!”

“그래그래 아무쪼록 너는 높이 멀리 날라가는 인생을 살아야 된데이...”

하나있는 딸아이를 서울로 보낸뒤로도 봉순이는 생선행상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은 언제 큰돈이 들어갈지몰라 푼돈도 아끼고아끼며 모았다.

이삼년후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의 모대학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얼마후엔 미국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언젠가 전화로 딸은 엄마에게 앞으로 절대로 돈 때문에 행상을 나가던가 일을 하지말라고 하였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엘가고 운동삼아 매일 동네를 산보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팔순때 미국에서 딸내외와 손녀가 함께 다녀갔다.

혹시라도 한국에 와서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지만 딸은 그런말은 입밖에도 내지않았다.

딸은 미국으로 와서 함께 지내자고 하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집은 시부모님의 손때가 남아있고 죽은남편의 혼이 깃든 곳이다.

미국에서 시부모님과 남편제사를 올린다는 것도 이상할 수 밖에 없다.

만달러가 든 하얀봉투를 손에 쥐어주며, 맛있는 것도 사먹고 먹고 싶은 것도 찾아먹고 친구들과 놀러도 다니라고 하였지만 그런 것보다 언제다시 한국에 들어올 것인지가 더 궁금하였다.

미국의 딸은 호계읍에 살고있는 고등학교동창에게 전화로 부탁을 하였다.

어머니를 좀 살펴달라고....

일정금액을 매월 친구에게 송금하였다.

치과를 통해 엄마의 치아상태점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때 봉순이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들이 있었다.

힘들다면서도 기꺼이 손자손녀를 돌봐주는 친정엄마들이었다.

봉순이는 근래들어  어지러움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꿈을 꾸다 깜짝놀라 깨는일도 잦아졌다.

출근시간의 버스는 손님들로 꽉 들어찬다.

버스문 닫기가 힘들정도여서 힘으로 손님들을 안으로 밀어넣어야했다.

덜 닫힌 문사이로 발이 삐긋하면서 떨어질뻔하다 간신히 문을 닫을수 있었다.

고함을 질렀다.

“출발!” 소리와 동시에 버스문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다가 세월과 시간이동이 된 손바닥통증에 깜짝놀라 잠에서 깬다.

국민학교졸업후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었다.

평화시장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배우다 아는 고향언니의 권유로 월급이 훨씬 많은 버스회사로 옮겼다.

좁은공간에서 먼지먹는 일은 적지만 고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추운겨울날 아침밥을 먹으려 버스주차장 길건너에 있는 구내식당을 가기위해 귀가 떨어질 정도로 매서운 바람을 내달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팔순도 훨신 넘긴 나이가 되어버렸다.

잊어버리려 애쓴 시절이 팔순을 넘기면서 더 선명하게 새록새록 기억이나고 꿈에도 자주 보였다.

망각의 시간들이 되살아나며 봉순이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일도 잦아졌다.

오육십여년전 그땐 왜 그렇게 버스에 탄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그렇게 부러웠는지...

내딸 만은...내딸만은......

정신이 온전할 때 마을사람들로부터 들은 소문에 기분이 영 서운하였다.

전철복선화로 호계역이 없어진다는 소문이었다.

마지막 열차가 섣달하순 밤9시에 도착하며 그 날 이후론 역에 열차가 서지도 않고 다니던 열차는 다른 새로만든 복선기찻길로 다닌다고 하였다.

그 기찻길이 어떤 찻길인가....

그 기찻길로 열차를 타고 시집을 왔고 그 기찻길과 열차가 있어 생선팔아 딸아이 뒷바라지와 먹고살 수 있었다.

얼굴이 온통 주름으로 쪼글쪼글한 늙은 노파가 맑은 날이면 매일 대문옆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괜히 큰소리로 “출발!”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리곤 누굴 기다리는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다 집안으로 들어가 빗자루를 가져와 아까 청소한 대문앞 길을 다시 빗자루질을 한다.

마치 멀리서 오는 귀한 손님이라도 맞으려는 듯........

(예상한대로 소살돈이다가 아래의 '역사 그리고 상식과 양심'이란 글때문에 1개월 정지를 먹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소살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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