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늘 밥을 남기셨습니다.

아버지도 같이 밥을 남기셨습니다.

할머니는 절반쯤, 아버지는 삼분의 일쯤을 남기셨습니다.

당신들의 배 부르지 않아도 늘 밥을 남기셨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겸상에 오른 생선은 뒤집어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물리시는 상의 생선은 늘 한쪽이 남아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우리 형제 열 한명, 이렇게 열 넷의 대식구가

식사를 할 때 면 언제나 상이 두 개 차려지곤 했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이서 겸상

그리고 우리 형제들과 어머니가 둘러앉는 밥상은 큰 두리반 상

두 상에 오른 반찬의 가짓수는 늘 달랐습니다.

적어도 두어 가지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겸상에 오른 반찬의 수가 많았고

무엇보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밥은 하얀 쌀 밥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밥을 지으실 때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드시는 쌀밥을 따로 짓는 게 아니라

우리 먹는 보리밥 위에 함께 지으셨습니다.

먼저 보리쌀을 넣고 푸욱 끓여

보리쌀이 거의 익어가고 밥물이 잦아들면

어머니는 씻어 놓은 쌀을 보리밥의 한쪽에 보리와 쌀이 섞이지 않게 가만히 부으시고 다시 불을 지피면 보리밥과 쌀밥이 함께 지어지곤 했습니다.

주걱으로 밥을 뜨실 때도

어머니는 위에 지어진 쌀밥이 보리밥과 섞이지 않게

가만히 저어 할머니의 밥을 뜨시고 아버지의 밥을 뜨시고

얼마 남지 않은 쌀밥과 보리밥을 골고루 섞어 우리의 밥을 뜨셨고

검은 무쇠 솥의 바닥에 깔린 누룽지는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치의 대부분을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밥상머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