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얘기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의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9년, 전국 방방곡곡에 10만장이 넘는 수배전단이 뿌려졌으니 홍안의 청년시절부터 그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3년 6개월의 수감생활 후, 정치권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입한 새로운 젊은 피의 상징이었다.
그가 청와대에 있는 동안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그 핵심엔 그가 있었다.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청와대 안보실장을 모두 제치고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새로운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짜릿한 느낌을 만끽했을테다.
2018년 9월 19일 평양 5.1 경기장,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에게 격정적으로 토로했던, 그리고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게 했던 그 연설문은 바로 이 사람 작품이었다. 담당 비서관실과 연설 비서관실에서 각각 따로 원고가 올라갔기에 그는 자신이 쓴 걸 그냥 참고만 하시라고 올렸던 건데 떠나기 전날, 문 대통령이 "그거는 임 실장 원고 내용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하더란다. 공돌이(공대) 출신의, 인생 경험이라면 반정부 시위 경력 밖에 없을 것 같은 그에게 이런 면도 있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조국 사태' 국면이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2019년 1월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사임한 후, 8개월쯤 지난 시점이었다.
추석 연휴때였는데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제가 청와대 나온 후 개인 폰으로 처음 주신 전화예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러시더라고요. 30분쯤 통화했을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말렸습니다. 지금은 국민 여론을 들어주셔야 된다.....
통화가 끝난 뒤 청와대 참모로부터 다음날 청와대로 들어올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오후 세 시쯤 청와대에 가니 민주당에서 두 명, 그리고 자신과 김경수 지사를 부른 자리였다. 한 시간 반 정도 얘기를 하는데 두 민주당 인사들은 집요하게 조국 장관 임명을 요구했다.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당이 이렇게 강하게 나오면 결국 조국 장관을 임명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국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상황이 이러이러하다. 나로서는 이런 이유로 당신을 임명하는데 대해 반대를 했다. 대통령님은 당의 입장 때문에 당신을 시킬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이제 방법은 수석님이 스스로 그만두시는 거 밖에 없는 거 같다. 여기서 멈춰야 가족을 지킨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면 국민들은 좋은 사람을 잃었다고 애석해 할 거다. 바보 노무현까지는 모르겠지만 전국적으로 '울지마 조국' 부대가 당신을 지켜줄 거다." 이런 식으로 별 얘기를 다 했다.
조국은 자신이 장관자리에 욕심이 없으니 검찰 개혁안만 발표하고 스스로 그만둘 거라 했다. 나는 임명되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질거라고 강조했지만 그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다시 대통령 개인 폰으로 문자까지 보냈으나 결국 조국 장관 임명은 강행되었다. 그는 이 일로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운명의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몰랐다. 바로 그 순간에 운명의 여신이 윤석열 총장을 차기 대통령으로 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에게 이젠 그들의 시대가 저문 게 아니냐고 물었다. 대체로 동의한다고 했다. 자신들은 '과잉 대표된 세대'였으며 너무 많이, 너무 오래 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도 명백하다는 것이다. 다만, 386 정치 엘리트들을 무능하고 위선적이고 자리만 탐하는 집단인 것처럼 일률적으로 매도하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훈장 같던 '386'은 이제 무거운 짐이 되었고 아마도 그 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무거워질 게다.
알고 보니 그는 생각보다도 멋진 사람이었다. 반골 기질의 데모꾼으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선입견이나 편견은 그처럼 혹독하다. 하지만 헛되이 나이만 먹어 판단력조차 흐려진 내 눈에도 그는 아직, 혜안과 통찰력까지 겸비한 아름다운 청년으로 보인다.
[출처 : 'SBS 뉴스' 2022.04.09 인터뷰 기사 발췌, 참조]
|
.png){kind=logo}
소석대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