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100여m 거리에 있는 아름천은 4km를 더 흘러 금강 본류와 합류한다.10월말에서 11월초쯤이면 이 하천에서 항상 기다려지는 게 있다. 겨울 철새인 청둥오리가 떼지어 날아드는 것이다. 따분하게 하는 일도 없이 동면에 들어갈려던 조그마한 하천이 갑작스런 단체손님들의 방문으로 왁자지껄, 시끌벅적해지며 아연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꽥꽥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외쳐대는가 하면 날개를 첨벙대며 물 목욕을 하고 자리를 살짝 옮기는 넘들은 쏴아~ 하는 물소리를 내며 멋진 폼으로 수면에 착륙한다. 이때 주위에 있던 넘들이 어딜 갔다 왔냐며 꾸꾸꾸꾸 반겨주는 것은 덤...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5~6백m 구간만 헤아려봐도 대략 일백수십마리가 월동을 한다. 소슬바람이 불어 낙엽이 뒹굴고 황량해져가는 주변을, 덩달아 어느 결에 쓸쓸해진 분위기를 이 청둥오리들이 단숨에 확 바꿔주는 것이어서 녀석들의 때맞춘 귀환은 반가움, 그 자체다. 이렇게 녀석들과 함께 가을이 깊어가고 매서운 겨울이 찾아든다.
흰눈이 내리고 강추위로 인해 하천 가장자리가 군데군데 얼어붙어도 청둥오리들은 두려워하는 법이 없다. 의연하게 헤엄치고 넓적한 주둥이로 열심히 하천 바닥을 훑으며 먹이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2월 초,중순이 되면 갑자기 오리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선발대부터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해 불과 1~2주 사이에 하천이 거의 텅 비어버리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설 전후 무렵이어서 꼭 일부러 명절을 쇠고서 작별을 고하는 것만 같다. 자녀들이 독립해 집을 떠날 때 부모들이 곧잘 체감하는 빈 둥지 증후군을 떠올릴만큼 이 녀석들과 헤어지는 게 마냥 아쉽고 허전하다. 그래도 위안꺼리가 있다. 이 5~6백m 구간에 희한하게도 10마리 가까운 오리들이 무리를 따라 함께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재작년, 작년에도 그랬고 금년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 이 녀석들은 왜 떠나지 않는 것일까?
별별 생각이 떠오른다. 계절(기온) 변화를 개의치 않는 둔감한 녀석들인가? 게으르고 변화를 싫어하는 타입인겨? 아니면 무리들로부터 왕따 당하던 녀석들? 그도 아니라면 봄, 여름의 종족 번식에 유리해서? 그렇다면 더 많은 녀석이 남아야하는뎅... 그건 그렇다치고 금년에 떠나지 않은 녀석들은 작년에도 여기에 남았던 녀석들일까? 그리고, 금년에 여기 머물다 떠나간 녀석들은 내년에도 우리 동네로 다시 찾아오는 걸까?
친구와 동료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나고 또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남아있는 녀석들은 어느 결에 텃새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만약에 떠나지 않고 남았다면 그러한 결정은 떠날까 말까 많은 고민을 한 후의 고뇌에 찬 한 수 였을까? 내가 청둥오리였다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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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백벽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