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둑동호회에서는 바둑을 수담(手談)이 아닌 구담(口談)으로 부른다 바둑 두면서 이런 저런 말들을 섞는다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무리수를 보면 “아, 이래도 되나.” 급소를 맞으면 “아~아~~클났다” 비명을 지른다 대마가 잡히면 “우리 팀, 전원 공격!! 전원공격!!” 하면서 비상사이렌을 울린다 형세가 궁지에 몰려서 장고를 하면 “빨리 둬여” 라는 말에 흥분해서 티격태격 하기도 한다 형세가 좋으면 아다리을 치면서 “아다리 데스코”하고 한껏 목청을 지른다 그러면 같은 팀원은 기분이 좋아진다 꼼수를 자주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 야, 꼬니수 좀 쓰지 마. 그러니 바둑이 안 늘지.”하며 나무라기도 한다 매 번 폭탄을 터뜨리는 사람은 “조금만 이기면 되는데 많이 이기려고 하다가 그게 안 되네 안 되네.” 하며 탄식을 하기도 한다 조용히 두는 사람도 있지만 바둑형세에 따라서 웃음과 한숨 탄식 비명 괴성 등이 나온다

우리 바둑동호회를 보노라면 바둑이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입담이 세야 한다
동호회 1,2급 분들 보면 말빨이 딸리는 사람은 없다 캐릭터가 개성이 뚜렷하고 각이 졌다 말의 논리성 설득력은 차치하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밀어부친다 특유의 꼬장함과 어느 정도의 막무가내가 조합을 이룬 캐릭터라 쉽사리 논박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크게 나누자면 유머형 달변가 아가리파이터 정도로 구분이 가능하다
유머형 달변가는 말이 맞든 안 맞든 듣노라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빵빵 터진다
아가리파이터는 유머가 거세된 채 자기 주장을 우격다짐 수준으로 밀고 나간다
그 기세가 워낙 막무가내라 뭐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괜히 토달다가 험한 꼴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1,2급이 되자면 성격이 독해야 한다 상당한 바둑공부량이 축적돼야 하고 그러자면 바둑에 미칠 정도의 열정이 있어야 한다
센 1급 중에서는 마귀라는 별호를 가진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대왕마귀 마귀兄 새끼마귀 등으로 구분해서 부른다 바둑에 미치게 된 사연을 들어보면 소설로 써도 될만큼 내기바둑으로 점철된 화려한 부침사가 있다 말빨도 마귀급이다
바둑이건 바둑 외적인 사안이건 자기 주장을 좀처럼 꺽지 않는다 자기 주장을 한 번 시전하면 논리가 있건 없건 팩트가 맞건 틀리건 일단 밀어부친다 상대가 수긍하고 말고는 나중 문제다 말빨이 질기고 거칠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은 논쟁을 포기한다 논리가 먹혀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한 열정과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은 배울 점이다
반면에 다수를 차지하는 5,6급 사람들은 성격이 온화하고 조용한 편이다
trouble을 싫어하고 화합형이다 고수들의 말도 안되는 얘기들도 잘 들어주고 소화한다 그래서 동호회가 잘 굴러가는데 윤활작용을 하고 쿠션 역할을 한다
고수와 하수의 이런 대비되는 성격이 잘 조화가 돼 지역바둑대회서 우승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호회원들간의 바둑에서는 바둑 내적인 재미도 있지만 바둑 형세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오는 말들도 바둑에 흥을 돋우는 바둑 외적인 재미다
그래서 바둑은 手談이다 아니 口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