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서민 교수의 블로그글 전문

남국아, 평소 형이 너한테 ‘의원님’이라고 꼬박꼬박 존칭을 붙이며 말을 걸었는데,

이번엔 그냥 말 놓을게.

상황이 워낙 엄중해서 예전처럼 비꼬는 글을 쓸 수 없어서야.

그 급한 상황이 뭔지 얘기해 볼게.

너네들이 윤총장의 사찰 의혹을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이라고 떠들던 11월 26일 저녁,

국회 본관 4층 법사위 행정실에서 여당의 한 법사위원이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해.

‘판사들이 움직여줘야 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라도 들고 일어나줘야 한다. 섭외 좀 해달라.’

그래서일까?

그날 밤 9시 40분, 판사들이 이번 사건을 헌정문란으로 본다는 기사가 올라와.

[A판사는 “이게 사찰이 아니면 뭐가 사찰이냐”고 비판했다. A판사는 통화에서 “행정부에서 사법부를 사찰한 것이다. 헌법상 삼권분립을 깨뜨린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며 “(사찰 문건은)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 이후 헌정 사상 사법부 사찰이 이런 식으로 드러난 건 처음”이라고도 했다.]

사찰 의혹이 터졌을 때 난 당사자인 판사들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게 삼권분립을 깨뜨린 심각한 문제이고, 굉장히 위험한 행위라고 하네?

그래도 난 이게 A판사 개인의 견해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게 누군가가 사주한 것일 수도 있다니, 놀라자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

그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고 해.

“해당 여당 법사위원은 '(윤 총장은) 위법성이 조각될 것 같다. (판사들 또는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여론전을 벌여야 한다.”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말은 행위자의 행위에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아 범죄가 안된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그 당사자는 윤총장의 행위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론전으로 윤총장을 쫓아내려는 파렴치한 놈인 거잖아.

근데 말야, 뉴데일리에 따르면 복수의 국민의 힘 의원들이 전화를 건 그 ‘누군가’가 너라고 했다는 거야.

형은 말야, 네가 덜떨어지고 띨띨한데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모질이라고만 생각했지,

끔찍한 음모를 꾸미는 놈은 아닐 거라고 믿었어.

근데 네가 하다하다 이런 일까지 했다니, 형은 너무 충격을 받아 아침에 아내가 구워준 빵을 반밖에 먹지 못했어 (맛이 없어서는 절대 아니야. 오해 없길 바래).

저 기사가 사실이라면 넌 모자라기만 한 게 아니라 파렴치한 인간말종에,

한입으로 세말, 네말을 하는 위선자일 뿐 아니라

삼권분립 따위는 우습게 파괴하는 ‘타노스’ 같은 놈인 거잖아?

설마 내가 총애하는 남국이가 그딴 애는 아닐 거라고,

뉴데일리를 어떻게 믿냐고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정황들을 보니 자꾸 기사가 사실인 것 같아.

첫째, 그 누군가가 통화할 당시 법사위 행정실에는 국민의힘 소속 보좌진이 있었다고 해.

공작을 꾸미려면 일단 은밀하게 해야 하는데,

상대당 사람이 있는데도 그냥 대놓고 전화를 했다는 거잖아.

세상에 이렇게 멍청한 사람은 정말 몇 명 없고,

그 중 국회의원까지 한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용민이 이야기하지 마. 그래도 걔는 최소한 나쁜 짓을 할 때 주위를 두리번거릴 줄은 알잖아.

둘째, 뉴데일리가 너의 반론을 담기 위해 너한테 연락을 시도했다고 해.

근데 네가 전화도 안받고, 문자도 씹었다는 거야.

게다가 너네 측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는 거 아니겠냐.

남국아, 네가 어떤 얘니?

네가 조금, 아니 많이 모자라긴 해도,

그 모자람을 감추기 위해 말을 무지 많이 하는 애잖아.

그 말이 지나쳐서 반대편을 이롭게 했던 적도 여러 번이고,

그래서 너를 야당에서 보낸 X맨이라 부르는 이도 있지만,

너는 굴하지 않고 말같지도 않은 말을 배설해 왔잖아.

뉴데일리 기사가 거짓말이라면, 아마 넌 길길이 날뛰며 가만 있지 않겠다고 설쳤을 거야.

근데 드.릴.말.씀.이. 없.다.니.

남국아, 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이건 정말 너답지 않아.

혹시나 해서 페북을 가봤더니, 페북에 이와 관련된 해명이 전혀 없더라.

남국아, 모자라서 내가 더 사랑했던 남국아.

제발 부탁이야.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아니라고 해줘.

이번 일로 네가 국회의원을 잘리기라도 하면,

형이 무슨 재미로 블로그질을 하겠니.

남국아, 이번 일 제발 잘 버텨줘. 그리고 앞으로 다른 사람 있을 땐 절대 음모 꾸미지 마.

그리고 남국아, 네 뒤에는 늘 형이 있다는 거, 절대 잊지 마.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