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谷 實, 名人의 은퇴기에서 승리하다
秀哉 명인에게 승리한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 七段
[슈사이 명인 최후의 대국인 은퇴기 그 현장 속으로]
▲ 불패의 명인 秀哉 九段 對 일본 바둑계의 신성 木谷 實 七段의 대결
일본기원의 대국장에 긴장감이 감돈다. 저멀리 안개처럼 희뿌옇고 차디찬 공기를 가까스로 밀치며 들어서는 한 사람. 5척 단구에 비쩍 마른 체형의 그는 슈사이 명인이다. 반대쪽 출입구에선 풍채 좋은 삼십 대 청년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정돈하고 있다. 도전자 기타니 미노루 七段. 명인의 은퇴기 상대로 낙점된 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그는 일체 행동에 거리낌없이 당당하다. 최후의 불꽃, 그리고 점점 크게 번질 강렬한 화력의 대결이 곧 시작된다.
정선(定先)으로 도전한 기타니는 첫수를 조심스레 우상귀 소목에 놓는다. 아마도 본인방 슈사쿠(秀策)의 1.3.5 전법을 포진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 의도를 알아챘는지 슈사이 명인은 상대의 우하귀 쪽에 동형인 소목으로 응수한다. 마치 사무라이처럼, 상대의 가슴 한구석에 검을 찌르듯.
도전자의 장고가 길어진다. 첫날의 대국은 그렇게 단 두 수만 놓인 채로 마감되었다.
마이니치 신문이 기획하고 저명한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관전필자로 발탁한 이번 은퇴기는, 그 규모와 이색적 성격으로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펼쳐지는 이번 대결, 바둑을 좋아하는 모든 이의 관심이 주목된다.
슈사이 명인의 계속되는 접근전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기타니의 책략에서, 기량이 원숙해진 그의 노련미를 느낄 수 있다. 소설가이자 관전기의 기록을 맡은 가와바타는, 후끈한 대국장의 열기와 흑백 대결을 펼치는 반상(盤上)에서의 향연, 아울러 대국자의 미세한 심리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지런히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훗날 이 기록은 소설『명인』으로 출간된다).
흑은 먼저 실리를 차지한 후, 어느덧 두터운 수로 일관하고 있다. 유리함을 의식한 도전자의 행마에, 명인은 전단을 구하는 이른바 ‘시비걸기’에 한창이다. 실력이 약한 기사라면 명인의 수법에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분통을 터뜨린다거나, 너무 참는 데 급급하다 판을 그르칠 공산이 큰 것이다. 그러나 흑을 든 기타니는 전혀 동요의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바둑의 원리를 터득한 기사처럼 느긋하게, 뚜벅뚜벅 두어 간다. 그러면서도 판을 속히 정리하려는 인상이 강하다. 마치 한 수에 그 이상의 가치를 담으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다만 확고한 결단력은 그가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갖는 힘일지도 모른다.
바둑은 끝내기에 접어들었다. 검토실의 기사들조차 봉수(封手)였던 흑의 착점을 예상하기 어려워했다. 아뿔싸, 봉수를 확인한 명인의 얼굴이 황토처럼 굳어진다. 그 수는 그저 단순한 두 집 정도의 선수(先手) 자리인 것이다. 엄청난 수를 예상했던 명인으로선 김이 샐 만한 장면이었다.
이후로 형세는 급격히 기울어, 명인의 우하귀 보가가 침식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선수라고 굳게 믿었던 백 130수가 패착이 된 것이다.
종국엔 흑의 기민한 처리가 빛나는 진행이었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명인을 바라보는 것은 기자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어쩌면 이 바둑이 명인의 생명까지 앗아가리란 것을, 그 자신도 예감하였을지 모른다.
이로써 장장 6개월에 걸친 대국이 끝났다. 237수 完, 흑 5집 승.
명인은 패했다. 바둑계의 젊은 황태자 기타니에게 승리를 넘겨준 것이다. 승부를 떠나 명인은 늘 고독하였다. 격동하는 한 시대의 끝에 홀로 서서 과감하게 자기의 모든 것을 불사른, 그는 마지막 명인이었기에. 도전자의 다소 억지스런 치수도, 자신의 건강조차도 그는 문제삼지 않았다. 다만 바둑판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긴 사람처럼 장렬히 산화하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아름다움에 가까운, 바둑이라는 예술 작품이었으리라. 名人에게 있어서 바둑은 절대 가치로서 인생의 한 드라마로 남았다.
나는 그에게 감복한다. 그리고 투혼에 감사한다. 그것은 귀감이자 전통으로서 바둑의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 남아 있을 것이기에.
1938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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