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대학大學을 해설하다.

유교의 대학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도재명명道在明明 도는 밝음을 밝히는데 있고

덕재친민德在親民 덕은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있고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머무는데 있다.

대학의 삼강령三綱領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의 대요大要를 말하는데 보통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도재명명덕道在明明德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고

재친민在親民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있으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머무는데 있다.

소설 '단丹'의 주인공인 故 봉우 권태훈 선생은

명명덕에서 명명과 덕을 떼어서 도재명명 덕재친민으로 해석을 하였다.

나도 봉우 선생님의 견해가 맞다고 생각한다.

도덕이라고 흔히 얘기하는데 도가 체體리면 덕은 용用이다.

도가 본체라면 덕은 본체의 작용적 효능과 같다.

선풍기라는 물체가 있고 그 물체의 효능은 바람을 일으켜 시원하게 하는데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덕분에', 또는 '덕택에' 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도와 덕을 따로 나누어 해석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나는 젊은 시절에 대학을 읽고 親民, 백성과 친해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궁금해 하였다.

책에 나와있는 해설이 석연치 않았던 까닭이었다.

주자朱子는 親民을 新民이라고 하여 '백성을 새롭게 한다'로 해석하였다.

그렇다면 왜 애초부터 신민이라고 하지 친민이라고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친민이라고 한데는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나는 석영중 교수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니나'에 대한 강연을 듣다가 그 답을 찾았다.

톨스토이는 지주이면서도 농부들과 같이 어울려 농사일도 한 모양인데,

농사일을 하다가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한 어떤 체험을 하였다. 

그것이 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톨스토이의 분신이라고도 할 만한 안나카레리나의 진짜 주인공인 레빈이 

서양 낫으로 풀베기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이다.

“그가 하는 일에는 지금 그에게 커다런 기쁨을 가져다주는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잊어버렸고 일이 쉬워졌다.

그러나 일단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의식하고 보다 잘 하려고 애쓰기 시작하기만 하면

그는 갑자기 일의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두둑이 잘 깎이지 않는 것이었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것은 행복의 순간이었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더욱 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때에는 이미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그 자체가 자기의 배후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있는

생명으로 가득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요술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갔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30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독서삼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몰입하여 자아가 사라져 무아지경에 이를 때 

그것을 삼매에 들었다고 말한다. 

주인공 레빈은 풀베기에 몰두하다가 일종의 삼매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어느 대상에 집중하여 몰입하면 내면에 생각들이 사라지고 

생각이 사라짐에 따라 자아가 사라지는 무아지경에 들게 된다.

자아란 나라는 생각이고, 

나라는 생각은 다른 여러가지 생각들이 사라지면 

설 곳을 잃고 의식에서 사라지게 되어 무아지경에 이르게 된다.

나라는 생각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생각들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내가 없는 상태에서는 일 자체가 되어 저절로 일이 행해지게 된다.

노자가 말한 위무위爲無爲, 함이 없이 하는 경지다.

이렇게 의식에 생각이 사라지고 자아가 사라져 의식이 비워지게 되면

그냥 공허한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충만한 상태가 된다.

왜냐하면 텅 빈 의식은 에너지로 가득찬 상태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게 되면 의식의 에너지는 생각으로 소비가 되어버리게 되지만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되면 의식이 본래 갖고 있던 에너지는 보존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의식은 빛으로 자각하게 된다.

레빈이 무아지경의 상태에 있었을 때 소설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무언가 내면에 불이 켜진 것 같은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그 때가 밤이었고 그가 눈을 감는다면 내면의 밝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도재명명, 도는 밝음을 밝히는데 있다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도란 의식의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 그 본래의 밝음을 회복하는데 있다.

"레빈은 농부들에게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주인에 대한 어려움은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일꾼들은 점심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빈은 영감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잔뜩 흥미를 느끼며 

그의 집안일에 대한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형보다 영감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레빈은 풀베기를 통한 무아지경을 경험한 후 농부들과의 벽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농부들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다.

대화는 막힘없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그들 사이에는 신비한 일체감이 형성되었다. 

우리는 나와 타인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를 중심으로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서로 소외되고 갈등과 고립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마음의 부담이 되고 죄책감과 번뇌가 된다.  

톨스토이는 그의 다른 저서 '인생의 길'에서 

"이승에서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라고 하였다.. 

소외감과 갈등, 마음의 부담과 고립감, 죄책감 등에서 벗어나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덕재친민, 도의 효능인 덕은 자기 중심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친밀해지고 소통하는데 있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욕망을 버리고 현재를 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풀베기 때의 체험을 일상화하는 것의 다름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고 본래의 텅빈 마음으로 사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소설 속에서 톨스토이는 한 농부의 입을 통해서 말한다.

"산다는건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한 추구의 결과 그의 삶은 망니니 같은 방탕한 삶에서 지극한 선의 삶으로 변화됐다.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동안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쫓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지극한 善이란 자신의 욕심이나 이기적 생각을 억압하여 

억지로 착하게 살거나 겉으로 선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자칫하면 위선이 될 수 있다.

욕심이나 이기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저절로 선에 머무르게 된다.

재지어지선, 도의 덕은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이다.

의식의 밝음을 밝히면 사람들과 일체감을 느끼게 되고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