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영길 기자의 페이스북 글을 소개합니다. 헤럴드경제 좌영길 기자의 성향을 분류하자면 그의 성처럼 진중권과 같은 ‘좌파’입니다. 정작 진영논리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이들에게 일독하기를 권합니다.^^

청와대 사건만 빼고

'n번방' 조주빈이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세부 혐의가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수사팀 언론 브리핑까지 했다. 경찰로부터 사건 송치를 받은 이후 20일 동안 검찰은 조사 일정, 공범들 수사 현황, 주요 혐의까지 모두 공개했다. 몇시에 검찰에 와서 어떤 내용을 조사받고, 언제 구치소로 갔는지도 모두 알렸다. 특히 오늘 수사결과 발표는 공보관이 아니라, 이번 수사 실무를 맡은 검사가 직접 했다.

이전에는 주요 사건에서 늘상 볼 수 있던 풍경이었지만 조국 전 장관 사건 이후 검찰 공보활동은 정지됐다. 법무부 훈령으로 '형사사건 공개 금지규정'을 만들면서부터다. 피의자의 인권과,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n번방 조주빈은 파렴치범이라 인권도 없고, 무죄 추정도 되지 않는 걸까. 검찰과 법무부는 규정에 따라 사건 공개 여부를 관련 위원회를 거쳐 공개했다고 설명한다. 원칙은 비공개지만, 예외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주빈 범죄가 사소하다는 게 절대 아니다.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이자 법무부장관이 특정 공무원의 비위를 덮어주려다 직권남용으로 기소됐다. 보유하고 있던 주식 매각자금은 코스닥 상장사 기업사냥에 쓰였다. 그런데도 수사결과 발표나 언론 브리핑은 전혀 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마찬가지다. 총선이 끝나면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기소될 예정인데, 이 사안에 대해 기자들은 질문할 기회가 없다.

n번방 조주빈은 나쁜놈이고, 조국 전 장관은 억울하게 수사를 당한 희생양이라서? 그 판단은 누가 내리는 것인가. 검찰이 만든 위원회? 그 위원회는 검사나 판사보다 능력이 월등해서 사건 기록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법무부나 검찰이 알리고 싶은 사안만 선별적으로 알리고 싶은 도구가 된다. 이 규정이 도입될 때부터 기자단에서 우려했던 지점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전직 법무장관이 직무상 범죄로 기소되는데 언론 공표를 금지할까. 당장 구글만 열어도 미국 FBI가 누구를 내사(심지어 강제수사도 아니다)한다거나, 도쿄지검 특수부가 어느 정치인을 수사한다는 기사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기자들이 수사팀에 질문을 못하게 하고, 접촉을 할 수 없게 막았다. '적폐청산' 때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청와대 관련 사건이 시작된 이후 벌어진 현상이다. 인권과 무죄추정의 원칙을 말하지만, 결국은 '청와대 사건만 빼고'다. 이 규정의 '혜택'을 본 다른 사건이 뭐가 있었던가. 나는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