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언급하려다 지나치게 글이 길어져서 뒤로 미뤄둔 것을 보충합니다. 백보궁님이 맛이 제대로 간 진중권은 채널A 기자에게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면서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헛소리를 남발했다고 성토했는데요.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진중권의 글 <'윤석열을 잡아라' - 사기꾼과 MBC의 콜라보>는 4월 3일 0시경에 쓴 글이구요. 채널A 기자를 언급한 글은 따로 있습니다. 그 이전인 4월 2일 밤 8시경에 쓴 <라쇼몽>입니다. 소개합니다.

라쇼몽

채널A 기자가 보도윤리를 어겼죠.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녹음기의 목소리가 윤석열 최측근이라는 검사장의 것은 아닐 겁니다. 음성이 녹음까지 되어 있는데도 지목된 인물이 강하게 부인을 하고, 이에 대해 MBC 측에서 아직까지 반박을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기자가 취재의 욕심에서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를 검사장과 나눈 것이라 둘러댄 거겠죠.

문제는 MBC입니다. 최초의 보도에서 검사장의 실명을 대지 않았습니다. 아직 확인이 안 됐다는 얘기죠. 확인이 됐다면, 실명으로 보도했을 테니까요. 그거 확인하는 것, 어려운 일 아닐 겁니다. 전화 한 통 걸면 금방 확인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MBC에서는 이런 절차 없이 문제의 인물을 "윤석열 최측근"이라 단정해 버렸죠. 여기서 저는 의도적 프레이밍을 의심합니다.

제보자 얘기, MBC의 보도, 채널A의 해명을 종합하면 대충 그림이 그려집니다. 다들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만 부각시키고, 얘기하기 껄끄러운 부분은 감추기 마련이거든요. 원래 세상이 영화 '라쇼몽' 같아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면 이쪽이 감추는 얘기는 저쪽을 통해, 저쪽이 감추는 얘기는 이쪽을 통해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대략 퍼즐의 그림이 드러나죠.

중요한 것은, 밸류코리아인베스트니, 지금 수사중인 신라젠이니 수천 억 규모의 거대한 사기극이 이 땅에서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건, 빤하지 않습니까? 대어들은 사고 터지기 직전에 크게 먹고 먼저 빠져버리고, 그 덤터기는 아무 것도 모르는 개미들이 뒤집어 쓰는 거. 언론이라면 무엇보다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MBC의 보도행태는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그들은 그릇된 취재윤리를 바로잡기 위해 보도를 한다고 하나, 보도의 내용은 사실 '윤석열'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마침 검찰은 신라젠 사건을 수사하고 있구요. 그 사건에는 공교롭게도 친노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구요. 당연히 MBC에서 검찰수사를 방해하려고 사건의 실체를 흐린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죠.

언론은 언론이어야 합니다. 언론의 보도를, 정적을 공격하는 데에 사용해서도 안 되고, 권력의 비리를 덮는 데에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취재윤리를 위반한 기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보도가 수많은 이들을 울린 사기극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그 가해자와 연루자들을 법의 심판에 맡기는 일을 방해하는 목적에 사용돼서는 안 됩니다.

옛날 황우석 사건 때 한학수 PD의 일이 생각나네요. 취재의 욕심에 그도 취재윤리를 위번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그는 모든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죠.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취재윤리 위반은 잘못이나, 그로 인해 진실까지 묻혀서는 안 된다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든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됩니다. 그건 그렇고, 그때 그 한학수는 어디로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