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있었던,

딥젠고와 박정환 선수 대국에서,

대국 중간에 딥젠고의 수가 이상하다고, 바둑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분이 말했고, 이에 대해 별 설명없이 끝내버렸지만, 제 분석으로는 '최고의 한 수'라고 판단이 가능하기에, 이에 대해 글을 씁니다.

바로 아래 장면입니다.

아래 빨간색 네모와 노란색 세모로 표시한 수가, 바로 그 딥젠고의 이상한 수라는 겁니다.

당장 모양만 봐도 이상한 수인 것은 맞습니다. 두 점 머리를 스스로 부딪히는 수이니까, 절대로 프로기사의 감각에 없는 수이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입니다. 그래서 해설하던 프로기사도 어이 없어했을 겁니다.

참고로, 이 바둑은, 초반에 흑이 우상귀에 큰 집을 지은 상태이고, 그 대가로 하변의 곤마가 몰리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흑은, 하변의 곤마를 후수로라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고, 혹시 선수로 하변을 살릴 수만 있다면, 우상쪽의 흑집을 더욱 커다랗고 완전하게 만들면서, 바둑을 쉽게 이길 수 있는 형국입니다.

이제 아래의 두 수순을 보겠습니다.

왼쪽은, 오늘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이름을 일부러 안 밝힙니다. 제가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를 까는 내용이니까요.)가, 딥젠고가 위 장면의 수를 두기 전에,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중요한 요소들을, A, B, C, D, X 라고 표시하였습니다.

A는 흑이 선수로 두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여기를 두면 중앙에 집모양이 생기고 연결이 튼튼해집니다. 단, 후수로 두면 안 되고 선수로 두고 싶습니다.

B 위치는, 왼쪽의 예상도에서, 백이 흑 A와 X로 끊겨도, 바로 이 위치에 집이 나 있으므로 2집이 나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치입니다. 즉, B의 위치가 집이 되어 버리면, 흑은 A를 선수로 할 수 없습니다.

C 위치는, 역시 흑이 선수로 두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여기를 두면 하변에 눈모양이 더 확실해 집니다. 하변 대마가 곤마로 쫓기고 있는 흑 입장에서는 이런 곳이 선수로 되어 버리면, 선수로 하변 대마를 해결하고 다른 곳을 둘 수 있게 됩니다.

D위치는, 우상변의 흑집을 완전히 굳히는 최고의 요소입니다. 엄청 두터우면서도 엄청나게 집으로도 큰 자리입니다. 즉, 하변이 선수로 해결되면, 흑은 여기를 둬서, 바둑을 사실상 끝낼 수 있는 겁니다.

X위치는, 흑이 A에 두었을 때, 백이 손빼고, 다시 흑이 두어서 하변의 백을 끊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오른쪽은, 바로 딥젠고가 바라는 진행입니다.

왼쪽의 예상도처럼, 딥젠고가 둔 수에 대해 백이 아래로 단순하게 받고, 나머지가 똑같이 되면, 오른쪽의 예상도가 됩니다. 그리고 이게 딥젠고가 바라는 진행인 것입니다. 그래서 박정환 9단이 이 진행대로 갈 수가 없어서 비틀게 됩니다.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가 뭘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왼쪽으로 진행하면, 흑이 A로 두어도 선수가 안 됩니다. 왜냐? B자리에 백이 집이 나서, 굳이 백이 X로 이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른쪽의 딥젠고 의도대로 진행하면, 흑이 A로 두었을 때 선수가 됩니다. 왜냐? B자리에 백이 집이 나지 않아서, 두 집이 안 나게 됩니다. 결국, 흑 A가 선수이고, 이로서 하변 흑대마가 수습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실전진행에서는 그래서 박정환 9단이 다른 수순을 선택했습니다. 그게 바로 아래 실전진행도입니다.

박정환 9단은, 1로 두어, 흑의 의도를 거스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필연의 수순을 거친 결과,

1. 흑은 원하던 '2'자리(앞 장면에서 A자리)를 두어 선수 처리했습니다. 이로써, 흑의 중앙에는 1집이 따로 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2.  흑은 C자리를 언제든 선수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흑이 C에 두었는데 백이 안 받으면, 하변의 백을 거꾸로 잡게 됩니다. 이로써, 하변에 흑이 확실히 집이 나게 되었습니다.

3. 흑은 A자리와 C자리를 모두 두게 되어, 하변 대마가 사실상 살게 되었고, 선수로 수습하였기에, 우상변의 요소인 '18'(앞 장면에서 D자리)을 두었고, 이로써 사실상 오늘 게임이 끝났습니다. 집 차이가 너무 크게 나 버렸고, 박정환 9단은 어떻게든 여기저기 수를 내려 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못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4. 잘 보면, 앞의 예상도에 비해, 백이 흑의 귀 3점을 잡아서 이득을 본 것 같습니다. 사실 10집 정도는 이득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변의 흑대마는 중앙의 선수와 하변의 선수로 살아 버렸고, 제일 큰 자리를 흑이 차지하게 되어, 10집 번 정도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고, 바둑의 결과는 정해져 버린 겁니다.

오늘 경기 막판에,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가, 이런 점을 설명하지도 않고 끝내 버려서, 저도 좀 검토가 필요했고, 제 검토 결과를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이창호 9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정관념을 버릴수록 좋은 수를 찾을 수 있다."

오늘 딥젠고의 장면도 한 수는, 이 말을 실제로 보여준 '최고의 한 수' 이며, 오늘 경기의 때이른 승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의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AI라서 가능할 수 있었을 겁니다. 바둑의 '수'는 인간의 오만 및 짧은 생각과 달리, 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