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미션 임파서블

어제 진행된 이세돌과 알파고의 3국. 토요일에 일이 많아서 초반포석을 보지 못했다. 두판 지니 공중파에서 생중계를 안하여 디엠비로 볼 수 없었다. 식당과 경비실의 티비로 중간중간 엿보니 비세였다. 알파고가 어떻게 최적의 착점을 찾아내는지는 개발자도 구글팀도 한국기원 프로기사들도 모르지만 바둑을 어떻게 운용하는 지는 알 수 있었다. 1국에서 이세돌이 무리했는데 그에 대응하여 조금만 이겼다. 2국에서 이세돌이 자신의 기풍과 달리 안정적이고 두텁게 두었는데 알파고도 잘 두어서 역전당하지 않을 정도만 두었다. 즉 알파고는 판후이든 이세돌이든 상대 대국자의 바둑운용에 따라 최적의 승리수순을 찾을 뿐이다. 초반이든 중반이든 격차를 벌이거나 대마를 사냥하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안한다. 상대가 귀와 변의 집을 챙기면 집의 균형을 맞추고 세력을 중시하면 그것을 방해한다. 이제 남은 의문은 패싸움이었다. 일반적인 기리나 수읽기와 달리 패싸움에서의 기회비용 측정은 매우 어렵다.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 자체의 손익계산도 어렵지만 그 변화가 판 전체에 미치는 영향들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하수들은 패싸움에 휘말려서 고수에게 역전당한다.

이세돌은 여기저기 세밀하게 두어서 더 복잡하게 만들고 초중반 곳곳에서 패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자꾸 한쪽부터 힘겨루기를 하여 완력을 써서 판 전체를 단순화시키는 기질이 있다. 두판 지는 동안 반성을 통한 학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성정이 모질어서 초반 포석이 다른 기사들보다 좀 지저분한데 중반13단이라는 별명답게 상대를 흥분시키고 도발하여 감정을 흔들고 케이오로 압도하는 인파이터다. 하지만 알파고는 감정이 없고 흥분할 수 없다. 그러니 이세돌 혼자 이러저런 고민하면서 스스로 왔다갔다 하게 된다. 전략을 설정하고 철저하게 전술을 펼쳐야 하는데 기동전만 알고 참호전과 게릴라전을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의 수법을 파악하고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하는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즉 쉽게 지지 않는다는 뜻을 모른다. 고전을 읽는 청년기사도 한 명 있는데 나는 그가 우승하기를 바란다.

3국의 중반. 알파고는 하변에 큰 집이 있고 이세돌은 우상에 큰 모양이 있다. 우상을 최대한 크게 지어야 역전이 가능한데 어렵다. 결국 아주 늦게 특공대가 투입된다. 거기서 패가 만들어진다. 패를 만드는 수법이나 투혼은 칭찬하고 싶다. 그 부분의 패는 이길 수도 있었고 그 안에서 사는 길도 있었다. 문제는 팻감이 부족했다. 즉 전체적으로 알파고가 두터웠다. 패로 작게 살면 지고 백을 잡아먹으며 살더라도 큰 팻감을 양보하면 진다. 초읽기에 몰렸고 해설자들도 수많은 변화를 판에 놓아보며 찾아야했던 길을 이세돌 역시 잘 궁리했지만 실패했다. 아름다운 투혼이었다. 이희성 프로기사는 해설 및 검토 후 "알파고가 완벽했다"고 인정한다. 3국에서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도 알파고의 완착이 거의 없었다.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두었다. 하변 자기집에서 작게 살려주더라도 이미 우변 팻감으로 이득을 보았고 상변 흑진영도 약해졌다. 바둑에서 지더라도 패에서는 이겨라, 내가 집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건 사람이 사람과의 대국에서 하는 기세싸움이다. 다음 대결에도 영향을 준다. 알파고는 다음 대국을 위해 이번 대국에서 상대를 더 괴롭히는 일이 없다. 그런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알파고는 상대가 사람인지 다른 인공지능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와 싸우고 알파고는 자기 바둑판에서 주어진 착점에 대한 대응점만 찾도록 되어 있다. 자기와의 싸움이다.

3국의 아쉬운 점은 그렇게 어려운 곳에서 대형패를 만들 수 있는 이세돌이 왜 초중반에 쉽게 패모양을 만들 수 있는 곳들에서 그걸 시험하지 않았는가이다. 초반 포석이 가치판단에서 가장 어렵듯이 초반 패가 매우 어렵다. 그렇게 해야 알파고가 최적의 수를 찾느라 시간을 쓰게 된다. 사람도 힘들지만 프로그램도 초읽기에 들어서면 최적의 수를 찾는데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사람은 시간 들이지 않고 감각만으로 패를 걸고 팻감을 쓸 수 있다. 알파고의 시간을 거저 이용할 수 있다. 손오공이라는 서능욱이 접바둑 하수 다루듯 했다면 알파고도 땀을 흘렸을 것이다. 이세돌은 운좋게 흑을 세번 잡는다. 커제는 백 압승의 승률을 보이고 공제가 많다지만 흑은 자신이 원하는 전략을 설정할 수 있다. 목진석처럼 천원에 두고 알파고가 가치판단하여 계산하여 두는 반대쪽에 흉내내어 둘 수도 있다. 알파고 두 시간 다 쓰는 동안 이세돌은 10분이면 된다. 천원에 둔 수법의 맹점을 찾는 건 프로에겐 쉬운 일이나 그건 경험과 '생각'을 요한다. 알파고가 학습한 바둑이해로부터 흉내바둑을 무너뜨리는 걸 깨달았을까. 알파고의 패싸움 실력도 증명되었다. 남은 건 천원-흉내뿐이다. 이세돌이 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상대의 스타일을 간파하고 임기웅변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건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십번기에서 구리가 진 뒤 구리는 쇠락했고 명예회복이 어렵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지고 명예회복이 어렵다. 앞으로 세계대회에서 많이 우승한다 해도 그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불세출의 행운아에서 희대의 비운아로 전락했다. 이세돌은 판후이를 비웃었고 커제도 이세돌을 비웃었다. 그런데 단 세 판만에 한국프로기사들은 당황하여 알파고가 어떻게 초중반에 바둑을 잘 두는지 이해하려고 진땀 흘리고 있다. 알파고의 모든 수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닌지 분석하고 해석하고 심지어 숭배하려고 한다. 무림에 절대고수가 나타나면 그를 존중하고 가르침을 배우려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알파고는 스스로도 왜 자기가 그렇게 두었는지 알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다. 승부의 규칙과 좌표가 있는 게임에서 적당한 착점을 찾도록 학습된 인공지능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돌려보는 어리석고 무의미한 작업은 필요하지 않다. 괜히 시간만 허비한다.

이세돌의 마음이 이미 크게 다쳤을 텐데, 좀 가혹하지만 5판 두기로 약속했으니 남은 두 판에서 알파고에 대해 그의 상대적 약점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필요하다. 그게 인간의 역사고 진화과정이다. 과거 역사를 재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인간이다. 우상숭배도 하고 이데올로기에 종속되기도 하고 소외도 되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희생양을 괴롭히기도 하고 다른 부족과 인종을 학살하기도 한다. 그래도 현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부조리한, 비윤리적인 지배시스템에 저항해왔다. 지금까지 바둑의 역사에서 가장 큰 중압감에 몰린 이세돌 프로기사. 어떤 기사라도 당혹했을 테니 너무 비참해 하지 말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기적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심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가운데에서도 불굴의 투혼을 끄집어내도록 응원한다.

바둑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프로기사들의 학습과 훈련과 틀이 어떠했는가. 알파고가 바둑계에 던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은 무엇인가. 그로인해 더 확장된 바둑의 입체적 가치판단 혹은 더 비정해진 손익계산은 어떤 형태인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통해 그런 주제들이 오래오래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