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뭐라고...아들의 '반집', 어머니의 '반집'
바둑이 뭐라고...아들의 '반집', 어머니의 '반집'
아들을 프로기사로 키운 이야기 <반집> 펴낸 송영화 작가
[인터뷰] 정용진  2014-12-12 오후 08:30   [프린트]
▲ 아들을 프로기사로 키운 이야기를 써 수필집으로 묶어낸 화제의 어머니, 송영화 작가.


아들 바둑기사로 키운 이야기 '반집' 펴낸 어머니!
모닝커피를 마시듯, 사이버오로의 바둑기자들은 ‘바둑’이란 검색어로 종종 웹서핑을 하곤 하는데, 제목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최근 드라마 <미생>의 흥행으로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울산의 한 수필가가 바둑을 소재로 한 수필집을 펴내 화제다.

그런데 이 수필가가 프로기사의 어머니란다. 눈에 찬 정도가 아니라 눈알이 낚아채일 만한 발견이었다. 이거 ‘깜’이네!

그런데 인터넷뉴스 몇 개를 뒤져봐도 수필가의 아들(프로기사) 이름을 밝힌 기사는 없다.

작가 송영화는 울산 동구 화정동에서 태어나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2003년 계간 '문예운동' 겨울호로 문단에 올라 수필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울산’을 벗어난 적이 없는 토박이라니까 일단 울산지역 출신 프로기사를 뒤졌다. 양재호 9단이 있고 박승화 6단이 있다. 양재호 9단은 63년생이니 넘 나이가 많다. ^^;; 제외! 89년생 박승화 6단도 입단 9년차인데 어머니께서 10년이 다 되어서야 케케묵은 이야기를 쓸 리 없고...그렇다면 최근 1~2년 새 입단한 새내기 중 한 명의 모친이렷다.


▲ 이동휘 초단. 울산 출생으로 1995년생. 2013년 8월 제14회 지역연구생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했다.

이동휘 초단. 지난해 8월에 지역연구생 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한 95년생 이동휘 초단이 딱 나왔다. 당시 사이버오로 뉴스를 검색해 보니 <부산의 이동휘, '반집'으로 연 프로의 문 ☜ 뉴스보기 클릭>이란 기사가 뜬다. 부산 장명한 6단 문하의 부산지역연구생 이동휘가 최종 결승에서 같은 지역연구생 후배 강유승에게 220수 만에, 반집을 이겨 입단 관문을 뚫었다. 여섯 번 도전 끝에 쥔 프로 면장이었다. 그것도 ‘살 떨리는’ 반집으로. 어머니가 쓴 첫 수필집 제목도 ‘반집’이다.

아들이 프로바둑기사 입단대회 결승 대국에서 ‘반집’으로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들이 꿈을 이룬 결정적인 마지막 한 판이 반집승이라니요. 바둑에서 반집이란 동률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계산상의 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눈으로 볼 수도 없는, 형체도 없는 집이지요. 바둑돌 한 개의 자리도 안 되는 그 반쪽이 아이의 길을 밝게 열어준 겁니다. (중략)

“야야, 백 집으로 이기나 반집으로 이기나 이기는 건 마찬가진데 뭐할라고 자꾸 욕심을 부리노?”
거의 12년 동안 바둑 공부를 해온 아들을 지켜보며 얻어 들었던 풍월 중에 가장 선명히 기억나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까지 난, 한 집이라도 더 크게 나는 것이 잘 둔 바둑인 줄 알았습니다. 아이가 이겼다고 하면 몇 집 차이로 이겼는지가 궁금했고 상대가 돌을 던져 불계승으로 이겼다고 하면 아들이 월등하게 잘 두었나 싶어 흡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물며 제일 잘 둔 바둑이 반집승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딱 반집만 이길 거라고 작정하고 치밀하게 상대의 수를 계산하여 이긴다면 얼마나 대단한 바둑이 되겠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뻔한 말이 그날따라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후로는 몇 집으로 이겼냐고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반집을 이기기 위한 치열한 형세판단이 아이가 공부해야할 새로운 과제임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 ‘반집의 힘’(서문)에서


▲ 이동휘는 입단결정국에서 극적인 반집승을 거두고 입단했다. 이전에 5번의 좌절을 맛보았으며 6번째 만에 꿈을 이뤘다. 결승에서 반집으로 눈물을 흘린 강유승 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역연구생입단대회 결승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또 분루를 삼켰다. 어쩌겠는가. 냉혹한 것이 승부세계인 것을.

그러고 보니 300명에 이르는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가운데 부모가 등단한 전문작가인 경우는 처음인 듯하다. 예전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수준 9단의 아버지가 이 같은 수필집을 한번 낸 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어머니가 자식을 프로기사로 키운 양육기를 책으로 펴낸 경우는 처음이다. 이 화제의 어머니가 마침 격월간지 ‘에세이스트’ 58호(11-12월)에 문제작가로 선정돼 서울에 올라온다는 기별을 듣고 급히 인터뷰를 잡았다. 남편 이보혁(52) 씨가 ‘운짱’으로 동행한다고 하여 옳다구나 하고 아들까지 동석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한국기원 옆 원두커피집 ‘유전(有田)’에서 만났다. 아이를 키우는(특히 바둑에 뜻을 둔) 여타 부모의 입장에서 천신만고 끝에 아이를 입단시킨 부모에게 물을 법한 질문부터 던졌다.

- 먼저 출간 축하드립니다. 아직 전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익숙한 이야기여서인지 참 흡입력이 있더군요. 총 5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 몰래 나선 여행’이 아들을 프로로 뒷바라지하며 겪은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솔직하고도 애끊는 심정이 고스란히 다가와 무척 공감했습니다. 아마 제가 기자생활을 하며 흔히 보던 풍경이어서 1부야 당연히 울림이 컸지만 사실 전 2부부터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뭐랄까요. 담백한 문장으로 다소 관조적으로 덤덤히 써내려간 문장이 사골국처럼 우려내는 힘이랄까요. 캉캉춤 같은 울긋불긋 요란한 화려함보다 무채색 수묵화가 더 눈길을 끌고 오래 남는, 그러한 문장과 작품을 모처럼 접했습니다. 처음엔 한 프로기사의 어머니가 쓴 일기류려니 여겼다가 막상 책장을 넘기고 나서 놀랐달까요.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부터 마치 횡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책인데 그나마 읽을 것이 있다 하시니 다행입니다. 바둑글을 쓴다면, 책을 낸다면 일상사 수필집보다는 바둑을 시킨 부모의 심정을 쓰고 싶었지요. 다만 동휘가 프로가 된 이후에 내야겠다 생각하고 미뤄 왔는데 출판사 편집장의 격려에 자신감을 얻어 쓰기 시작했답니다. ‘당신 아들은 프로가 되든 안되든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지 하고 싶은 거 10년 이상 했다는 건 행복한 거다. 그러니 쓰라’고 힘을 주더군요. 지난해 아이가 입단하기 몇 개월 전의 얘기입니다. 사실 운이 좋은 건 얘가 아니고 저예요. 직후 입단해 주었고 요즘 드라마 ‘미생’이 화제가 된 시점에 책을 선보일 수 있었으니까요. 제 글을 읽고 미생을 보면 더 마음에 와 닿을 겁니다. 이야기는 바둑이지만 예체능 분야든 어디든 다 통용되는 이야기지요. 김연아 엄마는 안 그랬겠어요? 공감대가 있다면 그런 걸 겁니다. 프로가 돼도 미생...여전히 미생이죠.”


▲ <반집>의 표지와 삽화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장녀 이가현 씨가 직접 그렸다. 한눈에 흑백 바둑알을 떠오르게 하는 디자인이 들어온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은, 일반인들에게 바둑은 여전히 생소한 분야입니다. 프로기사로 일평생 먹는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누구나 이창호, 이세돌이 될 순 없을 테니까요. 바둑을 시키려는 대다수 부모가 가장 궁금해 할 물음입니다. 단순히 아이가 좋아서 시키기에는 고민스런 부분이죠.

“다들, 처음엔 아이가 좋아하니 시작할 겁니다. 그때는 초등 6학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여건을 마련해주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미리부터 하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잖아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심정으로 여차하면 방향을 돌릴 수 있다는 여유가 초등 때는 있지요. 그런데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결정할 순간에는, 본인이 워낙 원했거니와 저 같은 경우에는 남편의 판단이 많이 좌우했습니다.”

- (곁에 앉아 있는 아버지 이보혁 씨를 보며) 아버님은 바둑을 둘 줄 아시는지요?
“ㅎㅎ 전 고작 죽고 사는 정도만 압니다.”

- 그런데도 프로기사로 올인하는 게 걱정스럽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남자다 보니 우선 직업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한 20년 전쯤 벨기에에 출장간 적이 있었지요. 그때 어느 가정집에 초청을 받아 저녁을 먹었는데 그 집 열다섯 살 먹은 애가 학교를 포기하고 세공기술을 배우러 영국에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저도 대학공부까지 했지만 공부보다도 애가 원하면 일찌감치 전문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겠다 생각하던 차에 그런 현실을 목도한 거죠. 공부는 조금 늦더라도 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더 확고한 의지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해서 아예 프로기사의 길을 갈 양이면 중학공부를 포기하고 바둑에만 매진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 울산 현대자동차에 근무하신다 들었습니다. 안정된 대기업 직장을 다녔고 평생 월급쟁이만 하셨으니 혹 자신이 해보지 못한 ‘프리한 인생’에 대한 선망 같은 게 아들에게 작용하진 않았을까요?

“대리만족? 그렇지 않겠습니까...부모 입장에서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아이의 꿈을 존중했고요, 자기만 좋아한다면 아마추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유럽을 비롯해 다른 쪽에서도 바둑이 활성되고 있기 때문에 먹고사는 걱정은 안했습니다.”

(어머니) “초등 1학년 때, 바둑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인데요, 왜 학급 환경미화 있잖아요? 교실 뒤편 벽 게시판에 이런저런 꾸미는 거 말예요. 거기에 동휘가 장래 꿈을 프로기사라고 써 놨더라고요. 어쩌면 제 생각인데 부산에 갈 때(초등 4학년 때 부산으로 이주해 장명한도장에서 공부했다) 마음이 이미 정해졌는지도 몰라요. 그 정도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겠지요. 마음을 정해야 했을 때, 그러니까 초등 6학년 때 바둑계를 잘 아는 분들에게 많이 자문했죠. 그런데 정작 이 분들의 조언이 더 힘 빠지게 하더라고요.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 만큼 어렵고 힘든 게 입단이다. 설령 된다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비전 없는 세계다. 아들이 공부도 잘하는데 그 머리로 공부하는 게 낫지 뭐하러 보장도 안되는 승부사의 길을 고집하느냐 식이었죠. 하지만 워낙 남편의 의견이 확고했고, 본인이 좋아하고, 또 하겠다니...이런 긍정적인 게 더 작용했지요.”


▲ 이동휘 초단의 아버지 이보혁 씨. 천군만마와 같은 든든한 지원자였다. 아버지의 열린 생각이 아니었더라면 프로기사 이동휘도 없었을 것이다.

- 프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다수의 아이들이 부득이 부모의 품을 떠나 바둑도장에서 기숙하며 공부합니다. 이동휘 초단도 어린나이에 울산을 떠났는데요. 지역연구생이라 근교인 부산으로 가긴 했어도 처지가 크게 다를 바 없지요. 어린나이에 떼놓는 거, 이거 막상 닥치면 쉽지 않은 일인데, 다들 이 대목에서 또한번 고심하게 되지요. 어땠나요? 어머니로서.

“저는요, 감수해야 된다 생각했어요.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잖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잖아요. 울산엔 프로바둑도장 없어 처음엔 서울로 가려고 했어요. 해서 허장회도장 근처에 집까지 살펴본 상태였는데, 첫번째는 6개월이 지나도록 집이 잘 안 팔려서 부산으로 방향을 틀었고요...두번째는 애가 뭐든 착착 잘하는 성격이 아니어서(이게 부모 마음이다 ^^)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라고 판단했기에 결국 차선책을 택했죠. 부산에 할머니댁이 있어 주중엔 거기서, 주말엔 울산으로 왔죠.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될 놈은 된다고 아빠는 말하더라고요. 처음 2년간은 제가 맏딸까지 데리고 부산으로 이주해 살았어요. 아빠는 졸지에 기러기 신세가 되었고요.”

-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학벌사회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 알면서도 중등과정부터 과감하게 학업을 포기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격월간 ‘에세이스트’가 주최한 문제작가 행사에서도 나온 질문이고 그동안 주변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던진 물음이기도 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학벌사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아이가 신검을 받고 왔는데 저희 딸이 이렇게 농담하더라고요. ‘우리 동생 학벌 빼고는 다 정상이네.’ ^^ 우리는 아이에게 콤플렉스 같은 거 안 느끼고 문제 삼지 않는데 외려 주변에서 더 걱정인가 봅니다. 대학요? 재수 삼수도 하잖아요. 제 맘속에는 애에 대한 믿음은 있고 정말 인생에 대학졸업장이 필요할 때면 검정고시 거쳐 대학 들어가면 되지요. 걱정은 안해요. 인생 길잖아요. 길게 보면 얼마만큼 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사느냐, 진짜 그런 준비를 하는 공부가 중요하지 남들 우르르 따라가는 길이 정답이고 최선이랄 수는 없잖아요. 뻔한 얘기인데 이 뻔한 것을 하는 데도 상당한 용기를 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요. 우리는 지금.”


▲ 면장수여식.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을 인고했던가. 200수, 300수 가는 바둑의 수순도 어쩌면 마지막 환하게 웃는 한순간을 위한 지난한 과정. 설령 찰나에 불과할지언정 이긴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 승리의 순간을 얻고자 긴 꿈을 꾸는 것. 때로 고통스러울지라도 마다않는 것.

- 초단 면장을 따기까지 좌절 많이 했잖아요. 속이 타들어갔을 텐데...마침 요새 지역연구생 입단대회가 한국기원에서 열리고 있네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입단대회에는 한번도 와 본 적 없는데 오늘 처음 다른 사람들의 입단대회에 와 보게 되네요. 마음이 짠하네요. 안타깝기도 하고...동휘는 5번 떨어지고 6번째 입단했지요. 95년생이니까 지난해 안됐어도 올해 한번 더 기회는 있었지만 마음을 비웠었지요. 작년에 안됐다면 올해는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야 기회가 많이 남아있으니 여유가 있지요. 하지만 시간이 좁혀지면서 결국 저절로 마음을 비우는 단계로까지 가게 되더라고요. (아버지 중간에) 마음을 비운다는 게 체념은 아니고 그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다시 어머니) 이름을 밝혀도 되려나...문교 아시죠? 박문교. 부산지역연구생 선배인데 그 애는 그야말로 한 차원 높은 수준이었지요. 늘 입단 영순위였어요. 그런데 전승으로 치고 올라가다 꼭 마지막에 기회를 놓치곤 했어요. 실력 영순위라면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마지막 기회조차 그렇게 놓치는 걸 보고 마음을 비웠지요. 아, 이 길이 꼭 실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로구나.

작년 입단대회에 나갔을 때 애한테 모든 초점 맞추진 않았어요. 대회 보름쯤 앞두고 여행을 갔지요. 동휘는 당연히 데리고 갈 수 없었고요, 상주에 있는 계곡 한 펜션에 세 식구만 갔더랬습니다. 동휘가 프로기사의 꿈을 좇은 뒤로 변변한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가 본 기억이 없어요.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실내에 들어앉아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공부하는 자식을 두고 저희끼리만 갈 수 없게 되더라고요. 상주여행도 실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프로가 못되고 아이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마음을 위로해줄까...(이 대목에서 갑자기 울컥 하더니 곧장 말을 잇지 못하고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어루만져줄까, 안될 거라 생각하고 저희를 먼저 위로하며 마음을 비우는 데 전념한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야속하게도 상주계곡은 정말 시원하더군요. 열흘 후면 동휘랑 같이 올수 있겠다...딸애와 함께 발을 물에 담그고 어떻게 위로할까 그런 생각을 했지요.”

- 이사범? 어때요. 이런 부모의 마음 다 알고 있었지요?
(이동휘) “...네,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다 느끼지요. 그땐 저도 정말로 마음 비우고...대회 직전 일체 연락을 안드렸지요. (아버지) 원래 우리는 연락 안해요. 하하.”

- 그런데 열흘 뒤 마음을 비웠던(그러나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프로 입단의 꿈을 이뤘잖습니까. 꿈만 같았을 텐데요, 그 상주계곡에 다시 갔습니까?

“그럼요. 진짜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처음으로 네 식구가 여름휴가란 걸 가게 될 줄이야...기대 안했던 일이었지요. (책 날개를 펼쳐 보이며) 여기 사진 있죠? 이 작가사진이 그때 펜션에서 찍은 사진인데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랍니다. 사람들은 반팔티셔츠에 머리도 제대로 매만지지 않은 채 찍은 이 사진을 보고 무슨 작가사진이 이러냐. 별로라며 제대로 갖춰 입고 다시 찍으라고 하지만 천만에요. 보셔요. 이 얼굴표정...정말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 그때 같은 부산지역연구생 후배인 강유승과 결승에서 운명의 일전을 펼쳤죠. 극적인 반집승을 거뒀는데 내용을 보니 형세가 유리해지자 그때부터 ‘살 떨다가’ 야금야금 반집까지 추격당했던데, 한두 집 끝내기만 남은 상태에서 반집승을 확신했을 때 누가 먼저 떠오르던가요? 솔직히...

(이동휘) “두 분 다...실은...아빠 얼굴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어머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지지를 많이 했으니까요. 제가 한 건 남편 옆에 앉아있었던 것뿐이에요. 꼭두새벽부터 승용차에 아이를 태우고 전국을 휘돌아 밤늦게까지 운전한 사람이 남편이죠. 전 그저 조수석에 앉아있었을 뿐이지요. 아이 덕분에 ‘몰래 나선 여행’도 참 많이 했습니다. 가능한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이에게 부담 안주는 것. 넌 꼭 돼야 된다가 아니라 안돼도 돼. 즐기렴, 하고 말해주는 거, 그런 태도를 갖추려 노력하는 거였죠.”

‘몰래 나선 여행’이란 저서 <반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신간 <반집>을 소개하는 사이버오로 뉴스에 한 회원이 “50편 중에서 여기 1편 정도 올려서 맛을 보여 주면 책을 구입할 사람이 더 많아질듯 합니다만...”이란 댓글을 달았다고 알려주자 송작가가 선뜻 한 작품의 원고를 사이버오로 회원을 위해 보내왔다. ‘몰래 나선 여행’ 원고다. 이 인터뷰 기사에 이어 소개하겠다.

○● 몰래 나선 여행 ☜ 바로보기 클릭


▲ SK배 경상일보대회 3,4학년부에서 우승한 뒤 신문에 실린 사진. 아이가 전국 대회에 출전하면서 엄마아빠는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몰래 여행'을 나섰다. 왜 몰래 나선 여행인지는 원고를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15개월이나 준비해 내놓은 저서인데, 엄마가 책도 내고 하셨는데 아들로서 소감? 립서비스(?)라도 해야지?

(가뜩이나 과묵한 아들, 말이 없다. 그러자 엄마가 나선다) “얘는 엄마를 아주 만만하게 생각해요. 엄마가 수필가라니 수필가라면 다 우습게 여기지요. 이번에 책을 냈더니 조금 인정해주는 거 같아 그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지요. ㅎㅎ 아이나 남편이나 남들 앞에 자기 잘난 점 드러내는 걸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바둑이 아닌 엄마의 책 때문에 관심을 받는 게 부담스러워 아들은 오늘 이 자리도 안나오려 했어요.”

- 엄마의 책은 다 읽어봤겠지? 그럼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작품은? 아버지는요?
(이동휘) “외길걷기...울산을 떠나 부산에 둥지를 틀며 바둑공부를 시작한 무렵의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어요.”
(아버지) “전 몰래 나선 여행 편이 가장 짠하더군요. 부모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내용입니다. 이걸 사이버오로 회원들게 소개하는 게 어떨까요?”

- 자, 다시 다른 부모의 입장에서 질문 하나 더 드려보죠. 우여곡절, 간난신고 끝에 꿈에 그리던 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연구생 출신 기사가 아직은 실력이 조금 부족한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예견하셨겠지만, 입단 후 일정기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리라는 것도 받아들여야할 노릇이고요(이것은 지역연구생뿐 아니라 모든 프로 초년생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그렇지만 부모의 처지에선 아이가 빨리 성장하기를 바라잖아요. 프로가 되면 뭐하냐, 넥스트, 다음이 없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말하자면 프로입단 전과 후를 바라보는 시각인데요, 입단이 종착역이 될 수 없을 터이니 부모로서 또 다른 욕심이 생길 법한데요?

“변한 건 하나도 없어요. 바둑돌을 놓아 집을 짓고 또 집을 허무는 것, 이기고 지는 건 과정일 뿐 바둑도 삶도 따지고 보면 또 새로 집을 짓는 과정의 반복, 그 가운데 조금씩 진보를 보이는 걸음걸이지요. 아들이 승부사지만 스트레스 안 받고 행복하게 사는 게 저희의 바람입니다. 그토록 좋아하는 바둑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거는 바라는 바가 아니었잖아요. 우리도 승승장구하던 시절 있었잖아요. 그땐 솔직히 막 자랑하고 싶었는데 나중 좌절하는 때가 많으니까, 지나고 보니...자랑도 순간이더라고요. 얼마 전에 기사를 보니까 김지석 9단도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자기도 지면서 성장했다고...”

- 그래도 승부사인 이상 승부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그거야...승부사로서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본인이 감수할 몫이겠지요. 나중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우리 동휘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아마추어로 있다가 잠시 자리를 바꿔 프로세계 들어간 것 뿐이고...부모 권한 밖의 일들은 부모가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겠지요. 현재 양천대일도장에서 숙식하며 연구생 때와 똑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지는 거보다야 이기는 게 좋죠. 그렇지만 패배도 어차피 겪어야될 과정. 입단할 때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기사로 조한승 9단을 꼽았는데 프로가 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랑 바둑을 둘 수 있었겠어요. 동등하게 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메워주어야 할 것은 있다고 봅니다. 이 길 말고도 또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게 인생이잖아요. 줄곧 바둑의 길을 걷더라도 세계는 넓습니다. 해서 영어 공부는 좀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죠. 그런데 도장에서는 여건이 안되잖아요. 지금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매일 영어단어를 숙제처럼 보내주고 있습니다. 제가 겪어보니까 어학은 반드시 해야겠더군요. 해외진출도 가능하고...”

(어머니) “제가 문인이어서가 아니라 독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한 편입니다. 결국은 바둑도 일정 궤도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생각, 그러니까 발상의 영역, 그 싸움이겠지요. 갑자기 초등학교 때 밥 먹다가 ‘엄마, 내가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250명 정도 적어볼까, 하더니 A4 용지에 새까맣게 적던 생각이 나는군요. 삼국지란 삼국지는 가리지 않고 죄다 읽어댄 아이였죠.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이라 스포츠를 한다면 태권도 선수가 될 줄 알았더니 결국 성품대로 가는 거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데다 바둑을 해서 그런지 더 애늙은이가 돼 가는 거 같아요. 호호.”

‘운칠기삼’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재주가 3이면 신의 섭리가 7이란 뜻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의미지요. 실체도 없는 운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있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설령 7이 운이라 해도 3만큼은 최선을 다해봐야 하니까요.
보잘 것 없는 반쪽이건만 승부의 세계에선 누군가의 잔인한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노력 때문인지 운 때문인지 여전히 알 순 없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될 그 힘을 믿고 꿋꿋이 나아가야겠지요. 꿈을 위해 지금 어딘가에서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 ‘반집의 힘’(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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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환하게 모자가 한자리에 앉아 웃기까지 가족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소리나지 않게 헌신한 이들, 어디 한둘이겠는가. 이동휘 초단과 부모는 그들의 희생을 잊을 수 없다 했다. 가을날 한송이 국화가 저홀로 피는 것 같아도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 만개하기까지 천둥과 바람과 비와 햇살, 심지어 풀벌레 울음까지 거들었다. 이것이 세상 이치다.


▲ 인터뷰를 하던 날, 우연찮게도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는 제15회 지역연구생 입단대회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굳게 닫혀 엄숙하기까지 한 저 문의 이쪽과 저쪽 풍경은 무시로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승부세상이다.


▲ 입단대회 문밖의 풍경은 이렇다. 연구생 사범과 원장, 부모가 지성으로 빌고 또 빌며 서성댄다. 지난해 이동휘가 입단대국을 치를 때 양천대일도장 원장은 대회 나흘간 똑같은 반바지에 똑같은 식당서만 밥을 먹었다. 이겼으니까...맛이 없어도, 옷이 더러워도 똑같은 것만 고수했다. 터부, 징크스, 미신...이런 걸 웃기는 속설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세계가 이 바닥 승부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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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도 |  2015-02-04 오후 4:08:00  [동감0]    
응원합니다..............
다정아비 |  2014-12-15 오후 4:22:00  [동감0]    
부모님의 사랑이 바둑이야기로 잔잔히 그려졌겠네요.ㅎㅎ
어머니의 필력도 대단할것 같아요 .읽고 싶습니다. 정용진 기자님도 기사를 맛깔나게 ..
고맙습니다...
철권미나 |  2014-12-14 오전 8:47:00  [동감0]    
아름다운 엄마 아빠시네요^^
대자리 |  2014-12-13 오후 8:18:00  [동감0]    
참,길게도 쓰고 중언부언 물어보네...도입부 읽다 대충 보고 말았다.간결과 함축의 미덕을 좀 배워야 할듯.
하이디77 |  2014-12-13 오후 2:07:00  [동감0]    
바둑인이니 책 한 권은 사주는 것이 도리겠군요. ^^*
SoundJJang |  2014-12-13 오후 1:55:00  [동감0]    
책 주문하였습니다. 이동휘 초단의 정진과 건승을 바랍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소중한 수필집에 감사드립니다.
jja007 |  2014-12-13 오전 11:45:00  [동감0]    
부모님 애쓰셨읍니다.동휘군 초심잃지말고 꾸준히 정진하게나~
동병상련이란 이런건가요?
오래전 천하를 얻은듯 했는데...대장쫄병님 말씀처럼 그냥 지켜볼뿐이랍니다.쭈~욱
황태포 |  2014-12-13 오전 10:24:00  [동감0]    
일류기사로 거듭나세요^^
묵고또묵고 |  2014-12-13 오전 8:32:00  [동감0]    
바둑을 즐기는 한사람으로서 바둑에대한열정이 치솟네요 감동이구요..이동휘 반집에 박수를
대장쫄병 |  2014-12-12 오후 10:17:00  [동감1]    
아- 이해가 됩니다...저도 같은 경험을 했으니까요..인생은 언제까지나 미생이죠..저도 처음엔
아이가 프로입단만 되면 완생인줄 알았어요,,,헌데 아니더군요...지금도 여전히 미생이며, 완생을 목표로 오늘도 어제처럼 흑백 돌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짠 할때가 많아요,,그러나 본인이 즐기는 것 같아 한편 다행이다 여깁니다..동휘 부모님 축하 드리며 수고 많으셨습니다...이제 우리 부모들은 그냥 지켜만 보자구요,,그냥,,,,
노리목 |  2014-12-12 오후 9:51:00  [동감1]    
나도 낼 서점에 가봐야겄다..2
백년산삼 |  2014-12-12 오후 9:35:00  [동감1]    
아빠의 열정에 엄마의 재주.. 동휘 사붐.. 감사하죠?.. 엄마 아빠께 효도하세여.. 반집이라.. 제목도 멋지네.. 낼 서점에 가봐야 것따..
원술랑 |  2014-12-12 오후 9:29:00  [동감2]    
프로가 돼도 미생 여전히 미생이죠.그리고 반집의 힘의 서문에서 <운칠기삼>이란 말도 인상에 남습니다. 교육적 가치로도 좋은 자료가 되겠습니다. 산교육이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미생 원작만화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 기를 받아 반집도 대박! 감사합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참, 정용진 기자님 수고하셨습니다. 흔치 않은 좋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승부고독 오늘 원술랑님 댓글은 아름답습니다...이렇게 간략하고 정확하게 표현을 늘 하시기를 원하며 항상 인터넷에선 존칭을 사용하시는것을 추천합니다 ..우리 모두가 보는곳이라는것을..잊지마세요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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