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거장' 고바야시, "그땐 조치훈과…"
|
||||||||||
우리에겐 조치훈 9단의 라이벌로 잘 알려진 인물 고바야시 고이치 9단. 73살 시니어 기사로서 칭다오에서 열리는 제3회 백산수배 세계바둑시니어최강전에 일본대표로 출전했다. 고바야시 고이치는 반상에서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견실한 수법을 선호하며 실리를 지향했다. 형세판단도 남달랐다. 천재소년으로 불리던 한국의 이창호와 처음 만난 건 1990년 제3회 후지쓰배 8강에서였다. 소년 이창호에게 반집승을 거두었다. 고바야시 고이치의 바둑은 이창호의 바둑과 닮았다고 말해지곤 한다. 칭다오 농심공장에 마련된 검토실에서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은 요다 노리모토 9단, 야마시로 히로시 9단, 나카노 히로나리 9단 그리고 젊은 기사들 쉬자위안 9단·후쿠오카 고타로 7단과 모니터를 보면서 검토하며 행복해했다. 고바야시 고이치는 언제나처럼 유쾌했다. 한 시대의 거장을 만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인터뷰를 청하자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은 흔쾌히 응했다. ![]() ▲ 검토실에서 요다 노리모토 9단과 검토를 하고 있는 고바야시 고이치 9단(오른쪽).
이창호 9단은 어릴 시절 고바야시 9단 바둑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거야 영광이죠. 이창호 9단은 엄청나게 강하지만 스타일에 관해선 저 역시 예전부터 제 바둑의 감각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승 조훈현 9단과는 좀 다르죠. 이창호 9단이 제 쪽에 더 가깝다고 늘 느꼈습니다. 비약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착실히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마침내 승리를 가져가는 스타일이랄까요. 조훈현 9단은 천재적인 바둑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라 할 수 있는데 그 스타일은 남들이 따라할 수도 없습니다”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은 격렬한 전투를 지향하지 않았던 점도 이창호 9단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싸움을 먼저 걸어가는 타입은 아닙니다. 바둑이라는 게 묘수가 계속 나올 수는 없는 법인 데다 정상급 기사들의 대국에서는 특히 장기전으로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창호 9단과 생각의 방향이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AI시대입니다. 요다 노리모토 9단은 “AI로 공부하지 않는 것은 승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치훈 9단의 경우 “AI로 공부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공부했던 바둑과 180도 다르다. 머리가 아프다”고 말합니다.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은 AI를 활용해 연구하거나 대국해보기도 하십니까? “그럼요. 워낙 뛰어나니까요. 정말 엄청난 것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AI라는 것이 앞으로 인류의 삶의 방식 전반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줄 겁니다. 어쩌면 인류 최고의 작품일지도 몰라요.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이렇게 대단했죠. AI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AI로부터 배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알파고 바둑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수순이 조금 진행됐을 때 그 대단함을 깨달았습니다. 한 수 한 수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것이 내 생전에 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계가 프로 레벨까지 도달하는 것만해도 먼 미래에 가능할 줄로 생각했는데, 훨씬 빨랐어요. AI는 이미 나와버렸습니다. 운명처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인류는 AI를 ‘도구’로 잘 활용해 공존해야 합니다. 바둑계는 먼저 혜택을 받은 셈이죠” 조치훈 9단은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을 '놀라울 정도로 성실한 기사'라고 얘기합니다.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은 조치훈 9단을 어떤 기사라고 보십니까? “세상에 조치훈 9단 만큼 바둑에 몰두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봅니다. 장난기도 있지만 누구보다 바둑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공부를 멈추지 않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선 지금도 그만한 성적을 낼 수 없는 거죠.” 고바야시 고이치 9단과 조치훈 9단은 필생의 라이벌입니다. 소년 시절에는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제가 12살, 그가 8살일 때 처음 만났습니다. 조치훈 9단은 그저 아이였죠. 놀고 싶을 나이잖아요. 6살에 부모 곁을 떠나 일본에 왔으니 안쓰러웠습니다. 무척 외로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12살에 홋카이도 시골에서 도쿄로 올라왔는데 처음엔 무척 외로웠거든요.” 그 외로움을 표현하곤 했나요, 아니면 다 잊고 바둑에만 몰두했나요? “조치훈 9단과 나는 기타니 미노루 선생 문하에 들어갔고, 사모님인 기타니 미하루 여사가 보살펴 주셨습니다. 제가 그 ‘어머니’(미하루 여사)께 직접 들었는데, 어린이 조치훈 때문에 정말 힘드셨다고 합니다(웃음). 손이 너무 많이 간다고 하셨어요. 조치훈 한 명 돌보는 데 들어간 품이 내제자 70명 몫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하셨습니다(웃음). 정말 개구쟁이였죠. 함께 놀거나 한 기억은 크게 나지 않습니다. 도장이다 보니 바둑 공부하느라…. 조치훈은 바둑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어요. 자세히 지켜보지 않았지만 그가 두는 바둑을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엔 완전히 확 바뀌어 바둑에 몰두하기 시작했고요. 15살 때쯤부터 무섭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승부를 겨룰 때는 어땠습니까? “조치훈 9단은 참 빨리 출세했지요. 저보다 먼저 명인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제가 오히려 초조했습니다. 후배에게 추월당한 셈이라서요.” 조치훈 9단은 ‘휠체어 대국’ 때 고바야시 고이치 9단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을 회고합니다. 3국이 끝나고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자신은 정좌(무릎꿇는 자세)로 둘 수 있게 해달라고 주최측에 요청한 것을 보고선 그 솔직함과 승부근성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치훈 9단이 교통사고를 당해, 기성전 도전기 직전에 오토바이와 충돌했다고 하더군요. 다리를 심하게 다쳤죠. 조치훈 9단은 예전부터 역경에 처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었어요. 역전승이 많은 기사이기도 합니다. 제가 1국에서 이겼지만 2국과 3국에선 완패했습니다. 조치훈 9단의 명국이라 할 만한 내용으로 내가 완벽하게 졌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속수무책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7번기 같은 큰 승부는 대체로 다다미 방에서 서로 정좌를 하고 두는 게 관례였어요. 지금이야 의자에서 두는 대국이 많아졌지만 예전 일본에선 대부분 다다미에서 무릎을 꿇고 뒀거든요. 처음엔 사고를 당한 상대에게 맞춰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도 의자에서 두었지만, 평소처럼 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주최측에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상대에게 그로 인한 불편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회 장소, 칭다오(青島)에 대한 인상은 어떠십니까? “물이 깨끗한 곳이구나 싶습니다. 칭다오 맥주도 유명하고. 칭다오는 풍경도 아름답고 녹음도 우거져서 좋은 곳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온 기사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다들 한·중·일 연승대항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책도 조금 하긴 했는데 멀리는 못 갑니다. 길을 잃으면 곤란하니까요. 이 근처 지리나 방향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기사들과는 다함께 모여 연구할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모처럼 같이들 연구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바둑 인생을 표현한다면요?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가 되겠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인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바둑의 세계에서 프로의 길을 걷고 있더군요. 돌아보면, 저는 바둑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프로가 되었고, 제 성격에도 맞았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결과를 내는 건 쉽진 않네요(웃음).” 일본의 젊은 프로기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다들 이미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이치리키 료 9단이 세계대회에서도 우승했지요. 그를 이을 기사들도 실제로 많습니다. 무엇보다 AI가 등장하면서 바둑계 전반의 수준이 올라 모두가 강해졌습니다. 정말 이기기 힘들어졌어요(웃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