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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에 ‘두점 바둑’이라고 보는 이유 ③
문용직이 말하는 바둑의 본질, 알파고의 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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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신년특집 / 알파고를 말한다 --------------------------------- Ⅰ. 바둑은 문화적으로 성장한 놀이 (1편) 알파고, 프로정상 두점 접을 수 있다! ☜ 보기 (2편) 알파고 시대를 읽으려면? ☜ 보기 Ⅱ. 알파고가 프로정상을 두점 접는다는 것 (3편) --------------------------------- <문용직 특별기고에 이어지는 설맞이 후속 시리즈 예고> (긴급인터뷰) 국가대표팀이 말하는 알파고 (김성룡의 '썰전' 특집) 프로 실전에 등장하기 시작한 '알파고 수법' 조명 --------------------------------- 이제 알파고에 대한 얘기, 그러니까 알파고와 프로정상급 기사 간의 실력 차이가 이미 두점에 이르렀다는 사실, 어찌하여 어떤 근거로 그렇게 보는가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그 전에 최근 사이버오로에 보도되었던 몇 개 기사를 읽어두면 좀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 세계최강 커제도 꺾었다, 더 세진 알파고 60전 60승 ☜ 보기 ○● 반짝하고 사라진 '신형 알파고', 공식대국은 언제쯤? ☜ 보기 ○● 반상 휩쓰는 AI…싱톈·딥젠고도 프로기사 상대 90% 승률 ☜ 보기 ○● 집중조명/ 알파고의 수가 궁금했다 ☜ 보기 ![]() II. 알파고, 프로 정상을 두점 접을 수 있다 인간 이성. 감성. 두터움. 포석의 모호함. … 인공지능 바둑꾼 알파고, 하면 떠오르는 문제다. 고상하고도 실용적인 문제긴 한데, 제쳐두고 시사적(時事的)인 문제만 다루자. 애기가들의 관심을 따라가자. 1) 알파고는 바둑에 새 지평을 열었나? 저번 3월 알파고의 바둑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다. 기사들 포함해서. 이런 멘트 많았다. “인간이면 생각하기 힘든 수.”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천만의 말씀이다. 알파고가 둔 모든 수는 현재의 바둑 수준 안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저런 모든 감탄사는, 알파고에 대해서 지레짐작으로 인간과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오해일 뿐이다. 인간에 대해서 대개는 뭔가 사전적(辭典的) 정의를 사전(事前)에 갖고 있기 마련. 그리고 그 사전적 지식에 대해서 제대로 회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온 평가들일 뿐이다. 기계를 알려면 인간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 알고 있는가? 문명 탄생한 지 길어야 1만년. 인간에 대한 이해, 길어야 3천년. 현재의 인간 이해는, 대부분 불과 지난 100년간의 발견에 기초한 것들. 바둑에만 한정하자. 알파고에만 한정하자. 2015년 10월의 알파고 바둑을 보고 놀랐다. 그것이 지난 2월. 『중앙선데이』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나서다. 그래, 판후이 2단과 둔 바둑을 보니, 이런 웬걸! 정말 놀랐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매끈한 진행. 그 이전에 보았던 젠(Zen)과는 차원이 달랐다. 젠은 기계라는 인상 강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달랐다. 실력은 여기 글쓴이보다도 잘 뒀다. 감성도 살아있었다. 이세돌 9단은 웃었다. 2점 하수 정도로 여겼다. 당시엔 2점 하수가 맞다. 하지만 2016년 3월에도 하수일 것이라고 본 것은 틀렸다. 알파고의 성장 속도. 두터움에 대한 알파고의 이해. 그 두 가지를 간과했다. 알파고는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기초를 다 섭렵하고 있었다. 뿐이랴. 감성적인 수법인 두터움에 대해서나, 자연스러운 결단인 직관에 있어서나 프로와 다를 바 없었다. 이미 2015년 10월에 그랬다. 이세돌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프로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점을 놓쳤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알파고가 다루는 두터움, 그 하나만 주의 깊게 봐도 오판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과 기계에 대한 경계를 무의식적으로 너무나 높이 세운 것에 모든 오답(誤答)의 첫째 근원이 있을 것이다. 둘째는, ‘두터움의 속성이 반상의 본질에서 연유한다는 것,’ ‘두터움은 바둑역사의 정점이라는 사실,’ 그것을 간과한 데서 왔다. 바둑의 본질을 다루지 않고, 강하냐 약하냐, 그런 것에만 관심을 두면 보는 게 좁아진다. 지금 현재 이세돌 9단의 알파고 평가가 여전히 아전인수 격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앙선데이』에 3편을 기고(2. 28, 3. 06, 3. 20)했는데,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전에 올린 글 일부를 여기 올린다. 애기가 여러분은 글의 일부만 보셔도 충분히 필자의 의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발췌(3) ------ 바둑의 시각에서 볼 때 인공지능은 바둑을 잘 둘 수 있다. (중략) 바둑은 형상의 놀이. (중략) 형상을 보면서 우린 감정을 얻고 논리를 키우는 것이다. ‘두터움’은 돌이 2개 이상 모여서 세모나 네모의 형상을 이뤘을 때 우리가 일으키는 감성이다. (중략) 감각이란 것도 형상으로 이해하면 불과 몇 개의 형상으로 요약된다. (중략) 형상만 알면 두터움이라는 개념은 몰라도 된다. 두터움은 특정 형상을 잘 갖고 놀기 위해서 인간이 특정 형상에 1대1 대응시킨 언어일 뿐이다. 알파고에게 문화는 장벽이 아니다 (중략) 한 판의 바둑은 형상의 놀이. 형상 속에는 그 형상을 발견하기 위해 인간이 수천 년 노력했던 문화적 이해마저도 다 녹아있다. 형상 속에는 언어도 문화도 감성도 다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알파고가 소화했다는 수많은 기보(棋譜)에는 곧 모든 것이 다 녹아 있는 것이다. --------------------- 당연히 알파고와의 승부가 쉽지 않으리라고 봤다. 발췌(4) ------- 이세돌은 어떤 자세로 두어야 할까? 일부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한 번 탐색한다는 기분으로 한두 판 흔들어 볼 것을 권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중략) 승부는 쉽지 않다. 이기더라도 힘겹게 이기지 않을까? 실력은 정상급일 것이요, 단지 창의력에서 문제가 있을 뿐일 테니, 알파고는 강할 것이다. 승부에 강한 침착한 바둑을 한 판 이긴다는 것이 그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프로는 잘 알고 있다. 끝났다. 승부는 끝났다. 승부의 측면에서만 보면 인공지능은 프로를 이미 넘어섰다. 이것이 바른 이해다. 이9단이 이기더라도 그러하다. ---------------------------------- 물론 알파고는 인간과 다르다. 발췌(5) ------- 바둑을 둘 때 우리는 몸짓과 신체적 감응을 활용한다. 돌을 따낼 때 ‘시원하다’ ‘깨끗하다’ 등의 반응을 낸다. 요컨대 바둑에서 의식의 반응체계는 바둑판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바둑은 세상 그 어느 놀이보다도 뛰어난 게임이 되었다. 우리의 몸을 감성적으로 갖고 노는 놀이터가 반상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몸을 갖고 노는 것보다 더 즐거운 놀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바로 여기가 인간과 알파고가 갈리는 지점이다. ------------------------------------ ![]() ▲ 1930년대 초, 신포석의 우주관과 철학이 등장했다. 우칭위안 선생이 주도한 신포석의 철학은 세세한 관념 같은 것과는 수준과 차원이 달랐다. ‘조화(調和)’ 중국 2천년 철학을 관통하는 관념이 바둑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큰 관념은 영향력이 말할 수 없이 크고도 넓다. 1930년대 이후 적어도 1980년대까지 반상은 신포석의 아이디어 밑에서 그 아이디어를 개인이 해석하는 시간이었다. 다양한 기풍의 발현은 필연적이었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신포석의 혁명' 이래 바둑에 새 지평을 열었나? 마치 우칭위안 선생이 묻고 있는 듯하다. 질문을 다시 돌아본다. 1) 알파고는 바둑에 새 지평을 열었나? 답은 ‘아니다’이다. 이는 창의력과 관련한 문제겠는데, 마침 다음과 같이 쓴 게 있다. 발췌(6) ------ 바둑이란 게 판 전체가 얽혀 있어서, 직관과 통찰, 승부사 감각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 보아서는 아니 된다. 알파고와 별개로 앞으로 인공지능이 바둑을 인간보다–적어도 승부에서-더 잘 둘 수 있으리라고 보는 근거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문화적 장애가 많다. 반상에 문화를 투영해서 바둑을 이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해는 암초로도 작용한다. (중략) 우린 반상에 지각이 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빈삼각은 그 좋은 예로 효율이 나쁜 형태. 그 때문에 우린 빈삼각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생각도 그 지점에선 멈춘다. 하지만 알파고에게는 그런 약점이 없다. 빈삼각은 때론 묘수가 된다. 감성의 활용대신 형상에만 기대는 알파고는 새로운 수법을 창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창의력의 한계는 확실히 알파고에게 큰 약점이다. 인간처럼 문화적 변이 속에서 사는 존재도 아니고 철학적 이해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는 능력도 아직은 없으니 말이다. ------------------------------------------------------------------------ 2) 앞으로 더욱 성장한다면 알파고는 새 지평을 열까? 열 수 있다. 관건은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알고리즘이 아니라, ‘문화적 충격을 얻는 방식’을 다루는 알고리즘을 가진다면 열 수 있다. 이 글 전반부에서 서술했던 반상 혁신. 혁명.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오는 모든 충격. 그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부를 조정하는 것. 그것이 바둑의 혁신을 이루었다. 그러니, 알파고 역시 충격을 받아들이는 알고리즘만 갖춘다면 못할 것이 없겠다. 인간을 예로 들면 이렇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당구공 같은 존재? 그래서 너와 내가 엄격히 구분되고 또 별과 달과도 서로 교감하지 않는 존재? 바둑과는 별개의 문제인 듯한데, 『중앙선데이』(2016. 9. 11)에 썼던 주역 글의 일부를 올린다. 다소 긴데…, 바둑에서의 인간 창조력 문제와 연결이 없다 할 수 없다. 마침 바둑얘기도 들어 있다. 발췌(7) ------ 필자는 콩을 집어서 점을 치기도 하는데 (중략) 내면의 소리는 어떻게 점사와 연결되는가. 콩을 집는 것은 과연 어떤 이유로 답을 알려주는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잘 알려진 것으로는 융의 공시성(synchronicity) 이론이 있다.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으로 믿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이 같은 시간대에 갖는 의미의 상징적인 일치.” 이것이 공시성인데 인과율과는 다른 설명이다. (중략) 설악산에서 찍은 김인과 조훈현의 아래 사진 (중략) 두 사람의 배경에 두 개의 봉우리가 크게 올라서 있었다. 당시 두 기사는 한국바둑의 두 봉우리. 사진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잡혔다.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 (중략) 세상사 참으로 다양한 기운이 가득한 속에 변화한다. 좁은 인과율을 넘어선 우주의 인과율에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콩을 집는다 했는데, 콩은 집는다고 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콩은 집히는 것”이다. 콩을 집을 때엔 손에 강력한 기운이 밀려온다. 마음대로 집을 수 없다. (중략) 우리는 당구공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갖가지 기운에 의해서 부대끼는 존재다. 우주에 편재한 온갖 기운이 우리를 휘감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불교에서는 십일체입(十一切入)이라 하여, 열 가지 큰 힘이 우주에 편재해 우리 몸을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전자파, 중력파,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에 세상만사에 영향 끼치는 힘을 열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지수화풍청황적백공식(地水火風靑黃赤白空識)’이 그것이다. 추상적인 게 아니다. ------------------------------------------------------ ![]() ▲ 산정에서 선 두 정상. 한국바둑의 한시대를 풍미한 김인-조훈현 두 정상을 압축한 한장의 사진이다. 마등령 정상에서 대청봉, 중청봉을 배경으로 찍었다. <사진/한국기원> 자, 다시. 알파고는 새 지평을 열 수 있을까? 창조력은 학습능력과는 별개다. 현재의 알파고는 외부의 힘을 받아들일 몸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단지 지식만 흡수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우리는 판단과 결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까? 외부 조건에 의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까? 문화적 충격, 그것은 정보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물리적 힘으로써 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 몸에서 척추가 몸 안에 있고 부드러운 살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진화 방향이다. 우린 외부의 힘을 ‘물리적으로’ 받을 수 있는 몸을 갖추고 있다. 예를 하나 들자. 우리의 몸에 대한 연구는 오랜 세월 축적되어 왔는데 중국의 고전『황제내경』에 나오는 위기(衛氣)와 영기(營氣)만 해도 그런 연구의 결과물이다. 오랜 역사를 내려온 종교적 비의(秘儀)의 상당 부분이 그런 문제에 대한 관찰과 연구로 이뤄진 것도 사소한 일이 아니다. 요가의 삼맥칠륜, 도가의 임독맥, 모두가 오랜 연구에서 밝혀진 우리 몸의 실체다. 창조의 비밀 하나는, 우리의 두뇌가 아니라 우리 몸을 연구하는 데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관념적인 정보만을 외부에서 받아들인다면,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이제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은 십일체입 이론이 시사하듯이 외부의 힘을 물리적으로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몸을 갖고 있다. … 뭐 좀, 이상한 이야기한다, 하시겠다. ‘발췌(7)’ 다음에 곧 이리 썼다.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 않다. 『기와 인간과학』 하나만 읽어보시라. 1988년 유아사 야스오(湯淺泰雄) 등 일본과 중국의 학자 23명이 심포지움을 열어 발표한 연구논문집이다. 아직 하나로 꿰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일본과 구미의 현재 수준은 만만찮다. 우리야 한참 밑이고 학문적 진지함은 크게 결여되어 있다. 점집이 많다고 가끔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점이 무엇인지, 점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 그에 대한 과학적 기초가 없는 사회는 무의미한 문제 제기만 되풀이할 뿐이다.” 점 얘기하면 운명 또한 다뤄질 수 있다. 운명, 누가 간단히 단정할 수 있을까? ‘자유의지’는 현대 과학철학의 크나큰 문제. 일상 대화에서도 ‘자유의지’를 말하면 뭔가 과학적인 냄새가 풍긴다. 하지만 그 ‘자유의지’를 뒤집으면 바로 ‘운명’이 된다.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할 뿐이다. 과학은 현상에 접근하는 태도를 중시하지, 대상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 다시 바둑으로 돌아가, 이 글의 답은 이렇다. 알파고는 새 지평을 열 수 있다. 인간 조건에 대해 과학이 더욱 더 열려진다면. 그래도, 시국이 이러하니, 문득 떠오르는 거 하나만. 최근의 세상사와 관련해서. 최씨 아무개가 큰 무당이었다는 언론보도가 있는데, 크게 과장된 평가다. 탁한 기운 가진 삿된 사람이다. 다소의 힘이야 있었지만 크지도 않다. 큰 무당(시중에 그렇다고 알려진 그저 그런 사람들 말고)은 힘이야 말할 것도 없는 수준에 도달하며, 이기적인 마음은 조금도 갖지 않는다. ![]() ▲ 지난 연말 박정환 9단은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만약 알파고와 대결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각오로 임하시겠냐?”는 질문에 “제 별명이 ‘인간알파고’다. 기계와 바둑을 둘 기회가 생긴다면 기계보다 더 기계처럼 두어 기계를 다운시키겠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그렇지만 연말연시 인터넷사이트에 불쑥 등장한 알파고와 5번 두어 전패를 당했고, 급기야 “나는 알파고에 정선인 것 같다”며 실력차를 인정했다. 3) 알파고는 뭔가 다른 것을 보기에 프로 정상을 두점 접는 실력에 도달한 거 아냐? 아니다. 그런 ‘뭔가 다른 것’이 없어도 현재의 알파고는 프로 정상을 두점 접을 수 있다. 아래에서 다룰 것이 바로 그것이다. 4) 가장 궁금한 문제, 두점. 맞을 것이다. 커제든 이세돌이든 누구라도 두점에 승부가 반반이다. 이와 관련해 밝힐 것은 다음 두 질문이다. a) ‘두점 접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b) ‘두점 접는다’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두점이라니! 프로의 자존심은! 아니다. 프로의 자존심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니, 자존심이 상처를 입긴 하겠는데, 아니, 그리 볼 것이 아닌 듯도 하고… . a) ‘두점 접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교해서 보면 쉽다. 요약하면 다음 표2와 같다. <표2> -------------------------------------------------------------- ‘덤 6집 반’이 의미하는 바는? 흑이 먼저 두면 ‘6집 반’ 유리하다는 것이 아니다. 덤을 ‘6집 반’으로 전제하면, 흑과 백이 동등한 승부를 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점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실력의 차이가 두점 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점’으로 반상을 시작하면, 흑과 백이 동등한 승부를 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무슨 소리야? 말장난 아냐? 아니다. 실력 차이는 두점 차이가 아닌데, 승부는 두점을 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답이다. 알파고는 잘 둔다. 천하의 이세돌도 4:1로 날려보냈다. 사실 내용으로 보면 5:0이었다. 필자는 2국까지만 보고 3국 이하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실력을 ‘반상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라고 본다면, 실력의 차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승부에서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알아보자. 대략 서너 개의 조건을 꼽을 수 있다. 알파고가 승부에서 유리한 조건. 첫째, 계산에서 실수가 없다. 이는 큰 싸움이 끝난 중반 이후엔 확연하다. ▼ <기보14> 벌캄프의 문제. <기보14>는 수학자 벌캄프(E. Berlekamp)의 끝내기 문제. 그 중에서도 쉬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우린 풀기 어렵다. 왜냐. 답은 상식과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백이 둘 차례인데, A가 맞는 수순일까, 아니면 B가 바른 답일까. ▼ <기보15> 벌캄프의 답. 정말이지 상식을 벗어난 답이다. 벌캄프의 제자 김용환 박사와는 가끔 술을 했다. “대체 왜 저런 결과가 나올까요?” 그 분 말씀, “다른 세상입니다.” 수학적으로만 접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긴 그렇다. 전문 분야가 다 따로 있다. 실력은 필자에게 4점 정도. 맥에 대해 조언했다. “그냥 외우십시오.” 그렇다면 인간의 계산 한계로 인해 프로 정상은 알파고에게 어느 정도 밀릴까? 끝내기 단계만 보자. 프로의 바둑에서, 그것도 정상급의 바둑에서 끝내기 승부에서 승부가 몇 번 뒤집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3집의 차이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시간에 쫒기는 초읽기 상태 아니어도 그렇다. 2~3집의 차이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자. 그러면 알파고와의 겨룸에서 ‘큰 끝내기 단계’에서는 프로 정상이 3~4집은 앞서야 겨우 우세를 남기지 않을까? 둘째,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은 관념의 틀에 갇힌다. 바람직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효과도 피할 수 없다. 관념의 암초가 알파고에겐 없다. 예컨대 우린 빈삼각에 대해서 부정적인 전제를 먼저 깔고서 반상을 바라본다. 빈삼각을 검토할 때엔 다른 때보다도 더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빈삼각 이후의 수읽기에서도 불편한 관념은 흩어지지 않는다. 수읽기가 끝나도, 결정엔 역시 어려움이 따른다. 조직을 운영해본 분이라면,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아실 것이다. 아무리 작은 조직도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대단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빈삼각이나 두점머리, 그 외의 응형(凝形) 등에 대한 적응 비용도 그런 것이다. 조직까지 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예는 바로 옆에 있다. 생활 습관 하나 바꾸는 거, 그 얼마나 힘들던가! 의식은, 관념은, 문화의 함수다. 어느 한쪽으로 쏠린다. 조훈현이 왜 그리 뛰어날까? 물론 천재성이 첫째 원인이다. 어떤 천재성? 빈삼각과 같은 형태에 대해 선입견이 없다. 천재들은 대개 그런 재능을 갖고 있다. <기보16>은 1999년 제1회 춘란배에서 조훈현 9단(흑)과 저우 허양 7단의 대국이다. 흑1 이하가 조훈현의 천재성이 잘 발현된 장면. 저런 빈삼각을 찾아내다니, 그리고 두어치우다니! 다음 A와 B를 맞본다. 백A, 흑B, 백C의 축은 성립되지 않는다. 흑1 이하 단수를 아낌없이 쳐둔 값이다. ▼ <기보16> 조훈현의 빈삼각. 그리고 기억하시는지? 임해봉(린하이펑)과의 응씨배 준결승에서 그가 터뜨린 세 개의 빈삼각 바둑을? 재밌는 바둑이니 찾아보시면 좋으리. 자, 그런데 그런 형상에 대한 선입견은 초반에서나 중반에서 구도를 그리는데 어느 정도의 암초로 작용할까? 크다. 이번 ‘이세돌 vs 알파고’ 2국을 예로 들자. 많이들 보셨을 텐데, 그래도 보자. ▼ <기보17> 초반 알파고의 취향. 다들 <기보17>의 흑1을 이상하다고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다음 <기보18>에서 보듯이 오래 전부터 우칭위안이 강조한 수법과 다를 바 없다. ▼ <기보18> 우칭위안의 권고. 우칭위안은 늘 주장했다. 저 백1 어깨걸침은 초반 이른 시기에도 좋은 수법이라고. 만약 백1에 대해 흑이 A로 받는다면, 그때엔 이리 둔다. 백B, 흑C, 백D로 둔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 다음 수를 결정하겠다는 취향이다. 대개의 기사들은 우칭위안의 취향을 저어한다. 흑에게 실리를 많이 준다고 해서다. 루이 나이웨이 9단은 그렇지 않지만. 이렇게 생각하자. 우칭위안은 패러다임을 바꾼 천재. 패러다임은 일종의 문화. 문화를 바꾼 인물은 문화에 얽매이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그렇다. 그렇다면 우칭위안에게 저 기보, 저 알파고의 수법은 전혀 이질적(異質的)이지 않다. 다시 말해, 알파고는 우칭위안 등급의 재능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다소 지나친…, 논리적 비약인가. 아니다. 비약 아니다. 셋째, 물러설 줄 안다. 알파고는 물러설 줄 안다. 적절한 경계선 긋는데 탁월하다. 하지만 인간은 경계를 알기 힘들다. 어디서 싸움을 걸고,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하나? 프로들이 강조했던, 소위 형세판단의 능력에 달린 문제다. 프로들은 늘상 이야기한다. 바둑에서 제일 어려운 기술은 형세판단의 기술이라고. 역설적으로 형세판단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겠다. 사회적으로 ‘안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계산은 파악하기 어렵다. 합리성을 계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안전’과 ‘안정’의 측정 모호성이야 말할 것도 없다. 바둑에서도 그런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알파고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상의 세 가지 차이만 해도 인간이 알파고를 이기기란 아주 힘들다는 것을 알겠다. 하나만 더 다루자. 19줄 바둑에서의 ‘두점이 갖는 구조적인 특이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먼저 <기보19>를 보자. 백1 먼저 걸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금의 명인들은 이런 수순을 즐겼다. 협박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흑A 걸치지 마! 걸치면 B 협공해 혼을 내 줄 거야.” ▼ <기보19> 두점이면 백도 초반에 꽤 따라 잡는다. 두점일 경우, 흑과 백의 균형이 언뜻 그럴 듯하게 잡힌다. 물론 흑이 유리하지만, 백도 전체적으로 세모를 이룬다. 석점은 어떤가. ▼ <기보20> 석점이면 어림도 없다. <기보20>은 석점의 경우다. 백은 세모를 이룰 수 없다. 반상이 네모라는 것이 바둑의 기초인데, 그로부터 두점과 석점의 차이가 이토록이나 크게 나다니, 정말이지 놀랍다. 가만 생각하자. 왜 놀랄까? 짐작컨대, 우리는 두점과 석점 사이에 어떤 논리적인 연관이 있으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석점과 넉점 사이에도 비슷한 믿음이 개입한다. 마치 층계를 오르는데 한 계단 한 계단이 다 같은 비율로 이루어지리라고 보는 것처럼. 하지만 반상의 접바둑 효과는 수학적으로 말해 1차 함수로 표현되지 않는다. 이는, 귀의 점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호선과 선(先)은 서로가 두 개씩 귀를 갖는다. 두점과 석점은 흑 3개, 백 1개. 뭔가 당장, 이상한 비율이라는 인상이 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따라서 오늘의 문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다음과 같다. ‘두점 접바둑’은 하나의 형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계승된,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인정한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두점’을 ‘실력 차이를 반영하는 적절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아니 된다. 두점이면, 하수의 입장에서는–프로정상이 여기서는 하수다–그 돌의 배치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에는 약간(또는 많이) 부족한, 그래서 오히려 만족스럽지 못한 배치일 수도 있다. 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다만 현재의 바둑 수준에서 두점이면 ‘꽤’ 유리하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야? 궁금하다. 좋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1984년 일본의 두점 접바둑, 조치훈 9단과 일본 7~8단과의 신찬조(新撰組) 대결을 보자. 1985년 조훈현 9단과 한국 도전5강과의 위험대결을 보자. ▼ <기보21> 1984년 일본 신찬조 2점 바둑에서. 조치훈 명인(백)과 고바야시 사토루 7단과의 두점 바둑이다. 어떠신가. 흑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포석이 나온다고 여겨지는가. ▼ <기보22> 한국의 위험대결, 2점 바둑에서. 1985년 조훈현 9단(백)과 백성호 6단의 위험대결 제5국이다. 두점. 초반이지만 흑의 수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빨리 싸우고자 한다. 정석대로 두지 않는다. 두점이라 유리한 것이 뻔한데 왜 싸움을 서두르는가? 두점 바둑에서 초반 흑과 백의 돌 개수는 이렇게 열을 짓는다. 2:0, 2:1, 3:1, 3:2, … 85:83, 85:84, … 수순이 진행될수록 흑과 백의 비율 차이가 좁혀진다. 흑은 뒤로 갈수록 유리한 조건이 줄어들며, 백은 뒤로 갈수록 불리한 초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흑의 입장에서는 초반에 빨리 승부를 걸수록 좋다.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 반상의 구도를 결정할 수 있다. 참고로, 예전에 ‘상수의 하수접기’ 강좌에서 이런 이야기 했다. “상수는 초반 이른 시기에 ‘변화’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순이 더해질수록 반상은 굳어지기 때문이다. 조건이 굳어지면 아무리 실력을 발휘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 ‘변화’에는 싸움도 들어간다. 아마추어를 접을 때 프로가 갖는 태도 이야기였다. 변화는 흑도 구하고 백도 구한다. 조훈현 9단과 백성호 6단의 바둑에서, 백은 역시 변화를 구했다. 그것이 <기보22>의 백23. 좌상귀에서 흑은 정석을 무시한다. 백이 A 늘어 싸움 걸어올 것을 재촉한다. 백은 입장이 다르다. 싸움은 흑과 백의 비율이 ‘10:8’ 보다는 ‘24:22’ 정도 가서야 하는 게 좋다. 그래서 백은 백A 뻗어 싸울 만하지만 그리 하지 않는다. 일단 네모난 반상에서 흑의 세모 포진을 제지하고 본다. 그것이 좌하귀 백23. 어떤 인상 가지시는지?. 초반, 그것도 일부만 보여드렸지만 어떤 기운 느끼시는지? 두점 바둑이라 해도 의외로 승부는 만만찮다. 실제로 1985년 조훈현에게 도정5강은 위험대결 두점 바둑에서 한 판을 지기도 했다. 참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건 이 정도로 그치자. 끝이 없겠다. 놓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다섯 번째 변수가 있겠다. 다섯째, 알파고는 모든 프로기사를 학습했다. 이건, 모든 기사들의 장점을 흡수했다는 얘기다. 인간이라면 모든 장점을 다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둑을 바라보는 눈은 일종의 렌즈다. 그것이 기풍이라는 것인데, 기풍은 일종의 편향(bias)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본다. 어떻게 바라보나? 어딘가에 기대서 바라본다. 어둠이든 밝음이든. 언덕과 같은 구체적인 것이든 관념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든. 우린 제약된 존재다. 달리 표현하면 문화에 경도된 존재라고 해도 되겠다. 이것 보고 저것 보고 다 할 수는 없다. 두터운 바둑 두는 사람에게, 엷은 행마가 쉽게 눈에 뜨일 리가 없다. 초반에 주력한 사람은 초반에 강할 것이나, 대신 종반엔 약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알파고에겐 그런 제약이 없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알파고는 초반은 다케미야, 중반은 조훈현, 종반은 이창호, 기세는 이세돌, 배짱은 가토, 평정심은 임해봉, 결단력은 우칭위안, 두터움은 슈코, 형세판단은 다카가와, 인내는 조치훈…. 알파고는 그런 종합을 이룬 바둑꾼이다. 감탄한다. 알파고가 바둑을 매우 잘 다루는 것을 보면서 지난 3천년 바둑의 발전이 대단했다는 것에 새삼 감탄한다. 더불어 인간에 감동한다. 자부해도 좋다. 우리가 도달한 자리는 바둑의 정점이다. 19줄 반상의 정점이다. 알파고의 매끈한 수법에서, 예리한 서릿발 역습에서, 두세 집 일부러 손해를 보고 미련 없이 물러서는 냉정함에서, 우리는 인간이 도달한 바둑의 모든 것을 본다. <끝> <사과말씀> 본 문용직 특별기고는 애초 후속편을 연이어 올릴 예정이었으나 지면으로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생겨 부득이 3편으로 종결합니다. 회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대신 '국가대표팀이 말하는 알파고 바둑(인터뷰&기보 분석)'과 김성룡 9단의 특별 '썰전' - 프로 실전에 등장하기 시작한 '알파고 수법'에 대한 조명으로 설연휴 때 찾아뵙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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