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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젠고야,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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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인공지능이 참가한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박정환 ‘인공지능이 참전한 최초의 세계바둑대회’는 명분과 실리가 분명했다. 인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그 중심에 인공지능이 있다. 알파고가 사람을 제치고 세계최고의 실력을 갖춘 이상 인간들의 대회에 참가할 실력은 모자람없다. ‘동생급’ 인공지능들도 알파고만큼은 아니지만 일취월장한 성적으로 웬만한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좋은 승률을 보이는 형편이다. 바쁜 일정을 이유로 알파고가 참가를 거부했는데 딥젠고 출전이 결정됐다. 일본이 만든 인공지능 ‘딥젠고’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강했다. 마침 일본이 여는 세계대회여서 자연스러웠다. 월드바둑챔피언십에 딥젠고와 함께 한ㆍ중ㆍ일 정상급 기사가 출전했다. 3월21일부터 23일까지 오사카 일본기원관서총본부에서 월드바둑챔피언십이 펼쳐졌다. 대회방식은 4인 풀리그. 한국 박정환 9단, 중국 미위팅 9단, 일본 이야마 유타 9단, 그리고 일본 인공지능 딥젠고(DeepZenGo)가 맞붙었다. 리그가 끝날 때 3승자가 나오지 않으면 24일 우승결정을 위한 플레이오프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우승자를 예상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딥러닝(심층기계학습)하는 인공지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력 향상이 눈에 띄게 보일 정도로 학습 속도가 빠르다. 판후이와 알파고의 기보를 본 이세돌 9단이 그로부터 6개월 뒤, 아마추어 정상급 실력에서 세계 최고의 프로기사 수준으로 뛰어오른 알파고를 보고 깜짝 놀랐듯 딥젠고도 몇 달 사이 엄청난 실력으로 기량이 늘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것이 변수였지만 한국ㆍ중국ㆍ일본의 대표들은 이렇다 할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베일에 싸인 딥젠고의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딥젠고의 최근 기보로 예측해 볼 뿐이었다. 딥젠고는 인간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수읽기와 형세판단으로 파죽지세의 3연승을 할 수도 있었고, 아직 인간 최정상의 수준에 낄 정도가 되지 않아 3연패를 할 수도 있었다. 관련기사 ▶ (종합) 박정환, 월드바둑챔피언십 초대 챔피언 올라(☞클릭!) 일본은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둔 배경에서 이 대회를 창설했다. 지난해 이맘 때 이야마 유타 9단은 일본에서 가장 큰 일곱 개 기전을 휩쓸었다. 바둑국제대회에서 성적 부진으로 침체돼 있던 일본 바둑팬들은 오랜만에 열광했고, 근대 프로바둑의 최강이었던 일본을 다시 이야마 유타 9단이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2011년 후지쓰배가 제24회를 끝으로 없어진 이후 일본은 세계대회를 열지 않다가 최근 초속기 신예대회를 주최하기 시작했지만 규모가 작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야마 유타가 뛸 세계무대를 일본이 만들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게 우승상금 3,000만엔(약 3억원)의 월드바둑챔피언십이 탄생했다. 이야마 유타가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믿었고 우승을 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게다가 강력한 인공지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딥젠고의 출전이 신선함을 주고 또 일본의 기술력과 개발력을 지구촌에 알릴 기회라고 봤다. ![]() ▲ 인공지능 딥젠고를 맞아 결코 쉽지 않았던 승부를 펼치기도 했지만 리그 전승을 거둔 박정환(오른쪽).
이 대회에서 박정환이 우승했다. 박정환은 이야마 유타, 딥젠고, 미위팅을 차례로 꺾고 3전 전승했다. 박정환은 이전까지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었다. 3승3패, 최근 2연패 중이었다. 랭킹1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박정환을 질타하는 팬들이 많았다. 이번 우승으로 박정환은 마음고생을 접었다. 우승 뒤 그는 “마음이 정말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박정환은 중ㆍ일의 강력한 기사와 인공지능을 꺾는 쾌거를 이뤄냈다. 박정환은 가장 어려웠던 상대로 딥젠고를 꼽으며 “딥젠고와의 대국 때는 초반에 실수하고, 딥젠고로부터 강력한 붙임을 당해 줄곧 어려운 국면을 헤쳐나갔다. 돌을 거두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고 들었지만, 그동안 이 대회를 나름대로 열심해 준비해 왔기에 쉽게 돌을 거둘 수 없었다. 끝까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기에 운이 따라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 그동안 박정환은 일본에 올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온다면 대회를 참가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후지쓰배가 사라진 뒤로 참가할 대회가 많지 않았다.
![]() ![]() ![]() ![]() ![]() 시상식이 끝난 뒤 어떤 일본기자가 박정환에게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참가하는 대회가 어느 정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은지를 묻자 “인공지능이 이렇게 강한 실력을 갖게 되는 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인공지능으로부터 좋은 발상을 배울 수 있는 등 유익하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이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도 인공지능의 약점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사이에 실력이 늘 것이어서 어느 정도 그 시간을 늘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딥젠고, 종반에 갑자기 헤매는 문제점 이야마 유타는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3패했다. 3패자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건 이야마 유타가 아닌 딥젠고일 거란 예측이 많았다. 딥젠고는 가장 잘 하거나 가장 못하거나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고 이야마 유타는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인공지능에게 진 기사로 기록됐다. 3라운드는 이야마 유타와 딥젠고의 대결. 신기하게도 딥젠고는 미위팅ㆍ박정환과의 대국에서와 달리 초반에 대량 실점했다. 컨트롤룸의 평가치 그래프는 딥젠고가 승률 50% 위 아래를 왔다갔다했다고 나타냈다. 딥젠고는 형세를 다소 낙관하는 특성이 있다. 50%라면 딥젠고가 불리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자 딥젠고는 탁월한 운영 능력으로 역전흐름을 만들어내더니 이야마 유타한테서 항서를 받아냈다. 종국 즈음에서 딥젠고는 승률 70~80%를 보였다. 인간고수에게 60전 전승을 한 마스터(알파고) 때문인지, 인공지능을 보는 눈들이 워낙 높아진 것같다. 이번 월드바둑챔피언십이 벌어지는 동안 딥젠고는 굉장한 야유를 받았다. 사이버오로 대화창에서도 야유는 쏟아졌는데, 딥젠고의 종반은 버그투성이이며 비매너에 가까운 수들을 둔다는 것이었다. 딥젠고는 자신이 진 상태에서 이미 완성된 상대집 아무 데나 침투해 들어가기도 하고, 의미 없이 단수를 쳐 보는 등 ‘악당 등록’이 될 만한 행동을 했다. 바둑팬들은 "운영자 좀 불러줘요!”라며 딥젠고의 혼란을 꼬집었다. 바둑팬들의 뼈있는 장난이기도 했다. 한데 딥젠고의 바둑을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진보한 실력이었음은 틀림없다. 1라운드에서 미위팅과 대국한 딥젠고는 한치 앞을 알수 없는 5대5의 힘겨루기를 중종반까지 이어가다가 마침내 반집승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계속 손해를 보더니 불계패했다. 2라운드 박정환과의 대국 때는 초반에, 떠올리기 어려운 좋은 감각에서 나온 수를 바탕으로 판세를 유리하게 이끈 뒤 종반엔 넉넉히 이겨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수를 마구 두더니 또 불계패했다. 요컨대 결과는 졌지만 잘 마무리하면 이기는 바둑을 매번 만들었단 얘기다. 세계 최정상의 기사를 맞아 대등하거나 우세한 접전을 펼친 실력은, 전체적으로는 폄하하기 어렵다. 다만 종반에 갑자기 흔들리는 문제는 딥젠고프로젝트팀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가토 히데키 딥젠고프로젝트 대표는 딥젠고의 갑작스런 종반 난조를 ‘버그’라고 보지 않았다. ‘학습 부족’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학습 부족에 담긴 뜻은 상당하다. 실상 딥젠고 프로젝트가 거둔 성과는 칭찬할 만하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IT기업이며 자금력ㆍ기술력ㆍ개발력도 최강이다. 그에 버금가는 인공지능 ‘줴이’를 만든 중국의 텐센트도 마찬가지로 거대하다. 딥젠고프로젝트의 한축인 일본IT기업 드왕고는 그에 비하자면 규모가 작다. 개발환경 자체가 다르고 조건도 다르다. 딥러닝엔 ‘돈’과 ‘기술’과 ‘시간’이 필요한데 일본은 셋 중 가장 열악하다(한국은 더 열악하다). 그런데도 세계 최강급의 기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이길 기회도 만들었다. 일본엔 쓰리겠지만 자국 6관(7관 경험 있음)인 이야마 유타는 딥젠고에 지기까지 했다. 다시 종반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면 이렇다. 종반은 놓은 돌의 개수가 많아지므로 변화가 더 제한적이고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컴퓨터에게 더 유리해진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가토 히데키 대표는 “과거엔 그랬다. 그러나 인공신경망을 사용하는 환경이 된 이후는 그렇지 않다. 초반이든 후반이든 반상에 놓인 돌이 몇 개인지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복합적인 국면을 인공지능이 어떻게 잘 판단해 나갈 것이냐가 더 큰 문제다. 바둑의 전개 양상은 여러 가지다. 초반부터 격렬하게 싸우기도 하고 어떤 바둑은 경계가 뚜렷해 서로 집짓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둑 인공지능의 요체는 가치망(Value Network)에 있다. 형세를 어떻게 보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교한 수읽기를 토대로 진가를 발휘한다. 정교하게 수읽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틀린다면 다른 요소들은 무의미해지고 만다.”고 설명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종반 부분에서 딥러닝이 더 필요해 보인다. 종반을 테스트해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했다. 딥젠고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 프로랭킹을 산정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직접 참여한 위빈 중국국가대표팀 총감독은 프로그래밍에 조예가 깊다. 그래서 더욱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다. 위빈 총감독은 가토 히데키 씨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딥젠고의 문제점에 대한 생각은 비슷했다. “지난해 11월 조치훈 9단과 대국할 때의 버전보다 확실히 강해졌다. 논란이 됐던 종반은 그저 성장 도중이라서 나타나는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 또 “초속기에선 사람이 불리한데 이번엔 제한시간이 3시간 1분 5회로 충분해서 사람쪽의 경기력이 좋아진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 ▲ 위빈 중국 국가대표팀 총감독은 프로기사의 시선으로도, 프로그래머의 시선으로도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볼 수 있는 많지 않은 사람 중 한명이다.
딥젠고와 가장 처음 맞붙었다가 종반에 역전하며 한숨 돌렸던 미위팅은 “1라운드 종반에 나와 딥젠고가 최선의 수순으로 두어 나갔다면 딥젠고가 반집 승리할 수 있었다.”면서 “프로그램에 오류가 나타났다기보다는 그게 아직 딥젠고의 수읽기 실력이라고 느꼈다. 초반이든 중반이든 종반이든 형세판단이든 수읽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은 거의 공통적으로 몬테카를로(고급트리탐색)에 인공신경망을 결합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단, 개발력과 지식 기반, 세부 기술이 클래스 차이를 만든다. 줴이가 어떻게 개발되었고 어떤 기술력이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텐센트가 철저히 보안에 신경쓴다. 그럼에도 삼성화재배 우승경력이 있는 뤄시허 9단이 날마다 줴이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뤄시허는 이제 줴이를 테스트하는 게 직업이다. 중국이 얼마나 인공지능 개발에 공들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테스트가 부족해 아쉬워한 딥젠고측으로선 중국의 상황은 부러움을 살만하다. 인공지능 바둑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던 왕밍완 9단은 “딥젠고가 종반에 흔들린 것도 대국의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도 그렇듯 종국 직전일지라도 바둑을 완벽하게 마무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시 딥젠고가 조금 덜 동요했을지라도 졌을지 이겼을지는 알 수 없다. 컴퓨적인 특성을 얘기하기보단 딥젠고에겐 약점을 고치고 실력을 기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얘기하지만 딥젠고가 자신의 패배가 확정된 형세에서 호구에 넣어보고 완성된 상대의 집에도 들어가는 건 몬테카를로 메서드만 쓰던 이전 바둑 인공지능에서도 나타난 특성이다. 딥젠고에게 일정 승률 아래로 내려갔을 때 돌을 거두게 하지 않고 계속 두도록 설정해둔 상태에서 나타나는 반응이다. 그러니 귀엽게 봐주는 건 어떨까 싶다(방금 얘기는 네티즌들이 웃자고 한 얘기에 기자가 ‘다큐’로 받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바둑으로 인공지능을 다루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기존의 개념에서 프로그램이란 건 개발자가 원하는 대로 기계가 동작한다. 그런데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마치 어린이를 낳아 놓은 것 같다. 개발자가 아니라 '어린이'가 해야 할 몫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계에 맡겨야 한다. 기계는 학습을 해 나가면서 스스로 단점을 고치기도 한다. 알파고는 이세돌의 ‘78의 수’를 보고 혼란에 빠져 ‘버그를 일으켰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적 있다. 깜냥을 다했지만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이지 절대 버그가 아니다. 알파고는 그 사건으로부터 몇 달 뒤 78의 수에 제대로 응수했다. 딥마인드가 인위적인 조정을 한 것은 거의 없었다. 알파고는 자연스럽게 학습을 계속하면서 혼자서 약점을 보완했다. 딥젠고 또한 기다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너무나도 강해져버린 인공지능이지만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은 바둑 기술을 진보시키고 있고 바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더 높이고 있다. 조치훈 9단은 “바둑에 인공지능이 들어와 좋은 것만 있고 나쁠 게 없다. 인간은 인공지능에게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배운다.”고 말했다. ![]() ▲ 딥젠고와 그 누구보다 먼저 승부를 겨뤄보면서 져보기도 하고 이겨보기도 한 조치훈 9단은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맡았다. 그래서였는지 인공지능과 마주 앉은 선수들을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월드바둑챔피언십 주최측은 이 대회를 내년에도 이어갈 것이며 적어도 3회 대회까지는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딥젠고가 이번에 우승했다면 주최측이 이 대회를 더는 열지 않았을 거란 말도 돌았다. 너무 강해 인간들이 상대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어서다. 우스갯소리지만, 딥젠고가 종반에 정신을 못 차렸던 것이 좀 더 대회를 이어가려고 하였던 거라고 상상해 본다면 이런 얘기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고 녀석 참 영특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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