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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사랑·술로 맺은 초지회 서른 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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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돌은 승부를 가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기도 한다. 21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바둑으로 인연을 맺은 40여 명의 바둑인이 수담을 나누고 함께 식사했다. 그저 일상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양상국 9단 바둑특강 수강생 모임인 ‘ 초지회(初志會)’가 창립 30주년을 맞은 것이었다. 사범 양상국 9단은 글귀가 정성스레 적힌 서장을 회원 한명 한명에게 나눠주었다. ‘인생삼락(人生三樂)’과 ‘장무상망(長毋相忘)’ 지혜가 묵향처럼 배어나왔다. 인생삼락. 양상국 9단이 꼽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은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바둑을 두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벗을 청하여 술잔을 나누며 풍류를 즐기는 것이다. 장무상망(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은 추사 김정희가 8년간의 제주도 유배 생활 중 정치적 냉혹함 속에서도, 청나라에서 문집을 구해 찾아와 준 문인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주며 남긴 발문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애틋한 당부가 담겼다. 이윽고 공간 한쪽에 선 양상국 9단은 “가장 보람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초지회 30주년을 맞은 소회를 밝혔다. 초지회는 추사의 글귀를 삶으로 구현해 낸 모임이었다. ![]() ▲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5층에 자리한 한국여성바둑연맹 회원실에서 초지회 회원들이 대국하는 모습을 양상국 9단이 지켜보고 있다.
초지회를 거쳐 간 회원은 어느덧 1천 명에 이른다. 1기부터 함께한 여성 회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바둑을 매개로 모임 이전부터 알고 지내온 30~50년 지기들도 수두룩하다. 양상국 9단은 “보통 많을 때는 한 기에 60명씩 왔다”며 “지금은 나이들이 들어 다 내려놨지만 죽을 때까지 만나며 서로 형제처럼 변함없이 지낸다”고 했다. 과거 매주 모이던 정기 모임은 회원들이 80대 중반에 접어들며 한 달에 한 번, 화요일에 모이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인연의 깊이는 더 짙어졌다. 양상국 9단은 군 생활을 함께했던 조용래 장군 등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회고하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양상국 9단은 1970년 서봉수 9단과 함께 입단해 2006년 입신에 올랐고 70~80년대 왕위전과 국수전 등 주요 기전 본선에서 활약했다. 2023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에서 yes문경 팀 감독으로서 우승을 이끌었으며, 2024 챔피언스컵에서는 시니어팀 최초로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 ![]() ▲ 30주년 맞아 손가락으로 '3'을 표시했다.
양상국 9단의 바둑 인생은 한국바둑 보급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중에 양상국 9단을 깊이 각인 시킨 건 1990년 12월 교육방송(EBS) 개국과 함께 시간 한 ‘EBS바둑교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4년 2월 1203회로 종영할 때까지 24년 3개월 동안 단 한 차례의 결방 없이 전파를 탔다. 제자를 길러내고 대중과 소통하는 열정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왕십리에서 꾸준히 초지회 바둑특강을 이어나갔으며 2016년엔 초지회 회원들과 함께 전남 담양의 명문요양병원을 찾아 편백나무 아래에서 ‘수도권·호남권 바둑교류전’을 펼치기도 했다. 2024년 4월엔 ‘양상국 바둑사랑 55년’을 펴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바둑을 두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벗을 청하여 술잔을 나누며 풍류를 즐기는 것. 초지회의 서른 해가 그랬듯, 흑백의 돌 위에서 맺어진 인연도 ‘장무상망’의 마음으로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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