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에도 직관은 있는가 [반상 문명사 3부]
기계에도 직관은 있는가 [반상 문명사 3부]
[기획/특집] 김수광  2026-02-17 오후 07:28   [프린트]
▲ 어제의 느리고 깊은 시뮬레이션(탐색) 결과는 오늘의 더 빠르고 정확한 직관(첫 느낌)이 된다. [AI 이미지]


【알파고 10주년, 인간 직관과 기계 창의가 교차한 반상 문명사】

인간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직관은 AI의 연산 속에서 눈을 떴다.
그렇게 바둑은 더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여전히 인간의 이야기다.
알파고 이후의 세계를 되짚어보며 알파고 10주년을 맞이한다.


1부: 두뇌를 닮은 기계, 바둑에 내민 도전장
2부: AI의 반상 미학에 빠져드는 인류
3부: 기계에도 직관은 있는가
4부: 지도에 없는 낯선 길, 단숨에 무너진 AI
5부: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선사에서 미래까지 단 72시간
6부: 4선의 재발견…달라지는 인간 이론
7부: 감탄 낳는 완벽함, 울림 낳는 흔들림






[3부] 기계에도 직관은 있는가

■ 직관의 정체

일상 언어에서 직관은 ‘중간 설명 없이 정답에 곧장 도달하는 감각’을 뜻하는 듯하다. AI 맥락에서는 이것을 ‘고차원 패턴 근사(function approximation)’의 결과로 해석한다. 직관은 추상화의 상위 개념이며, 이른바 창의성과 연결된다. 직관이란 말도, 창의성이란 말도 그 개념을 딱 이거다 짚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현재에도 그렇다. 그러나 어느 정도 합의 가능한 개념화는 해야 할 터이다.

이세돌은 기계가 직관을 가질 수 없다고 믿었고, 현재도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저 연산을 할 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기계가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인정해 왔다. 그렇다면 직관이란 무엇일까?

LG社 CNS AI센터의 조수민 테크 엑스퍼트는 직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인간의 직관이 어디서 오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그래도 AI의 관점에서 한번 이야기해 보겠다. 보통 직관의 반대말을 ‘추론’이라고 생각한다. 추론이라는 건 ‘이러이러해서 저런 결론이 나온다’처럼 논리적인 과정이 죽 설명되는 것이다. 그런데 직관은 그 중간 과정이 없다. 그냥 ‘어, 이거 같은데…’하고 답이 툭 튀어나오는 걸 말한다. 기계가 이것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패턴 매칭 덕분이다.

딥러닝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이 패턴 다음에는 보통 저 결과가 따른다’는 분포의 구조를 학습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 보는 상황을 만나도 과거에 봤던 비슷한 패턴들을 조합해서 중간 설명 없이도 ‘왠지 이게 좋은 수일 것 같아’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게 꼭 사람이 직관을 발휘하는 모습과 현상적으로 닮아 있다. 알파고가 보여준 건 직관과 아주 비슷하게 동작하는 무언가다.

물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이 가진 직관의 정확도는 떨어질 수 있는데, 마치 그것처럼 AI도 직관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라는 건 사실 없다. 우리가 낯선 산에 가도 그 모양을 보고서 ‘저곳의 바위는 굴러떨어질 것 같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서 쌓인 패턴들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 직관을 갖게 된 알파고

알파고가 역사적으로 해낸 일은 직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기계적 직관이긴 하지만 정말 사람의 직관처럼 기능하는 듯하다. 직관은 오늘날의 챗지피티까지 이어진다. 챗지피티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챗봇 서비스다. LLM은 그 직관을 언어적 추론의 지평으로 넓혔다. 그러니까 사전학습으로 형성된 잠재공간의 패턴 완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세돌이 말한 것 중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므로 초반에 오류가 날 것으로 봤다’는 말은 흔한 오해다. 바둑 인공지능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는다. 만약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한다면 수억년이 걸려도 그 계산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과학계가 바둑을 테스트 베드로 삼은 큰 이유가 그 경우의 수가 처리 불가능할 만큼 방대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얼마나 방대한가 하면 하늘에 있는 별의 개수보다 많고 우주 원자의 개수(10의 80제곱)보다 많다.

▲ 모래.

과학자들은 별의 개수를 10의 22제곱 개라고 본다. 이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모래알의 개수와 엇비슷하다. 그런데 바둑판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우의 수는 약 10의 170제곱이다. 그렇기에 바둑에서 발생하는 경우의 수를 다 세지 않고서도 즉 선택적·집중적 탐색을 하고도 그 수가 유력하고 좋은 수인지를 찾아내도록 했는데 그것을 아주 잘해냈기에 알파고가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의 많은 분야 중 딥러닝이라는 훈련법을 채택했는데, 이 딥러닝은 오늘날 각종 분야에서 대세가 되었다.

초반에 오류가 나기는커녕 바둑 인공지능은 초반에 강력하다. 그 이유는, 착점의 가짓수가 많더라도 정책망이 강한 사전분포(prior)를 제공하고 가치망이 일반화된 평점을 주기 때문이다. 또 이 둘이 고급트리탐색 ‘몬테카를로 트리서치(MCTS)’와 결합되어 연산으로 구현된 직관을 실전에서 재현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세돌은 직관을 발휘하는 존재와 바둑을 둔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생긴 직관은 놀라운 수준이다. 나중에 나온 상위 버전인 ‘알파고 제로’는 탐색 없이도 즉, 수읽기를 하지 않고도(No lookahead), 신경망이 제안하는 후보수로만 대국하면서도 바둑을 잘 둘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물론 이것은 실험을 해본 것일 뿐 평소에는 당연히 수읽기를 수행한다).

■ 눈(CNN)과 탐색(MCTS)으로 얻는 기계의 직관

기계가 직관을 얻으려면 전 단계로 추상화가 가능해야 한다. 기계와 추상화는 어울리지 않기에 우리 인간에게 신기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추상화에는 이미지를 처리하는 기술인 ‘합성곱(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이 사용됐다.

CNN은 알파고의 눈이다. 바둑을 사진 찍듯 입력받는 카메라로 비유될 수 있으나 그보다는 바둑이라는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틀을 구축하는 ‘눈’이라고 이해하는 게 좋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에 바둑판 전체를 볼 수는 없고 3x3 크기의 작은 창으로 바둑판의 극히 일부만을 본다. 이 작은 창들은 ‘단수, ‘끊김’, ‘눈 모양’ 과 같은 기초 패턴을 감지한다. 이 작은 창을 여러 층으로 겹칠 수 있으며, 층이 깊어질수록 작은 센서들의 정보가 통합되어 ‘지역 전투의 유불리’, ‘대마의 사활’, ‘전체 판의 세력 균형’과 같은 거시적인 개념으로 올라선다. CNN은 바둑판 위 361개의 점을 보는 게 아니라 점이 모여 만드는 의미의 계층을 본다.

CNN을 내비게이션 앱에 빗대어 보겠다. 알파고를, 도시를 탐험하며 스스로 길을 배우는 엄청난 성능을 지닌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라고 상상해 보자. 최초의 내비게이션(초기 알파고)은 도시(바둑판)의 위성사진만 가지고 있다. 길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사진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읽어내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수백 종류의 전문 스캐너(CNN 필터)를 가지고 있다. 어떤 스캐너는 교차로 모양만 찾아내고, 다른 스캐너는 일방통행 표시만 찾아낸다. 또 다른 스캐너는 고속도로처럼 넓고 긴 도로만 감지한다.

▲ 반상을 훑는 눈, CNN. [AI 이미지]

이 스캐너들은 도시 전체를 샅샅이 훑으며 각 지점에 무엇이 있는지 종류별로 지도를 만든다. ‘A 지점엔 교차로가 있고, B 지점엔 고속도로 진입로가 있다’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이다. 바둑으로 치면 ‘끊어질 위험이 있는 곳’, ‘연결된 돌의 모양’ 같은 기본 패턴을 인식하는 과정과 같다.

이제 내비게이션은 단순히 교차로와 고속도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을 넘어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배운다. 예를 들어 좁은 도로와 교차로와 출근 시간이라는 정보가 합쳐지면 상습 정체 구간이라는 새로운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CNN의 층이 깊어지는 과정이다. 얕은 층의 단순한 도로 정보들이 깊은 층으로 전달되면서 더 고차원적인 교통의 흐름에 대한 통찰로 발전한다. 내비게이션의 머릿속에는 단순한 지도(바둑판)가 아니라 시간과 상황에 따라 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시 교통에 대한 살아 있는 모델’이 구축된다. 이것이 직관이 발휘될 무대다.

목적지를 입력하는 순간(현재 바둑판의 상태), 내비게이션은 도시의 모든 가능한 경로를 전부 계산하지 않는다. 대신 머릿속에 구축된 ‘교통 흐름 모델’을 바탕으로 하여 즉각적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3번 국도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라고 가능성 높은 최적 경로를 추천한다. 이것이 정책망이 제시하는 ‘첫 느낌’ 즉 직관이다. 수많은 정보가 압축된 이해를 바탕으로 가장 그럴듯한 해답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능력이다. 그러나 뛰어난 내비게이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추천 경로를 제시한 뒤에도 잠시 더 깊은 계산을 한다. ‘만약 추천한 3번 국도에서 갑자기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될까?’, ‘대안 경로는 무엇일까?’ 이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천 경로가 정말 최선인지 한 번 더 검증하고 보강하는 과정이 바로 몬테카를로 트리탐색인 것이다.

▲ 지금의 조건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경로가 떠오른다. 계산은 끝나지 않지만, 선택은 이미 이루어진다. [AI 이미지]

이 내비게이션이 놀라운 이유는 모든 주행 경험을 통해 스스로 더 똑똑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상의 자동차(알파고의 셀프 대국)가 이 내비게이션의 추천 경로와 시뮬레이션 결과를 따라 도시를 주행한다. 주행이 끝나면 어떤 경로가 실제로 가장 빨랐는지, 어떤 예측이 맞았는지에 대한 실제 결과 데이터가 중앙 서버로 전송된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이 데이터를 학습하여 자신의 교통 흐름 모델 자체를 업데이트한다. ‘아, 경험해보니 퇴근 시간에는 3번 국도보다 강변북로가 의외로 더 나을 때가 있구나. 다음부터 비슷한 상황에서는 강변북로를 첫 번째로 추천해야겠다.’ 이 과정의 경험이 직관으로 쌓이는 것이 ‘자기강화학습 루프’다. 어제의 느리고 깊은 시뮬레이션(탐색) 결과가 오늘의 더 빠르고 정확한 ‘첫 느낌(직관)이 되는 것이다. 알파고가 수백만 번의 대국을 통해 인간의 기보 데이터 너머의 창의적인 수를 발견하는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문용직 정치학 박사(프로기사)는 직관을 ‘계시적 앎’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알파고를 통해 알게 된 기계의 직관은 ‘계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가장 작은 길부터 파악하고(CNN스캔), 전체 교통의 흐름을 꿰뚫어 본 뒤(추상화), 최적의 경로를 제안하고(직관), 그 결과를 끊임없이 복기하며(탐색), 자신의 지도를 매일 새롭게 그려나가는 학습 즉 치밀한 학습의 여정이다.

지도에 없는 낯선 길, 단숨에 무너진 AI [반상 문명사 4부]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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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8 |  2026-02-20 오전 12:02:00  [동감0]    
인공지능은 창의적인 사고를 할수가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입력한 프로그램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바둑에 정보를 입력하는 데 최초 개발자는 바둑에 방대한 자료를 바랑으로 많은 바둑 전문가가 참여 하여 정보를 입력 하였다
덤벙덤벙 |  2026-02-18 오후 1:50:00  [동감1]    
와, 김수광 기자를 만난 때가 이세돌/알파고 대결이 있었던 2016년으로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지 정말 몰랐습니다. 정용진 상무이사와 함께 대단한 필력(筆力)입니다.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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