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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하는 '천야오예', 애인이 보는 그의 바둑
스스로 몰두하는 천재, 천야오예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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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젊은 중국의 천원(天元), 제일 잠재력 있는 중국기사, 최고의 승단 속도로 9단에 오른 이야기……. 천야오예 9단을 둘러싼 평가와 바둑이야기는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24일 막을 내린 제17회 한중천원전에서 그는 2-1로 한국의 천원 박영훈을 꺾으며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이전과 달리 통리에서 벌어진 한중천원전에 천야오예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와 동행했다. 폐막 연회에서 천야오예의 부모는 "솔직히 우리가 가장 기쁘다."라며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술을 권했다. 나는 이날 함께했던 어머니에게 직접 천야오예의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중국 신민완바오 리란란(厉苒苒)기자 흑백세계에 빠져들다 1989년 12월, 천야오예는 베이징 시내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천야오예가 4살 생일이 되던 날, 그의 아버지가 다이아몬드 게임을 선물로 주며 그에게 두는 법을 가르쳤다. 여기에 매혹된 천야오예는 온종일 각종 수법을 홀로 연구했다. 천야오예의 바둑은 여기서 시작했다. 어릴 때 많이 접하는 보드게임이 천야오예를 바둑판앞으로 이끌었다.=> 어머니는 "당시 천야오예가 지기라도 하면 밥도 먹지 않고, 끝까지 어른에게 달려들어 결국 이기고 나서야 그만두곤 했어요."라고 술회한다. 얼마 되지 않아 몇 명의 어른이 이 게임에서 다 천야오예에게 졌고, 한편으로 모두 그가 이런 방면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살 반이 되자 아버지는 그를 소년 바둑학교에 등록했다. 부모는 거의 매일 천야오예를 북경성을 가로질러 바둑학교로 데려가야 했다. 그 나이 또래 어린이들이 일찌감치 숙제를 마치고 쉬거나 놀 때 천야오예는 밤이 늦는 것도 잊어버리고 바둑에만 매진했다. 이미 흑백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 그는 피곤함이란 단어조차 알지 못했다. 바둑선생들은 입을 모아 천야오예의 기재를 칭찬했다. 사실 그의 가장 귀한 재능은 쉼 없이 달려드는 의욕이었다. '발양론'과 '천룡보'가 천야오예의 가장 즐겨읽는 책이었고, 바둑을 두는 것이 그에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도 기보를 들고 바둑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현재도 사활풀이는 천야오예가 제일 즐겨하는 오락이다. 어린 시절, 바둑과의 만남은 그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 '강한 녀석' 천야오예 천야오예에게는 두 개의 별명이 있다. 첫째는 '산을 뚫는 표범(钻山豹)'이다. 천야오예는 최근까지 머리를 짧게 유지하는데 이 헤어스타일이 드라마《乌龙山剿匪记》의 '钻山豹'와 닮아서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바둑팬들은 그를 '강한 녀석(小强)'이라 부르길 더 즐긴다. ![]() 극도로 실리를 좋아하는 기풍인 천야오예는 포석을 중시해 아주 세밀한 곳까지 연구한다. 사활을 보는 눈은 초일류의 경지다. 그래서인지 그의 바둑은 10판 중 5~6판이 곤마를 수습하는 내용이다. 또 일단 미세한 국면에 들어서면 정밀한 끝내기 실력을 발휘해 진 바둑도 종종 뒤집는다. 천야오예의 이력을 말할 때, 바둑 이외의 것을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정신은 오직 '바둑'에 모여 있어, 주위는 둘러보지 않고 산다. 예전 TV아시아바둑대회 결승에 진출했을 때 베이징팀의 탄옌우 선생이 천야오예를 위해 9단 신청을 했다. 당시 천야오예는 대국에만 신경 쓰며 자신의 9단 특별승단 소식도 흘려듣고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경기가 언제 다시 있는지', '우승상금이 얼마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 '헉! 천야오예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보통의 기사들은 바둑판 뒷면에 사인하는데 역시 특이하다. 그의 연인 '천이밍' 12살이 되자 부모는 천야오예가 혼자 대회에 참가하도록 했다. 이후 부모가 대국장에 나와 그를 응원한 적은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편은 영향이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바둑을 보면 내가 더 심하게 긴장을 해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명백히 알아요."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그녀의 평가다. 아마도 바둑세계에 빠져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어머니의 기억에서 아들이 다른 대다수 청소년처럼 사춘기의 반항을 한 기억도 없다고 한다. '스스로 알고, 스스로 제어하며, 스스로 깨닫는' 성정은 천야오예의 성격에서 유난히 도드라진다. 2년 전 그는 중국의 여자기사 천이밍 2단과 사귀게 되었다. 여자친구로 삼고는 금새 그녀를 미래의 아내로 생각하게 되었고 일찍 부모님께도 소개드렸다. 천야오예의 어머니 역시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미래의 며느리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여자친구가 필요한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어요. 천이밍은 확실히 그에게 어울려요.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한 후에는 천야오예의 성적이 오히려 더 좋아졌습니다." 원래 바깥 모임이 잦았던 천이밍은 천야오예의 영향을 받아 요즘은 저녁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남자친구가 바둑두는 것을 지켜본다. 물론 그녀의 기력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천야오예와 천이밍, 두 사람이 사귀면서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도 바둑이다. [출처 ㅣ중국 新民晚报 ] [사진협조ㅣ중국 시나바둑] ![]() ▲ 천야오예는 최근 한중천원전 3연패. 대호통산 4회 우승이다. ![]() ▲ 2국은 정말 시원한 승리였다. 잘 싸운 박영훈은 한중천원전 참가로 5천 달러의 준우승 상금도 받았다. ![]() ▲ 이번 한중천원전 대국자인 천야오예와 박영훈이 자신의 캐리커쳐를 들고 기념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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