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분투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세월에 치여 또 바둑 아닌 세상과 맞서며 승부의 끈은 조금씩 풀리는 것이 인지상정. 프로기사 어느 누가 손에서 승부를 놓고 싶을까? 그러나 독하디 독한 프로들에게도 진정 '실천'은 어렵다. 서봉수 9단의 위대한 점은 여기에 있다.
추억의 대결이었다. '서명인과 유왕위'는 지난 2009년 6월 국수전 예선을 마지막으로 대국기록이 없었다. 이 대국 전 상대전적은 57전 23승 34패로 서봉수가 뒤졌고, 최근 10대국 기록도 2승 8패로 크게 밀렸다.
그러나 이번 삼성화재배 예선 결승에서 예측에 나선 대회관계자와 바둑기자들은 입을 모아 서봉수의 승리를 예언했다. 그는 현재 누구보다도 '승부의 날'이 선 시니어기사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역시 200수 만에 백 불계승. 서봉수는 6년 만에 세계 대회 출전권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화재배 본선은 아홉 번째 진출이다.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서봉수는 "아마 시니어조가 따로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라며 웃었다.
2013 삼성화재배 본선은 9월 2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상하이에서 더블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본선 32강전을 벌인다. 한국은 예선을 통과한 6명과 시드를 받은 7명 등 모두 13명이 본선에 올라 대회 3연패 및 통산 12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 이번 예선결승, 이길 자신이 있었나요?
"에이, 질 준비가 되어 있었지. 요즘 바둑 둬서 '이긴다'란 생각은 접었어.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즐기는 거야."
- 대국 내용은 ?
"복기를 해보니 초반에 내가 대무리를 했더구먼. 유창혁이 끝장낼 수 있는 상황도 있었고……. 나중에 흑이 중앙을 끊은 것이 패착이 되었어."
- 최근에 8연승으로 패배를 모르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비결은 없고 약간의 공부는 하지. 기보는 꾸준히 보고, 젊은 기사와 복기도 하고……."
- 나이가 들어도 실력이 느는지.
"늘지. 노력하면 당연히 실력은 느는데 체력이 문제지. "
- 현재 시니어 기사는 어느 나라가 가장 셀까요?
"개개인의 실력을 따지면 우리도 할만한데 만약 농심신라면배처럼 5명 정도 시니어끼리 연승전을 벌인다면 아마 아직도 일본이 가장 셀 꺼야. "
- 사이버오로에서 대화명을 가끔 보는데 인터넷 대국은?
"예전에는 자주 뒀는데… 지면 따라 다니며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최근에는 뜸해."
- 한국기원에서 가끔 목격하는 광경인데 매번 젊은 기사들에게는 뭘 그렇게 물어보세요?
"뭐긴 바둑 수를 물어보지. 고수에게 듣는 게 얼마나 효험이 큰데. 다들 이야기를 잘 해주고……. 아니 내가 이야기해줄 만한 상대로 고르는 건가?(웃음)"
-현재 중국에 밀리는 한국바둑계의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장 균형이 깨진 것 같아도 실제로 그렇지는 않아. 상위 20명만 놓고보면 비슷한 정도라 언제든 회복할 수 있어. 진짜 문제는 '미래에도 이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지.
- 바둑승부 외에 따로 생업이 없는 걸로 아는데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나요?
"허허. 그것도 누가 시켜줘야 하는 거지. 혹여 일이 있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승부할꺼야."
▲ 작년 시니어조의 예선통과자 유창혁. 올해는 서봉수의 승부끼에 막혔다.
▲ 서9단은 2007년 제12회 삼성화재배 본선에 오른 바 있으며 특히 2006년 제11회 삼성화재배에서는 4강까지 진출한 바 있다. 이 대회 본선은 아홉 번째 진출.
▲ 한중전은 아니지만, 예선결승 그 어느 판보다도 관심이 집중된 대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