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밀센서를 장착한 ‘돌주먹’ 백홍석(한국)과 백전노장보다 더 노회한 ‘괴물본색’을 드러낸 당이페이(중국). 제4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 챔피언십 결승5번기는 그 어느 세계대회도 보여주지 못한 깜짝 흥행카드로 결정됐다.
이 대회의 막이 오르기 전 백홍석과 당이페이를 우승후보로 꼽은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이세돌, 구리가 우승후보 최상위에 올랐고 그밖에는 한번쯤 세계대회 우승을 경험했거나 결승무대를 밟아본 강자들이 거론됐을 뿐이다.
이때의 백홍석은 ‘준우승 전문’이라는 불운의 징크스를 가진 한국랭킹 14위의 강자 정도였고 당이페이는 인상적인 성적 한번 보여준 적 없고 중국랭킹 50위권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말 그대로 신예였다.
그런 예상이 일반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비씨카드배의 깜짝 결승카드를 예고하는 파란은 이미 2월에 진행된 통합예선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통칭 ‘90후 세대(90년대 이후 출생자)’로 불리는 중국 신예들의 거센 대륙풍이 휘몰아쳤고 강력한 우승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갔다. 본선 64강전부터 32강전, 16강전을 거쳐 8강이 결정됐을 때 애초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우승후보는 단 한 사람도 잔류하지 못했다.
전기 우승자 이세돌은 16강전에서 이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당이페이에게 패했고 이세돌과 함께 세계정상의 양강체제를 구축했던 중국의 구리는 LG배 우승 이후 거물로 성장한 박문요에게 밀려났다.
백홍석과 함께 대륙풍을 뚫고 8강까지 진출했던 한국의 우승 기대주 박영훈(이때까지만 해도 세계대회 우승경험이 있는 박영훈이 백홍석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역시 ‘특급자객’ 당이페이의 비수를 피하지 못했다.
결승무대를 밟은 백홍석과 당이페이는 천재로 각광받으며 승승장구해온 지금까지의 세계챔프들과 전혀 다른 이력으로 새로운 관전의 재미를 부여해준다. 그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 깜짝 결승카드의 흥행에 대성공을 예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계자들로부터, 재능보다 성실함 더 인정받은 백홍석(86년생, 2001년 입단)은 스스로 결승에 오르는 일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는데 바둑가의 관측자들은 ‘백홍석에게는 이번 비씨카드배야말로 일생일대의 기회이며 무엇보다 백홍석 자신이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우승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그 가장 큰 근거로 최근 달라진 백홍석의 종반 운영능력을 꼽는다.
그동안 백홍석은 막강한 공격력을 앞세운 ‘힘의 바둑’으로 종종 이세돌, 최철한 같은 거물을 무너뜨려 팬들의 박수를 받곤 했는데 그렇게 정상을 넘어설 수 있는 뚝심을 갖추고도 ‘준우승 전문’으로 머물러온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교하지 못한 종반운영과 마무리’를 지적했는데 최근, 백홍석의 바둑에서는 그런 약점들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그것이 성적으로 직결되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종반의 집중력에서 더 강점을 보이고 마무리도 예전에 비해 훨씬 끈끈하고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파괴력 높은 ‘돌주먹’에 초정밀센서를 장착했다고나 할까.
비씨카드배 결승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백홍석의 활약을 보면 전문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64강전부터 결승에 오르기까지 어느 한판 편안하게 이겨낸 바둑이 없다. 거의가 피를 말리는 종반 역전승이다.
특히, 16강전 니우티위엔전은 마지막까지 이길 수 없었던 바둑을 반집으로 뒤집었고 후야오위와 겨룬 준결승전도 종반의 경계를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뒤져 있다가 한순간에 대마를 포획하며 뒤엎은 대역전드라마였다.
초정밀센서를 장착한 ‘돌주먹’ 백홍석이 ‘준우승 전문’이라는 불운을 딛고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생애 첫 타이틀을 기록할 수 있을까. 팬들은 백홍석이 일류의 대열에서 벗어나 초일류의 반열에 오르기를 학수고대한다. 물론, 그 인증은 백홍석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낼 ‘기적’ 비씨카드배 우승이다.
제4회 비씨카드배 흥행 대성공의 주역. 이제는 그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무명에 가까운 중국의 신예 당이페이는 ‘괴물본색’을 드러내며 나날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한중 양국의 랭킹1위(이세돌, 탄샤오)를 밀어내고 세계대회 우승의 관록파 박영훈과 박문요마저 제치며 드디어 세계대회 결승까지 뛰어올랐다.
쟁쟁한 세계의 강자들을 상대로 국제대회 16연승을 기록한 당이페이는 중국랭킹 52위다. 그동안 세계대회는커녕 국내대회에서 거둔 변변한 성적조차 없다. ‘신데렐라’도 이런 ‘신데렐라’가 없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이제는 중국바둑의 돌풍 ‘90후세대’ 중에서도 선두주자로 꼽히는 당이페이(94년생, 2007년 입단)는 2006년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재능을 드러냈고 그 이듬해 남방장성배 한중슈퍼아마대항전에서 강창배(현재 프로2단)를 꺾고 통합우승을 차지한 잠룡(潛龍)이었다.
당이페이에게, 2007년부터 제4회 비씨카드배 통합예선에 출전한 2012년까지 5년간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을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백홍석과 당이페이는 딱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종반으로 갈수록, 초읽기에 몰릴수록 더 강해진다는 것.
당이페이가 결승에 오른 과정을 보면 백홍석과 놀라우리만큼 닮은꼴이다. 편안하게 상대를 압도한 바둑이 한판도 없다. 거의가 역전승이다. 박문요와 겨룬 준결승전을 지켜본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종반까지 박문요의 완승무드였던 바둑이 결승 테이프를 끊기 직전에 뒤집어졌다.
당이페이는 독특한 신예다. 세계대회는커녕 국내대회 결승 경험도 없는 신예라고 방심했다가는 우승컵을 그냥 헌상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뒤로 갈수록 노련해지는, 백전노장보다 더 노회한 ‘괴물본색’을 드러낸 나이 열여덟의 풍운아.
‘돌무먹’ 백홍석과 ‘괴물본색’ 당이페이의 결승5번기. 하루만 기다리면 그 막이 오르는데도 가슴이 뛴다. 일찍이 이렇게 신선하고 짜릿한 세계대회 결승카드는 본 적이 없다. 백전불굴의 의지로 세계의 천재들을 뿌리치고 정상의 무대에 오른 두 기사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최고의 승부가 되기를 바란다.
○● 결승 5번기 | 백홍석 VS 당이페이
5월 12일 제1국 : 해설 한종진 (오후 1시 오로대국실)
5월 13일 제2국 : 해설 박정상 (오후 1시 오로대국실)
5월 15일 제3국 : 해설 송태곤 (오후 1시 오로대국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