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내용은
어느 대학에서 연극 부원을 뽑으려고 오디션을 하고 있는 장면 이었다.

방 한가운데는 조그만 탁자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한 알의 사과가 놓여 있었다.

신입생 지원자가 한명씩 그 방에 들어와 심사 위원들이 보는 가운데 그 사과 앞에서 어떤 연극적인 반응, 어떤 예술적인 반응, 어떤 창조적인 반응을 어느 수준까지 보이는가에 따라 당략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도 만화 칸 속으로 들어가 심사위원 자리에 앉았다.

첫 번째 신입생이 들어왔다. 그 학생은 자신을 로미오, 사과를 줄리엣으로 상정하고 현란한 수사학이 곁들어진 사랑을 고백 했다.

“너는 아니고”

또 한 학생이 들어 왔다. 이 학생은 자신을 낙원에서 추방당한 아담, 사과를 선악과로 가정하고 대사를 읊는다. 이 학생의 상상력은 사과에서 출발 자기가 낙원에서 추방된 것이 과연 이브 대문이었는지 아니면 사과와 이브는 신의 각본에 동원 된 애궂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지를 논증 하는대까지 비약 시킨다.

‘너도 아니고“

또 한 학생이 들어온다. 이 학생은 사과 앞에서 사과가 연상 시키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드릅으로 꿰워 댄다. 에덴의 사과, 월리엄 텔이 아들의 머리에  올리고 활을 쏘아야 했던 저항의 사과, 만유 인력의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 했다는 뉴턴의 사과 등등 타령을 줄줄이 이어 댄다.

“너도 아니고”

그 밖에도 많은 학생이 들어 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학생이 들어 온다. 아니다 사실은 마지막 학생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학생의 등장과 함께 그가 만화책을 덥어 버렸으니까 마지막 학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학생은 천천히 걸어 들어와 가만히 사과를 바라보고 있다가 덥썩 집어 들고는 우적 우적 베어 먹는 거였다.

“바로 너다”

&

그는 그 학생이 사과를 우적 우적 베어 먹는 것을 본 순간 ,
그가 애 그렇게 수줍어하는지, 그가 왜 얼굴을 자주 붉히는지,
그가 왜 그렇게 말을 더듬거리는지, 그가 왜 새로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알았다.

전광석화와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쓸 것이다.
문자 그대로 전광석화같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가 이제껏 말을 더듬고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것은 남들이 껍데기로만 사는 것을 본받으려고 했기 때문 이란 걸 알았다.

그걸 본받으려고 하다가 잘 안되니까 자꾸만 드러나는 것을 숨기려 했고 그러느라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렇게 망설이고 그렇게 더듬거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언어를 새로 만들었다. 이제껏 배운 정의를 폐기하고 그의 느낌으로 그의 것으로 그가 만나는 단어를 다시 정의했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 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이 무었이든 그 만화의 주인공처럼 바로 붙어 버렸다.

현상이 어떠니 인식이 어떠니, 하지 않고 그의 눈에 본질적으로 여겨지는 것 그것과 바로 붙어 버렸다.

이 사건이 바로 그가 그를 갖게 된 동기였다.

(나비넥타이,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