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만들어 달라고 칭얼거리는 손주가 귀찮았는지

목침을 괴고 아랫목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는

적당한 크기의 대나무와 한지 뭉치를 들고 골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도 쪼르르~ 따라 들어간다.

말린 옥수수대를 역어서 둥그렇게 울타리를 만들어

지난가을에 캔 고구마를 담아 놓아서인지

골방에는 황토빛 군내가 가득하다.

고구마 캘 때 괭이질을 잘못하여

선홍빛의 싱싱한 고구마 허리를 찍어 할아버지한테 혼이 나면서도

간혹 귀옥이네 강아지 백구처럼 하얀 고구마가 나오면 신기해서

밭고랑에 철푸덕 앉아 바로 깍아먹던 생각이 났다.

메주를 매달아 놓았던 시렁은 곳감이 달려 있고

불을 때지 않아서인지

마당을 훔쳐 보려고 뚫었던 문 창호지 구멍사이로

오소소~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가오리 모양으로 오려 낸 한지 위에

대나무를 세로로 쪼개어 가느다란 살을 만들어 뼈대를 붙이니

훌륭한 연이 되었다.

"하나부지!. 내 연은 꼬리가 상태꺼보다 더 길어야 혀!"

신문지와 잡지를 기다랗게 붙여 꼬리를 만들고

할아버지께서는 시렁 위를  뒤지시더니

켜켜이 먼지가 쌓인 실타래를 찾아 꺼내 연에 달아주신다.

한아름이나 되는 연 뭉치를 들고 아이들이 있을 동산으로 올라간다.

눈 쌓인 소나무 동산 위로

벌써 연이 대여섯개 시린 겨울하늘 위에 떠 있다.

"너 연 날릴쫑 아냐?"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빈 손으로 있던 봉기가 다가와 묻는다.

"아...아니..."

"그려?... 글먼 니가 저기서 연을 잡고 있어 봐."

내가 놔! 허먼 연을 위로 던지드끼 놔야 혀! 알긋냐?"

"응!"

실타래를 잡고 뛰는 봉기 뒤로 연이 미꾸라지처럼 꼬리질을 하며 쫓아간다.

좌 우로 비틀비틀하더니 이내 바람을 받고 하늘 위로 솟구친다.

신이 나서 바라보는 내게

"아나!" 하고 득의양양하게 실타래를 건네는 봉기의 얼굴이 정겹다.

한참을 신나게 연날리기를 하는데

짖궂게 다가 온 상태의 연줄과 엉키더니

내 연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풀어져 멀리 사라진다.

누가 볼세라~ 닭똥같이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고 연을 찾아 나서는데

귀옥이가 백구를 데리고 쫓아온다.

"정호야! 내가 봤어! 방죽앞으로 떨어지는거...

얼어서 예쁘게 발그레해진 양 볼과  초롱한 귀옥이의 눈을 보면서

나의 슬픔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뀌어

뜨거워진 내 가슴에 시원하게 느껴지는 겨울바람부는 하늘 높이

소리개 한 마리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