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때 일입니다. 그러니까 30여년 전 이야기로군요...

어둑어둑한 오후 종로서적에서 책을 몇권 산후  버스를 갈아 타기 위해 어느 길거리를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지한명이 길에 쓰러져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멈추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역시 평소같으면 그냥 지나쳤을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발걸음이 멈추어져 거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디가 아프니?"  거지는 배만 움켜쥔채 신음만 계속했습니다...

저는 배가 아퍼서 그런가보다 하는 결론을 내리고 일으켜 세워 그근처 약국으로 갔습니다.  당연히 아픈사람을 데리고 약국에 들어가 약사에게 물어 보았어야 했는데, 까치집 머리에 옷도 지저분해 차마 그를 약국에 데리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않았습니다.   잠깐만 밖에서 기다리고 하고 안에 들어가  소화제와 활명수를 샀습니다.

밖에 나와보니 없더군요... 찾아보니 아까 그장소에 다시가서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으켜 세워 뒷골목으로 가서 약을 먹였습니다.  아무말 없이 약과 활명수를 마신다음에도 계속해서 배를 가르키면서 뭐라고 하는데, 바로 벙어리들이 내는 그런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아하 말을 못하는구나 하고는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배가 어떻게 아픈거냐, 아니면 배가 고픈거냐, 아니면...  하여튼 몇번의 대화 시도끝에  배가 아픈게 아니고 배가 고픈것이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덴장,,배가 고픈사람한테 소화제를 먹여 버렸으니...)

바로 옆에 한식당이 있었는데 좀 비쌀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두리번 거리고 보니 길건너 허름한 중국집이 있더군요.  들어가 화장실에서 대충 물로 손과 옷을 닦아주고, 제일 싼걸로 두개 시켰습니다.  짜장면과 볶음밥.

볶음밥을 어찌나 게눈 감추듯 빨리 먹던지 혹시 체할까봐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천천히 먹으라고 말렸습니다.  다먹고 나더니 제가 먹고있는 짜장면을 보더라구요...그래서 이것도 좀 더 먹겠냐고 했더니 좋아합니다. 그렇게 짜장면도 다 먹고 나더니 그제서야 얼굴이 환해 지면서 웃음을 짓더군요.  얼굴 모양은 기억이 잘 안나고 다만 눈망울이 어찌나 맑고 초롱초롱하던지 유리알 같다는 느낌은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합니다.

대화는 잘 안되었지만 먹으면서 몇살이냐고 물었더니 양손가락을 세개씩 내밀더군요.  그래서 제가 깜짝놀라 "33살?"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떡 끄떡 하더군요.  그때까지는 어려보여서 저보다 나이가 어린줄 알고 반말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죄송하다고 하고는 그다음부터는 존대말을 했습니다.

한가지 신기한것은 어디사냐고 물어보니까 다리밑에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벙어리 였거든요... 어떻게 제가 그분이 사는곳이 다리밑이란것을 알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두가지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이와 다리밑에 산다는것...

식비를 내고 나니 주머니에 천원짜리가 딱 두장 남더군요...  이걸 줘야 하나 말아야하나 자신과 싸우던끝에 끝내는 못주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걸 줬어야하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오랫동안 손을 흔들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천천히 뛰어가면서 계속해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더군요...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5년즈음 후인듯한데 확실히 언제였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 생활하고 있을때, 갑자기 그 사건이 떠오르면서 바로 그분이 예수였다는것을 순간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려 했던것이아니라 그냥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분이 누구였다는것이 깨달아진것이죠... (제가 불교인이었다면 아마 부처님으로 깨달아 졌을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러면서 그분이 33세 였다는 것도 예수가 돌아가셨을때 나이와 같다는것, 그분의 눈동자가 갓난아이 보다 더 맑고 초롱초롱 빛나고 투명했다는것, 말을 않했는데도 그분이 사는곳을 알았다는것...이런것이 떠오르면서 그분이 그냥 보통 거지가 아니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이게 다 제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착각은 가끔씩 좀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듭니다.

이글을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요즘 나작에서 저혼자만 떠드는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또 이런이야기는 오해를 살 여지도 있기에...
그런데 강호천추님이 천사와 부처님의 현신에 대해 말씀을 듣고나서 오래전의 이 만남이 다시 떠올라 글을 써봅니다.  혹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신분이 또있나 궁금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