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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필]공포의 꼬드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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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필]공포의 꼬드락수
"여섯점 놓고 지느니 일곱점 놓고 이기지 그래?"
서능욱 九단의 접바둑 여의봉 코너에 내가 출연한다니까 친구 이종남이가 한달음에 달려와 빈정댄다. 자자손손 대대로 인쇄물로 남아 전해질 이 중요한 대국을 앞두고 내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친구가 오공 사범의 콧털을 살살 잡아당기고 나섰으니 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서사범님, 오늘 한번 무자비하게 둬주십시오. 절대 접대바둑 두지 마시고…. 정말로 프로가 마음먹으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나 그게 늘 궁금했거든요."
"종남이 이 친구 왜 이래, 나 죄지은 것 없어. 봐주셔도 이길 둥 말 둥 하는데…."
"영필이 이 친구 말예요. 빨리 안두면 제 풀에 쓰러지거든요. 불리하면 30분씩 팍팍 장고하십시오. 그게 쟤 아킬레스건이예요."
"장고요? 그러면 곽회장님보다 아마 제가 먼저 홧김에 쓰러질걸요."(서九단)
결국 지도기는 나의 완패로 끝났다. 서九단과는 이전에 두 판을 두어 1승1패를 기록했는데 오늘 바둑은 꼭 이겨야겠다는 부담이 커서였는지 지나치게 천변만화하는 여의봉을 의식하다가 전혀 내 바둑답지 않은 바둑을 두고 말았다. 바둑의 귀신이라는 입신(入神)의 프로를 마주해 어찌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하긴 따지고 보면 화근은 종남이 이 친구를 부른 것이 아닌가 싶다.
공포의 꼬드락수
올해 내 나이 예순. 친구들도 다 웬만큼 자릴 잡은 기업을 꾸리는 경영주이거나 이름을 대면 대뜸 알만한 정치인이다. 사회적으로 점잔을 떨 위치에 오른 인사들인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바둑판 앞에만 모이면 철부지 어린애로 돌아간다. 바둑이야말로 나이들어 제일 좋은 취미인 것이다. 우리 또래에 바둑이 치매예방에 좋다든가 하는 말은 접어두고라도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기에는 더없이 소탈하고 잡스럽지 않은 까닭이다.
인물 좋기로 손꼽히는 어떤 친구는 인물만큼이나 바둑의 모양도 좋은데, 그런데 이 친구는 이겼다 하면 70∼80집이요 질 때도 70∼80집이다. 그래서 이 친구가 기원문을 척 들어서면 모두들 "이크, 폭탄오셨다. 화기엄금!"이라고 소리친다. 노년에 이만한 재미가 어디 있을까.
난 친구들 사이에서 '공포의 꼬드락수'로 통한다. 1급 두는 친구들치고 내 꼬드락수(꼼수)에 당하지 않은 친구는 없다. 꼬드락수라고 하여 결코 속임수 차원을 생각하시면 그건 오해이다. 1급들이 어찌 3급의 속임수에 넘어가겠는가. 30년 3급 기력에서 뿜어져나오는 잔수, 또는 노림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이수성 전총
리도 내게 두점 상수이나 결정적일 때마다 당하는 친구이다. 어라전 서울고 동창 바둑대회에서 난 이 공포의 꼬드락수로 우승을 차지했다.
바둑은 늦게 배운 편이다. 대학 3학년 때 친구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바둑이 순 순장바둑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1∼2년 만에 곧장 3∼4급까지 순항했는데 그걸로 그만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상수가 없었고 3∼4급도 가물에 콩나듯 만나기 어려웠다. 이후는 공부하랴, 사업하랴 먹고 살기도 빠듯한 국가형편에 시간이 허락치 않았고…. 그러나 바둑은 우리같은 설계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겐 퍽이나 궁합이 맞는 취미이기에 늘 곁에 할 수 있었다. 앉아서 생각하고 계산하는 것이 바둑과 사촌지간이 아닌가.
바둑은 취미삼아 두는 즐거움 말고도 우리 두뇌의 우수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더더욱 좋다. 불과 50년도 안된 현대바둑의 역사를 갖고 우리바둑이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공대 출신이지만 우리나라의 공업계통은 아직도 일본에 20∼30년은 뒤져 있는 형편이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바둑이야말로 얼마나 대단하고 대견스러운 일인가.
요사이는 바둑TV를 많이 보는 편이다. 내가 보는 시청률의 50%가 바둑TV인데 그러다보니 가족들간에 채널권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아빠의 독재 앞에 딸애들은 툴툴대며 저마다 제 방에 소형TV를 사다놓고 보는 선으로 물러선 것 같다. 앞으로 계속 독재소리를 들어도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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