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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엔 프랑스의 바둑이 있다
프랑스엔 프랑스의 바둑이 있다
세계바둑을 가다-3편 프랑스
[해외통신] 황인성  2017-05-04 오전 11:47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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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바둑계를 다 안다 해도 프랑스의 바둑은 모를 수 있다. 프랑스는 정말 다르다. 이들은 유럽 전체가 사용하는 급수체계(레이팅 시스템)가 있음에도 새로운 급수체계를 만들었고, 심지어 ‘프랑스 바둑룰’도 창안했다. 그들은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흘리지 않고 담아내 그 안에서 작지만 알찬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프랑스 바둑마스터 임유종 씨는 본명보다 매트르 림(Maitre Lim, ‘마스터’ 라는 의미이다)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며, 프랑스인들은 2003년부터 프랑스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가 높은 대회인 도시대항전에 ‘Coupe Maitre Lim(마스터 림 컵)’ 대회를 이어오며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 기사는 창간 50년을 맞은 [월간바둑]이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세계바둑계를 가다’ 시리즈입니다. 해외바둑계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연휴기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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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계를 가다 - 3편 프랑스

[글/ 황인성]
- 프랑스 바둑연맹, 스위스 바둑협회 공식사범
- 유럽 메이저 대회 26회 우승- 현 유럽랭킹 1위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이던 알제리에게 독립지원금을 전달했다. 이 반역행위를 처벌하자는 사람들에게 당시 대통령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말했다.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이처럼 남과 다름이 충돌이 아니라 넓이가 되고, 그 안 곳곳에 낭만이 넘치는 나라인 프랑스에서 바둑은 어떤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 있을까? 10여년간 유럽에 살아오며 프랑스에 여러 번 다녀봤지만 이곳에 살기 전까지는 몰랐다. ‘유럽바둑’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프랑스를 뭉뚱그려 넣을 수 없다는 것을.

유럽바둑계를 다 안다 해도 프랑스의 바둑은 모를 수 있다. 프랑스는 정말 다르다. 어울림을 좋아하는 프랑스 바둑인들이 서로 부대끼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 돌소리만 요란할 뿐 실리는 없어 보이는데, 몇 걸음 떨어져서 보면 유기적인 몸놀림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유럽 전체가 사용하는 급수체계(레이팅 시스템)가 있음에도 새로운 급수체계를 만들었고, 심지어 ‘프랑스 바둑룰’도 창안했다. 그들은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흘리지 않고 담아내 그 안에서 작지만 알찬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약 4년간 프랑스에 거주하며 프랑스 바둑연맹에 고용되어 바둑을 가르치는 공식사범으로 일을 하며 발견한 작지만 알찬 ‘프랑스의 바둑’을 소개하려 한다.

프랑스 바둑의 역사
- 태동, 그리고 한국인 마스터 Maitre Lim


프랑스 바둑의 역사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짧다.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 4대 바둑 강국인 독일,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의 바둑협회가 각각 1937년, 1953년, 1959년에 창립된 데 비해 프랑스는 1970년에 첫 협회가 결성되었다.

1965년 수학자 클로드 쉐발리(Claude Chevalley)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친 것이 최초의 기록이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1969년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이 해에 첫 바둑책이 출간되었고 파리에 첫 바둑클럽이 생겼으며 프랑스 신문에 바둑에 대한 기사가 실리는 등 많은 수의 프랑스인들이 바둑을 인식하고 비소로 ‘바둑인구’라 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바둑의 시작에는 한국인 임유종 씨가 있다(한국에서는 ‘임갑’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에 바둑대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으나 프랑스에서는 Yoo Jong 또는 프랑스 이름인 Eugene으로 활동했다). 그는 1969년부터 10여년간 파리의 한 카페에서 바둑 지도를 했는데 이 기간 그에게 바둑을 배운 이들은 훗날 프랑스 바둑계 전반에 걸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패트릭 메리서(Patrick Merissert) 5단은 1976년 유럽챔피언이 되는데 이 기록은 2013년 판후이(Fan Hui, 중국 프로 2단으로 2012년 프랑스로 귀화)가 우승하기 전까지 프랑스인의 유일한 유럽챔피언 우승 기록이다.

프랑스 바둑인들은 임유종 씨의 큰 업적 중 하나로 그의 바둑책 ‘9점 접바둑’ 출간을 꼽는다. 이 책이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거의 모든 바둑을 9점 접바둑으로 두었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이론으로 9점 언저리에 머물렀던 프랑스 바둑인들의 실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몇 년 후에는 ‘6점 접바둑’도 출간하였으니, 이 기간 동안 프랑스 바둑인들의 기력이 석점 정도는 성장하지 않았을까?

임유종 씨에 대한 프랑스 바둑인들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그는 본인의 이름보다 매트르 림(Maitre Lim, ‘마스터’ 라는 의미이다)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며, 2003년부터 프랑스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가 높은 대회인 도시대항전에 ‘Coupe Maitre Lim(마스터 림 컵)’ 대회를 이어오며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Coupe Maitre Lim’은 도시대항전으로 지역 예선 및 선발전을 거쳐 4인 1팀, 총 16개 팀 64명이 본선에 진출해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로 예선을 포함해 200여명이 참여하는 가장 큰 규모의 대회다.

안타깝게도 그는 작년 9월 7일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바둑잡지 「Revue Francaise de Go」에서는 그의 사진을 표지로 하고 그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조명했다. 지면을 빌려 그의 명복을 빈다.

▲ 프랑스 바둑잡지 최근호 표지에 실린 매트르 림.

프랑스 바둑의 중흥기 1979~2000년

1970년 첫 협회가 창립되었지만 그리 체계적이지 못했고 보급도 더뎠다. 그러던 중 1978년 파리에서 유럽바둑챔피언십(European Go Congress)이 열리게 되었고, 비록 대회 참가자는 150명 정도로 적었지만, 이 2주간의 대회기간은 프랑스 바둑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프랑스 바둑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중요한 장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반동호인의 모임 개념이던 협회(Association)를 각 지방 바둑협회의 모임인 연맹(Federation)으로 전환하며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보급을 시작하게 되었고, 1983년에는 프랑스 보건부 산하 마인드스포츠연맹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하게 된다. 이는 프랑스에서 바둑이 체스, 브릿지 등과 동등한 위치의 마인드스포츠로 인정을 받은 중요한 성과이다.

1979년에는 프랑스 바둑잡지 「Revue Francaise De Go」가 창간되었다. 현재 140호까지 발행된 이 잡지는 격월로 발간되었다가 최근에는 여러 이유로 인해 연 3~4권정도 발행되고 있다.

이처럼 ‘Federation’을 창립하며 각 지역 클럽의 역할을 강조하게 되고, 정기간행물 발행 등의 노력을 기울인 덕에 1979년 14개의 클럽에 불과하던 프랑스 바둑인구는 1981년 30개 클럽 300여명, 1987년에는 500여명 60개 클럽으로 확대되며 이 해 그르노블(Grenoble)에서 두 번째 유럽바둑콩그레스를 개최하게 됐다(여기에 나오는 바둑인구는 프랑스바둑연맹에 연회비를 내는 사람들의 숫자로, 실제 바둑인구는 10배 정도로 추산한다).

프랑스 바둑인들은 유소년에 대한 바둑보급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82년에는 스트라스부르크(Strasbourg)에서 처음으로 유소년 바둑클럽이 열렸으며 1985년에는 첫 유소년 바둑챔피언십을 개최했다. 앞서 얘기한 1987년 60개 클럽 중 15개는 일반 학교에서 학교 선생님의 주도로 열린 유소년 클럽으로 유소년 인구의 비중이 꽤 컸음을 알 수 있다. 1997년에 마르세이(Marseille)에서 열린 세 번째 콩그레스를 계기로 프랑스 바둑인구는 1,000명 이상이 되고 2000년에는 1,200명까지 확대된다.

2000년 이후 판후이, 황인성 프랑스바둑연맹 사범으로 고용하며 보급 박차

2000년 이후 유럽바둑계는 한 차례 황금기를 맞이한다. 이 황금기는 2004~2006년경 만화 ‘고스트바둑왕’의 흥행으로 비롯됐는데 바둑대회에는 어린아이들이 넘쳤으며 바둑계는 활기가 넘쳤다. 이 기간 유럽바둑인구가 약 40% 증가하였는데,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스트바둑왕’은 프랑스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 바둑인구도 사상최대인 1,650명까지 치솟는다.

이 시기, 프랑스 바둑계에는 또 다른 ‘황금’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프로기사 2단인 판후이(Hui Fan)다. 그와 여러 차례 만났지만 그가 프랑스로 오게 된 계기를 본인에게 직접 듣지 못해 아쉽다.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2000년경 판후이가 가볍게 여행 차 프랑스에 왔다가 “제발 이곳에 살며 우리를 지도해달라”는 프랑스 바둑인들의 간곡한 요청에 그대로 프랑스 툴루즈(Toulouse)라는 도시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2005년부터는 프랑스 바둑연맹에 정식 고용되어 비자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되었고, 당시 최고 권위의 대회였던 파리대회에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연속 무패 우승,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가장 큰 상금으로 많은 강자들이 몰렸던 잉창치 기념대회에서도 5년간 단 2패(28승)로 모두 우승하는 등 무적에 가까운 성적을 내게 된다. 그러니 프랑스에서는 그를 잡아 두려 할 수밖에.

나아가 그는 2013년 프랑스로 귀화하고, 같은 해 유럽바둑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프랑스에1974년 이후 두 번째 유럽바둑챔피언 타이틀을 안겨준다. 그 후 2015년까지 3년간 유럽챔피언이 되었으나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 알파고 딥마인드 팀 자문으로 캐스팅돼 바쁘신 몸(?)이 된 관계로 2016년에는 출전을 하지 않았다.

필자는 판후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2014년 비자 문제를 겪고 있을 때 프랑스 바둑연맹에서 고용의 뜻을 밝혔었는데, 이미 그가 고용되어있는 프랑스 바둑연맹이기에 내심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여러모로 캐릭터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즈음 한 대회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이제 연맹에 두 명의 사범이 생겼으니 우리가 노조를 만들 수 있어 정말 기쁘다”라는 농담과 함께 나를 흔쾌히 받아줬다. 이것이 대륙의 스케일이던가! 그런 그가 알파고 이슈로 많은 활동을 하게 돼 정말 기쁘다. 열린 마음으로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는 그의 성격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진심으로 그의 앞날을 응원한다.

필자는 2010년 프랑스 중동부 알프스 지역 도시 그르노블에 초청되어 약 석달간 머물며 그르노블과 근처 대도시인 리옹(Lyon)에서 바둑을 지도했다. 그러다 2014년부터는 전임 연맹 회장인 프레데릭 르노(Frederic Renaud)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프랑스바둑연맹에 고용되었으며, 그 후로 현재까지 그르노블에 거주하고 있다. 주중에는 그르노블 내에서 성인, 유소년을 대상으로 바둑지도를 하고 인터넷 바둑도장인 ‘연구생 도장’을 운영하며 150여명의 학생을 지도하는데, 이 중 프랑스인이 가장 많다. 주말에는 프랑스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세미나를 열어 프랑스 바둑인들을 만난다.

▲ 알파고와 세계최초로 바둑을 둔 프로기사 판후이 2단(왼쪽)은 프랑스 바둑의 '황금' 같은 존재다. 2014년 한 대회장에서 필자와 만난 판후이 2단.

프랑스 바둑의 현재
-9개 지역협회에 바둑인구는 1만5000명 추산


프랑스 바둑연맹은 9개의 지역 협회를 두고 있다. 이 9개의 협회에 101개의 클럽이 있으며, 지역 별로 활발한 활동이 있다. 현재 프랑스 바둑인구는 약 1만~1만5000명으로 추산하는데, 이 근거는 유럽바둑 데이터베이스와 프랑스 바둑연맹 정회원 수에서 나온다.

집계를 시작한 1996년 이래로 바둑대회에 한 번이라도 참가한 프랑스인이 약 5,500명이고, 현재 프랑스 바둑연맹 정회원이 약 1,400명으로 보통 프랑스인들은 이 인구에서 열 배 정도를 총인구로 생각한다(일본기원이 2012년에 발표한 조사에서는 3만명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 바둑인구 1천만명’과 비슷한 느낌이라 하겠다).

프랑스 바둑연맹 정회원은 1년에 65유로를 회비로 낸다. 원화로 8만원정도이니 인터넷 바둑사이트 1년 정회원 값보다 비싸다. 16세 이하 어린이는 20유로, 실업자 및 대학생 등은 35유로 등으로 할인해 주지만 이 비용을 내는 회원이 1,400여명이나 된다 하니 놀랍다.

2016년 한 해 프랑스에서는 150개의 바둑대회가 열렸다. 이렇게 대회가 많은 것은 챔피언십 등을 지역협회 별로 예선을 거치는 독특한 시스템 때문인데, 예선을 제외한 단일 대회만 계산하면 연 40~50개 정도 된다.

가장 큰 대회는 역시 파리대회로 44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최대 250여명, 2016년에는 150여명이 참가했다. 이외에 앞서 언급한 Maitre Lim cup 도시대항전이 참가자 규모로는 가장 크며, 그르노블의 제 트루노아(Ze tournoi)는 가장 프랑스다운 바둑대회로 참가자는 100명이지만 가족, 친구들과 같이 참여하기에 총 참가자 수는 200명이 넘는다.

프랑스에는, 대회보다 중요한 ‘캠프’가 두 개 있다. 모두 연맹의 주도로 열리는데, 여름바둑캠프는 2주간 열리며 150명 정도가 참가한다. 이런 형식의 캠프는 벨기에, 폴란드 등에도 있는데 2주간의 기간, 100명이 넘는 규모는 유럽바둑콩그레스를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다. 10월에는 유소년 바둑캠프가 일주일간 열리는데, 이 캠프에도 40명 이상의 유소년이 참가한다.

2015년 샨탈 가도(Chantal Gajdos) 새로운 회장단이 꾸려진 후 프랑스 바둑연맹은 유소년 바둑보급과 바둑강사 육성에 큰 힘을 쏟고 있으며 큰 대회가 있을 때마다 모여 정기회의를 갖기에 일을 추진하는 속도가 빠르다. 이렇듯 연맹은 제 기능을 하고 있고, 지역 클럽의 모임도 활발하며, 바둑인구 중 유소년의 비율도 꽤 높다(15~20%). 프랑스 바둑계의 미래가 밝은 이유라 하겠다.

이처럼 바둑을 배우고 즐기기 좋은 환경에 있지만, 이상하게도 강자가 없다. 판후이의 세 번의 우승을 포함해도 유럽 챔피언십에서 총 4회밖에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는데, 독일(17회), 러시아(14회), 네덜란드(10회)에 비해 상당히 초라하다.
그동안 자국 챔피언의 기력대가 대체로 5단에 머물렀었고(유럽 최강 레벨은 7단), 간혹 기재 있는 친구들이 나와 유럽 유소년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지만, 누구도 끝내 7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짧은 역사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기본적으로 바둑보다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기에 보통 만나면 바둑을 연구하기보다는 얘기하고, 춤추고 마시기 때문이 아닐까.

▲ 프랑스 바둑연맹 로고.

프랑스 바둑의 특성
-대회 참가는 연맹 정회원만!


프랑스는 연맹의 역할과 권한이 꽤 강하다. 프랑스인이 프랑스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참여하려면 연맹에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어야 한다. 외국인들은 예외로 두지만 자국인들은 그 자리에서 정회원에 가입한 후 대회에 참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유럽의 모든 국가가 유럽바둑 랭킹시스템(European Go database)을 표준 기력(rating)의 근거로 사용하지만, 프랑스는 이와 별도로 자체 랭킹시스템을 ‘굳이’ 만들었다. 따라서 개인 임의대로 기력 변경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5급이었던 사람이 인터넷으로만 바둑을 2년쯤 두다가 초단 기력이 되어 그 급수로 대회에 참가하고 싶으면 기력변경 심사위원회에 기보를 보내 초단 기력임을 검증받아야 한다. 한국 바둑인의 입장에서는 바둑인구 최대 1만5000명인 이곳에서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니 왠지 소꿉장난 하는 듯하지만, 이들은 진지하고 매사에 ‘대충’이 없다.

심지어 프랑스 바둑룰도 따로 있다. 이는 중국룰과 일본룰이 섞여 있는 룰로 덤은 기본적으로 7집반인데 흑이 마지막 공배를 메우면 백이 자기 집을 메우더라도 어딘가 한 수를 두어야 한다. 왜 백이 둘 곳이 없어도 한 수를 두어 한 집을 손해 봐야 할까? 이렇게 물으면 너무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답한다.
“흑이 먼저 두었으니까 백이 마지막 수를 두어야 공평하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마라톤바둑, 프랑스식 알까기도 있다!
필자는 2006년 우연히 프랑스 바둑캠프에 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사람들, 분명히 바둑캠프에 왔는데 바둑은 한 30%의 역할만 하고 있었다. 그저 거들 뿐. 나머지 70%는 대화, 춤 그리고 술이었다. 바둑을 두는 부모, 자식을 따라온 비(非)바둑인이 많았고, 바둑 두러 온 사람들도 저녁이 되면 날이 밝을 때까지 춤추고 마시며 다음날 매일 열리는 대국이나 강의에 와서는 졸기 일쑤였다.

바둑을 두어도 그냥 두지 않는다. ‘마라톤바둑’이라 하여 바둑판과 초시계를 약 5미터 간격을 두고 설치한다. 제한시간은 10분 땡. 열심히 달려야 이길 수 있다. 심지어 프랑스식 알까기 ‘페탕고(Petanque Go)’도 있다. 상대의 돌을 쳐내야 하는 한국 알까기와 달리 어느 돌에도 부딪히지 않고 중앙선을 넘겨 바둑판 위에 돌을 남겨 놓아야 하는 게 다르다. 먼저 10회 실패(돌끼리 부딪히거나 돌이 판에서 떨어지는 것)하는 쪽이 패배한다. 필자가 생소한 룰이라 실수를 조금 했더니 바로 하수 취급을 한다.

그 후 그르노블에 정착한 필자는 지역대회인 ‘Ze tournoi’에 초청을 받았다. ‘열심히 지도하자’는 생각으로 간 그곳에서는 저녁엔 천장에 미러볼이 꽂혔으며, 나를 초청할 때 예산이 부족해 강의료를 줄 수 없다던 운영자가 밴드를 불러 공연을 하게하고 본인은 신나게 춤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속 이러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필자가 지금은 그들 중 하나가 됐다. 필자의 아내는 이 대회에는 꼭 참가하여 바둑을 두는 대신 맥주 한 잔을 들고 락앤롤 댄스를 배운다.

한 4년 살아보니 이제 알겠다. ‘아, 이게 이들의 바둑이구나!’

▲ 바둑보다 친교를 더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던 프랑스 바둑이 일을 냈다! 2015 유럽 팀챔피언십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사진출처/EGC 2015 웹사이트)

바둑보다 사람이 좋은 사람들, 일을 내다
독일에 살 때 여러 사람에게 현재와 과거, 어느 때가 더 바둑계가 활발했는가 물어보면 대체로 대답이 이랬다.
“80~90년대가 좋았지, 그때는 바둑클럽에 사람들이 북적댔었거든. 근데 인터넷 바둑이 생긴 이후부터는 클럽이 아주 한산해진 거야. 바둑인구는 늘어났다는데 체감하기가 힘들어.”

이번에 칼럼을 준비하며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더니, 지금이 더 활발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째서 그럴까? 이들은 사람을 좋아하기에, 인터넷에서 두는 대신 나와서 바둑을 49%쯤 즐기고 51%는 같이 먹고 마시고 얘기하며 즐긴다. 바둑을 두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니 클럽이 활성화되지 않겠는가!

앞서 얘기했듯 유럽바둑 최강자를 가리는 무대에서 프랑스는 변방국가였다. 하지만 이들이 2015년 사고를 쳤다. 유럽바둑챔피언십과 별도로 2011년부터 팀당 4인이 참가하는 국가대항전이 열렸는데 여기서 프랑스 팀이 우승을 한 것이다!
물론 판후이라는 든든한 1장을 내세우긴 했지만 다른 팀에 비해 상당히 열세였던 이들은 끈끈한 팀워크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승리는 이들의 최대 장점인 바둑을 사람과 사람의 매개체로 연결하는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 결과라 하겠다.

▲ 프랑스 그레노블 시의 한 학교. 황인성 씨는 아내 이세미 씨와 함께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친다. 바둑은 무엇보다 재미있는 놀이여야 한다. 가장 먼저는 돌 따먹기 놀이부터 한다. 아이들 표정이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은가.

프랑스 바둑의 미래, 보급의 롤모델 죠세 교사와 그르노블 시의 후원
필자가 거주하는 그르노블은 인구 15만명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이곳은 프랑스 바둑을 얘기하면 빠질 수 없는 곳으로, 그르노블 바둑클럽은 40년 역사를 자랑하며 프랑스의 바둑클럽 중 정회원 수도 가장 많다. 또한 1987년에는 유럽바둑콩그레스를 개최했고 올해 2월에는 유럽 유소년 챔피언십도 개최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대단한 점은 현재 유럽에서 유소년 바둑열기가 가장 뜨거운 도시라는 점이다. 이 중심에 현지 중학교 과학교사인 죠세(Jose Olivares)가 있다.

그는 2010년 바둑에 입문하여 이듬해부터 본인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했다. 여기까지는 학교 교사 또는 대학교수인 많은 바둑인들이 ‘보통’ 하는 일이므로 놀랍지 않다. 한데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둑을 네트워크의 매개체로 활용한다. 우선 방과후 교사들에게 접근하여 바둑의 이점을 설명하고 이들이 바둑을 방과후 학습의 도구로 선택하기를 유도했다. 처음 5명의 방과후 교사가 이를 따랐으나 현재는 25명으로 늘어났다.

또 시청 직원들을 찾아가 시에서 바둑을 후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그가 활용한 이론은 이렇다. 바둑이 여러 계층의 아이들을 하나로 묶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프랑스도 빈부격차가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바둑이라는 누구도 선(先)지식이 없는 새로운 게임 앞에서 아이들은 모두 평등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죠세의 이론은 적중했다. 차츰차츰 늘어가는 방과 후 바둑교실의 수를 보며 그르노블 시청은 매 분기 열리는 학교별 바둑대항전의 장소를 시청 강당에 마련해주었다. 올 2월에는 유럽 유소년 바둑대회를 개최하여 이 아이들이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과 마주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하였는데, 그르노블 시가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었다.

필자가 물었다. “왜 굳이 바둑인가?”
유럽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저 바둑이 좋아서 그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바둑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비슷한 답을 예상했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바둑은 교사로서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한걸음 다가가는 데 있어 최고의 도구였다. 이처럼 아이와 교사의 관계를 가깝게 하고, 계층에 관계없이 아이들이 순수하게 어울리고 즐길 수 있게 하는데 바둑만한 게 없었다. 내가 바둑을 즐겨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바둑이 가장 적합했을 뿐이다.”

그렇다. 어쩌면 바둑은 반상 위 수(手)에 대한 탐구, 그래서 나오는 묘수도 좋고 반집승부도 짜릿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정다워지도록 이어주는 매개체로 사용했을 때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이곳 낭만적인 나라 프랑스에서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보다, 바둑친구가 많은 사람이 많다는 게 더 멋지지 않은가! 이들은 바둑의 높이만을 재던 필자에게 바둑의 넓이를 알려주었다.

이것이 프랑스인의 바둑이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바둑의 향기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발전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위한 자료수집에 도움을 준 프랑스 바둑연맹 회장단 및 도미니크, 제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Je voudrais remercier les membres du conseil d'administration de la Federation Francaise de Go, Dominique Cornuejols, Jerome Hubert de m'avoir aide a rassembler les informations necessaires pour rediger cet article. <끝>

▲ 그르노블 시청에서 열린 어린이 바둑대회. 어느 나라나 어린이는 바둑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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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산보기 |  2017-05-05 오전 10:32:00  [동감0]    
프랑스식 바둑룰, 그들만의 알까기, 바둑의 승부보다도 서로의 어울림을 중시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재미있네요.
좀 있으면 프랑스식 오목도 탄생할듯.
유카리5단 푸랑쓰3대보물=파리여자,포도주.용병,,,,  
유카리5단 |  2017-05-04 오후 3:32:00  [동감0]    
푸랑스 저것들 나풀레옹 받들어 과학 군사에 노력했으면 지금 미국,소련,중국보다 앞질러갔을것인데..저거들도 맨날 데모하다 저모양 저꼴이여ㅡㅡㅡㅡ 의원 한석도 없는 후보가 유리하네....르팽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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