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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이 거기 있어 간다"...추모대회로 연 김인국수배
"청산이 거기 있어 간다"...추모대회로 연 김인국수배
후학양성을 바라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프로신예부 신설
[김인국수배 ] 정용진  2021-12-04 오후 10:46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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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끝에 서면, 세상 모든 것은 겸허해지고 본래(本來)로 돌아간다.
땅에 발을 디딘 것들은 머리며 어깨에 이고 진 푸른 날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서둘러 뿌리로 돌아가고 경계 없는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 딴세상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다들 물러서고 건너간 자리, 12월 강진(康津)에 가면 아직 거기 우묵한 산 하나, 계절이 바뀌어도 늘 푸르고 낮고 길게 우는 무적(霧笛)마냥 지표(指標)와도 같은 산 하나 있으니, 우리는 그 산을 청산(靑山)이라 이른다. 눈부신 봄날 당신은 뚜벅뚜벅 술병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만 푸름은 청산에 남아 우리는 매년 갈대처럼 손을 흔들며 강진으로 갈 터이다.

그 어떤 지표도 찾을 길 없는 사막의 밤길이나 혹은 망망대해에서 밤하늘의 북극성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나침반이듯 거기 청산이 묵묵히 버티고 서 있어 주는 것만으로 후학들에겐 더없는 자랑이자 위안이다. 밤이 깊어 어둠이 짙을수록 저홀로 드높게 빛나는 별처럼. 반상의 천원(天元)처럼. 청산(靑山)이 있어 우리는 기뻤다.

“기계처럼 신체를 단련하고 세상사를 깡그리 잊어버린 채 오직 전력을 다해 승리만을 추구해야 이겨지는 게 바둑이라면,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어찌 바둑의 고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은 기술자일 뿐 진정한 고수는 아니다.” (박치문, 월간바둑 5월호 추도문에서)

국수님은 다분히 미학(美學)을 추구했고, 승부보다는 예도(藝道)를 지켜 가셨습니다. 모양 사나운 바둑은 일찍 접으셧고 나중에는 100수 전에 돌을 거둔 판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수님을 낭만주의자로 일컫기도 하지만, 그만큼 국수님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승패로부터 이미 자유로운 반전무인(盤前無人), 잡스러움을 남기지 않는 무심(無心)한 손길, 저도 무관(無冠)이 된 후에 그 마음을 반추할 기회가 있었지요. 국수님이 지니셨던 담담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저는 언제나 좇을 수 있을는지요. (조훈현, 월간바둑 5월호 추도문에서)

바둑을 시작하기 전 후배가 겸연쩍게 “국수님, 오늘 승단판입니다.”라고 말하면 “어, 그래?”라고 응대하곤 굳이 이기려 들지 않았다. 당시 기사들에게 승단대회는 무척 중요했다. 단에 따라 받는 단수당이 달랐고 1·2차 예선커트라인도 달랐고 밖에서 받는 예우도 달랐다. ‘상대를 이기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여기는 현실파가 득세하는 승부세계에서 국수님은 승부철학이 달랐다. 강진의 들녘처럼 넉넉하고 따뜻한 승부사였다. (차민수 기사회장)


김인 국수는 2015년부터 공식대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바둑계와 연이 끊어지는 게 싫어 은퇴를 하지 않았다. “아직은 바둑동네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게 그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그리고 고향 강진에서 매년 이맘때 국내외 바둑애호가들과 만나는 김인국수배가 더없는 즐거움이었다. 2018년 12회 대회가 프로인생 60주년을 맞은 해였고, 2019년 13회 대회가 생전 마지막 대회가 되었다. 코로나19 탓에 지난해 한해 건너뛰고 올해 연 14회 대회는 그만 추모대회가 되고 말았다.


14회 김인국수배 아마바둑대회가 12월 4일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에 자리한 제1실내체육관에서 개막했다. 2019년까지 매년 유일하게 국제 시니어 아마추어대회로 문호를 개방했던 김인국수배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국내 시니어대회로 치르게 되었다. 코로나 백신접종을 완료한 선수에 한해 참가신청을 받았으며, 48시간 이내 코로나 PCR검사 음성이 확인된 사람에게만 대회장 입장을 허용하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하였다.

특별히 이번 대회에는 후학양성을 바라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프로신예부를 마련해 주목을 끌었다. 사전 토너먼트 예선을 거쳐 여덟 명의 신예기사가 강진에서 본선을 펼친다.

앞서 6월 21일 김인 국수 유족은 국내 바둑계 후학 양성을 위해 1억 원을 쾌척한 바 있다. 기부금 전달식에서 아들 김산 씨는 “후학 양성을 위해 전달하는 기부금이 아버지 후배기사들의 발전과 연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한국 바둑 발전을 위해 인생을 바친 아버지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금은 김인 국수의 은퇴(퇴직) 위로금 전액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과 유족의 뜻을 살려 이번 추모대회에 프로신예부를 신설했다.

▲ 개막식에서 김인 국수 추모영상을 보며 다시금 고인의 발자취와 업적을 기렸다.


▲ 추모영상/한국기원 제공


오후 1시반에 연 개막식에는 강진군 이승옥 군수를 비롯해 한국기원 한상렬 부총재, 전남바둑협회 기명도 회장, 강진군바둑협회 황호용 회장이 자리했다. 양상국 9단이 심판위원장에, 오규철 9단과 서무상 9단이 심판위원으로 초청됐다.

개막식은 내빈 소개에 이어 추모영상으로 김인 국수를 기렸다. 매년 서두를 열던 김인 국수의 대회사를 대신해 올해는 부인 임옥규 여사와 아들 김산 씨가 인사말을 전했다.

사회자가 대독한 인사말에서 유족은 대회가 다시 열리게 된 것에 감사했다. “김인 국수님은 고향 강진과 한국기원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강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은 그 분을 지탱하는 정체성이었다”고 말하며 외국 손님들이 오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과 좋은 시절이 어서 와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특히 고인의 여동생이 열세살 까까머리 중학생 오빠가 바둑공부를 하기 위해 상경할 때의 모습을 전하는 대목에선 장내가 숙연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기 전날 어린 소년은 말없이 나가더니 집을 열 바퀴 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과자를 사서 가족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다음 날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떠났다고 합니다.”

▲ 선수들을 환영한 이승옥 강진군수.

이승옥 강진군수는 환영사에서 “김인 9단은 강진에서 나셨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수로서 명성을 날리셨던 바둑계의 거목으로서, 앞으로도 국수님을 추모하는 이 대회를 이어나가고 저변을 확대해서 바둑이 그야말로 국민의 정신과 취향을 담는, 지혜를 겸한 종목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원을 대표한 한상렬 부총재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김인 국수님의 추모대회를 성사시킨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한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국에서 걸음해 주신 바둑팬께도 고마움을 표했다. “김인 국수님을 평소 고향 강진에서 열리는 이 대회를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하셨다. 거듭 고인을 기리며 부디 좋은 추억으로 남을 대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한국기원 한상렬 부총재가 바둑계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번 대회에는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120여 명이 참가했다. 신예프로전은 만 20세 미만, 입단 5년차 이하, 3단 이하의 기사 46명이 선발전에 출전하여 토너먼트로 8강을 뽑았다. 4인 1팀으로 출전하는 남자단체전에는 강진스타일 팀을 비롯하여 8개팀이 참가하여 우승을 다툰다.
대회는 5일(일요일)까지 이틀에 걸쳐 총 5개 부문-프로신예부, 시니어단체부, 남자개인부, 여자개인부, 강진군민부로 진행하며, 스위스리그 방식에 덤 6집반의 맞바둑으로 겨룬다.

프로신예부 우승자에게는 250만원, 준우승자에게는 150만원의 상금과 청자트로피가, 시니어단체전 우승팀에게는 200만원의 청자트로피가 수여된다. 남녀 개인전 우승자에게는 각각 70만원의 상금을 준다.

강진군이 주최하고 한국기원이 주관한 14회 김인국수배는 강진군과 김인국수 유족, 사이버오로가 후원하고 전라남도바둑협회와 강진군바둑협회가 협력했다.

▲ 국수님,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 추모대회로 열린 14회 김인국수배 포스터.

▲ 내외귀빈 기념촬영. 왼쪽부터 서무상, 오규철 심판위원, 양상국 심판위원장, 한상렬 한국기원 부총재, 이승옥 강진군수, 기명도 전남바둑협회장, 황호용 강진군바둑협회장.

▲ 양상국 심판위원장의 대국개시 선언으로 이틀간 열전에 돌입했다.

▲ 대회전 대회장 곳곳을 방역하고 개막했다.

▲ 코로나19도 바둑에 대한 애정을 막아설 수 없다.

▲ 발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서라도...

▲ 8개 팀이 출전한 남자단체전은 대회의 꽃이다. 2019년 13회 대회에서는 압구정동팀이 우승한 바 있다.

▲ 여자개인부.

▲ 이번 대회에 특별히 신설한 프로신예전은 제한시간 30분에 초읽기 40초 3회로 둔다. 본선 8강은 스위스리그 3회전으로 우승을 가린다. 마치 김인 국수가 한국바둑을 이끌어나갈 후학들의 바둑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는 듯하다.

○● 김인 국수 떠나다. 청산(靑山)의 발자취 上 ☜ 클릭
○● 스러진 천원(天元)의 빛. 청산(靑山)의 발자취 下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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