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Home > 뉴스
알파고 시대를 읽으려면? ②
알파고 시대를 읽으려면? ②
바둑의 변천사를 알아야 알파고를 이해할 수 있다
[기획/특집] 문용직  2017-01-17 오후 01:23   [프린트스크랩]
  • 트위터
  • 이메일
  • 카카오스토리+
  • 구글+
  • 페이스북
▲ 바둑의 본질에 한걸음이라도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일본의 바둑사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중세 봉건제 하에서의 바둑 4대 가문과 1924년 일본기원의 탄생, 이 두 가지 사건은 반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문에서도 밝히고 넘어가지만, 알파고의 얘기...인공지능바둑 시대에 직면해 이런저런 생각의 그물을 펼치려면 앞서 반상의 본질과 문화, 흘러온 바둑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문의 칼럼이나, 또한 바둑의 변천과정에 대해 공부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천천히, 찬찬히, 끝까지 꼭 정독하시길 권합니다. - 편집자 주 -

2017 신년특집 / 알파고를 말한다
---------------------------------
Ⅰ. 바둑은 문화적으로 성장한 놀이

(1편) 알파고, 프로정상 두점 접을 수 있다! ☜ 보기
(2편) 알파고 시대를 읽으려면?
Ⅱ. 알파고가 프로정상을 두점 접는다는 것 (3편)
---------------------------------
<문용직 특별기고에 이어지는 후속 시리즈>
(긴급인터뷰) 국가대표팀이 말하는 알파고
(김성룡의 '썰전' 특집) 프로 실전에 등장하기 시작한 '알파고 수법' 조명
---------------------------------



이제 두 개의 사건을 추가하자.

일본 중세 봉건제 하에서의 바둑 4대 가문과 1924년 일본기원의 탄생이 그것이다.

이 두 사건 또한 반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둑 두는 마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바둑의 정체성(正體性)과 기사의 정체성, 기사의 등장, 애기가의 등장 등이 그것이다.
오늘 우리가 아는 바둑의 세계는 여기에서 상당 부분 유래한다.


5. 일본의 종가(宗家)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바둑계는 크게 일어났다. 태평한 세상에서 종가(宗家)제도가 확립됐다. 종가는 4대 가문. 4대 가문은 질서를 잡기 위해 단위를 제정했다. 아마추어에게도 면장(免狀)을 발행했다. 바둑계 최고의 권위 메이진 고도로코(名人碁所)를 두었다. 승부는 일인자가 최고다. 승부세계의 질서를 잡았다.

초점은 바둑의 제도화.
기사 정체성의 확립. 바둑 정체성의 확립.

기사는 바둑을 업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
기예(技藝)로 바둑의 속성을 규정했다.

물론 중국에서도 기사는 있었다. 황제가 부를 때를 기다리는 기대조(棋待詔)에 속한 사람이 그것이다. 하지만 수입도 변변찮았고 사회적 예우도 초라했다. 지속적인 제도화로서의 기사 제도는 더더욱 아니었다. 바둑은 잡기의 일종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20세기 초에서도, 중국의 국수급 중에는 다원(茶苑)에서 바둑표(5원짜리 사면 자신과 대국 한 판, 1원이면 제자와 한 판… 그런 식이다)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인물이 적지 않았다. 바둑은 심원한 놀이였다. 책이 부족할 때엔 더더욱 그랬다. 국수가 되려면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기에 10년 공부를 해야만 한다. 다른 잡사는 다 제쳐둔다. 천재급이 그렇다. 우리 같은 둔재야 뭐….

하지만 일본 중세.
바둑은 무사계급과 상인들을 배경으로 기사의 사회적 위치를 정리했다. 무사와 상인은 모두 돈이 많은 계급.

4대 가문은 17세기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전문적인 책만 해도 86권을 펴냈다. 책은 권위의 상징. 책은 바둑이 잡기가 아님을 뚜렷이 증명했다.

물론 일본 중세, 도박은 흥했다.
바둑에서도 내기는 많아, 사실 바둑을 잡기로 인식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더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잡기가 아닌 기(技)와 예(藝)로서 바둑을 자리매김하는 사회적 제도가 존재한 것은 바둑의 역사에서 중요하고도 중요한 이정표였다.

『莊子(장자)』 ‘포정(庖丁)편’이 말해주듯, 기는 오래 닦으면 정신의 도에 이르는 길.
그것이 “기(技)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동양의 정신적 태도였다.

예는 그 사회적 표현. 비유가 될지 모르겠는데…, 불교에서 보살은 몸에 장신구를 많이 달고 있다. 그것은 보살이 예토로 내려온 것을 상징한다. 내기에 이끌리는 바둑도 가치가 있는 법. 예는 그 뒤섞임을 잘 포장하는 도구다.

기와 예로서 상징되는 바둑은 어떤 정신적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정신적인 성장을 잠재하고 있는 기(技)는, 수련하는 자의 마음과 몸에 한줄기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 흔들리는 기운은 어지러운 마음이고, 흔들리는 기운을 몸 가운데 척수로 모으면 그것은 정(定)의 기초가 된다. 그런 식이다.

한 단어, 도덕의 씨앗이 필요한 이유다.
세상은 흔들리는 것. 상징하는 바가 있어 내면에 모아둔다면, 흔들리는 세상에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다. 성장할 수 있고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

도쿠가와 바쿠후(막부) 후반, 흐트러진 문화의 절정에 무너진 일본바둑. 예와 기는 1868년 바쿠후 시대가 종말을 고했을 때 일본바둑이 여전히 자존심을 부여잡을 수 있는 근거였다.

바쿠후 시대 가장 유명한 수법은 슈사쿠의 마늘모다.
<기보11> 흑7이 그것인데, 오늘날도 많이 두는 두텁고도 안목 넓은 수법이다.
영향력이 전(全) 판에 파급된다.

이 수법의 영향력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여기 사이버오로 뉴스/칼럼>기획특집 코너에 특강으로 올린 [두터움] 강의 중에서 ‘조훈현 편’을 찾아보면 된다. 아래 링크.

○● 두터움과 발빠름은 현대바둑의 두 조류 - 사까다와 조훈현 ☜ 클릭

▼ <기보11> 슈사쿠 물레방아 포석

참! 저 흑7은 슈사쿠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리 알려졌지만, 일본 御城碁(어성기) 모든 대국을 기록한『御城碁譜(어성기보)』를 쭉 살펴보면 매우 이른 시기, 적어도 200년 정도 앞 선 시기에 저 수법이 나온다.

부분적인 수법 같지만, 전국적인 포석의 수법이다. 포석의 탐색이 지난했는데, 그 최후의 결과가 19세기 중엽 슈사쿠에게로 귀결된 것뿐이다. 귀에 둔 것인데, 의미는 귀뿐만 아니라 변에도 있다. 이것도 아마 문용직칼럼 [포석의 산책]에 써 둔 적이 있는 거 같다.


6. 1924년 일본기원 설립

시대는 변한다.
경제는 그 모든 것의 기반.

자본주의가 일본에 도래했을 때 바둑은 자본주의 질서에 순응했다.

1924년 법인으로서의 일본기원 설립은 그 정점. 바쿠후 몰락 후 50여 년의 어둔 세월을 견뎌낸 일본 바둑의 중흥.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법인은 유력한 활동 주체.
바둑이 시장경제에서 주체로 등장한 것은, 바둑의 속성에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바둑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재화의 하나로 몸을 일으켰다.

재화는 가치가 있어야 팔리는 것.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잠시 보급의 정의를 하도록 하자.

“재화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

바둑 보급을 정의하면, “바둑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

잠깐 옆길로 들어가겠다.
지난 몇 년 한국기원은 바둑의 세계화 기치 아래 바둑을 세계적으로 보급한다고 해외에 기사 파견도 했는데, 수준 낮은 안목이었다. 세일즈맨 몇 명 파견한다고 해서 물건의 가치가 높아지고, 또 널리 보급될까?

바둑의 정체성을 고급스럽게 만든다면, 그리고 그 정체성을 기사들이 실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 높은 재화에는 수요가 몰려들고, 가치 낮은 재화에는 아무리 강조해도 수요란 없다.

예를 들어, A 국가에 가서 바둑을 가르쳤다. 10명이 배웠다. 그 배움이 남아있을까? 바둑의 문화적 특성과 A 국가의 문화적 특성이 다르다면, 그 10명은 일상에서 바둑 둘 때엔 불편을 느끼게 된다. 평상시 자신의 행동 양식과 다른 세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바둑에 대한 관심은 곧 사그라들 것이 분명하다.

물론 가르침의 효과는 남는다. 하지만 전파될 정도는 아니다. 어림도 없다.
그러면 어떡하란 거냐?
A 국가가 보기에 바둑의 가치가 무지 높다면, 불편과 힘든 과정을 무릅쓰고 바둑을 배울 것이다.

아니면?
예를 들자.

한국기원은 서양과 동남아 구별 없이 기사를 파견했는데–서양에 더 많이 했다–자원의 낭비라고 하겠다. 베트남과 태국에서 바둑이 훨씬 빨리 성장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나라는 중국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나라다. 이강욱 프로가 베트남에서 보급의 높은 성과를 올린 것은 문화적 공감대가 넓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수년에 걸친 이 사범의 노력은 참으로 정성스러운 것으로 대단했다.

가치를 높이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나?

서양인들의 눈에는 바둑이란 게 배우기 힘든 놀이다. 그들의 문화와 아니 맞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일 맥락적 문화를 갖고 있으며 중국은 다맥락적 문화를 갖고 있다. 바둑은 다맥락적 문화에서 탄생한 놀이다. 그러니 이렇다. 서양인에게 바둑은 배우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놀이. 비용이 높으면 바둑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바둑에 높은 가치를 매기거나, 배우는데 별 문화적 저항이 없는 나라부터 먼저 바둑을 보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보다 쉽게 배울 것이고, 또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바둑이 탄생한 중국과 비슷한 문화적 맥락을 가진 나라부터 선택하면 무난할 것이다.

서양에는? 이번 알파고 사건이 시사하듯이, 바둑의 성가(聲價)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 성가가 높아지는 게 가치가 높아지는 것. 바둑의 구입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높아진다. 그렇지만, 알파고 경기 때 한국기원은 서구의 기자들 앞에서 바둑의 가치에 대해 강연 한 번 열지 않았다. 하사비스는 강연을 다녔다.


일본기원이 제시한 바둑 재화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일본사회가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전통과 정신의 보존, 그것이 일본기원이 제시한 바둑의 시장 가치였다.

바둑을 대하는 엄중한 자세, 사흘 걸려 한 판 두는 정신의 지난함,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타이틀전이 제시하는 영웅신화, … 그런 것이었다.


▲ 엄숙한 대국장.

우리도 알다시피, 일본기원의 노력은 가볍지 않았다.

6개월에 걸친 명인은퇴기.
1~2년에 걸친 10번기 승부.
보다 완벽한 반상을 찾고자 하는 상담기.
혼인보와 명인이라는 이름(즉, 전통의 가치)을 막대한 돈과 교환하는 상술(商術).
9줄, 15줄의 실험.

얼마나 안팎이 잘 맞아들어 가느냐?

그건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대국장 분위기는 처음과 끝이 다르다. 중간은 말할 것도 없고. 대국자의 자세가 일관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반상의 긴장은 여하튼 중간중간 풀어져야 한다.

사진을 보자. 일본 바둑잡지에서 뜬 거라 그닥 화질이 좋지 않다.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기사는 오타케. 왼쪽편 옆에서 바둑 보는 기사는 슈코. 카메라맨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장면을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다. 대략 중반에 가까워지면 이런 현상 자연스럽다. 이상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뭔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불일치되는 것이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 대국장의 질서는 약간씩 깨진다.


▲ 제한시간이 긴 도전기도 자세가 한결같을 순 없다.

하지만 그 불일치가 있다고 해서 상징 노력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불일치가 우리의 자연스런 모습이라, 이해하고 또 극복해야 할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린 언제나 낮은 정신의 높은 승화를 요청한다. 일본기원이 내세운 가치는 바로 그 승화의 노력이었기에, 바둑의 가치 또한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바둑 두는 재미가 첫째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어두운 기원에서 두든, 진탕한 술집에서 두든, 맑은 산사에서 두든 재미야 같다?
그렇지 않다.

바둑을 두기만 하는 것은, 그 속에 갇히는 것.
그것은 소외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두되, 두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포장하는 것.
우리가 승화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심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포장은 관심을 두는 기술.
거리를 두는 기술.
거리와 관심은 명상과 도덕 교육에서 가장 좋은 도구 중 하나다. 잘만 하면 담담한 즐거움이 온종일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즐거움에 한정해서 말하면, 즐거움의 형식과 담는 그릇은 즐거움보다 앞서는 현상이다.


일본기원은 운도 좋았다.
바둑을 매개할 수 있는 신문이 크게 일어났고, 일본경제가 성장했으며
일본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기세가 등등해 안목 또한 국제적인 수준으로 높아졌다.
14세의 우칭위안을 일본으로 데려와 모든 일본기사들이 K.O 당할 것을 예감해도 좋았다.

물론, 정치군사적 제국주의의 재앙에 대해서야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에 끼친 반인륜적인 범죄야 더이상 나쁜 것을 들 수도 없겠지만.


아참! 기풍의 다양성!

이상한 현상 하나 있다.

왜 요즘엔 그렇게 기풍의 다양성이 많이 보이지 않지? 한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1930~80년대엔 그렇게나 많은 다양한 기풍이 있었는데 말야.

사카다의 면돗날, 다카가와의 물 흐르는 듯한 평명(平明), 린하이펑의 대륙적 기질, 가토의 선 굵은 밀어붙임, 이시다의 컴퓨터, 다케미야의 우주류, 조치훈의 엄밀, 조훈현의 바람, 슈코의 호방….

이유가 있다.
1924년 일본기원의 설립과 1930년대 신포석 혁명에 그 원인이 있다.

19세기 말까지 일본은 4대 가문에 의해 수법이 전수되었다. 당연히 개인은 가문에 종속된다. 사고의 범위도 힘도 종속이 된다. 작은 가문에서 작은 인물이, 큰 가문에서 큰 인물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기원. 마침내 개인이 전면에 등장하는 조건이 구비되었다. 이제, 반상에서는 스스로 일어서야만 한다. 의지할 곳은 자신밖에 없다.

때마침 신포석의 우주관과 철학이 등장했다. 신포석의 철학은 세세한 관념 같은 것과는 수준과 차원이 달랐다. ‘조화(調和)’ 중국 2천년 철학을 관통하는 관념이 바둑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큰 관념은 영향력이 말할 수 없이 크고도 넓다.

알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적어도 1980년대까지 반상은 신포석의 아이디어 밑에서 그 아이디어를 개인이 해석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시대적 조건.
해석해야만 하는 큰 관념.

다양한 기풍의 발현은 필연적이었다.


▲ 수천년 바둑사에 가장 큰 반상 혁신을 이끈 기타니(왼쪽)와 우칭위안의 '신포석 혁명'. 지고쿠타니 온천에서 함께 신포석을 연구하고 다듬을 때(1933년)의 사진. 지금 우리가 대하고 있는 바둑의 패러다임은 이 한장의 사진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 신포석 - 중국의 철학과 일본 전통의 융합

20세기의 반상을 혁명했던 1930년대 신포석 혁명.
3천년 바둑사상 도샤쿠 포석과 함께 가장 큰 반상 혁신을 이끈 착상.

그것의 배경에도 놓쳐서는 아니 되는 사회 문화적인 요인이 있었다.

먼저 꼽고 싶은 것은 우칭위안의 도가(道家) 지향적인 종교성이다. 도가의 지향은 자연과의 조화. 자연의 이치와의 조화. 시골 내려가서 산다고 해서 곧 자연 지향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뒷날 조화라고 명명된 바둑의 깊은 이치는, 처음엔 평균, 균형, 그런 용어를 맴돌았다. 하지만 우칭위안의 마음 속엔 단어만 다를 뿐이지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중국문화를 대변하는 그런 철학적 개념은 놀라운 관념의 혁명을 낳을 수 있다.

실제로 낳았다. 이와 관련 여러 문제를 어딘가에 써두었는데, 오로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 ‘문용직의 수법>포석의 넓이>신포석 - 포석의 산책 편에 6월 11일~16일’에 4편 있다. 하지만 읽어보니 좀 부족하다. 어딘가에 더 있을 터인데….

이리 보자.

세력 vs 실리
정석 vs 포석
두터움 vs 엷음
가벼움 vs 무거움
속도 vs 견실


이 모두는 상대적이다. 상대적인 것을 인정하는 태도는 곧 전체성(totality)의 안목.
이 모두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임을 알게 해준 안목, 조화.

조화 다음으로 들고 싶은 것은, 일본의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중국인으로서의 우칭위안.

전통은 무서운 힘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조여 온다.
우린 마음대로 전통과 관습을 벗어날 수 없다. 큰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우칭위안은 그런 압박에서 자유로왔다. 일본인이 아니니, 일본의 바둑을 보되 일본의 관념에 무게 눌릴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다.

그 점에서는 기타니도 만만찮은 청년이었다. 바둑의 승부에 앞서는 전통은 없다고 주장한 기타니. 훗날 ‘예(藝)의 구도자’라고 칭송된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딱 그 말이 어울리는 기타니.

기타니는 명인은퇴기에서 보듯이, 기존의 명인 예우에 크게 반발할 정도. 도전자 결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스승과의 대국에서도 이리 토로할 정도. “부담 없습니다. 승부를 앞에 두면 아무런 생각이 안 나니까요.”

기타니가 17세기 이후 일본 전통이었던 3선 위주의 포석을 버리고 중앙 지향적인 세력바둑을 연구한 것은 역시 기타니의 자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자세는 곧 우칭위안의 맑고도 자유로운 영혼과 일맥상통하는 것.

[포석의 산책] 편에 역시 세력에 대해서도 좀 써 두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족하다.
부족한대로 남겨두고 넘어가자.

더욱이 이들이 새로운 관념을 실험하던 1930년대는 사회의 분위기가 평온하지 않았다. 불어닥치는 혼란스런 정치 사회적인 기운은 그 누구든 의식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종교는 절대적인 차원에서의 이론적 진실을 알려준다.
정치는 현실에서의 좌표를 알려준다.

1920~30년대 일본은 국내외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일본의 중국대륙 진출. 정국의 혼란. 사회 경제적 변동. 청년 기사들의 의식을 전통에서 쉽게 떼어놓을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런 시대에 반상의 기운이 크게 돋아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쓰다 보니 그만 기보 하나 넣지 못했다. 신포석 기보.
하나는 봐야지!

▼ <기보12>1934년의 신포석 - 1934년. 백 우칭위안 : 흑 기타니

저 바둑에 대해 2005년 오로에 이리 썼다.

“1934년 우칭위안(백)과 기타니의 작품으로, 나흘 동안에 겨우 64수까지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보면 약간 엉성한 느낌도 온다. 그러나 나흘의 시간을 걸려서 이뤄낸 작품임을 상기하면, 그 얼마나 새로운 세계를 찾는 것이 힘든 일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시 이들의 실력은 첫째 둘째를 다투고 있을 때였다. 지금과 비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힘이 빠득빠득 밀려온다.
반상에서 밀려온다.


8. 다른 문화적 충격이 있나?

아마도 반상의 혁신을 가져온 사회 경제 문화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이상에서 언급한 사건이 전부인 듯하다.

반복하면, 19줄의 성립, 병법설, 중국의 규칙과 일본의 규칙, 일본의 자유포석제와 종가제도, 시장경제 하에서의 일본기원 등장 등이 그것이다.

그런 것이 바둑 역사 3천년 중 알려진 2천년의 큰 흐름을 이루어냈다. 밀려가고 밀려오는 강물. 그 강물 아래 저변에 깔린 힘이다.

반상에서 그 흐름은, 수법의 발견, 포석의 발달, 수법의 비교 분석 이론, 신포석 등으로 발현되었다.

그런 역사적 흐름을 한마디 이론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가설1) 바둑은 시대의 문화적 기운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반상 혁신을 이뤄왔다.

사실 가설이라고 하기 힘든 수준의 문법인데, 그럼에도 쓸 만한 것은 되겠다. 가설은 “if …, then …”의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알파고의 성장을 보면서, 글 하나 쓸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건문을 다듬으면 어떨까.

(가설2) 바둑은 시대의 문화적 기운을 받아들인 상태에서만 반상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어려운 문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문화란 무엇인가.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어떤 경로로 이뤄지나.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만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이 글은 (가설2)를 지지한다.
바둑역사를 보면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그런 문화적 충격이 없을 경우엔, 우린 별다른 충동을 갖지 못한다. 의식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불안하지도 않다. 불안할 정도로 의식이 흔들려야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겠는가.


처음에 밝혔듯이 이 글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먼저 바둑의 변천에 끼친 문화적, 사회 경제적인 요인을 살펴보고,
2) 다음에 알파고의 두점 문제를 설명하는 것.
3) 알파고를 맞이해서 오늘 바둑계를 짚어보는 것.

이제 문화적 요인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들고 싶은 것은 한중일 삼국의 경쟁과 인터넷의 등장이 되겠다.
그 전에 잠시 한국기원 얘기 하자. 일본기원 얘기도 나왔으니 알맞은 때다.
한국기원의 설립은 한국 바둑의 이정표로 작용했다.

일본기원을 모델로 세운 한국기원은 일본기원이 제시한 바둑의 정체성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기원의 바둑 정체성과 기사 정체성을 한국사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바둑은 도박의 도구가 아니다.
바둑은 정서 함양과 지적 훈련에 좋다.
기사들은 바둑을 기예로 인식하여 수련한다.

그런 인식이 높아졌는데, 크게 보아서 바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시대는 가치의 큰 변동을 겪고 있었다. 근대화는 그런 과정이다.

바둑을 포괄해서,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세속적 가치의 확산을 꼽을 수 있는데, 바둑은 세속적 가치의 확산 현상 중 하나가 되겠다.

세속적 가치?
심하게 말하여 도박도 돈이 된다면! 그런 것이다. 카지노가 있지 않은가.

하물며 긍정적인 것이라면!
권투, 노래, 씨름….

구한말, 그랬다지 않은가.
배드민턴을 구경하다가, “하인들에게 시키지, 저 힘든 것을 왜….”

정치경제적으로 앞서 가는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대우 받는 바둑.
일본에서의 조치훈의 활약.
신문 관전기가 전해주는 바둑계의 신화적인 승부 이야기.


그런 것이 사회적 인식을 제고시켰다. 제고된 긍정적 인식은 바둑계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재도 모이게 했다.

1990년대 세계대회 석권은 유창혁과 이창호 같은 인재 없이는 불가능 했겠지만, 바둑계가 크게 발돋움 하는 시대가 그 이전, 즉 1970~80년대에 있었음은 놓칠 수 없는 현실이다. 70~80년대 바둑계는 똑똑한 인재가 들어가고픈 충동을 줄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하는 세계만이 인재를 얻고 키울 수 있는 것. 뛰어난 인재는 위축되는 분야엔 눈도 돌리지 않는다. 성장하는 분야에서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重賞之下 必有勇夫.


▲ 수천년 나무바둑판의 시대에서 키보드, 마우스의 모니터 바둑시대로 신천지를 연 인터넷바둑. 그렇다면 인터넷은 반상의 혁명을 이루어냈는가?

자, 이제.
1990년대 이후의 한중일 삼국 경쟁과 인터넷 시대.

격변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국제적인 경쟁과 인터넷은 반상의 혁명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바둑계의 변화를 격렬하게 몰고 오긴 했어도 반상 위의 변화를 이루어낼 충격은 아니었다.

왜 그럴까.

이제 반상에서 인류가 밝혀낼 것은 더이상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유의 충격을 줄 만한 것이 아닌 때문일까.

인터넷 혁명은, 지식을 다루는 방식 이상의 혁명이다. 세계를 좁혔다든가 삶의 근거와 방식을 혁신한 것은 잘 알려진 것. 정치와 경제, 문화에 미친 영향은 당연히 압도적이고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변화가 반상 혁명을 이끌 충격을 주지 않았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
하지만 반상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반상의 사고에서 새로운 것은 1930년대의 신포석 이후 나타난 적이 없다.

새로운 포석, 새로운 정석, … 많고도 많이 실험되었지만, 사고의 혁신을 몰고 온 적은 없었다. 인식에서나 패러다임 수준에서나 반상을 흔들 정도의 소동(騷動)은 없었다.

판팅위 9단이 “정석 같은 사소한 거 말고, 관념의 창조를, 나는 원한다.”고 했지만 실로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했을 것이다.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마음이라 불리는 게, 그야말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 충격이 없다면 마음은 일상으로 흐른다. 그렇게 지체되고 시간은 지나간다.

물론 판팅위는 뛰어난 기사다. 요즘엔 자신의 독특한 면이 오히려 무뎌진 것처럼 느껴지는데, 뭐,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기보13>의 정석은 90년대 수년 동안 바둑계를 휩쓴 시도.
하지만 그뿐이었다.
부분적인 연구는, 그것이 부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아무런 관념적 의문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되었기 때문에 작은 각성 하나 이루어낼 수 없었다. 당연한 귀결이다.

▼ <기보13> 실험이 많았지만 관념의 모험에는 이르지 못한 정석

냉정하게 말해 1930년대의 신포석을 능가할 만한, 신포석에서 도출된 두터움의 이해에 버금가는, 18세기 도샤쿠의 포석 혁명을 돌아볼 정도의, 17세기 도세키의 수나누기에 비견될 만한, 그런 창조는 없었다.

왜 ‘냉정하게 말해’ 그런 표현을 방금 썼을까?
좀 따분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저어되는 일’.

1930년대의 반상에 비하면 오늘의 반상은 따분하다.

이 글은 잠정적으로 이런 결론 내리고 있다.

이제, 인류는, 반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발견했다!

자신할 수 있는가?

1) 19줄 반상에서 변과 귀, 중앙의 가치에 대한 비교 평가가 지난 400년간 이루어졌다. 반상의 평면적인 이해다.

2) 감성의 발현으로 형상의 의미를 다루는 두터움과 가벼움, 발빠름과 발느림, 그런 것이 이루어졌다. 1930~90년 정도에서 충분히 다뤄졌다. 반상의 입체적인 이해라 할 만하다.

3) 한중일 수백 수천의 기사들이 바둑을 두었다. 1930년대 이후 이제 거의 백년이 가깝다. 정보는 손쉽게 교환되었다. 20세기 이전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다. 한국과 중국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정보교환 덕분이다.

이보다 더한 사고 실험의 장(場)이 또 있을까?
가히 2천년 역사를 100년에 압축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4) 아쉽게도 제한시간과 덤의 변동은 반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혁신을 안겨주지 못했다. 두터운 바둑을 선호하는 영향 정도는 미쳤지만 말이다.


한국에 국한해, 다음 요약 정도면 족하겠다.

한국의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바둑의 기반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전에 그만 삼국의 경쟁 시대가 들어섰고, 국제적인 성과로 인해 국내의 기반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 그 결과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지 못해 프로를 양산했다는 것. 내실에 비해 프로의 숫자가 많아졌다는 것.

인플레이션이 멈출 때 왜곡된 성장의 폐해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적정수를 훨씬 넘은 프로의 수. 바둑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허약했기에 신문 쇠퇴 후 초래된 프로기전의 공동(空洞)화.

아쉽게도 사실이다.
1989년 응씨배 우승 이후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은 한국바둑의 자아팽창을 가져왔다.
실제로는 키가 도토리인데 스스로는 밤톨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아팽창.

자아팽창은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효과와 같은 것을 가져온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무책임하게 된다. 좋은 재화를 공급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1990년대 부실한 책의 범람은 바로 그러한 자아팽창의 효과라고 할만하다. 많은 책들이 정상급 기사의 이름만 내세웠고 그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책을 감수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책을 안 읽는 세상이라고 해도
바둑책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해도

글쎄다. 이 글이 지나친가.

하지만 이번 알파고 이후 나온 책만 봐도.
지난해 이세돌-구리 10번기 이후 나온 해설책만 봐도.


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한국바둑에는 희망이 많다.

1960년대 바둑계가 성장할 때 바둑에 들어왔던 소년과 청년들은 이제 50~60대. 1990년대 바둑교실 소년들도 이제는 30대. 바둑 연령층의 다양화는 바둑의 세계에 큰 힘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글의 뒤편에서 다루겠다.

많이 기다리셨다. 바야흐로 알파고가 등장한 시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앞선 바둑의 시대, 역사와 문화에 대한 흐름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본질을 쉬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관을 거쳐 거실로 들어가듯이.

이제 알파고(AlphaGo) 문제로 들어간다. <3편으로 계속>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DuTum |  2017-01-19 오전 9:42:00  [동감0]    
바둑의 규칙으로만 보자면 361로 어디에 두던지 자유입니다만,
시대나 지역 등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 이런 식으로 두기로 하자라고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입니다.
기록이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문 박사님의 나머지 글이 아직 남아있습니다만 여하튼,
인간 고수의 발상이라는 것이 그러한 문화적 배경에 구속되어 있는 한,
그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착수가 가능한 인공지능에
그야말로 일모라도 밀릴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만 해도 요즘은 10분짜리가 프로바둑 기준이잖아요?
10분짜리 승부에 걸맞은 발상과 반면운영 같은 일종의 유행들이 모여서
바둑이란 이런 것이야 라는 본질처럼 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본질은 또 규범이 되어 자유로운 발상을 옥죕니다.

스케이트 경주가 스케이트 잘 타는 놈이 이기는 거야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경기장이 전부 쇼트트랙이라면 스케이트 잘 탄다는 정의부터 달라지기 마련이고요,
그것은 결국 스케이트를 잘 타고 싶은 사람들의 자세를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하게 됩니다.

문 박사님의 <수법의 발견> 시리즈와 <바둑의 발견>은 고 이광구 선생의 <바둑이야기>
이래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은 서점에 가봐도 마음에 드는 바둑
책이 없더군요. 안영이 선생의 현현각의 부재가 새삼 아쉽습니다.

그나저나, 한국기원이 어떤 식으로든 문 박사님을 모시지 않는 것은 참으로 미스터리네요.
뽀삐3 |  2017-01-18 오후 7:00:00  [동감0]    
예전에 문용직님의 바둑에 관해 쓴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사실 좀 어렵긴 하죠. 그래도 재미는 있었던거 같아요.
보헤퀸 |  2017-01-18 오후 6:00:00  [동감1]    
대충 이런느낌의 글/ 글이어렵다.. 내가무식? 있는척 쓴글!!
亂花散手 |  2017-01-18 오후 5:45:00  [동감2]    
이분 글 보면 항상 느끼는건데 장황하고 두서 없고,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건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좀 명료하게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대자리 주제 벗어나지 않고 명료하게 쓰는 거,그거 어렵습니다. 아무나 그렇게 쓸 수 있는 게 아니죠.  
Seethrough |  2017-01-18 오후 1:22:00  [동감1]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현학적인 글로밖에 안 보이네요.
대자리 |  2017-01-18 오후 1:26:00  [동감0]    
알파고 시대를 이해하려면 알파고를 아는 게 먼저 아닐까?
상대성 원리를 공부하는 애가 석기 제조법과 제조 공방부터 공부한다면?
싸대기 맞을 일이지.
arashino |  2017-01-18 오전 2:27:00  [동감0]    
이런 글을 써주실 만한 분은 문용직 프로 밖에 없습니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 글입
니다. 수 많은 ... 사이에 생략된 말들이 제 가슴을 칩니다. 사이버오로가 연초부터 이상한 기
사들을 올리더니/옮기더니 겨우 읽을 만한 걸 올려주네요.
가만놔둬 |  2017-01-17 오후 10:13:00  [동감3]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흐르는경향이...예전에도 그러셨지만 받아들일 정도였는데 이번 글은 조금 심하시네요. 정신적으로 흥분상태? 그렇다고 폄하? 절대 아닙니다. 전혀! 그럴 능력도 없고. 참고하셔서 조금만 쉽게 풀어주셨으면 바랄 뿐입니다
형남 |  2017-01-17 오후 9:43:00  [동감0]    
가장 인간적인 겨루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인간의 사고영역에 기계의 침투는 명백히 신의 영역을 밟은것이다. 다만, 그걸 인간이 만들었고 기계는 1.2.밖에 모른다는게 위안이긴하다. 그러나 사이보그의 발칙한 일탈에 이렇게 허물어지는 우리를 보는건 ... 서늘한 공포다.
은행정 |  2017-01-17 오후 9:33:00  [동감0]    
인간이 만든 가장 인간적인 놀이기구...가장 인본적인 놀이기구...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장기, 포카, 화투 등은 서열이 있고 패 하나당 가치가 다르다...허나 바둑은 처음과 끝이 같다...돌 하나 하나가 같다...높고 낮음도 없다...크고 작고도 없다...위와 아래도 없다...평등하게 하나씩 교대로 두는 놀이...가장 민주적인 가장 인간적인 가장 인본적인...그러면서 가치를 가르는 가장 효률를 가리는 놀이...가장 자본주의적...시대의 문명적 아이콘...단순 승부를 떠나 바둑이 지닌 깊은 뜻 의미를...알파고가 알겠는가?
mariana |  2017-01-17 오후 6:20:00  [동감0]    
문용직선생님 같은 바둑 글쓰는 분이 우리나라 바둑계에 꼭 필요한 분입니다.
강릉P |  2017-01-17 오후 5:30:00  [동감0]    
제2의 포석형멱을 기대해 봅니다..
줌업진스 |  2017-01-17 오후 5:19:00  [동감0]    
십단전이니 바둑의 신이니 하는 인간도취적 개념이 이제는 바둑에서 사라질것이라는것은
알파고가 아니더러도 알고있어야할 인간의 오만함일뿐.
이제라도 바둑계가 정신차려서 바둑의 본질을 승부와 수싸움에 치우치지말고 철학과 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계속해서 누가 더 강한가라는 게임으로만 인식한다면 언젠가는 알파고들만의 게임으로 전락하고 말것입니다.
gumlong |  2017-01-17 오후 3:46:00  [동감0]    
알파고의수법도 결국 사람들이쓰는 정석 행마 포석이다..
그것을 좀더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것 뿐이다..
알파고에게 인간의기보를 주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자가학습을 시켰다면 아직도 18급바둑을 두고 있을정도로 발전속도가 느릴것이다..
이런정도의 포석이론 정석형태들을 만들어낸 인간이 대단한거다..
바둑의 총발전으로 보면 95퍼센트는 사람들에의해 이뤄진거고 5퍼센트가 알파고에의해 더해진거다..
소수겁 |  2017-01-17 오후 3:10:00  [동감0]    
그냥 은퇴해있는게 낫겠습니다.
맹골수로 소수겁쟁이들이나 이런데 나오지 말았으면...  
조국의별 |  2017-01-17 오후 2:50:00  [동감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sy9226 |  2017-01-17 오후 2:38:00  [동감1]    
인공지능 자율 자동차가 사람보다 빠르다고 장,단거리 달리기가 없어져버리거나 인간이 자동차보다 느리니 이제 달리기는 필요 없어. 라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바둑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ssy9226 |  2017-01-17 오후 2:33:00  [동감1]    
바둑에 대한 넓은 이해와 안목에 대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문프로님 같은 분이 바둑계에 계시다는게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파고가 출현하여 인간의 바둑이 쇠퇴하리란 단편적 생각보다 이를 기회로 삼아 도약하는 길을 찿고 융성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FirstPage PrevBlock   1   NextBlock LastPage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