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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야기④ "죽은 말한테 채였답니다!"
라이벌이야기④ "죽은 말한테 채였답니다!"
[바둑수첩] 정용진  2017-04-21 오후 04:20   [프린트스크랩]
그대에게만큼은 질 마음 추호도 없다네!
86년 1월초, 제10기 기성전 방어전(도전1국)을 10일 남겨둔 시점에서 조치훈이 심야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상사가 터졌다. 이때 의사의 극구만류에도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바둑을 둘 수 있는) 오른손이 남았다”며 기어이 둔 ‘휠체어 대국’. 전치 3개월에 최소 40일간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 몸으로도 숙적 고바야시 앞에 나타난 조치훈. 이쯤되면 할말이 없다.


바둑은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이라고 한다. 감독이나 트레이너가 따로 없으므로 어디까지나 혼자 결정하고 혼자의 힘으로 싸워야 하는 게임이다.

반상의 포레스트 검프!
바둑의 승부는 마라톤의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처럼 숨가쁘고 아득하며 외롭다. 먼길일수록 혼자 독주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나란히 보폭을 맞추어 뛰는 게 덜 힘들고 의욕이 솟는다. 마라톤의 신기록을 보면 대부분 한 선수의 독주에서보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한 선두다툼 경쟁 속에서 작성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벼랑 끝의 승부’라고 하는 바둑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씩 돌부리가 되어 발목을 채는 경쟁상대가 있을 때 더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다. 때로 회복하기 힘든 자상(刺傷)을 주기도 하고 때로 견제와 가속의 리듬을 주기도 하는 그 주행의 동반자를 우리는 ‘맞수’, 흔히 ‘라이벌’이라 부른다.

라이벌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시대를 타고나야 하며 하늘이 내려야 한다.
50~60년대의 조남철, 60~70년대의 김인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출중한 기예를 지니고도 고작 10년 독주 끝에 시든 것도 따지고 보면 팽팽한 긴장감과 투지를 불어넣어 줄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남철 9단이 김인 9단에게, 김인 9단이 조훈현 9단에게 시대의 바통을 넘긴 건 뛰어난 후학의 출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 스러진 경향도 있다. 대적할 만한, 그래서 탱탱한 긴장과 승부욕을 자극하는 맞수를 갖지 못하다 보니 그만 적정선에서 안주해버린 느낌이 짙다.

김인 9단만 하더라도 일본 유학시절엔 ‘김(金)-죽(竹)-림(林) 트리오’ 소리를 듣던 기재였다. ‘김-죽-림’이란 한국의 김인(金寅), 일본의 오다케(大竹英雄), 중국의 린 하이펑(林海峰)을 말하며 이들이 곧 일본바둑(그때는 일본무대가 세계무대를 의미했다)을 주름잡을 것으로 평가했다. 평자들의 예상대로 오다케와 린 하이펑은 일본바둑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패했고, 나이 50이 넘어서도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김인은 무대가 작은 한반도를 호령하기는 했으나 두 기사에 비해 장수를 누리지 못했다.

▲ 370번째 조-서전. 2015년 5월8일,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2014~2015 시니어바둑클래식 왕중왕전 결승. 조훈현 9단(왼쪽)이 서봉수를 208수 만에 백 불계로 이겨 왕중왕에 올랐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젠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 예전같이 최정상무대 결승에서 마주칠 일은 없으나 시니어기전에서는 여전히 독보적으로 우승을 다투고 있는 두 사람. 여전히 말을 주고받지 않고 복기도 없다. 젊은날처럼 승부를 확인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곧장 바둑통에 돌을 쓸은 뒤 서둘러 자리를 뜨긴 하지만, 라이벌에 대한 인정과 존경은 여전히 마음에 담고 있다.

이런 면에서 조훈현, 이창호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조훈현 9단에게는 서봉수라는 맞수가 있었고, 이창호 9단에게는 유창혁이라는 ‘맞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도장에서 동문수학한 고바야시 고이치와 조치훈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알피니스트들의 등정담이 반상 승부사에게 오면 “라이벌이 거기 있기에 싸운다”로 바뀐다.

바둑격언에 반전무인(盤前無人)이란 말이 있다. 바둑판 앞에 사람 없다는 말인 즉, 상대를 의식하면 진다는 뜻. 그러나 상대도 상대 나름. 그가 ‘철천지 원쑤(?)’ 라이벌일 땐 사정이 다르다. 특히 꼭 이겨야 하는 승부판에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반드시 밟아주어야만 “음메~ 기(氣) 사는” 법이다. 그런 판에서 약세를 한번 보이기 시작하면 라이벌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다. 라이벌간의 싸움은, 이미 그 다음번 대결에 미칠 영향까지를 염두에 두고 벌이는 ‘기(氣) 싸움’인 것이다.

적절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치훈 9단과 고바야시(小林光一) 9단은 바둑의 ‘바’자만 알아도 아는 일본바둑계를 대표하는 숙명의 라이벌이다.

1984년 일본 본인방(本因坊) 리그 맨마지막 판에서 조치훈 9단과 고바야시 9단이 만났다.
이때까지 성적은 둘 다 저조하여 조9단이 6연패, 고바야시9단은 3승3패. 그러나 고바야시9단에겐 이 판의 결과에 따라 리그 시드 여부가 걸렸다.

도전권은 말할 것도 없고 시드 잔류조차 물건너간 조9단으로선 어차피 패전 처리용 대국이므로 다들 그가 대충대충 두다가 적당한 선에서 시원하게 던질 것이라고 믿었다. 전력투구할 이유가 전혀 없는 바둑이니까. 그러나 딱 한 사람, 고바야시 9단만큼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도전권이 걸린 중차대한 대국이 아니었으므로 일본기원 그 누구도 두 사람의 대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음날 한 모임에 고바야시 9단이 나타났다. 누군가 문득 어제의 결과를 물었고, 그는 싱글벙글하는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죽은 말한테 채였답니다. 치훈이 녀석, 나하고 둘 때만 진지하거든요. 허허. 하지만 그는 열심히 두어주었으므로 졌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게 라이벌이다.
한․일간 축구경기나 연․고전에서 보듯 맞수의 대결은 경기외의 심리적 요소가 많이 작용하여 승부가 마치 럭비공처럼 예측불허로 튀곤 한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져도 맞수에게만큼은 져선 안된다는 독기와 오기가 작동하므로, 그래서 더더욱 재미있다.

비록 맞수는 괴롭고 얄밉기는 해도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는 마부와 같다. 그런 면에서 평생 조훈현 9단의 그늘에 가려 2인자 딱지를 떼지 못했던 서봉수 9단의 말은 참으로 멋지다.

“남들은 내게 조훈현이란 천재가 없었다면 당신이 넘버원이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난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조훈현이란 스승이 있었기에 더 발전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행복했다.” <스포츠 서울>

▲ 헛웃음만 나오지요~ ^^;; "치훈이 녀석, 나하고 둘 때만 진지하거든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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