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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야기③ 조치훈-고바야시 ‘반상 30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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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야기③ 조치훈-고바야시 ‘반상 30년 전쟁’
| 정용진 2017-04-17 오후 05:36 [프린트｜스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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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히 평행을 긋는 레일처럼 운명적이고 서로의 인력(引力)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 조치훈(오른쪽)을 딛고 올라섰을 때 고바야시의 영광이 있었고, 고바야시를 끌어내렸을 때 조치훈의 광영이 있었다. (사진제공/일본기원) |
한국에 조훈현과 서봉수라는 당대의 걸출한 라이벌이 있다면 일본엔 단연코 조치훈과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가 있다.
60년대 말부터 90년대 말까지 약 30여년 간 치열하게 싸웠으니, 1455∼1485년까지 잉글랜드 왕권을 놓고 랭커스터가(家)와 요크가(家) 두 귀족 가문이 30년간 싸운 장미전쟁에 비유할까.
두 사람은 2016년까지 129합을 싸웠다. 통산전적을 보면 조치훈 9단이 66승 63패로 막상막하다. 그렇지만 결승과 도전기의 타이틀 성적만 따로 놓고 보면 조치훈 9단이 15승 9패로 앞선다. 여기서 다시 일본의 7대 기전(도전 3번기나 5번기, 혹은 7번기로 치르는 랭킹1∼7위까지의 기전)만 비교하면 9승 2패로 격차가 확 벌어진다. 조치훈 9단이 큰 승부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70∼80년대 20년 가까이 도전무대를 독점했던 한국의 조훈현과 서봉수가 90년대에 들어서자 이창호라는 천재에 밀리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조-서가 누가 신흥강자 이창호에 도전할 것인지 ‘도전권’을 놓고 다투는 신세로 전락했을 때에도 조치훈과 고바야시는 10년 이상을 더 버티며 새천년(2000년) 직전까지 일본바둑 정상무대를 점거했다. 급속히 떠오르는 한국, 중국과 달리 일본바둑이 대형 신예기사를 배출하지 못한 탓에 두 사람의 대결구도가 좀더 지속된 면이 있긴 하나, 다르게 해석하면 조치훈-고바야시의 실력이 그만큼 출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싫든 좋든 두 사람의 영욕의 세월을 말하려면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4,000년 바둑사에 필생의 라이벌이 몇 있을까만 이 두 사람이야말로 영원히 평행을 긋는 레일처럼 운명적이고 서로의 인력(引力)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였다. 조치훈을 딛고 올라섰을 때 고바야시의 영광이 있었고, 고바야시를 끌어내렸을 때 조치훈의 광영이 있었다.
신예 때는 고바야시가 한발 앞서 달려...라이벌 1라운드는 조치훈의 판정패
하지만 3대 타이틀은 조치훈이 먼저 획득
스타트는 4세 연하의 조치훈이 먼저했다. 4세에 바둑돌을 잡고 6세에 이미 아마5단급의 실력에 도달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본에 건너온 천재가 조치훈이었다면, 고바야시는 초등학교 3학년 때에 바둑을 시작한 내성적이고 얌전한 소년일 뿐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기타니(木谷 實)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갔는데, 이때 네 살 연상인 고바야시는 허리에 장난감 권총을 차고 다니는 초등학교 3학년의 꼬마 조치훈에게 흑을 잡고 두었다. ‘저런 꼬마에게 내가 지다니….’ 부끄럽고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조치훈은 그에게 자극제였고 경쟁의 대상이었다. 내성적인 고바야시가 남몰래 칼을 갈기 시작한 지 1년 반. 10세 이전에 입단하리라던 조치훈을 밀어내고 그보다 훨씬 늦게 입문한 고바야시가 예상치도 않게 1년 먼저 입단해버린 것이다. 그 순간부터 정상 관문의 코앞에 이르기까지는 항상 고바야시가 한발 앞서 달렸다.
가장 촉망받는 신예주자였던 두 사람은 72년 신예토너먼트전과 수상배쟁탈전 결승에서 연속 맞닥뜨렸으나 고바야시의 연승으로 끝나고 만다. 그 해 고바야시는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그는 각종 본선에 명함을 내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77년 랭킹5위 천원전을 획득하며 고바야시시대의 당찬 도래를 예고했다. 여기까지는 제1라운드. 조치훈의 판정패였다.
그러나 메이저 기전인 3대 타이틀 무대 입성은 정작 조치훈이 빨랐다. (일본의 3대 기전은 타이틀 상금액수 규모로 랭킹1위 기성(棋聖)전, 2위 명인(名人)전, 3위 본인방(本因坊)전을 말하고, ‘대삼관(大三冠)’이란 이 3대 타이틀을 한 사람이 동시에, 한손에 움켜쥐었을 때 붙이는 호칭이다.) 한발 처져 달리던 조치훈이 어느 순간 욱일승천의 기세로 치고나오더니 80년 명인을 시작으로 본인방을 거쳐 83년 랭킹1위 기성까지 휩쓸며 이른바 ‘대삼관(大三冠)’을 달성, 열도바둑을 천하통일해버리면서 입장이 뒤바뀌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은 수면위로 떠올라 본격적인 불을 뿜기 시작했다.
라이벌 2라운드는 ‘대삼관’ 달성한 조치훈의 독보적 질주...
85년 명인 빼앗으며 반격에 나선 고바야시,
유명한 휠체어대국 펼치며 라이벌 3라운드 승자로
일본팬들은 외국에서 온 용병 일인자보다는 자국의 바둑황제를 원했다. “조치훈의 맞상대는 고바야시 뿐”이라는 팬들의 여망대로 마침내 고바야시는 82년 본인방전에서 조치훈의 첫 도전자로 나서 자존심 회복을 별렀다. 그러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4:2로 고배를 마시며 숙적 조치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조연노릇만 하고 말았다. 이 시절, ‘대삼관’을 달성한 조치훈의 시대가 참으로 화려하기만 했다. 두 사람의 라이벌사로 보면 2라운드 격이었다.
▲ 월간바둑 85년 10월호에 실린 두 사람의 명인전 도전7번기 1국을 소개한 화보. "예상했던 만남, 예측 못할 승부"라고 뽑은 제목에서 보듯 마침내 올 것이 온, 필연코 마주칠 사람들의 대결에 대한 설렘과 궁금증을 잔뜩 담은 것이었다. 고바야시 고이치는 3년 전 본인방전에서의 첫번째 도전기에서는 실패했으나 두번째 도전에서는 최종 7국까지 아슬아슬한 접전을 펼친 끝에 조치훈의 명인 6기 연속 제패를 저지하며 타이틀을 쟁취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본격적인, 기나긴 타이틀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고바야시는 곰의 쓸개를 핥는 심정으로 절치부심하다가 3년 뒤인 85년 명인전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기어이 4:3으로 대망의 3대기전 타이틀 입성에 성공함으로써 대반격의 교두보를 구축했다. 그리고 내친걸음으로 이듬해 곧장 랭킹1위 기성에도 도전장을 냈다. 흐름은 고바야시쪽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86년 1월초, 제10기 기성전 방어전(도전1국)을 10일 남겨둔 시점에서 조치훈이 심야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상사가 터졌다. 이때 의사의 극구만류에도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바둑을 둘 수 있는) 오른손이 남았다”며 기어이 둔 대국이 저 유명한 ‘휠체어 대국’이다.
붕대를 칭칭 감고 링거를 맞아가며 ‘목숨을 걸고 두는’ 라이벌을 상대로 고바야시는 기성 타이틀을 접수(4:2)하기는 했으나 ‘중상 입은 환자’를 상대로 한 이 싸움은 이미 이기고도 진 도전기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고바야시가 거둔 4승보다 전치 3개월에 최소 40일간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 몸으로 거둔 조치훈의 2승을 더 칭송했다. 참으로 가혹한 운명의 판정이었다. 86년, 고바야시시대가 이렇게 문을 열었다. 개운치 않게 끝난 라이벌 3라운드였다.
▲ 더는 말이 필요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휠체어 대국. 정상적으로 바둑 한 판을 두기조차 버거울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조치훈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무려(?) 2승이나 올리며 6국까지 버텨 혀를 내두르게 했다. 과연 '목숨을 걸고 둔다'는 기사다웠다. 고바야시는 '중환자'를 상대로 4:2의 스코어로 랭킹1위 기성 타이틀을 접수해 바야흐로 '고바야시 고이치 시대'를 열었으나 개운치 않은 승리였다. 진정한 대결이라 할 수 없었기에 이들의 '진검승부'는 조치훈이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돌아온 3년 뒤로 미뤄졌다.
최정상에서 졸지에 밑바닥으로 급전직하한 조치훈은 사람이 달라졌고 나아가 기풍까지 변모했다. 금욕주의적인 분위기를 무릇 풍기던 그였으나 거나하게 한잔 취할 줄도 알았고, 때론 세력바둑을 구사하기도 했다. 전같으면 상상 못할 일이었다. 뭐랄까. 오직 이겨야만 했고 그래서 치열하기만 했던 그의 바둑이 ‘눈물 젖은 빵’을 씹은 이후 그 어떤 인생의 무게가 실렸다고나 할까. 그렇게 3년여간을 주유천하하던 조치훈은 89년 다케미야(武宮正樹) 9단을 꺾고 랭킹3위 본인방을 접수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리고 둘간의 극적인 제4라운드가 펼쳐진다.
라이벌 4라운드...3년 연속 벌인 본인방 도전기가 분수령
조치훈, 8년 만에 일본 일인자 자리 되찾아
맞수 조치훈이 3년 만에 랭킹3위 타이틀 본인방에 복귀하자 기다렸다는 듯 랭킹1, 2위 기성과 명인 타이틀을 보유한 고바야시가 대공세를 폈다. 본인방 타이틀까지 손에 쥐면 ‘대삼관’, 대삼관의 야욕을 앞세워 90년부터 3년 연속 본인방 함락에 나선 것이다. 고바야시는 무엇보다 86년 휠체어 도전기에서 거둔 개운치 않은 승리에 대한 부담감을 대삼관을 달성함으로써 벗어던지고 싶었다.
당시의 기세로 보나 전력으로 보나 본인방 함락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치훈은 벼랑에 몰릴수록 신들린 사람처럼 힘을 내는 사람이었다. 90년 첫 번째 격돌에서 고바야시는 3:1까지 조치훈을 몰아놓고도 내리 3연패하며 패퇴했다. 재차 도전한 91년에는 2연승 후 다시 4연패. 삼세번째로 도전한 92년에는 먼저 3연승. 나머지 4판 중 한판만 이기면 본인방을 수중에 넣을 수 있는 상황까지 몰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이후 내리 4연패로 대역전을 당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92년 7월의 일이다.
3년 동안의 피비린내 나는 전면전은 조치훈의 수성으로 끝났다. 고바야시의 바둑인생은 이때부터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3년에 걸친 본인방 전쟁에서 심한 내상을 입은 고바야시는 2년 뒤인 94년 봄, 거꾸로 조치훈의 도전을 받아 최대 타이틀인 기성(18기)을 2승4패로 내주고 2인자로 밀려나고 말았다. 열도의 왕자가 8년 만에 원위치된 것이다.
▲ 핀치 뒤에 기회. 끝낼 수 있을 때 끝장을 보지 못하면 거꾸로 반격을 당하게 되는 게 싸움판의 양상이다. 90년부터 내리 3년간 전력을 다해 본인방 타이틀 공략에 나섰던 고바야시는 함락 일보직전에서 번번이 후퇴했고, 반격에 나선 조치훈에게 94년 랭킹1위 기전인 기성을 오히려 점령 당하고 만다. 사진은 94년 제18기 기성전 도전3국 모습.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 무렵 고바야시는 13세 연상의 아내 레이코(小林禮子)가 유방암 선고를 받았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갖고 있던 명인마저 95년 다케미야 9단에게 잃는 내우외환을 겪는다. 레이코는 스승 기타니 9단의 딸로서 프로6단의 반상 동반자이기도 했다. 13세에 기타니 문하에 입문하여 승부세계의 험로에 상처받고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에 몸서리칠 때 가장 가까이서 격려해주고 보살펴 주던 연인을 그는 96년 4월 먼저 떠나 보냈다. 투병하는 아내 앞에 고바야시가 마지막 보여준 것은 고작 무관으로 전락한 초라한 모습이었고, 그것은 못내 가슴에 한으로 맺혔다.
무관으로 전락해 2년여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고바야시는 97년 8월 그토록 갈망하던 세계타이틀인 후지쯔배를 우승하며 힘찬 재기의 시동을 걸었다. 그때 시상식장에서 그는 죽은 아내에게 왕관을 바쳤다. “최근 수년 동안은 좋은 일이라고는 없었다. 아내가 건강할 때도 타이틀을 연이어 잃다가 작년에는 아내마저 잃고…. 바둑을 빼면 남는 게 없는 인생이므로 더욱 정진하겠다.” 식장에 운집한 800여명의 관객들은 이 감동적인 장면에 기립박수로 격려했다.
97년 후지쯔배 우승으로 고바야시는 완전히 제 페이스를 되찾았다. 그해 제22기 명인전 도전자가 되었으며 8월말에는 유료TV 기전인 용성전 결승에서도 고마츠(小松英樹) 9단을 이기고 첫우승했다. “컨디션은 아주 좋다. 지금은 12년전 처음으로 명인전에서 조치훈 명인에게 도전했던 때와 똑같은 심정이다.” 조치훈과의 마지막 제5라운드를 앞두고 그는 전의에 차 있었다.
1대2로 싸운다!...마지막 라이벌 5라운드
최후의 승자는 조치훈!
98년 제22기 명인전 도전7번기는 처지가 바뀌어, 조치훈은 다시 두 번째 대삼관(기성, 명인, 본인방)을 보유한 일인자였고 이에 고바야시가 도전자로 다시 나서는 형국. 명인전 도전1국은 9월 10일~11일 뉴욕에서 두어졌다. 고바야시가 과연 조치훈의 대삼관시대에 브레이크를 걸수 있느냐에 관심이 모아진 대결이었다. 조치훈은 뒤로 갈수록, 벼랑에 몰릴수록 힘을 내는 슬로우 스타터였고, 이전 펼쳤던 도전기에서도 그랬듯 서전은 고바야시의 것이었다.
9월 24~25일 재개한 도전2국의 전야제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일본기원 야마나시(山梨) 현 본부가 주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조치훈은 “뉴욕에서의 제1국 때 어리석게도 고인이 되신 고바야시의 부인 이야기를 꺼내서 고바야시 9단을 울려버리고 말았다. 그 승리는 고바야시 레이코 부인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삼관이니까 이번 바둑도 두 분이 함께 달라붙길 바란다”며 유머를 발휘했다. 1대2로 싸우고 있다는 얘기는, 고인이 된 아내를 위해 혼신을 다해 도전하는 라이벌에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고바야시도 이에 맞서 “조명인이 부인을 잃고나면 10년에서 20년은 부활하기 힘들거라고 하였지만, 나는 공부벌레여서 이렇게 빨리 도전자가 되었다. 1국에서 조명인이 실수해 준 덕에 이겼지만 누가 뭐래도 ‘7번승부’ 하면 조명인 아닌가. 도전자가 된 이번 기회를 꼭 살리고 말겠다”며 응수했다.
조치훈의 말마따나 이 도전기는 고바야시가 아내를 잃고 난 이후여서 분위기가 사뭇 비장했다. 1대2의 싸움이라는 말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그래서인가. 도전3국까지 2대1로 도전자가 힘을 냈다. 하지만 조치훈은 과연 시동이 늦게 걸리는 승부사였다. 이후 세 판을 내리 건지며 4승 2패로 명인을 방어했다.
▲ 99년 초부터 펼친 23기 기성전 도전7번기는 두 사람이 메이저 기전에서 마주한 마지막 대결이었다. 조치훈이 4대2로 기성을 방어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에도 자잘한 기전 결승에서 두세 번 더 마주치긴 했으나 온 공력을 담아 선이 굵은 대결을 펼친 무대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명인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고바야시는 굴하지 않고 곧장 제23기 기성전 도전자로 다시 왔다. 99년 연초부터 벌인 이 도전7번기가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겨룬 최후의 타이틀전이 되었다. 기성전 도전무대에서 두 사람이 만난 건 94년 제18기 기성전 이후 5년 만이었다. 86년 ‘휠체어 대결’에서 기성을 뺏앗으며 조치훈의 대삼관시대를 중단시킨 고바야시는 94년 다시 찾아온 조치훈에게 기성을 도로 내주며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직전 명인전 도전기가 고바야시 9단이 아내에게 바치는 투혼이었다면, 23기 기성전에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도전1국을 벌이는 사이 조치훈 기성이 부친상을 당해 ‘애도의 도전기’가 되었다. 99년 1월 14일 도전1국 첫날 아버지 조남석 씨가 84세로 영면했고 유족은 대국에 지장을 줄까봐 이튿날 종국 직후 부고를 알렸다. 라이벌과의 도전기에서 모처럼 서전을 이겼으나 기뻐할 새도 없이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아버지의 영전에 분향할 땐 이미 발인을 마친 상태였다.
두 사람이 일본 7대 기전의 도전무대에서 벌인 승부는 99년의 이 23기 기성전 도전7번기가 마지막이었다. 4대2로 조치훈이 기성을 방어한 이후 2001년 34기 일본조기선수권전과 2004년 NHK배 같은 속기전 결승에서 1승 1패를 주고 받았고, 2011년에 시니어 기사들만 출전하는 마스터컵 결승에서 우승을 다툰 게 마지막이다. 최후의 승자는 조치훈이었다. <바둑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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