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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즐기는 국가 '대만'
바둑을 즐기는 국가 '대만'
세계바둑계를 가다-1편 대만
[해외통신] 함영우  2017-05-01 오후 01:59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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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은 우리나라 바둑계에게 매우 고마운 나라이다. 우선 '대만' 하면 떠오르는 가장 큰 대회는 잉창치 씨가 만든 세계대회 응씨배다. 당시 바둑 선진국을 자처하던 일본도, 타도일본을 외치던 중국도, 그렇다고 우리나라도 아닌 실력상 4등 국가에 머물렀던 대만이 세계최초로 국제대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대회개최는 일본이 후지쯔배로 선수를 쳤지만), 이 바둑올림픽에서 조훈현 9단이 우승함으로써(1989년) 한국바둑이 단숨에 세계정상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응씨배를 만든 대만의 잉창치 회장(왼쪽)에게서 초대 응씨배 우승컵을 받고 있는 조훈현 9단.


이 기사는 창간 50년을 맞은 [월간바둑]이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세계바둑계를 가다’ 시리즈입니다. 해외바둑계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연휴기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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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계를 가다 - 1편 대만

[글/ 함영우 아마7단]
- 세한대학교 바둑정보학과 졸업
- 2008 월드마인드 스포츠게임 한국대표(은메달)
  89~90회 전국체전 페어 금메달
  2015 대만 중정배 우승(프로·아마통합)



개인적으로 대만을 체험하기 전에는 ‘대만’하면 막연히 중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작은 섬나라 정도로만 떠올렸다. 하지만 이 나라에 살면서 국민성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만 바둑계에 대해 비교적 면밀히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 ‘꽃보다 할배’라는 TV프로그램에서 대만 관광지를 소개하면서부터 많은 사람이 어학연수 또는 여행지로 대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해외대회에 참여하면서부터 대만친구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받았고,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결국 2015년 10월 24일 필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중화권 바둑계와 교류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그것도 초등학생 4학년인 제자 한명을 데리고 말이다.

당시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데다 10년 3개월 배운 중국어가 전부였기에 정말 간단한 의사소통밖에 되지 않는 상태였으며 대만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전혀 지식이 없었다. 이렇게 준비가 부족한 탓에 허락해준 가족 말고는 주변사람들이 한사코 만류했다. 특히 아이가 있는 선배들은 혼자 가는 것이면 몰라도 제자를 데려가는 것은 위험성이 너무 크다며 강경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도전을 좋아하는 무모한 성격 때문인지 기어이 비행기에 올랐고, 약 14개월 간의 다사다난했던 유학생활을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바둑 덕에 유학생활이 비교적 순조로웠고,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대만바둑계를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해 본다.

대만바둑계의 구조...4개 단체가 병립해 역할분담

먼저 대만의 바둑계 구조를 보면 크게 대표단체로 대만기원이 있다. 이 외에도 기업에서 후원하는 해봉기원(海峰棋院)과 바둑교육추광협회(圍棋敎育推廣協會), 그리고 응창기(應昌期) 재단으로 각자의 역할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대만기원은 타이페이의 고정(古亭)역 부근에 있으며 우리나라의 한국기원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주 업무는 50여 명의 프로기사들의 대국일정 관리와 연구생 양성, 그리고 각종 대회장소 대여 등이다.

필자는 대만에 막 도착하고 바로 프로기사 친구 한 명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 대만기원에서 정기적으로 대국을 하게 되면서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현재는 빌딩의 한 층을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두 개의 층을 사용했는데 재정난으로 규모가 축소된 것이라고 한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무실과 큰 대국실 하나, 작은 대국실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프로경기가 없는 날은 일반인들이 대국할 수 있도록 큰 대국실을 오픈하는데 프로기사들에게는 모든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준다. 다만 아쉽게도 프로기사들 연구회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대회 때 외에는 프로기사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해봉기원(海峰棋院)은 1997년 바둑을 매우 좋아하는 대기업 석품(石夕品)기업의 회장이 린하이펑(林海峰) 9단과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사위로 맞아들이게 되었다. 장인사위 둘이 마음을 모아 대만바둑계의 발전을 위해 합작해 만든 기원이, 린하이펑 선생의 이름을 딴 ‘해봉기원’이다.

해봉기원의 운영은 대부분 석품기업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며, 상당히 넓은 빌딩에 시설 또한 잘 갖추어져 있다. 프로대회도 자체로 열어 상위권 프로기사들과 나이어린 유망한 프로와 연구생들이 회장의 든든한 후원 아래 바둑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대만바둑이 쇠퇴하지 않고 꾸준히 저우쥔쉰 9단과 같은 강자들을 배출해낼 수 있었던 것은 해봉기원 설립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만에서 실력 있는 프로들은 대부분 해봉기원에서 훈련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품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아 입장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인이고 해봉기원을 찾아온 사정을 설명하니 제자와 함께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넓은 연구실에서 LG배 우승자인 저우쥔쉰 9단(총감독)을 필두로 주 5일(월~금)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바둑훈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바둑도장과 비슷하게 대국과 복기, 그리고 사활문제를 푸는 커리큘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미있는 건 훈련시간 지각시 벌금을 부과하며, 사활문제 시험에도 상금을 걸어 경쟁의식을 심어주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 제자를 맡기고 싶은 생각으로 찾아갔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자유분방하고 소란스러워서 당황스러웠다. 자유로운 연구방식은 한 가지 좋은 방법일지 모르겠으나 한 공간에서 함께 연구하는 장소인 만큼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과연 적합한 훈련방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매번 이런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기왕이면 연구회와 대국장소를 나누거나 리더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한다든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 대만이 자랑하는 간판 프로기사 린하이펑(임해봉) 9단과 저우쥔쉰 9단(오른쪽). 일본에서 유학한 린하이펑 9단은 1960년대 일본바둑을 제패했고, 저우쥔쉰 9단은 우리나라의 서봉수 9단처럼 대만 토종기사로서 처음으로 세계대회(2007년 11회 LG배)를 우승한 기사다.

바둑교육추광협회는 바둑교육과 보급과 관련한 일을 하는 단체이다. 비서장인 장효인(張曉茵) 양을 필두로 대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바둑교류와 보급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바둑교재 개발과 교사양성을 통해 바둑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정부과 연계하여 국제 바둑교류나 바둑행사 개최 등에도 노력을 아까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아마추어 교류전이나 단체전과 같은 행사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응창기재단은 바둑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응씨배를 개최한 고(故) 응창기 회장이 설립한 바둑보급 재단이며, 현재는 그의 아들인 응밍하오 회장이 대표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바둑의 불모지로 여기던 대만에 응창기재단 설립은 대만바둑계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왔고, 대만바둑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응씨배 개최도 있겠지만, 인공지능에도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인공지능바둑 프로그램 바둑대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인공지능바둑 프로그램 개발에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걸었는데, 만약 프로와 7번기를 두어 4판을 이기면 대만돈 4천만 원(한화 약 15억원), 정선에 5번기로 3판을 이기면 2천만 원, 두 점에 3번기로 2판을 이기면 천만 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결국 그 어떤 프로그램도 프로기사를 이기지 못했고 알파고의 출현 전까지 기대했던 목표치만큼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의 인공지능 발전의 초석이 되는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대만바둑계는 응창기재단의 후원을 통해 많은 바둑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었고, 지금의 대만바둑의 밑거름이 되었다. 타이페이에 자리했으며, 재단 내부의 공간들이 바둑시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내부에는 응씨배와 관련된 많은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자체 개발한 응씨룰에 따라 만든 바둑 기자재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참고로 응씨룰은 바둑알이 반드시 흑백 각 180개씩 필요로 한다.

응창기재단은 바둑교육 외에도 아마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위덕배(鈺德杯)인데 매월 대회를 개최한다. 비록 우승상금은 대만달러 5천 원(한화 약 18만 원)으로 크지 않은 액수지만 넓고 쾌적한 시설에서 정기적으로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바둑을 좋아하는 동호인에서부터 바둑기력 향상을 목표로 공부하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필자도 이러한 점이 마음에 들어 여러 번 참여했다. 환경은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오랜만에 열정적으로 바둑을 두면서 무뎌진 바둑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개인 바둑과외 아르바이트 요청까지 받는 등 좋은 기회들을 얻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대만바둑을 과일에 비유하면 알찬 수박 같다고 할까. 막연히 한국에서 볼 때는 푸른색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빨갛게 잘 익은 수박이었다. 결코 바둑의 국가실력으로만 모든 것을 재단할 일이 아니다.

대만에서 바둑이란?
...교육적 인식은 좋으나 프로지망생은 적어


처음 대만에 갈 때만해도 우리나라처럼 프로기사 제도와 대회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프로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장에서 연구생들을 가르치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만 학부모들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녀 학업에 대한 열성이 대단한 편이어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부터는 바둑과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바둑을 배우는 목적 또한 두뇌개발과 인격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인식 때문에 바둑을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매년 아마추어대회 150여 개가 각 지역별 기력 차에 따라 열리는데, 취미양성과 가족여행 삼아 참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대만바둑의 뿌리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보통 유단자급으로 올라설만한 중학교 진학 이후부터는 바둑을 배우는 인원수가 급감하며, 프로기사 지망생들의 수 또한 많지 않게 된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바둑을 배우는 비율은 매우 높아서 어느 대회를 참여하든 항상 수많은 인파가 몰려 성황리에 열리며,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는 이 사업을 통한 수익으로 운영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필자도 여러 대회를 나가면서 대회의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 덕분에 많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친구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인정이 많아 다함께 모여 바둑을 두고 맛있는 것을 먹는 모임을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수많은 모임에 참여하면서 대만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수 있었고 중국어 듣기 실력향상에 매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혹시 대만에 유학을 가게 된다면 꼭 바둑대회에 참가해 성적을 떠나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고, 위와 같은 즐거움을 누리길 바란다.

타이페이에 대안(大安)중학교라는 바둑 특성화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대만에서 유일하게 정규 과목 안에 바둑수업이 있으며, 정규수업 외에도 희망자들에 한해 매주 금요일마다 실시하는 바둑 야간 특훈반도 있다. 5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등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매년 여름방학 때는 특별히 중국 바둑고수들을 초청하여 2주일간 하루 8시간 수업을 하는데, 이때는 대안중학교 학생 외에도 문호를 개방하여 더욱 풍성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수많은 바둑 고수(프로 및 아마7단)들이 탄생했다.

예전에 한국의 모 바둑도장에서 일할 때 여기 학생들이 단체로 방문하여 일주일간 이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었는데, 그 인원수와 기력이 상당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인연 덕분에 선생님이나 학생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중국어로 바둑을 가르칠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즈음 바둑 특훈반과 여름방학반의 사범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바둑을 매개체로 활용하여 학습태도과 인격배양, 그리고 예절 등을 가르치고 있다. 결과도 성공적이어서 학부모들의 반응이 매우 좋은 편이고, 학교의 성적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대만 사람들에게도 바둑을 배우면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 신주시장배 바둑대회 전경.

대만바둑의 성향과 기력 수준

필자는 약 10여 년 전쯤 한국 아마바둑계에서 나름(?) 활약했었다. 그 후로도 꾸준히 바둑교육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 대만에서 대회에 참여할 때만해도 꽤나 자신만만했다. 첫 출전한 대회가 중정배(中正盃) 아마 예선전이었는데, 이 대회는 본선 64강부터 프로가 최대 32명이 합류하는 프로·아마 통합기전이다. 예선전은 제한시간 각 25분에 20초 2회의 속기로 총 6라운드로 진행되었다.

대만 아마추어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대회를 하루에 치른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보통 이틀에 걸쳐 진행됨). 그러다보니 모든 대회가 짧은 제한시간에 20초 혹은 10초 초읽기로 진행(심지어 어떤 대회는 초읽기가 없는 ‘땡바둑’ 진행을 함)되며 보통 6~7라운드로 판수가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변수가 상당이 커서 운에 의해 승부가 결정지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시상은 대회의 규모에 따라 8위 혹은 16위까지 하며, 보통 4위까지 트로피가 수여된다. 상금은 최고 규모의 중정배와 대성배가 10만원으로 우승상금이 가장 크고, 나머지 대회는 5천~3만원까지 그 규모가 다양하다.

필자도 수차례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서야 대만 아마추어들의 속기 실력은 나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물론 제자 앞에서는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말이다).

중정배 본선은 재미있는 부분이, 아마예선 1위부터 순차적으로 프로기사가 배치된 조를 선택하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4명이 한 조로 더블일리미네이션 방식을 통해 상위 2명이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며, 프로는 미리 추첨을 하여 각 조에 2명씩 배정되어 있었다. 순위가 낮은 필자에게 사실상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마 상위권 기사들이 먼저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비교적 희망이 높은 조에 선택하여 들어갔다.

본선부터는 제한시간이 50분에 30초였고, 제한시간이 비교적 긴만큼 변수가 줄어들어 아마추어들의 탈락률이 매우 높았다. 본선 1라운드에서 행운이 따라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고, 결국 생각도 못한 우승컵과 상금 10만원(한화 약 360만원)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이 대회가 유학생활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전환점이 되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대만 프로들과 대국을 하며 느낀 점이라면, 대부분의 대만기사들이 확실히 초반이 강하고 바둑 형태가 좋은 반면 수읽기와 끈기, 그리고 승부감각에 관해 큰 문제를 보였다는 것이다. 필자가 대부분의 대만기사들이 수읽기가 약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빼 손해를 입거나 공격을 해야 하는 경우에 큰 문제점을 수차례 보였기 때문이다.

대만 프로기사들은 예전의 일본바둑과 비슷하게 수읽기보다는 형태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어릴 때부터 사활문제 위주로 공부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행마와 맥 등의 교육을 중시한다. 또한 대부분의 아마추어 대회부터 속기로 일관하여 감각에 의지하는 습관으로 탓에 경솔한 부분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보통 초, 중반까지는 훌륭하게 이끌어나가다가 중반이 지날 무렵부터 급격히 난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생 때 어린시절의 박정환 9단과 함께 도장에서 공부하며 박9단이 사활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학생들에게 수차례 이야기 해줬지만, 이미 길들여진 공부 습관을 고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대만기사들의 가장 충격적인 점은 너무 빨리 포기하는 듯한 모습과 패배 후에도 진한 아픔을 느끼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패배 후 너무 가슴 아파하면 회복이 어려워 다음 라운드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느낀 분위기는 내가 승부해 온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알파고(AlphaGo)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인간은 분명히 대국 중 그 안에서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경험해 봤을 것이다.

요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록 패배 하더라도 얻는 것이 있을 것이며, 패배의 아픔을 잘 다스려 그것을 통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야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성향은 비교적 어떤 것이든 쉽게 만족하는 국민적 성격에서 오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대만바둑계는 우리가 본받을 모습도 많이 있지만 프로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반드시 고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론적으로, 대만의 아마추어의 바둑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활성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학업을 중시하는 대만의 사회 분위기로 바둑을 직업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한 여가생활 혹은 학업에 도움을 주는 하나의 놀이로 생각한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바둑 프로기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매우 적을 수밖에 없고, 교육 분위기도 한국에 비해 치열함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 중정배 시상식. 대만기원 옹밍셴 이사장이 직접 트로피와 우승상금을 수여했다.

대만의 연구생 및 프로지망생 제도

한국에는 권갑룡, 이세돌, 양천대일, 충암, 한종진도장 등 규모가 꽤 큰 바둑도장이 있고 중국에는 네웨이핑, 거위홍, 후위칭 등의 바둑도장이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일본 또한 한국인인 홍맑은샘 사범이 운영하는 도장도 일본바둑계를 대표하는 도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대만은 바둑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도 바둑도장이 몇 개 있는지 뚜렷하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보통 해봉기원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만에는 프로를 지망하는 연구생들이 공부할만한 시설이 없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도장을 운영하기에는 수요자인 학생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 운영이 쉽지는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망한 바둑선수들이 해외로 바둑유학을 떠나 공부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린하이펑, 왕밍완, 장쉬 등 과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만인 프로기사들도 대부분 어린시절 대만과 매우 관계가 좋은 바둑 선진국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 유학생활을 했고, 그 곳에서 프로기사가 됐다. 그들이 일본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대만바둑 발전에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07년에는 저우쥔쉰 9단이 LG배를 우승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비록 지금은 일본의 바둑열기가 줄어들고 쇠퇴하면서 대만바둑계 발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여전히 대만인의 일본바둑계 진출은 꾸준하다. 최근에는 바둑도장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진 한국으로도 바둑유학을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언어문제에 부딪히는 것에 걱정이 크기 때문에 유학지로 중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유학해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진시연, 장정평 부부다. 이 둘은 어릴 때 한국의 권갑룡바둑도장으로 유학 와 한국에서 입단한 뒤 대만으로 돌아가 대만바둑계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만약 한국이 계속해서 이러한 유학생들을 모집하여 좀 더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전 세계적으로 한국바둑의 위상을 올릴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러한 시스템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와 문화차이인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바둑도장은 일단 능숙하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범이 매우 적다. 또한 고정된 시스템 안에서만 교육하는 성향이 있어 외국인이 잘 적응하며 바둑공부에 집중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숙제다.

권갑룡바둑도장(이하 권도장)은 예전부터 대만 유망주들에게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한국 도장 체험 등의 활동을 통해 대만기원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인연으로 2008년 대만에서도 자국에서 연구생 생활을 오래 한 외국인들과 권도장 출신 원생 몇 명에게 입단대회를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적이 있었다. 2008년에는 이정빈이, 2009년에는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7명이 출전하여 이진웅이 입단에 성공(두 명 모두 권도장 출신)하며 그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후로는 대만기원의 원장이 바뀌며 바둑계 체제 또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결국 다시 개방을 취소하여 외국인들의 입단 기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외국과의 교류활동도 뜸해지고 있다.

대만에는 바둑도장이 타이페이에 딱 한 곳이 있는데, 바로 임수평(林修平) 5단이 운영하는 바둑도장이다. 비록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도장 크기와 시설에 비해 학생 수가 10명 남짓에 불과하지만 사범과 학생들이 함께 숙식하며 열정적으로 바둑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덕분에 최근에 학생들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어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아직 젊어 미천한 경력이지만 필자도 그 곳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많이 배웠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교육 프로그램들과 경험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 바둑 모임에서 연구하는 장면. 두 학생은 밤12시가 넘어서도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쓰며 바둑공부에 열중했다.

▲ 대만 바둑모임 단체사진. 바둑을 공부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다.

대만기원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연구생 제도가 있다. 리그전은 주말을 이용해 진행한다. 몇 년 전만해도 대만 남부와 중부지역의 지역 연구생제도가 있었는데, 연구생 인원이 점점 줄어들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바둑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수도인 타이페이로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의 바둑에 대한 학습 열기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만 연구생은 A~D조까지 총 4개 반으로 각 조를 1, 2조로 나뉘어 총 8개 조로 분류해 운영하고 있다. 각 조마다 6명씩으로 총 인원은 48명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프로지망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취미로 바둑을 배우는 학생들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연구생들의 대회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며,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대만의 갓 입단한 프로기사 실력이 우리나라 연구생 4~5조 정도로 보였다.

상위권 연구생들은 대부분 해봉기원과 수평도장의 학생들이며, 만19세가 되면 연구생 자격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입단의 기회도 아예 사라진다. 입단대회는 매년 2회 열리는데 남녀 통합으로 펼친다. 대신 남자에 비해 기력이 약한 여자는 전체 순위에서 7위 안에 들면 입단 자격을 부여해 1년에 총 4명 정도가 프로에 입문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입단의 문호를 더 넓히자는 안건에 대해 많은 분쟁이 일어난 끝에 변화가 일었듯 대만도 몇 년 전부터 개혁된 제도가 실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대만도 아마추어와 연구생의 기력 차이가 명백히 존재하는 만큼 1년에 한 명 정도는 아마추어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좀 더 치열한 경쟁구도를 만든다면 향후 대만 바둑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리하며…한국바둑 해외에 더 눈길 돌려야

대만은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는 나라이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국 프로그램과 한국산 물건들을 볼 수 있고 한국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지우펀, 예류 등의 유명 관광지를 가면 절반 가까운 사람이 한국사람일 정도로 한국과 대만 양국은 교류가 왕성한 국가다.

예전에 한국의 유경민(프로5단) 사범이 타이페이에서 바둑을 가르치며 수많은 연구생들과 프로기사들을 배출하는 업적을 보여주어 한국바둑의 위상을 높인 바 있다. 하지만 현재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에서 후진양성에 몰두하고 하면서 아쉽지만 양국의 바둑교류를 이어줄만한 뚜렷한 연결고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비록 바둑 기력으로는 한국이 대만에 비해 강하지만 분명히 배울 점들이 있다. 양국이 왕성한 교류를 통해 친분을 쌓고 각국의 장점을 서로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한국바둑계가 바둑 선진국으로서 다른 나라들과의 바둑교류에 더욱 관심을 쏟아 그 위상을 높이고 큰 틀 안에서 더 발전했으면 한다. <끝>

▲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대만의 바둑교류는 활발했다. 사진은 1988년 제8회 한-대만 프로기사 교류전.

▲ 더 거슬러올라가면, 한국과 대만의 바둑교류전이 전쟁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1955년 대만에서 열린 1회 한대만 프로기사 교류전에서 이기고 돌아온 한국대표팀을 여의도 비행장에서 환영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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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절수43 |  2017-05-02 오전 8:38:00  [동감0]    
높은이자를 주겠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 많은 이익을 주겠다며 투자를 권유하는 사람, 아무런 피해없으니 보증을 서달라는 사람은 사기하려는 사람이니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런사람과는 접촉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흙 |  2017-05-01 오후 4:57:00  [동감4]    
국가나, 한국기원의 도움없이 자비로 해외바둑 보급의 일익을 담당한 함영우 7단님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참 훌륭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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