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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민의 '대만이야기' 2편
유경민의 '대만이야기' 2편
타이중, 가오슝 바둑협회와의 교류전, 그리고 대만바둑계 역사
[해외통신] 오로IN  2014-05-03 오전 10:10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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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가오슝의 롄츠탄(蓮池潭 )


*이 글은 대구에서 바둑 보급에 힘쓰고 있는 프로기사 유경민 5단이 썼다. 지난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국제로터리 바둑대회'를 참관하며 직접 겪은 바를 적은 한 편의 여행기다. 단순한 대회 참관기를 넘어서 솔직담백한 대만프로기사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대만바둑계 현황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여행기의 생동감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편집은 될 수 있는 한 줄였고 가독성을 위해 1, 2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바로보기 클릭☞ 유경민의 대만이야기 1편


타이중 교류전

다음 행선지는 대만의 중부 도시 타이중(臺中)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딱 우리의 대전과 흡사한 도시인데 관광명소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타이베이와 가오슝을 잇는 중부의 요충지로 타이베이, 가오슝과 함께 대만의 3대 도시로 급성장한 곳이다.

우리가 잘 아는 장정핑이 바로 타이중 출신이다. 장정핑은 한국에서 바둑공부를 마치고 대만에 돌아와 이곳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나도 방학 때면 한 번씩 내려와 얼마간 수업을 도와줬다. 친구 장화이이의 모친도 굉장한 여걸이신데 역시 타이중에서 오래 바둑학원을 운영하셨고 얼마 전 결혼한 화이이의 여동생 장샤오인과 더불어 이 가족은 대만 바둑보급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타이중 가는 길엔 조각박물관을 들렀다. 기념품도 사고 느긋이 움직여 오후 4시를 좀 넘겨 목적지에 도착했다. 타이중바둑협회에서는 직접 친필로 쓴 환영 문구를 걸어 우릴 환영했고 이어 벌어진 교류전에서는 한국 주장 현철영 선수가 도저히 질 수 없는 바둑을 실수하며 화답했다. 교류적 성적은 3:3 무승부.


▲ 타이중시 바둑협회의 환영문구를 든 유경민 5단

만찬은 으리으리한 넓이의 식당을 통째로 빌려 성대하게 벌어졌다. 테이블이 두 개로 나뉘다 보니 나는 엉겁결에 주빈석에서 통역을 맡게 됐다. 타이중의 후원자인 린원빈(林文彬) 회장은 호쾌하고 유머스럽게 좌중을 이끌었다. 특히 와인에 조예가 깊어서 자신이 개발한 와인 마시는 법을 소개하며 여러 번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난 그저 '달달한 화이트 와인보단 진한 레드 와인이 좋다.' 정도인데 확실히 뭔진 몰라도 이날 마신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은 마시는 순간 입안의 다른 기운을 확 정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린 회장은 자신의 술에 대한 애정을 말씀하면서 중국 시인 이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를 보며 시구절과 뜻이 함축된 성어를 설명하는데 제대로 통역을 할 수가 없어 살짝 당황했다.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 술을 마시고, 냄새만 맡아도 그 술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와인 전문가다. 소장하고 있는 와인의 가격을 모두 합하면 대만달러로 약 3억 달러 정도라고 한다.


▲ 와인 전문가 린 회장과의 만찬

또 이 자리엔 타이중 출신의 전도유망한 프로기사 린리샹(林立祥)과 타이중 바둑팀 지도사범 린즈한(林至涵)도 함께했다. 린즈한과는 과거 대만에서 많은 대국을 했는데 감각이 좋고 전체적으로 탄력적인 리듬감으로 세계 정상급 기사와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계산력과 끈기에서는 다소 약점이 있어 내가 이길 때는 주로 역전승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린즈한은 또한 대만 최고 명문인 대만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수재다. 한동안은 주식투자에 빠져 바둑을 소홀히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바둑 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린원빈 회장은 전국체전 타이중팀 실력연마를 위해 린즈한을 초빙했다고 하는데 자기 부인이 유독 린즈한의 수업만은 지겨워 않고 한 시간도 넘게 듣는다며 린즈한을 치켜세운다.

남부 대만, 타이루거 협곡과 안핑구빠오

다음날 우린 타이난을 지나며 관광을 하고 다시 가오슝으로 갔다.

대만의 남부는 북부보다 날씨가 덥지만, 정말 바다다운 바다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남부의 타이난, 가오슝이 진짜 대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아한다. 도시도 타이베이 못지 않게 크다. 생김새는 남부 대만인이 북부보다 피부가 검고 세련되지는 못하게 보인다. 그러나 성격은 열정적이면서 꼭 옛날 우리나라 시골사람을 보는 듯 푸근하다. 더구나 음식이 북부보다 훨씬 맛있다는 장점도 있다. .

대만의 정치상황도 북부의 친중국 국민당과 남부의 민진당으로 극명하게 대치된다. 타이베이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대체로 높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며 중국어를 사용하는 반면, 남부인들은 평소 대만어를 사용하고 술을 마시는 비중도 훨씬 높다. 남부에서의 대만어 인사는 '쟈빠웨이'. 뜻은 '배부르게 드셨어요?'이다.


▲ 유경민의 추천음식. 단자이미엔, 사위이미엔, 루미엔.

최근 한국에서 방영된 '꽃보다 할배'를 촬영하고 나서 관광지로 대만이 부각되었고, 화롄의 타이루거협곡(花蓮 太魯閣)은 전보다 더 유명해졌다. 물론 나도 타이루거는 몇 번 다녀왔었다. 그런데 오히려 방송으로 보며 그 웅장함에 감탄했다.

가오슝에 가는 길에 우린 타이난의 대표 유적지인 안핑구빠오(安平古堡)를 둘러보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혹시 후에 타이난에 가시는 분이 계시면 루미엔(魯麵),산위이미엔(鱔魚意麵), 단자이미엔(擔仔麵)은 반드시 드셔보시기 바란다.

가오슝은 남부의 수도라고 할만큼 규모도 크고 대만인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독창성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아이허(愛河), 보얼(駁二), 롄츠탄(蓮池潭) 등은 꼭 한번 가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리는 다시 가오슝바둑협회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교류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문제의 긴 생머리 주회장이 등장했다. 주회장은 한 마흔 살이나 됐을까 머리를 길게 묶고 바둑을 둔다. 딱 바둑 둘 때만 열심이고 입만 열면 십대소년 같은 익살스러운 캐릭터다.


▲ 주 회장(중앙)은 부동산 재벌로 가오슝바둑협회의 후원자다.

술을 한잔 마시고는 한국어로 '형님!' 하며 술을 따라준다. 주회장의 기력은 아마 4단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마5단 두시는 우리 선수에게 이겼다. 기분이 좋아진 주회장은 우리를 단골 클럽으로 안내했다.

대만친구들이 진빠리 金巴黎(클럽)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우린 먼저 들어와 호텔 근처의 선술집으로 갔다. 이번 여행과 교류를 물심양면 도와주신 채 선생님(蔡振松), 통역을 맡아 무척 고생한 박정아 양, 자신도 모르게 경호를 맡은 고은화 양과 함께였다. 두 학생은 현재 대만 체육대학에 재학 중인데 정아는10m 공기권총을 쏘고 은화는 용인대 유도선수다.

함께 다니면서 은화에게 유도 기술을 몇 가지 배웠다. 정말 살짝 했는데도 산적 양멍윈이 넘어질 뻔 하는 걸 보고 유도의 매력을 느꼈다. 이들이 다니는 체육대학에도 곧 바둑학과가 생기고 채선생님이 교수로 가신다고한다.

채선생님은 "은화가 남자친구가 없는데 린리샹(입학 내정돼있는 프로기사)을 소개해줘야겠어."라고 말한다. 은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 은화(왼쪽)와 정아.

대만의 바둑계

대만이야기를 하는 김에 대만 바둑계에 대해서도 간단히 적어보려 한다.

현재 대만의 바둑계는 다수의 프로기전을 주최하고 후원하는 '대만기원'이 있고, 대만 최대기전인 기왕전을 포함해 세 개의 프로기전과 아마대회를 함께 주최하는 '해봉기원' 둘로 나뉘어져 있다. 대만기원과 사이가 좋지 않던 저우쥔쉰이 주도적으로 만든 '중화프로기사협회'는 한동안 표류했다. 그러다 해봉기원의 린원보 회장이 대만기원과 중재해 저우쥔쉰은 현재 해봉기원을 본거지로 연구생 교육과 프로기사 훈련의 역할을 맡고 있다.

아마추어 방면은 중화민국바둑협회와 앞서 언급한 대만바둑교육보급협회가 주축이다. 지방마다 군소협회가 존재하긴 하지만 전국 조직을 갖춘 단체는 두 협회뿐이다. 중화민국바둑협회가 주로 아마대회와 단증발행, 체육화 등을 담당하고 바둑교육보급협회는 교육과 보급, 바둑 문화 정립에 치중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실제로 대만에서 개발한 바둑용품이나 바둑교재들 수준은 상당하다.

대만 최초의 바둑협회는 1952년에 창설된 '중국위기회'다. 초대 회장은 국민당의 장군이었다고 하는데 대만 바둑계를 움켜쥐려던 응창기 선생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결국은 중국위기회를 장악했다.

응창기 선생은 응씨기금회를 만들어 대만바둑계의 중심으로 우뚝 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독선적인 운영을 우려하는 인사들이 생겨 1988년 중화민국바둑협회를 만들게 되었다. 중화민국바둑협회는 이때부터 아마추어 바둑대회 방면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주도권을 빼앗긴 응씨기금회는 그나마 주최하던 프로기전도 응창기선생의 사망 이후 손을 놓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중국위기회는 최근 대만바둑교육보급협회의 장자오펀 회장이 회장을 맡으며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고 한다.

응씨기금회가 프로기전을 유지하지 못하자 프로기사 천궈싱(陳國興)이 오랜 친구 옹밍시엔을 찾아가 대만기원의 설립을 논의했다. 그렇게 해서 2000년대 들어 대만기원 시대가 열린다. 현재 대만의 가장 큰 후원자인 대만기원 옹밍시엔 회장은 누구 못지않은 바둑광이기도하다. 실력도 아마6단 정도로 녹록치 않은데 내가 대만에 있던 전반 몇 년은 거의 매일 대만기원에 나와 천궈싱 사무총장과 바둑을 뒀다. 천선생이 흑을 잡고도 간혹 져주어서 그의 시끌시끌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모 여자기사는 옹회장이 매일 바둑두자고 하자 난감해서 혼자 운 적도 있다고 한다.

천궈싱 다음으로 사무총장을 맡은 분은 바둑에 대한 이해가 적었다. 같은 프로로서 내게 대만생활의 길을 열어주고 늘 호의적이었던 천궈싱 선생과 달리 바둑계에 무지했던 신임 사무총장은 노골적으로 내게 적대감을 표했다.(이 사무총장은 희대의 동의서 사건으로 기사들의 공분을 사며 저우쥔쉰이 주축이 된 중화프로기사협회 창설의 단초를 제공한다.)

얼마 전 우리도 바둑이 전국체전 시범종목으로 확정됐는데 대만도 작년 10월에 우리의 전국체전격인 전국운동회(全運)에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참가해 대회가 치러졌다. 총 16개 시와 현이 남자단체전(5명 1팀), 여자단체전(3명 1팀), 혼성 페어(남1, 여1)로 나눠 예선 스위스리그를 치르고, 다시 크로스 토너먼트로 1-4위 2-3위가 맞붙어 승자를 가린 결과 남자단체전은 린즈한(林至涵), 샤오정하오 (蕭正浩), 린수양(林書陽)이 포진한 신베이시(新北市)가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여자단체전과 혼성 페어는 헤이자자(黑嘉嘉)가 활약한 타이베이시가 모두 금메달을 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16개 자치단체가 참가하고 우승, 준우승을 수도권에서 차지한 점까지 대만과 우리는 참 비슷한 게 많은 나라다.


▲ 가오슝의 야경

5일 동안 대만을 다시 체험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너무 미리 알아도 그래서 잃는 게 많고 늦게 알면 또 그래서 아쉬운 게 많은 거 같다. 어릴 때부터 바둑만을 뒀던 그 시간, 실내를 벗어나 석양을 보고 바람처럼 산과 바다를 다녔던 대만에서의 시간, 그 골목과 사람들. 바둑의 한수 한수는 중요하지만 금세 잊히기도 한다.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밀린 판을 두고, 또 새로운 판을 준비한다.

그리고 꿈꾼다. 완벽한 명국을 꿈꾸는 사람, 내 맘대로 두고 싶은 사람, 착수를 잠시 쉬고 싶은 사람, 수없이 많은 바둑친구들이 지금 이 순간 바둑을 두고 있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믿는다. 결국, 언젠가는 다시 만나 달빛을 벗삼아 술을 마시고 멋들어진 한수 맛깔나게 놓으며 으쓱 웃을 날이 올 것을. 終.

- 바다에 잠든 친구들의 안식을 빌며 2014年 炅旻


▲ 5일 간의 여행을 함께한 한국 선수 모두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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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달 |  2014-10-16 오후 4:52:00  [동감0]    
여행을 지거 지가 내고 가지요~ㅎㅎ
유사범 수고많았습니다
이제야 글 보네요~^^
색소폰사랑 |  2014-05-11 오후 8:07:00  [동감0]    
대만이야기가 너무 재밌네요
정말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haemosu |  2014-05-04 오전 1:56:00  [동감0]    
오랫만에 사이버오로에서 올려주신 유경민씨의 여행담을 재미 있게 보았슴니다..대만에 대해 좋은 것을 알게 됬네요..작은 중국이란 것과..바둑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등..우리와 흡사한 점이 많은 나라라는 것등..좋은 기회를 주신 관계자분께 감사 드려요~~!
crest1 |  2014-05-04 오전 12:09:00  [동감0]    
여자사진 위주로 올립시다;;;;
난알지롱 |  2014-05-03 오후 11:17:00  [동감1]    
아 뱅기값하구 만찬비용 누가 냈냐니깐두루.. 각자 뿐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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