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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가을날, 더없이 청명한 가을날 인천으로 전국체전 취재를 간다. 10월18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제94회 전국체육대회. 그런데 전국체전 공식홈페이지에는 정식종목 44개와 시범종목 2개의 경기일정만 나올 뿐 아무리 찾아봐도 바둑은 없다. 전시종목의 설움인가. 바둑은 11년째 전시종목에 머무르고 있다. 도리 없이 대한바둑협회 직원에게 바둑경기가 열리는 장소를 물어 찾아가야 했다.

2001년 바둑계는 스포츠로의 정체성 전환을 선언하고 확립을 위한 노력으로 2003년 부안에서 열린 제84회 전국체전에 전시종목으로 첫발을 디뎠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을 보이며 2005년 11월24일 대한바둑협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대한체육회 준가맹 경기단체가 되었고,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2009년 2월 마침내 대한체육회의 55번째 정가맹 단체로 승인되었다.

정가맹 단체가 된 뒤에도 바둑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끊이질 않았다. ‘대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바둑이 어떻게 체육이냐’는 소리가 지금도 바둑인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하물며 바깥사람들의 시선은 오죽할까. 그렇지만 바둑은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가 된 지 불과 1년 만에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며 한국의 종합 2위 수성에 큰 힘을 보탰다. 바둑도 스포츠종목으로서 손색이 없음을 입증하면서 대중에게 체육으로서의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바둑은 여전히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2003년 이후 11년째 여전히 전시종목이다. 전시종목이란 동호인 대회를 말한다. 대한체육회는 전시종목으로 몇 년간 참가하면 ‘시범종목⇨정식종목’으로 인정한다는 오해를 살까봐 지난해부터는 아예 ‘동호인종목’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정식종목은 시범종목이 된 다음에야 절차상 가능하다. 최근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전국체전 종목 입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단숨에 정식종목으로 승인된 예는 없다.

▲ 10월23일 인천 신흥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개막된 제94회 전국체전 바둑경기.

왜 이렇게 지지부진했을까. 여전히 상당수의 바둑팬조차 바둑을 스포츠로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에서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만 탓할 수 있을까. 좀 길지만 외부인의 시각으로 본, 고언을 한번 들어보자.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자 현 전국체전위원회 최종준 부회장(아래 사진)이 얼마전 국회에서 가진 바둑진흥법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무엇보다 바둑의 전국체전 정식종목 입성이 당면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기원이 인정단체에 머물고 있던 2003년만해도 바둑이 전국체전의 전시종목으로 참가한 것은 하나의 진전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아직도 전시종목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벌써 11년째 동호인 종목 대접인데, 바둑에서도 학교 체육과 전문 체육의 연계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전국체전 정식 종목 진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바둑의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은 바둑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시급한 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체전에서 정식종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을 포함한 일선 학교에 바둑부가 만들어지고 정식 체육 과목의 하나로 바둑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정식 과목이 되는 순간 청소년들의 바둑 인구는 크게 늘어날 것이고 자연스럽게 바둑 지도자들의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활 체육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4년 동안 대한민국 스포츠의 최전선 실무 책임자인 대한체육회 총장직을 수행하며 크게 느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스포츠가 국력, 국익, 복지의 모든 것과 연관돼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학교 체육과 생활 체육, 엘리트 체육, 프로 스포츠라는 네 바퀴가 함께 연동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네 부문은 따로 움직이거나 상하위 개념이 아니라 모두 긴밀하게 연계된 개념임을 깨달았기에 그동안 엘리트, 프로스포츠 쪽에 가까웠던 바둑이 학교 체육과 생활 체육 쪽에 더욱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시기라는 데 공감대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988년 세계바둑대회가 창설된 이후 한국바둑은 총 120번의 세계대회에서 68번의 우승(여자대회 제외)을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종목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바둑종주국임을 자랑하는 중국과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일본이 ‘타도 한국’을 외치게 만들면서 국민에게 자부심도 심어주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바둑을 여전히 ‘동호인이 모여 치르는 전시종목’으로 대접하는 현실을 직시하자니, 인천으로 향하는 발길이 가을날처럼 화창할 수 없었다. 체전이 치러지는 주 경기장인 문학경기장 근처에서도 한참 떨어진 제물포의 신흥초등학교 체육관을 찾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이럴수록 누구랄 것도 없이 바둑인 모두가 애정을 갖고 관심을 보일 때다. 이번 체전에 손수 걸음한 이유이기도 하다.

16개 시도, 5개 부문 경쟁, 종합점수로 순위 결정

내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인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경기가 10월23일 오후2시 인천 신흥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이틀간 일정에 들어갔다.

대한바둑협회 산하 전국 16개 시도협회가 참가해 5개 부문별(남자 일반부/여자 일반부/남여 페어부/학생부/어린이부)로 순위를 다투는 이번 대회에는 모두 242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전국체전 바둑대회는 토너먼트로 첫날 3회전까지 치르며 이튿날(24일) 4~6회전을 끝내고 시상식을 거행한다.

대국방식은 총 호선에 덤 6집반이며 제한시간은 각 10분, 30초 초읽기 3회다. 대국은 개인전으로만 진행하며(남·여페어부 제외), 전국체전 토너먼트 채점방식을 적용하여 시․도별 출전선수의 각 부별 입상점수를 합산해 종합점수로 순위를 정한다. 금메달 개수에서 앞서도 종합점수에서 뒤지면 우승을 놓칠 수 있다. 토너먼트 채점방식은 각 부문별 1위 8점, 2위 7점, 3위 2명 5.5점, 5위 4명에게 2.5점의 배점이 주어진다.

동점이 나올시에는 남자일반부→여자일반부→남․여 페어부→학생부→어린이부 입상 순으로 가린다.

지난해에는 서울특별시가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강원도가 준우승한 바 있다.

▲ 인천광역시 김용모 바둑협회장의 환영사
대회가 벌어지는 이곳 제물포는 인천 구도심의 중심이다. 신흥초등학교도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학교로 의미가 깊다. 동북아의 중심도시인 인천에서 전국체전 바둑경기가 열게 되어 기쁘며, 선수단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 대한바둑협회 서대원 부회장의 대회사
내년부터는 동호인 차원의 경기가 아니라 정식종목으로 치를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겠다. 협회뿐 아니라 바둑인 모두가 다 함께 노력하자. 아시안게임 종목뿐 아니라 올림픽 종목에도 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 지난번 인천에서 열린 마인드스포츠 대회에서 싹쓸이는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남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곳이 인천이다. 이곳에서 다시 전국체전이 열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