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학생들의 국제 도시교류전으로 부산이 주축이 되어 이끌었던 ‘세계 4도시 대항전’이 있었다(1993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나중에 북한까지 5도시로 확대). 이붕(李鵬) 김영성 한국기원이사가 2004년 별세하면서 이후 맥이 끊기고 말았지만 우승경쟁보다는 바둑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쌓는 데 기여했던 대회였다. 이러한 어린이 학생 국제대회가 아쉽던 차 아시아 학생바둑대회 얘기를 들었다. ‘4도시 대항전’처럼 도시를 중심으로 한 6개국의 어린학생들이 모인다고 해 처음엔 ‘4도시 대항전’의 연장이거니 했다.
그러나 올림픽파크델 2층 대회장에 들어서니 단상 현수막에 ‘제2회 아시아 平和 학생대회’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다. ‘아시아 학생바둑대회’가 공식 대회명이었고, 4도시 대항전과는 별개의 대회였다. 그런데 가운데 ‘평화(平和)’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대회관계자의 설명은 이 대회 창시자인 일본단장이 꼭 ‘평화’라는 말을 넣어달라고 간청하여 그리하였다는 거였다. 대회 창시자가 일본인이라는 것도 그렇고 대회명에 평화를 고집한 이유도 궁금했다.
올해 65세인 사카 준이치 일본단장은 오사카에서 9년전 바둑교육진흥회를 만들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바둑교육진흥회란 단체도 궁금증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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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대회명은 아시아 학생바둑대회. 그런데 가운데에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오사카의 공립고등학교에서 교감을 역임한 선생님이다. 재직하던 학교는 전국 최초로 바둑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해 아사히신문에 크게 보도되는 등 이목을 끌었다. 고등학교에 바둑교과서를 만들어 이후 5개 공립학교에서도 따라 수업한 것은 이례적이고 획기적이었다. 오사카 교육청에 끈질기게 요청한 사카 준이치 교감의 노력 결과였다. 남들보다 일찍 교감이 되었고 정년보다 5년 일찍 퇴직하기 직전 어린이대회에 참가한 부모 40명이 강연을 요청했다. 바둑을 학교 교과목에 집어넣지 않아도 가르치려면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바둑을 굳이 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론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둑교육진흥회를 설립했다. 학교교육에 바둑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사카 준이치 이사장의 주장은 이렇다.
“여기서 그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간단히 예를 들어 보지요.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금기서화(琴棋書畵)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琴)은 음악이고 서(書)는 서예요 화(畵)는 미술이지요. 그런데 예부터 강조되는 이 세 가지는 모두 학교에서 교과로 수업하고 있지만 기(棋), 바둑은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갔지요? 해서 금기서화에 대해 연구했고 바둑 또한 교과에 꼭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얻었습니다.”
- 혼자서 연구하는 겁니까, 아니면 회원이 더 있습니까?
"회원 30명이 모여 설립했습니다. 대부분 교사입니다. 바둑대회도 그렇고, 이대로 가면 바둑이 술 마시며 즐기는 동아리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인데 5년 안에 꼭 개혁하자는 목표를 세웠답니다. 이른바 신개혁프로그램이지요. 학교수업 기반을 만들고자 책도 쓰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꼭 가르쳐야 하는 내용입니다. 일본이 바둑역사가 깊다 하나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게 바둑입니다. 해서 바둑문화를 알리기 위해 제 퇴직금 700만 엔을 대회에 다 썼지요.”
사카 준이치 이사장이 9년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론을 정립했다는 책자를 보여준다. 제목이 바둑문화와 학교교육이다. 책 속에는 우리나라의 명지대 바둑학과와 바둑특성화교육을 하고 있는 흥진초등학교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다.
▲ 출간하고 있는 바둑교육지 9호(왼쪽)와 곧 책으로 낼 <바둑문화와 학교교육>의 표지.
- 아시아 학생바둑대회는 어떤 생각으로 만들게 되었는지요?
"저는 바둑을 연구하면서 이 문화가 평화에 기여한다, 평화를 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면이 없다면 학교에서 가르칠 이유가 없지요. 수담을 통한 평화친선, 아이들에게 그런 정서를 심어주려고 대회를 제안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바둑교육진흥회 회장에게 대회구상을 말했을 때 힘들지 않겠느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더군요. 예선은 국내서 하고 본선은 아시아 국가들 교류로 확대하자고 한술 더 뜨자 다들 깜짝 놀라며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답니다.”
그는 회원들을 설득하고 상하이, 타이페이, 서울을 부지런히 오가며 기어코 몇년 만에 대회를 성사시켰다. 일본만으로는 기반이 안돼 최화길 한국중고연맹회장과 여러번 상의했다. 경제적 난관이 가장 큰 장애요소였다. 다행이 1회 대회는 오사카 상업대학 학장이 지원해줘 첫발은 뗄 수 있었다. 모든 이들이 못한다는 의견을 해내자니 오죽 했을까. 그래서인지 그의 인터뷰 마지막 말은 “많이 힘들었습니다.”였다.
최화길 회장은 이 대회가 “순전히 사카 준이치 선생의 열의와 순수한 목적이 전달되었기에 가능했다”며 더 알려지고 바둑을 사랑하는 많은 이의 마음이 담아지길 희망했다. 더디지만 쇠똥구리처럼 조금씩조금씩 전진하는 이런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바둑의 지평이 넓어진다.
▲ 최화길 한국중고연맹회장과 대회발전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열정이 아시아 학생바둑대회를 가능케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