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둬서 이걸 얻어 맞은 거야.”
“이게 어딜 가서 살아?”
“죽을 것 같은데요.”
“살려면 수상전 해야 하는데 수상전해도 4수 부족이네.”
“이렇게 두면 어떻게 되나요?”
“어, 좋은 수 발견한 것 같네. 그거 몇점 뜯어먹고 패로 넘어가면 짭짤할 것 같은데.”
평일 오후 허장회 바둑도장의 한 풍경이다. 김영삼 5단이 한 원생의 기보를 가지고 검토를 주도하고 있고, 그 주위로 예닐곱 명의 원생들이 둘러앉아 함께 검토를 한다. 지도 사범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검토를 진행한다. 이들은 모두 한국기원 연구생 1군이므로 실제로 프로기사와 호선의 실력들. 이런 자연스런 연구 검토 문화가 허장회 바둑도장을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1992년 방학4동에서 문을 연 허장회 바둑도장은 꾸준한 발전을 거듭, 강북지역 바둑도장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면서 개원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프로기사 배출의 요람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현재, 허장회 바둑도장의 원생은 약 50명. 이중 약 20명은 프로기사와 호선의 실력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한국기원 연구생 1군만 16~7명 선에 이르며 2군을 포함하면 30여명이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생 1조인 김기용, 김환수, 진동규는 입단이 유력한 유망주들.
원생들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스파르타식 훈련.
초등학생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지만, 중고등학생들은 시험 때를 제외하고는 도장에서 하루종일 바둑공부에 매진한다.
오전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자습시간. 오후부터는 실전대국과 복기를 중심으로 일과가 짜여진다. 매일 2판씩 자체 리그전을 치른 뒤 패한 바둑을 중심으로 프로사범들과 함께 복기를 한다. 그 외 한국기원 연구생리그에서의 바둑도 좋은 공부자료다.
자체리그전은 프로사범들이 결합하여 진행하며 각조 12명 안팎으로 4개조가 있다. 1, 2조는 프로기사와 호선 대국. 리그전에 참가하는 기사로는 양재호 9단, 조대현 9단, 강만우 8단, 홍태선 8단, 김영환 6단, 김영삼 6단 등.
일찍이 후학양성에 관심을 갖고 있던 허장회 9단이 도장을 개설하게 된 계기는 김영삼 6단이 발단이 됐다. 김 6단은 중학교 때부터 허 9단 집에서 바둑공부하면서 입단을 준비했었고, 이를 계기로 주위에서 실력 있는 유망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93년 김 6단이 입단하자, 막혔던 물꼬가 트이듯이 입단 러시가 이어졌다.
김명완 6단 서무상 4단(이상 94년), 현미진 2단(95년), 한종진 4단 이정우 4단 강지성 5단(이상 96년), 안영길 5단 최문용 4단 홍장식 4단 염정훈 4단(이상 97년), 이용찬 4단(98년) 송태곤 5단(99년) 박정상 3단 주형욱 2단(이상 2000년), 박지훈 초단(2002년) 김동희 초단 김세실 초단(2003년)이 입단에 성공하며 총 17명의 프로기사가 탄생했다. 2001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프로기사를 배출하고 있는 것.
허장회 바둑도장이 단기간 내에 명문 바둑도장으로 급부상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허장회 9단은 “이 도장에 있는 원생들은 이미 어느 수준까지 도달한 상태이므로 일방적인 가르침은 중요하지 않다. 바둑도장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뿐이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고 할까? 중요한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특별한 비결은 없는 셈이다. 최고의 환경조성과 비슷한 수준의 원생들끼리의 경쟁을 통한 기력 향상이 명문 도장으로 이끈 원동력인 셈이다.
오후 5시를 지난 시각, 자체 리그전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원생들을 뒤로 하고 도장을 나섰다. 거리에서 본 바둑도장은 한여름의 태양 아래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