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현기경』제작에 대한 의문점 (1)

   『현현기경』 저작 배경과 관련해서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전 현직 고급 관리인 우집과 구양현이 바둑에 관한 문헌에 서문을 써 줬다는 점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건대 그 당시 원(元)나라 최하층 계급인 남인(南人) 신분이었을 안천장과 엄덕보가 어떻게 이런 거대한 출판물을 기획했고 발간해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점 등이다.

『현현기경』이 출간되던 1349년은 원나라 말기로 그때 바둑이 유행하였다고는 하나 이것은 궁궐내 사람들이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까지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 각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민란 소요 사태 때문에 원나라 당국에서는 백성들의 사적인 모임을 강력히 규제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통제가 시행되고 있던 때였다.

 야스이나가하지메(安永一 1977)는 그의 저서 『中國の碁』에서 원나라 시대를 바둑의 퇴조(退潮)시대라고까지 극한 표현을 썼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인 계급 신분이었을 안천장과 엄덕보 두 사람이 희귀한 고대 바둑책들을 합법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취사선택하여 거금을 들여 가지고 목판 인쇄물로 찍어낼 수 있었을까? 바둑책을 편집하거나 출간하는 데에는 예나 지금이나 막대한 운용자금과 함께 전문가의 교정 작업 등이 반드시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쇄되어 나온 기보에서 수순이 단 한 개라도 틀리거나 빠진 것이 있다면 바둑책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십 차례 전문가의 교정을 거치는 등 신중을 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국 고래로부터 전해 내려온 희귀한 바둑관련 서적들을 모두 수집하고 이 방대한 자료들을 취사 선별하여 완벽한 교정 과정을 거쳐 바둑책을 목판으로 새겨 인쇄해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그 당시 재력가나 최소한 관(官)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필요충분 조건을 두루 갖춘 이는 당시 조정에서 황제를 모시고 『경세대전』과 삼사(三史- 금나라 역사인 金史, 송나라 역사 宋史, 요나라 역사 遼史를 말한다. 당시 실세였던 몽고인 토크토(托克托)의 지휘 하에 한인 구양현등이 편찬을 주도했음.) 편찬을 맡는 등 출판 노하우를 가지고 있던 전직 사관(史官) 우집과 당시 현역 사관 구양현과 같은 인물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겠는데,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모두『현현기경』의 서문을 써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서문 내용에는 안천장과 엄덕보를 아예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인 것처럼 표현을 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통하여 그들(안천장과 엄덕보)이 바둑책『현현집』을 낸다고 하여 자기들(우집, 구양현)은 단지 서문만 써준 것 뿐임을 강조하여 밝혔다.

    금년 가을에 객이 여릉에서 오는 이가 있어 말하기를 송나라의 작고한 승상 원헌공의 손자 되는 안천장이 그의 고향사람 엄덕보와 함께 바둑을 잘 두기로 알려졌는데
    (今年秋, 客有自廬陵來者, 爲言故宋丞相元獻公之諸孫晏天章與其鄕人嚴德甫, 俱以善奕稱)             -소암노인(우집)서

   여능에 사는 엄덕보는 바둑에 능숙하여, 일찍이 바둑을 두는 방법을 모아 책을 편찬하였고 명문 자제인 안군문가는 집에 소장하고 있던 기보를 보태어 그 내용을 늘리었다. 청성에 사는 양군은 예의를 받들어 나에게 본서의 서문을 써 달라는 서신을 보내 왔는데
   (廬陵嚴德甫善弈, 初集弈法爲書. 晏君文可, 故家子也, 乃以家藏諸譜又增益之. 奉禮靑城楊君以書來, 爲之求序)      -구양현서
  
   그런데 현현기경 예권에서 서문을 쓴 사람들 의 내력은 아래 <표>과 같다.
(현현기경 출간년도 - 1347년, 1349년)

   우집은 서문을 쓰고 난 1347년 바로 그 다음 해 1348년에 사망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우집은 1349년에 구양현과 안천장의 서문이 수록된『현현집』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1349년도의 『현현집』이 나올 당시 구양현은 현직 고위관리였었고, 그는 자신이 죽는 날(1357년)까지도 자기가 서문을 써준 『현현집』의 발행 부수 및 판매 상황까지도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경세대전』 편찬을 주도했었던 우집의 후임으로 『경세대전』편찬을 맡게 된 구양현이 전임자였던 우집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으며,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의 삼사(三史) 편찬을 주도했었기에,

 구양현은 북송시대 명재상이었던 안수(원헌공)가 자기 조상 구양수의 스승이었으며 안수가 제자인 구양수를 등용하여 출세시켰다는 사실 역시 모를 리 없다. 송사(宋史)를 편찬했던 구양현의 노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자기 조상 구양수의 바둑관련 저서(구양수가 바둑에 대해 언급했거나 관련된 저서 《新唐書 - 藝文志, 百官志, 高祖諸子列傳, 高智周傳, 王叔文傳》, 《醉翁亭記》,《新五代史-前蜀世家, 鄭遨傳, 周臣傳後》, 《歸田錄》,《歐陽文忠公文集六一居士傳》)는 동시대 사람들의 저서들에 비해 유난히 많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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