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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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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2014-02-12 조회 9445    프린트스크랩
▲ 크리스 디 버그(1948년 생)는 1975년 첫 앨범을 냈고, 영국팝을 대표할만한 뮤지 션이지만 미국팝 시장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가수 중 한명이다.


popsong story

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옛날 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왕국은 겨울이 길고 몹시 추웠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한 소녀가 먼길을 가다 왕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며칠째 눈보라 속을 걸어온 소녀는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소녀는 지친 목소리로 성문지기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파요. 하룻밤만 쉬어가게 해주세요.”

성문지기는 소녀가 너무 딱했어요. 하지만 성문지기 마음대로 소녀를 왕국에 쉬게 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성문지기는 소녀를 왕에게 데려갔습니다.

왕이 있는 곳은 참말 따뜻했습니다. 커다란 벽난로에서 타닥타닥 장작이 타고 있었고 왕은 두툼한 모피가 깔린 의자에 앉아 말린 고기를 먹고 있었습니다. 왕의 무릎에는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가 왕이 먹는 말린 고기를 조금씩 얻어먹고 있었어요.

소녀는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왕에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자비로운 왕이시여. 소녀는 너무 춥고 배가 고픕니다. 이 불쌍한 소녀에게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요.”

“은혜라고?”

왕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은혜를 베풀어주지. 너에게 따뜻한 물이 나오는 방과 방금 구운 빵, 그리고 신선한 과일을 후식으로 주겠다.”

왕의 말에 소녀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방금 구워낸 빵을 먹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잘 생각을 하니 하늘을 날듯이 기뻤습니다. 왕은 말린 고기 한점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말을 했어요.

“그런데 넌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느냐.”

소녀는 왕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멀뚱멀뚱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녀여. 이 세상에는 공짜라는 건 없는 거란다. 내가 너한테 따뜻한 하룻밤을 묵게 해주면 넌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냐.”

금방까지 하늘을 날듯이 기뻤던 소녀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왕은 무릎에 앉아있는 고양이의 털을 쓸어 만지며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춤으로 날 기쁘게 할 수 있겠느냐?”

“왕이시여. 소녀는 춤을 춰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노래를 잘 부르느냐?”

“노래도 못 부릅니다.”

소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럼 나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느냐?”

소녀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소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떨궜습니다. 왕은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이런...춤도 못추고 노래도 못부르고 이야기도 못한다면 할.수.있는.게 뭐란 말이냐.”

왕은 돼지처럼 뚱뚱한 몸을 푹신한 모피의자에 깊숙이 묻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날 위해 해줄 게 아무 것도 없다면 나도 널 재워줄 수 없다. 내 왕국에서 나가거라.”

소녀는 낙담했습니다. 금방까지 꾸었던 기쁨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이대로 성 밖으로 나간다면 아마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해 얼어죽을지도 모릅니다. 소녀는 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때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왕이시여. 소녀는 바둑을 둘 줄 압니다.”

“바둑?”

바둑이란 말에 왕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상체를 일으켰습니다.

“바둑을 둘 줄 안단 말이냐? 네가?”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바둑을 둘 수 있습니다.”

“오호..그래?”

왕의 만면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사실 왕은 바둑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바둑은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놀이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왕의 주변에는 바둑을 둘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녀가 바둑을 둔다니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질 일입니다.

“바둑을 둘 수 있다니 그건 천만다행이구나.”

왕의 반응에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드디어 왕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 따뜻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소녀는 다시 기쁨에 가득 찼습니다.

“좋다. 바둑을 두자. 바둑을 이긴다면 너한테 약속한 대로 따뜻한 방과 막 구워낸 빵을 주마.”

왕의 말에 소녀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왕은 ‘이긴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왕은 교활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다면 넌 나한테 뭘 내놓겠느냐?”

“왕이시여. 소녀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놓을 게 없다면 무슨 게임이 되겠느냐.”

소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신발도 옷도 내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털로 짠 다 낡아빠진 털모자뿐이었습니다.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건 이 털모자뿐입니다. 왕이시여.”

“그까짓 거지 같은 털모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네가 내놓을 게 한가지 있다만...”

“그게 무엇입니까?”

소녀는 희망에 가득찬 눈으로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이다.”

“눈이라니요?”

“네 두 눈 말이다. 바둑에서 진다면 너의 두 눈을 다오.”

소녀의 눈은 밝은 초록색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봄의 새싹 같은 색이었습니다. 왕은 소녀의 눈이 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녀의 눈을 갖는다면 이 지긋지긋한 겨울대신 영원히 봄만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어떠냐. 네 두 눈을 걸겠느냐?”

두 눈을 걸라는 왕의 재촉에 소녀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두 눈을 잃는다는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바둑을 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둑이라면 자신이 있었어요. 자신의 바둑 실력에 소녀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왕이시여. 그렇게 하겠나이다. 소녀가 지면 제 두 눈을 드리겠나이다.”

“와하하하...그래. 그래.”

왕은 기분이 좋은지 한바탕 웃고서 신하들에게 바둑판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왕과 소녀가 앉았습니다. 왕은 두툼한 모피를 깔고 앉았고 소녀는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대리석 바닥의 차디찬 한기가 소녀의 뼈마디를 시리게 했습니다. 소녀는 빨리 바둑을 끝내고 따뜻한 방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뜻한 방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소녀입니다.

왕은 오랜만에 두는 바둑에 기분이 좋은지 연신 흥얼거렸습니다. 착점도 빨랐습니다. 전투바둑을 즐기는 왕이었습니다. 소녀의 돌을 다 잡아먹을 기세였어요. 하지만 오래지 않아 왕의 흥얼거림도 사라지고 착점도 느려졌습니다. 소녀의 돌을 잡아먹으려는 왕이 오히려 소녀에게 전부 잡혀 먹힐 처지가 됐습니다. 거의 삼십 개가 넘는 대마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어요.

왕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습니다. 조금전까지 흥얼거리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아무리 봐도 대마가 살길이 없습니다.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왕이 말린 고기를 한점을 집어들었습니다. 무릎 위에 팔꿈치를 괸 왕은 말린 고기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그것을 본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말린 고기의 고소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습니다. 당장 왕의 손에 들린 말린 고기를 낚아채서 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소녀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뭔가 우당탕하는 소리에 눈을 뜬 소녀는 기겁을 했습니다. 고양이가 왕의 손에 들린 말린 고기를 채가면서 바둑판을 엉망으로 흐트려놓은 겁니다.

엉망으로 만들어진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소녀는 아연실색했습니다. 거의 다 이긴 바둑이었습니다. 이제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막 구워진 빵을 먹고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었는데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소녀의 초록색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이것참, 이게 뭐야. 저 버르장머리 없는 고양이 같으니라고.”

왕은 자못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바둑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말 못하는 고양이가 한 짓이니...할 수 없이 다시 둬야겠구나.”

잔뜩 낙담한 소녀는 더 춥고 더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힘없이 바둑돌을 쥐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왕의 실력은 소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다시 둬도 소녀는 이길 수 있었습니다. 소녀의 생각처럼 역시 왕은 이번 판에도 고전이었습니다. 다시 대마가 다 죽을 위기였습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소녀는 빵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습니다. 소녀는 기쁨이 가득한 눈으로 바둑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였어요. 다시 왕이 마른 고기를 들었습니다. 소녀는 놀란 눈으로 왕을 보았습니다. 왕은 교활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커다란 초록색 눈이 절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른 고기를 들은 왕의 손이 살랑살랑 흔들렸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려온 고양이가 마른 고기를 채갔습니다. 물론 바둑판은 엉망으로 흐트러졌습니다. 왕은 역시 버릇없는 고양이 탓을 하면서 다시 두자고합니다. 소녀는 더이상 둘 기운이 없었습니다. 소녀는 더이상 둘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바둑판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어디에 두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소녀는 졌습니다.

 

소녀는 두 눈이 뽑힌 채 성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눈보라가 소녀의 온몸을 찢듯이 몰아쳤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얼마 가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이제 춥지도 않습니다. 소녀는 이제 배고프지도 않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소녀는 그렇게 눈보라 속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렇게 소녀가 죽은 자리에서 얼마후 얼음으로 만든 꽃이 한송이 피어났습니다. 꽃 이름은 빙설화입니다. 빙설화는 눈보라를 먹고 삽니다. 빙설화가 핀 곳에는 영원히 겨울만 계속됩니다.

 

왕국에는 영원히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 chris de burhg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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