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마지막회)
Home > 소설/콩트 > 박쥐
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마지막회)
2014-01-17 조회 9890    프린트스크랩
▲ 영화 '소녀' 포스터.


연일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했다. 찜통이니 가마솥이니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이면서 7월의 폭염을 언론들은 연일 앞다퉈 보도하고 있었다. 날씨만큼 대한민국을 들끓게 하는 뉴스가 있었다. 여자연쇄살인범 사건이다. 겨우 열여덟 살의 여자가 경찰을 포함한 네명을 살해한 사건은 사람들한테 40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를 잊게 해주기 충분했다.

TV는 연일 헤드라인 뉴스로 여자연쇄살해범 사건을 방송했고 신문들은 삼,사 면을 아낌없이 할애해서 범인을 샅샅이 해부했다. 외신기자들도 벌떼같이 몰려들었고 인터넷도 온통 여자연쇄살인범 가십으로 도배를 하다시피했다.

이름은 실명으로 발표됐다. 유리애.

그와 더불어 인터넷에서는 어디서 유출됐는지 범인의 사진이 홍수처럼 떠돌아다녔다. 급기야 유리애라는 연쇄살인범을 흠모하는 마니아들까지 생겨났다. 그 수는 줄잡아 수십 만을 헤아렸다.

대한민국은 유리애 신드롬으로 열병을 앓고 있었다.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허겁지겁 뒤쫓아온 형사들이 호철을 제지했다. 형사들이 제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방아쇠를 꼭 당겼을 거라는 자신감은 없다.

 

Epilogue

소녀에 대한 범죄사실 증명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민지현을 살해한 현장체포뿐만 아니라 강무세의 혀에서 소녀의 DNA가 추출됐다. 또한 민지현을 살해한 칼이 그 전 세명을 살해한 자상의 흔적과 일치한다는 국과수 검증도 나왔다. 소녀 역시 스스로 연쇄살인에 대해서 명확하게 자백했다. 소녀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은 법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이제 재판만이 남았다. 소녀는 변호사 선임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소녀의 이모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변호사 없는 재판은 불가능하다. 결국 국선 변호사가 강제로 선임됐다. 변호사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의 변호사가 된 것에 자부심과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결국 강제적 의뢰인의 벽에 부딪쳤다. 변호사는 소녀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도움을 줄 사람이 도움을 받을 사람한테 도움을 애걸하는 꼴이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변호사 혼자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소녀의 범죄사실은 확실하다. 그걸 뒤엎을 수는 없다. 변호사는 소녀의 정신병력을 방패로 사용할 생각이다. 물론 변호사의 뜻에 소녀의 주치의인 한승준 의사도 가담했다.

‘피고는 겨우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가 무참하게 살해된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더군다나 과거부터 감정적 불안정을 가지고 있는 피고가 그런 엄청난 일을 겪고도 현재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장담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겁니다. 피고는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이 질병은 이땅에 숨쉬고 있는 우리 모두가 피고한테 준겁니다. 치안 부재로 부모가 무참하게 살해됐고 피고가 질병을 앓고 있음에도 국가는 무관심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가 돌진해서 사람을 치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건 차지만 원인은 브레이크 고장입니다. 피고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와 같습니다. 감정제어가 되지 않았습니다. 행동제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실제로 죽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피고는 그 제어가 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것이 피고의 병입니다. 결국 피고는 감정과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 병으로 인해 살인을 한 겁니다. 피고의 살인죄를 묻는다면 피고의 정신질환에 물어야합니다. 피고는 무죄입니다.’

변호사는 재판에서 이렇게 열변을 토할 생각이다. 자신이 있었다. 정신과 의사까지 암묵적으로 그와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사회적 관심만큼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장맛비가 이틀째 내리고 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던 호철이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장이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그중 한잔을 내미는 반장이다. 그것을 말없이 호철이 받았다.

“어떤 기분인지는 알아. 오죽하겠어. 속이 새까맣게 탔을 거야.”

반장은 커피 한모금을 마시고 비오는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놈이 민형사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정말 나도 기분이 좋았어. 바위 같은 네놈한테도 짝이 생기는구나 생각하니까 그렇게 흐뭇할 수 없더라고. 더군다나 상대가 민형사라니...”

반장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어울리는 한 쌍이었어. 그런데...그렇게 돼버리다니...”

빗소리가 울음처럼 들렸다. 호철은 종이로 만든 커피잔을 창턱에 올려놓았다. 계속 들고 있으면 잔을 우그러트릴 것 같았다.

“왜 그런 거야.”

창밖을 보던 반장이 호철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대체 왜 민형사를 죽인 거야. 이유가 뭐야.”

“나도 알고 싶습니다. 그 이유를.”

“뭐 짚히는 거 없어?”

호철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반장이 다시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반장의 말소리와 빗소리가 겹쳐졌다.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어. 민형사 아버지를 통해서 접근한 거 보면 말이야. 그리고 사건 당일 민형사한테 접근했지.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그 유리애라는 애 말투가 특이했다고 그랬지? 아마 그걸 감추려고 했던 모양이야. 다시 말해서 행여라도 민형사를 만나는 동안에 민형사가 너하고 통화라도 해서 특이한 말투를 하는 자신의 얘기를 할까봐 벙어리 흉내를 낸 거야. 더군다나 그날 그 애를 태운 택시기사의 증언으로는 점심때부터 민형사와 약속한 7시까지 목적지 없이 택시를 타고 다녔다고 했어.”

콰르릉쾅쾅쾅...

뇌성벽력이 잠깐 반장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 애는 자신을 체포하러 올 시간을 계산한 거야. 아이큐가 178이라고 했지? 그 정도 머리라면 당나귀 싸이트 IP 상세주소를 추적하는 걸 역추적으로 알고 있었을 테고 영장문제도 전부 계산했겠지. 결국 자신을 체포하러 올 수 있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12시쯤이라고 계산한 거야. 물론 실제 영장이 떨어진 건 그보다 여섯 시간이나 늦은 시간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7시까지 시간을 보내다 민형사를 만난 거야. 그 안에 네가 힌트를 풀었다면 민형사는 살았겠지.”

반장의 말이 송곳처럼 호철의 가슴을 찔렀다. 호철이 사소취대란 힌트를 일찍 풀었다면 민지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빗소리가 가슴속 상처를 헤집었다.

“그렇다고 자책할 건 없어. 아이큐 178의 머리를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니까. 어쨌든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계획하고 너한테 힌트를 준 이유가 뭐야. 혹시 민형사를 걸고 게임을 즐긴 거 아냐?”

“그런 걸 즐길 감정 같은 걸 가지고 있는 애가 아닙니다.”

“그렇지. 감정이 없다고 했지. 그럼 도대체 뭐야.”

반장의 말에 호철은 꿀먹은 벙어리였다. 할말이 없었다. 어차피 대답을 기대한 반장도 아니었다.

반장은 다 식어빠진 커피를 입안에 털어넣고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참, 오늘이 2차 심리일이지? 여전히 방청 거부야?”

반장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호철이다. 사건 이후 호철은 소녀를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소녀의 취조에 호철은 제외됐다. 소녀가 거부했다. 교도소 수감 후에도 면회는 거부됐다. 심지어 소녀는 강호철에 대한 재판 방청 거부요청서를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했다. 호철은 소녀의 재판조차 볼 수 없었다.

“거참, 알 수가 없군. 그 애 말이야. 도대체 뭔 생각이야.”

알 수 없는 건 호철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상관없다. 왜 민지현을 죽였는지 그걸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알 길이 없다.

“암튼 힘 내. 이런 말하면 잔인하지만 남녀관계란 건 안보면 또 금방 잊혀지게 돼 있어. 안보면 미칠 것 같고 못보면 죽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또 그렇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가는 게 남녀관계야.”

반장은 호철의 어깨를 툭치고 돌아섰다.

“이따 끝나고 소주나 한잔하자.”

반장이 떠난 텅 빈 복도에는 빗소리만이 가득했다. 호철은 빗소리에 파묻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영원히 움직일 것 같지 않은 호철이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변호사는 의기양양했다. 소녀의 정신질환을 방패로 삼은 것이 주효한 것이다. 여론도 소녀 편이었다. 동정론이 들끓었다. 문제는 마지막 범행인 민지현 살해였다. 그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 변호사는 피고가 무질서한 이 사회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논리를 폈지만 정작 당사자인 소녀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소녀가 한 말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죽였어요.”

다른 모든 질문에도 소녀는 침묵을 지켰다. 서슬이 퍼런 판사도 소녀의 입을 열지 못했다. 피고가 스스로 범인이라고 밝힌 이상 강제할 그 무엇도 없었다. 단지 변호사만 열변을 토할 뿐이다.

심리가 진행될수록 재판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다. 재판 공개방청객 추첨 경쟁률은 천대 일을 넘었다. 겨우 칠십 명 뽑는 방청객 추첨에 칠만 명이 넘는 사람이 신청한 것이다. 재판 과정은 인터넷에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물론 재판 과정은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은 금지돼 있다. 모든 건 글로 묘사했다. 그 묘사가 워낙 정밀해서 마치 실제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초점은 소녀였다. 소녀의 외모, 움직임, 손짓 하나까지 상세하게 묘사됐다. 특히 소녀의 특이한 말투, 무표정한 얼굴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화제였다. 그것은 개그 프로에서 리메이크까지 될 정도였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9월 마지막 수요일, 소녀의 최후공판일은 그 뜨거운 관심의 절정을 이루었다. 공개방청객 경쟁률은 육천 대 일까지 치솟았다. 뉴스나 신문은 온통 소녀의 사건으로 도배를 하다시피했다. 인터넷 역시 소녀의 사건으로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호철 역시 재판 방청 신청을 제출했다. 계속되는 소녀의 방청거부에도 호철은 끈질기게 방청 신청을 한다. 이제는 그 이유조차 희미해졌다. 호철이 소녀한테 알고 싶은 건 민지현을 죽인 이유다. 그렇다고 법정에서 소녀를 붙잡고 왜 민지현을 죽였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다. 그런 상실된 목적에도 호철은 소녀를 봐야한다는 막연한 의무감 같은걸 가지고 있었다.

뜻밖이었다. 이번에는 호철에 대한 방청 거부가 없었다. 호철은 수사관으로서 일반 방청객과 달리 피고가 거부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재판을 방청할 권리가 있었다.

법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각종 방송국 취재팀과 언론 관계자들, 방청객과 유리애 추종자들, 거기다가 일개중대를 넘을 듯한 경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재판은 한 시간이 넘게 지연되고 있었다.

호철은 세번째줄 오열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피고의 등뒤에서 3시 방향에 위치한 자리다. 육천 대 일의 경쟁율을 뚫고 법정에 자리를 잡은 방청객들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연신 낮은 목소리로 소곤댔다. 그 소곤거림이 마치 벌떼가 날아다는 것처럼 법정에 울려퍼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호철에게 낯익은 시선이 보였다. 소녀의 이모였다. 소녀의 이모는 네번째줄 십열째쯤 앉아있었다. 이모의 아름다운 얼굴은 수척해보였다. 시선도 건조했다.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호철은 그 시선에서 원망을 느꼈다. 호철은 죄인같은 심정에 무겁게 목례를했다. 호철의 목례에 이모가 가볍게 답했다. 그 순간 법정이 술렁거렸다. 이모의 시선과 호철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소녀가 두명의 호송관의 호위를 받으며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벌떼들의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호송줄로 두 손이 묶인 소녀는 푸른 수의를 입고 있었다. 신발은 하얀 고무신이다. 이상한 일이다. 소녀의 흰 고무신이 눈이 시리도록 와 닿았다. 가슴이 아렸다. 아직도 저 소녀한테 연민이란 것이 남아있었던가. 내 눈앞에서 민지현을 죽인 살인마다. 저런 살인마에게 연민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아픔은 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에게 최후변론을 하라고했다. 검사는 짧고 굵게 피고의 죄목을 나열했고 마지막으로 어떤 이유든 인간이 인간을 죽음으로 벌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므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해주길 간청했다. 변호사는 검사와 달리 30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열변을 토했다. 피고가 저지른 범행은 오직 정신병에 의한 행위이므로 법이 정한 죄로 벌할 수 없음을 치열하게 설파했다. 객관적으로는 검사나 변호사 양쪽의 주장이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팽팽한 승부였다. 양쪽의 최후 변론을 진중하게 경청한 판사는 소녀에게 목소리를 향했다.

“피고는 마지막 할말 없습니까?”

법정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소녀에게 몰렸다. 판사의 말에도 미동 없이 앉아있는 소녀를 변호사가 눈빛으로 재촉했다. 변호사의 눈빛은 애절하기까지 했다. 그 눈빛은 제발 한마디만이라도 해달라는 간절함이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온 소녀가 한마디만 해준다면 변호사에게는 그야말로 천군만마와도 같은 힘이 될 것이다. 변호사의 간절함 때문일까. 소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본 변호사는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찢어진 입을 귀에 걸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는 잠시 판사를 바라보았다. 법정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모든 사람의 귀가 소녀에게로 향해있었다. 소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잠시 판사를 바라본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동작이 너무 느려서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돌린 소녀가 한 곳을 응시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소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시선을 따라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한테 모아졌다. 소녀의 눈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표물 없이 그저 시선 끝에 나라는 존재가 있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치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처럼.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한계였다. 물 밖으로 튀쳐 나가고 싶었다. 나의 한계를 판사가 도왔다.

“피고.”

판사의 말에 비로소 소녀가 나한테 향해있는 시선을 판사 쪽으로 돌렸다.

“피고. 마지막으로 할말 없습니까.”

잠시 판사를 바라본 소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특유의 기계음 같은 목소리였다.

“사형을 내려주세요.”

소녀의 말에 법정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 한 여자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애야!! 사형이라니.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안돼!!”

소녀의 이모였다. 이모는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실신을 했다. 그와 동시에 방청객 중 한명이 ‘유리애를 석방하라.’라고 외쳤다. 그 외침에 수십 명이 일제히 동조하면서 법정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소녀는 호송관의 호위를 받으며 법정 밖으로 나갔다. 소녀의 뒷모습. 그것이 내가 본 소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보름 후. 판결이 내려졌다. 무기징역이었다.

소녀의 정신적 병력은 인정되지만 치밀한 살인계획과 민지현의 살해가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5년전 강도를 살해한 사건은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다. 소녀는 항소를 포기했다. 이모와 변호사의 간절한 애원도 소용이 없었다. 소녀의 무기징역은 그렇게 확정되었다.

인터넷에서 수만 명의 네티즌들이 유리애 석방 탄원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대한민국 법을 흔들 수는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고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잊는다. 쉽게 잊는다. 너무 빨리 잊는다. 가을이오면 여름옷을 잊듯이 겨울이오면 가을옷을 잊듯이 그렇게 쉽게 잊는다. 그렇게 뜨거웠던 유리애 신드롬도 시간이 갈수록 시들해지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나도 잊어가고 있었다. 반장 말처럼 남녀관계는 안보면 금방 잊혀졌다. 불과 반년도 안돼 민지현의 죽음은 아스라이 먼 옛날 얘기처럼 희미해졌다.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소녀가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후에는 틈나는 대로 교도소를 찾았다. 물론 언제나 면회거부였지만. 그런 발걸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뜸해졌다. 이제는 소녀를 만나야할 목적마저 희미해졌다. 더이상 민지현을 죽인 이유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게 잊혀져갔다. 소녀도 민지현도. 잔인하리만치 빨리 잊혀져갔다.

단지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문득 발코니에서 소녀의 아파트를 보았을 때, TV에서 우연히 바둑을 보았을 때, 왼손잡이를 만났을 때, 키가 큰 여자의 뒷모습에서...그렇게 소녀의 흔적은 가끔 내 마음을 흔들었다. 마치 색바랜 사진 한장이 문득 아픈 추억을 끄집어내듯이, 그렇게 소녀는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봉인돼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 봉인이 풀린다.

 

12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치고는 꽤 눈발이 굵었다.

“제발 걸려라.”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타트 키를 돌렸다. 아침마다 하는 일과가 이놈의 코란도와 시동을 걸기위한 씨름이다.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수십 번의 기도와 정성이 필요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키를 돌리자 코란도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요란하게 시동이 걸린다. 시동소리와 함께 안도의 함숨이 나온다. 이제 이놈의 코란도와 씨름하는 것도 사실 며칠 남지 않았다. 며칠 후면 새로 신청한 차가 나온다. 날렵하게 빠진 스포티지다. 그놈을 탈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차를 출발시키고 라디오를 켜자 역시 날씨 소식이다. 첫눈치고는 많은 눈이 내리므로 조심하라는 얘기다. 그게 조심해서 될 일도 아니지만. 들으나 마나한 뉴스보다는 역시 음악이 좋다. 막 시디를 켜려는 순간 아나운서의 건조한 목소리가 내 머리를 송곳처럼 찔렀다.

“지난 7월 열여덟 살의 어린 여자연쇄살인범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리애가 교도소에서 오늘 새벽 자살했습니다.”

유리애.

갑자기 유리애란 이름이 생소하게 들렸다.

그래. 소녀다. 소녀가 자살을 했다. 소녀가 죽었다. 마치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한 상태에서 아나운서의 말이 이어졌다.

“교도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유리애는 오늘 새벽 3시경 잘게 찢은 수의로 창틀에 목이 맨 채로 발견됐다고...”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머리 속이 웅웅거렸다.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혔다.

내 머리 속도 뭔가로 하얗게 덮혀졌다.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꿈처럼 웅성거렸다. 뒤에서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클랙슨 소리가 나를 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나는 교도소로 달렸다. 사실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뭔가 잘못 된 것이다. 소녀가 자살할 리가 없다. 교도소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교도소에 도착해서 그 외침이 얼마나 부질없음인지 알게 됐다.

소녀는 잠자듯 누워있었다. 침대가 아니라 차디찬 시체안치실에서. 꿈이 아니었다. 잘못된 게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소녀의 목에 자액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살아있을 때나 죽어있을 때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입을 열면 특유의 기계음 같은 목소리로 “바둑 둬요.” 라고 말할 것 같았다. 가슴이 칼로 베는 것같이 아팠다.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 소녀의 죽음 앞에서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알 수 없다. 소녀의 자살 이유는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단지 정신병이 원인일 거라는 막연한 얘기뿐이었다. 법정에서는 아무 소용 없는 정신병이 시체안치실에서는 유용했다. 하루가 죽음같이 흘러갔다. 그리고 또 다른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집에 오자 한 통의 편지가 와있었다. 발신자는 유리애였다. 죽은 사람한테 받는 편지. 가슴이 서늘했다. 편지를 본 나는 온 세상이 절망 속으로 함몰되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난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거여요. 먼저 당신이라고 호칭하는 걸 양해 바랄게요.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어요. 이전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어느 누구에게도 부를 수 없는 호칭이어요. 오직 당신에게만 당신이라고 불러요. 봄날이었어요. 당신을 처음 만난 건. 하늘을 보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산처럼 큰 덩치에 선한 눈빛, 묵직한 목소리. 당신의 모든 것이 좋았어요. 안기고 싶었어요. 물론 그럴 수는 없잖아요. 눈을 감고 있어도 눈을 뜨고 있어도 하루종일 당신 생각을 했어요. 당신은 모를 테지만요. 실감증이 있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너무 뜻밖이었어요. 행복했어요.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어요. 당신의 아파트를 바라보고 당신이 출근하는 걸 지켜보고 당신이 퇴근하는 걸 기다리는 내 마음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하지만 난 고백할 수 없었어요. 난 이미 살인자였으니까요. 어떻게 당신한테 내 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한테 나는 짐만 될 거여요. 그래서 그렇게 나 혼자 좋아했어요. 어쩌면 나로서는 그걸로도 충분했는지 몰라요. 당신의 면회를 거절한 이유는 당신을 보면 놓아주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놓아줘야 하는데 떠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면 나나 당신이나 너무 아플 거여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저 마음속에 당신을 담아뒀어요. 마음속에 있는 당신을 끄집어내서 보고, 또 보고 그랬어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민지현 씨를 죽인 건 정말 미안해요. 그 여자를 당신 곁에 놔두고 가기에는 난 너무 억울했어요.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해요. 오직 당신만을 사랑해요. 그래서 죽였어요. 미안해요. 저세상에 가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저세상에서 만나지 못하면 또 다음 세상에서, 그리고 또 다음 세상에서, 그렇게 당신을 기다릴 거여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을 만난 건 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었어요. 사랑해요. 

 

나는 일주일동안 결근했다. 결국 반장이 찾아왔다. 나를 본 반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뭐야. 강호철이 왜 그래? 어디 많이 아픈 거 아냐?”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사람이 아주 미라가 됐잖아. 밥은 먹는 거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안되겠어. 병원에 입원해야지.”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며칠 더 쉬면 나을 겁니다.”

“정말 괜찮아?”

“감기에 설마 사람이 죽겠습니까.”

“알았어. 이번주까지 푹 쉬어. 대신 매일 보고해. 밥 먹는 것부터 똥 싸는 것까지 전부 다. 알았어?”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게 웃음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눈이 시리도록 하늘이 파랬다. 소녀를 처음 만난 날처럼.

나는 아파트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소녀를 처음 만난 그 벤치다.

내가 하늘을 보고 있을 때 소녀가 옆에 와 앉았다. 나비처럼 소리 없이.

“뭐해요.”

“나 말이야? 아무 것도...굳이 말하자면 본대로 하늘을 보고 있었어.”

“눈을 감고도 하늘이 보여요.”

“응.”

“안보여요.”

“당...당연하지. 눈을 감고 있는데 뭐가 보이겠어.”

“보인다고 했잖아요.”

“그냥 해본 소리야.”

“화났어요.”

“왜 내가 화나?”

“화난 것 같아요.”

“안났어. 학생 같은데 이 시간에 뭐하는 거야. 학교 안가고.”

“학생 아니어요.”

“몇 살인데.”

“열일곱. 이제 곧 열여덟이 되요.”

 

턴테이블에 디스크 한장이 올려져있다. 조용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한 남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존 레논이다. 존 레논의 노래는 아무도 없는 텅빈 집안을 휘돌다가 열린 창밖으로 흘러 나가 파란 하늘로 스며들었다.
 


 
- 우리 저 세상에서는 만나지 말자. 이보다 더 아프기 싫으니까 -

오른쪽 관자노리에 차가운 금속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38구경 리벌버. 이제 처음으로 그 한발을 쏜다. 눈이 시도록 파란 하늘이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늘 때문일까.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그동안 수없이 망설였던 손가락이다. 하지만 이제는 망설일 그 무엇도 없다. 미련도 아쉬움도 두려움도 희망도...



 


 


 


 


 


 


 


 

타앙.....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wanting

To be loved
 

Love is you

You and me

Love is knowing

We can be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Love is asking

To be loved


Love is free

Free is love

Love is living

Living love

Love is needing

To be loved
 

<끝>


- 본 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


○● 1편부터 보기☜ 클릭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득영 |  2014-11-24 오후 5:25:5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마니 눈물 나네요. 고맙습니다.  
bird75 |  2016-05-02 오후 2:13: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등  
동묘땅꼬마 |  2016-05-27 오후 5:34: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엉엉엉~~~~~~  
어쩌라구~* |  2017-02-17 오후 12:47: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박쥐..에라이 박쥐...내는 박쥐가 시러...그래두 글쓰는 박쥐는 좋아...문학 거시기 하나묵자 .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