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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물위를 떠다니는 빈집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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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물위를 떠다니는 빈집 (단편소설)
2011-09-01 조회 7483    프린트스크랩

  당신이 아이를 낳는 진통을 겪는 동안 우리 배는 미끼인 오징어와 식량 기름등을 보급받기 위하여 남태평양에서 가장 가까운 피지 섬에 잠시 기항을 하였다. 그곳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고 신혼부부들이 방갈로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어부들은 별 다른 할일이 없는 관광객이므로 술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근사한 술집에 자리를 트고 몇 잔술이 몸에 들어가니 금방 취기가 돌더구나. 술이 취해서 오랜 만에 여자의 살 냄새를 맡으니 환장하겠더구먼. 이십대 중반의 한창 때였으니. 더욱이 붉은 네온등은 환상적이었다. 여자의 살 내 음에 굶주린 수컷들의 몸에 끈끈한 혓바닥이 닿자 마음은 이미 육체의 본능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닫혀있던 피부의 숨구멍이 여인의 뜨거운 입김으로 하나하나 열리며, 뜨거운 피로 페니스가 불끈 솟아올랐다. 황홀하고 격렬한 정사였다.
 
 다음날 널브러진 옷들을 챙겨 입고 술집을 나올 때는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몸을 안아야 할 남편이, 다른 여인의 몸을 안은 자신이 부끄럽고 죄지은 사람 심정이었다.
  아내여! 미안하다. 당신은 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받는 시간에, 뭇 여인을 안고 쾌락의 향연에 빠졌으니 이 못난 남편을 욕해다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겠지. 일 년 중 열한 달은 떨어져 있어야 하고,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고 당신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밖에 없구나. 이것이 우리의 운명인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서독파견 간호사와 광부들의 모국방문이 방송에 나왔다. 십 오년만의 모국방문이다. 마중 나온 가족들과 공항에 모인 사람들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오늘 영민이 아빠가 왔다. 구리 빛으로 탄 얼굴은 야성미가 넘치고, 건강한 웃음을 입 안 가득 담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이의 넓은 가슴에 안기니, 그 간 이별의 아픔이 한 순간에 다 날아간 것 같다.
 
“햐 요놈 봐라. 팔 다리가 긴 것 보이 수영 잘하게 생겼다.”
 
 그 순간 내 얼굴이 하얗게 변하자 남편은 어디 아프냐고 말하였다. 영민이는 바닷가에 데리고 가지 않을 거라구요.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남편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당신 선물은 남포동에서 샀다. 원피슨데 한 번 입어봐라. 키가 맞을 란가 모르겠다. 좀 작을 것 같기도 하고. 그라고 이거는 엄마 드리라. 브로친데 이쁘더라. 뭐 할라고 샀노. 비쌀낀 데. 와 색깔이 총천연색이구마.” 브로치를 이리저리 들여다보시던 어머니는 무척 즐거워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독일산 하모니카를 선물로 주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평상위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판자 집 방안으로 달빛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와 달 좋다. 내 하모니카 한 번 불어 볼게.”
  남편은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늙은 애비 홀로 두고 너만 어디 갔느냐.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로맨타임.
  늙은 애비 홀로 두고 너만 어디 갔느냐’
 
 교교한 달빛에 실려 하모니카 소리는 하늘로 바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지그시 눈을 감고 하모니카를 불며 가족들과 해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은 여행 가방에서 병 하나를 꺼내었다.
 
 “아버지가 과거에 참치 잡이 했던 남태평양바다에서 떠왔다. 잘 간수하자.”
 
 두 홉들이 소주병에 태평양 바닷물을 가득 담아온 남편은 병을 장 농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 앞으로 남편은 집에 없어도 병속에 들어있는 아버님의 혼령은 항시 우리 집에 계실 것 같다. 나는 왠지 쓴 웃음이 실실 나왔다.

 
 상구는 아내가 쓴 삼 십년동안의 일기장을 다 읽어 내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부옇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웠고 아내가 지켰던 빈집은 바닷가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만 여러 채 소유하면 가난한 시절의 한을 다소나마 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내는 자신의 의견은 분명하게 말하였지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항상 집에 와보면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햇빛이 싫다는 것이었다. 바다가 싫다는 표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남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묻혀있는 바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바다를 며느리로써 감히 부정할 수 없었던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이었다.  
 상구는 아내를 빨리 찾을 생각으로 노트 제일 뒷장에서 석장을 남기고 앞장을 한꺼번에 다 넘겼다. 가슴이 심하게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아내여! 정말 미안하다. 당신을 찾으면 나머지를 같이 읽으면서 속이 후련하게 한 번 울어보자.

 
  한국무역대국 세계10위 선진대열의 초입에 서있다. 민주화가 되었고 언론의 자유가 만발하고 있다. 원양어선을 탔던 우리들의 남편도 외화벌이에 동참하였다. 삼 십년동안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부흥이다. 그래도 지난 것은 다 그리 워하는 것인가. 두 번 다시 되돌릴 수없는 시간이기에 가끔 지나간 날들이 그리워진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내 마음의 비다. 오십을 갓 넘긴 여인이 지나간 날을 아쉬워하며 흘리는 눈물이다. 이제 열권의 일기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삼 십년동안 기록하여 남긴 일기를 남편이 본다면 많은 눈물을 마음속으로 흘리겠지. 영민이도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  같다. 요즈음은 전화가 뜸하다. 서울생활도 이제 익숙해 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작은 아들 영찬이가 먼저 장가를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호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결혼식을 올려야 할 것 같다. 이제 모두 다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 20대, 30대, 40대엔 남편을 기다렸다. 이제는 자식들이 소식을 전해오기를 더 기다린다.

 남편은 이제 내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될 것 같다. 남편은 해상생활을 접으면 도선사 공부에 매달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며 선원들의 꿈인 도선사 자격증을 기어코 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데 할애해야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나 박난희는 이 집안에서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과연 이렇게 나의 인생모두를 다 헌납해도 되는 것일까? 이제 빈집을 지키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하나. 아버님과 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위패를 모신 해광사로 가야 될 것이다. 이제 남편의 안전을 위하여 공을 들이든 것을 자식들의 안녕과 성공을 위하여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남편은 이미 일본 시모노세키 항에서 잠시 정박 한 후 한 달 후면 한국에 도착 할 것이다. 그리곤 그의 계획대로 사직서를 낼 것이고 도선사 공부에 매달릴 것이다. 늦었긴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해보아야겠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그림공부도 다시 해보아야 되겠다. 누구도 그리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을 그리고 싶다. 나 박 난희를 그리고 싶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가지고 가야 할 것이 있다. 아버님 혼령이 깃들은 태평양 바다 물이 담긴 병을 갖고 가야겠다. 이제 혼령들은 더 이상 이 빈집에 모실 수가 없다. 영민 아빠! 이제 그만 아버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세요. 당신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구요. 당신이 생명을 걸고 떠온 아버님의 위패를 잘 모실게요. 그래요. 이제 당신이 빈집을 지켜주세요. 나는 해광사로 떠납니다.
 
 
 1963년~1977년까지 칠만 구천 명의 광부와 일만 여명의 간호사가 서독으로 일만 사천마르크를 차관하는 댓가로 파견되었다. 광부들은 1000m지하에서 석탄을 캐었고, 간호사들은 꺼즈에 알콜을 묻혀 죽은 시체를 닦았다. 서독 국민들이 꺼리는 일을 120개국 중 인도 다음으로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하였다. 간호사와 광부의 파독이후 일 년 만에 월남전이 발발하여 구년 동안 무려 삼십 이만명의 젊은이를 월남에 파병하여 남의 나라 이념 갈등에 휩쓸려 값싼 피를 흘렸다. 나 이상구도 참치를 잡아서 외국에 수출하여 달러를 벌여 들였다. 나 이상구가 아니더라도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이 땅의 젊은이라면 부산 영도가 고향이라면 쉽게 원양어선을 탓으리라. 우리에게 더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굶느냐 살아남느냐가 가장 큰 인생의 명제였다. 아내여! 이 못난 남편을 원망마라.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것이 우리의 운명이겠지.
 
 상구는 아내가 간 곳을 알아내자 무엇을 먼저 해야 될지 분명해 졌다. 잠시 의자에서 눈을 붙인 후 부동산에 긴급 매물로 아파트를 내 놓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아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어 하는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시 외곽에 가서 알아보아야지. 물위에 떠다니는 집이 아닌, 이제는 땅에 깊이 뿌리가 박힌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견고한 집을 마련하여 아내와 오래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상구는 도선사 자격을 따기 위해 공부해야할 책들을 가방에서 모조리 꺼내어 아파트화단에서 태우기 시작했다.
 
  아버님과 나 이 땅의 가난한 어부의 자식들이 꿈꾸었던 도선사의 희망이 파란 연기가 되어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나 이상구는 이 세상을 하직하는 그날까지, 박난희와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겠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더라도 그동안 같이 하지 못했던 시간만큼 당신과 함께하리라. 상구는 아내의 삼십 주년 결혼기념일 선물이 담긴 보석함을 바바리 안주머니에 넣고, 코란도승용차의 시동을 힘차게 걸었다. 창밖으로 흩어지던 파란연기가 날개를 활짝 편 알바트로스가 되어 저 먼 창공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원고지 10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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