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구한말에서 걸어나온 바둑.
2. 사동궁 기원.
3. 바둑을 좋아하던 의친왕.
4. 이학진 선생을 그리며.




3편. 바둑을 좋아한 의친왕


의친왕 이강(李堈)은 고종과 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 궁을 나가 시골에 살다가 명성황후의 후의로 도성으로 돌아와 사동궁을 하사 받는다. 이강은 영친왕 이은과 함께 후사가 없는 순종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매천 황현은 질투가 심했던 명성황후가 고종의 아이를 임신한 장씨를 내쫓고 훗날 순종의 후사가 걱정되자 훗날을 고려하여 이강을 궁으로 불러들여 사동궁을 내려준 것이다 기록하고 있지만 황현의 기록이 팩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강이 명성황후의 배려를 받은 점은 맞는 듯하다.

이강은 강직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조선후기 왕실사람들이 유약하고 조금 모자란 사람들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데 이강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강을 바둑과 접목시키려면 팩트가 있어야 한다. 이강의 사위이자 바둑마니아였던 이학진 선생의 증언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이학진 선생은 이렇게 증언한다.

''이강공의 바둑두는 장면을 본 적은 없다. 다만 사랑채에 고수들이 바둑을 두면 참관을 한 것은 맞다.''

이학진 선생은 이강이 바둑을 두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했다. 이강의 딸이자 사동궁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이혜경은 자신의 아버지가 마작과 골패 맞추기에 취미가 있었다 증언한다. 마작을 할 때면 온가족을 불러모아 했다고 한다.

온 가족을 불러모아 마작을 즐길 정도로 격식을 따지지 않는 이강의 성격의 일단을 엿보게 된다. 이강이 직접 바둑을 두는 모습을 그의 가족도 보지 못했는데 엉뚱하게도 경주 최부자 가문의 종손인 최준(1884-1970)이 증언한다. 최준은 사회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로 1970년초 만석 재산을 영남대학(구 대구대)에 기부한 조선의 마지막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인물이다.

최준은 의친왕 이강과 영친왕 이은이 경주에 내려오면 자기 집에 묵으며 바둑을 두고 최부자 가문의 비전 음식을 즐겼다는 증언을 남긴다. 그 내용이 최부자 고택의 안내문에 고스란히 살아있기도 하다. 최준은 독립운동가로 사회사업가로 살았지만 바둑과 식탐가로 여가활동을 했다. 실제로 그의 손주며느리 김숙(68)도 경주 최부자 가문의 유일한 호사는 바둑과 식탐이라 증언하고 있다. 최준의 집에는 대구의 팔능 서종오와 동래 거부 정덕겸이 무상으로 들러 바둑을 두었다 한다. 두 사람은 모두 당대의 재력가다.

이 자리에 영남의 바둑고수들이 몰려든 것은 필연이다. 이강은 일본 유학시절 일왕으로부터 바둑판 한 조를 선물받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구한말을 살았던 사람들 중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이승만, 김구, 박영효, 신채호, 이인직, 김가진, 최남선, 한용운, 정인보, 오세창을 보자. 이 사람들 중 바둑을 못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고한 민족주의 사학자로 서슬퍼런 역사관의 소유자인 신채호는 '오직 바둑 둘 때면 어린아이마냥 천진난만했다'고 정인보가 증언한다. 이승만조차 어려서 독선생에게 바둑을 배웠다고 스스로 기록을 남겼을 정도다.

이강은 박영효와도 친교를 나눴다. 박영효의 기록에 사동궁 바둑연회가 등장하기도 하고, 이강은 박영효의 손녀와 자신의 둘째아들 이우와 혼인을 시키기도 한다.


이강은 경주의 최준과 거창에 내려와 은거하던 전승지, 정대균 등과 경상도에서 의병거사를 도모했다. 그런가 하면 1904년에는 장호역, 조태헌, 김형섭 등 군장교들의 정변 쿠데타 세력의 추증을 받는 등 풍파를 맞는다. 이강의 뚝심은 1919년 가을에 있었던 중국망명 사건이다. 이강은 상해임시정부와 교감을 나눈 후 과감하게 중국 망명을 실천한다. 이강은  독립신문에 '조선의 평민으로는 살아도 일본 왕족으로 살지는 않겠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이강은 중국 안동(安東)까지 탈출에 성공했으나 명월관 주인 황원균이 일본 경찰에 준 정보로 안동에서 체포되어 돌아온다. 
 

사동궁

철거되는 사동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