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은 필자에게 현현기경 어떤 책을 가지고 공부했냐 묻는다. 현현기경이 원본이 없는 이상 도대체 어떤 자료를 가지고 공부를 해야 현현기경의 원모습에 접근을 할 수 있을까. 필자도 이 점을 고려 좌은선생본과 일본판본 그리고 국내의 고본을 최대한 노력하여 참고하려 했고 어느 곳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도 파악을 했다.

질문자는 좌은선생이 출판한 왕창조본을 금과옥조로 들이대는데 왕창조본은 필자도 이미 10년전 복사하여 읽는 자료다. 왕창조본이 세상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왕창조본은 번역이나 번안본이 아니다. 왕창조본은 출간 당시 현현기경을 한 페이지씩 찢어 목판 위에 뒤집어 붙힌 후 조각도로 파낸 번각(飜刻)본이다.

원나라시대 만들어졌으니 어려운 고문(古文)이나 몽골문자로 되어 있을 거 아니냐는 추론에 대해선 생각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집이 서를 쓴 수년전 이미 고문과 백화문이 적절히 조화된 송사(宋史)가 탈고된 상황이다. 원나라시대 유행한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은 대부분 백화문으로 써졌다. 현현기경은 지금의 모습대로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왕창조가 어려운 고문(실제로 백화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에게 고문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이나 몽골어를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문장으로 번역하여 출간했다면 왕창조판각이라 했지 왕창조번각이라고는 않았을 것이다. 판각은 글자 그대로 조판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대규모 작업이나 번각은 판각보다 열 배는 쉽고 품도 들 덜 들기에 명청대에 유행한 출판법이다.

노요지마력(路䍃知馬力)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이란 말이 있다. 길이 멀어야 말의 능력을 알고 많은 시간이 지나야 사람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특히 바둑사 탐구는 오래 된 것, 많은 자료의 축적, 그리고 수많은 생각과 묻고 따지는 투쟁심이 없이는 안되는 일일 것이다.

현현기경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번 해프닝에서 다시 한번 그것을 실감한다.

첫 걸음이 만족햐랴.

우리는 다시 한 걸음을 더 나가기 위하여 들판으로 가자.